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 속에서 허벅지를 꽉... 그 촉감 못 잊어

[경상도 여자의 전라도 생활이야기] 지네 탓에 잠을 잘 수가 없다

등록 2014.09.18 16:09수정 2014.09.18 16:51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는 꿈을 꾸고 있었다. 오래 전 소식이 끊긴 소꿉친구를 만나 길을 걸었다. 친구와 나란히 걷고 있었지만 나는 자꾸만 뒤처졌다. 친구는 나를 기다리지 않고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갑자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온몸으로 전해지는 통증 때문에 몸을 웅크렸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났다.


a

나를 물었던 지네. 몸집은 크고 머리는 크나 길이가 짧다. ⓒ 김윤희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또 당했구나, 생각이 들었다. 일어나자마자 불을 켜고 통증이 강하게 느껴지는 곳을 살폈다. 집게손가락에는 핏방울 세 개가 맺혀 있었다. 수십 개의 핀이 손가락에 꽂힌 듯 따가웠다. 눈앞이 흐릿해지고 머리가 멍해졌다. 손가락을 눌러 보니 핏방울이 굵어지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무슨 일이 생긴 거지? 분명 지네에 물린 자국인데...'

잠을 자다 지네에게 자주 물렸던 터라 혹시나 하는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주위를 살피니 베개 위로 검은 물체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몸이 검고 다리가 많았다. 다리는 연한 귤빛을 띠고, 몸의 끝 부분에는 0.1cm 두께의 꼬리가 달렸다. 검은 몸과 달리 머리는 짙은 감색이었다. 커다란 지네다. 순간 몸이 굳어졌다. 손가락은 더 아파왔다.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었다.

통증을 참으며 작은 소리로 룸메이트를 불렀다. 피곤에 지쳐 잠든 그를 깨우기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는 급히 부엌으로 달려가 집게를 가져왔다. 지네는 여전히 아무 일 없다는 듯 태연히 베개 위를 활보했다. 집게로 집으려 하자 급히 도망친다. 허나 그의 빠른 손놀림을 피하지 못하고 잡혔다.


밤마다 찾아오는 불청객, '지네'

지네는 잡혔지만 손가락의 통증은 점점 더 심해졌다.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지만 하루를 보내보고 병원을 찾기로 했다. 내가 이렇게 태연한 것은 밤마다 지네를 자주 봤기 때문이다.

시골로 내려가기로 결심한 후에도 난 벌레와 함께 살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내가 알고 있는 벌레는 여치나 메뚜기, 공벌레, 돈벌레, 개미 등이었는데 이들이 내게 해를 가할 것으로 생각지 않았다. 심지어 지네를 볼 거라고 상상도 못했다. 당시엔 지네를 눈으로 본 기억도, 볼 일도 없었다. 

지네를 처음 만났던 날이 떠오른다. 이사 온 첫날 밤,  화장실에 들어가다 지네에게 발을 물렸다. 발 뒤꿈치가 벌에 쏘인 듯 따가웠다. 나는 반사적으로 신에서 발을 뺐다. 신발 바닥 구멍에서 지네가 나오는 걸 보며 집안이 떠나가라 소리쳤다. 내 고함 소리를 듣고 룸메이트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통증이 느껴지는 순간 지네의 독이 퍼져 곧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룸메이트가 화장실 안을 샅샅이 살펴 지네를 잡아냈다. 지네는 크지 않았다. 길이 5cm에 몸도 그리 검지 않았다