'혼전계약서' 원칙, 여기에 적용하면 딱이다

[협동조합 A to Z ⑤] 내부 갈등 해결하는 방법

등록 2014.09.17 09:39수정 2014.09.17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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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협동조합이 겪는 두 번째 어려움으로 조직 내 구성원들 간 갈등을 다루겠습니다. 눈치채신 분도 있겠지만, 협동조합이 겪는 세 가지 어려움은 제가 앞서 얘기한 협동조합 설립 시 겪은 3가지 유혹의 연장선입니다. 즉 자본, 권력, 기적으로 사람을 다스리고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유혹이 설립 이후에도 계속되는 것이죠.

오늘은 이 가운데 권력의 유혹에 대응하는 '1인1표의 원리'에 따른 갈등을 다루려고 합니다. 협동조합 상담을 하다보면 내부 분파간 갈등, 이사장과 다른 임원간의 갈등, 무임승차한 이기적인(?) 조합원으로 인한 갈등 등 다양한 갈등 사례를 접하게 됩니다. 돈도 잃고 사람도 잃고 의기투합했던 조합원들이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원수가 되는 사례가 많습니다.  

답은 스스로 찾아야 합니다

해결책을 모색하기에 앞서 협동조합 의사 결정의 특징을 다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협동조합에 대한 정석과 지침이 있길 바랍니다. 물론 법규상 준수해야 할 절차도 있고, 이전의 성공과 실패 사례를 토대로 한 고려 사항은 있을 겁니다. 

하지만 개별 협동조합이 상황별로 내려야할 결정에 대한 답은 경영학책이나 학자, 컨설턴트를 비롯한 전문가에게 있지 않습니다. 심지어 설립 당시 발기인들이 세운 방향이 영구하지도 않습니다.

협동조합은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습니다. 새로운 조합원이 들어오고, 시장 상황을 비롯해 조직 내외부의 상황은 계속 변하기 때문입니다. 이전의 해결책이 지금 시점에서는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럼 답은 어디 있을까요? 답은 현재 협동조합을 구성하는 조합원 스스로에게 있습니다. 협동조합으로 사업을 한다는 것은 미리 정해진 답을 찾아가는 것이 아닌, 조합원 스스로 그 상황에서 판단한 최선의 선택을 만들어가는 과정입니다.


이런 협동조합의 특성에 대해 이탈리아의 자마니 교수는 <협동조합으로 기업하라>라는 책에서 공동선과 전체선을 비교하며 설명합니다. 전체선이 각 개인이나 집단의 선을 모두 더한 것이라면, 공동선은 개인이나 집단의 선을 모두 곱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체선에서는 일부가 희생을 해서 '0'이 된다 하더라도 덧셈의 결과치가 높을 수 있지만, 공동선에서는 소수의 희생으로 '0'이 되면 곱셈의 결과는 '0'이 됩니다. 일반적인 기업이 전체선을 추구한다면, 협동조합은 공동선을 추구합니다.

물론 협동조합이라고 해서 조합원 모두의 의견을 다 수렴하거나 다 만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공동선으로서의 정체성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이 정체성에서 협동조합의 힘이 나오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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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선과 공동선의 차이. 협동조합은 공동선을 추구합니다. ⓒ 주수원


공동의 필요 모으기의 어려움

앞서 협동조합은 공동의 필요를 기반으로 한다고 했죠? 이 공동의 필요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많은 논의가 필요합니다. 일정 정도 비슷한 필요를 기반으로 모였다고 하더라도 막상 실질적인 사업이 진행되고, 조직을 만들어가다 보면 조금씩 차이가 보이기 마련입니다.

어떤 사람은 '사업'보다는 '모임'이 좋아서 모인 분도 있습니다. 반대로 어떤 분은 '모임'보다 혼자서 빨리 하고 싶은 '사업'에 초점을 맞춥니다. 또한 사람들 간 속도도 다릅니다. 하나로 모여진 것 같다가도 다음 날이면 서로 간 차이가 훨씬 크게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렇게 여러 사람들의 필요와 의견을 민주적으로 결합하며 일을 해본 경험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낯선 것은 서로에게 거북하고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또 이러한 시간과 노력을 모두 불필요한 비용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똑똑한 사람 한두 명이 의사 결정하고 나머지는 군소리 없이 따르는 것을 효율적으로 여겨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혼자서 할 수 없기에 여럿이 함께 하고자 모였고, 여럿이 같이 가기 위해서는 힘들더라도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또한 일반 기업에서도 미래의 성장 동력을 인적 자원에서 찾고 '펀 경영', 직급 파괴, 수평적 문화 확산 등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회사에서 하지 말아야할 33가지"로 화제가 된 제니퍼 소프트 사례를 소개한 동영상을 참고해보세요. (동영상 보기)

결국 우리가 협동조합을 하기로 한 이상 1인1표의 운영 원리를 체화하기 위한 훈련의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습니다. 이 과정은 근육을 키우는 것과 같습니다. 안 쓰던 근육을 처음 쓰게 되면 다음 날 근육통에 시달립니다. 근육통은 익숙하지 않은 동작에서 발생합니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같은 동작을 경험한 적이 있으면 다시 같은 동작을 했을 때는 처음만큼 심한 통증을 동반하지 않죠.

민주적 의사 소통 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이 어려워서 그렇지, 서로 간의 이야기를 듣고 조정해가는 과정은 자꾸 하다보면 익숙해집니다. 어떤 부분은 모두가 함께 토론하기보다는 분업화된 개별 전문가의 영역으로 두고 신속하면서 정확한 의사 결정을 해야되고, 어떤 부분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여러 사람이 같이 결정해야겠다는 구분도 생기게 됩니다.

또한 근육통을 예방하기 위해 충분한 준비 운동과 스트레칭을 하는 것처럼, 설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을 충분히 갖고 앞으로 협동조합을 운영할 때 예상되는 갈등에 대해 논의해보는 게 중요합니다.

서로 간의 입장을 이해해보는 역할극 게임이나 협동조합에 대한 서로의 상을 얘기해보는 카드 토론 게임 등도 사전에 자연스러운 이야기를 해볼 수 있는 하나의 방안일 것입니다. 이렇게 각자의 차이를 드러내고, 예상되는 갈등을 시뮬레이션을 통해서라도 미리 겪으며 예방 주사를 맞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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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 복정고 학교협동조합 교육에서 학생들이 카드토론으로 구체화한 협동조합 사업에 대한 상을 서로 발표하는 모습입니다. ⓒ 학교협동조합 지원네트워크


우리들만의 규칙을 통한 자율적 통제

다음으로 앞서 협동조합의 7원칙 외에 여러분 협동조합에 맞는 여러분만의 규칙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협동조합이 동업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은 여러 사람이 함께 일을 할 때 이미 전제된 규칙들이 많다는 점입니다. 협동조합기본법, 정관, 규약, 규정 등이 그러합니다. 규칙이란 게 참 재미없고 딱딱하지만 알고 있어야 사업을 하고 모임을 할 수 있습니다.

추상적인 가치와 마음다짐만으로는 사람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사람의 이기적인 마음을 인정하고, 이를 규칙을 통해서 우리 협동조합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갈 수 있도록 설계를 해야 합니다.

우린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중요하다고 모였지만, 이 열 사람이 꾀를 부리지 않고 함께 걸어가기 위해서는 규칙이 필요합니다. 그런 규칙과 설계가 없다면, 열심히 한 사람이 금세 지쳐 버립니다. 협동조합은 사람들 간의 모임으로서 사람이 중심이고, 가치가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가치를 당위로만 설명하면 사람들이 지치고, 움직이지 않습니다.

규칙을 만들 때는 무엇보다 조합원 간 합의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요즘에는 결혼을 할 때 혼전 계약서를 많이 만듭니다. 가사 노동은 어떻게 분담할지, 양가와의 관계는 어떻게 할지 등을 세세하게 적죠. 하지만 이를 어느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적고, 상대방이 여기에 서명만 했다면 어떠할까요? 규칙은 문서로만 남아있다면 아무 힘이 없습니다.

더불어 계속 얘기했듯이 이 규칙에는 정답이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조삼모사'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원숭이 조련사가 형편이 어려워져 원숭이들에게 주는 사과 양을 줄이려고 원숭이들에게 아침에 사과 3개, 저녁에 사과 4개를 준다고 하자 화를 내서, 아침에 사과 4개, 저녁에 사과 3개를 주기로 약속했다는 이야기죠.

하루에 주는 사과 양은 같기에 다른 것으로 인식하는 원숭이를 비웃는 내용이지만, 실상 이는 다른 것입니다. 우리가 같은 양의 사과를 가지고도 어떻게 분배를 하고, 어떤 때 분배를 할지 정하는 것은 우리들 스스로의 생각과 가치가 담겨있습니다.

규칙 역시 이러합니다. 조합원들이 처한 상황과 가치를 담아 최대한 구체적으로 만드는 게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너무 막연하게 생각되는 분들을 위해 올해 초에 제가 운영하는 아이러브쿱 사이트에 생협 등의 규약, 규정을 참고 삼아 몇 가지 예시를 올려두었으니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관련 내용 보기)

다음 번에는 마지막으로 사업적인 어려움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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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주수원 기자는 오마이스쿨에서 <협동조합 A to Z>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을 보다 쉽고 재미나게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에도 <협동조합 A to Z> 연재를 통해 협동조합 관련한 이야기를 쉽고 재미나게 풀어가도록 하겠습니다.
#협동조합 #의사결정 #민주주의 #내부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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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 및 사회적경제 연구자, 청소년 교육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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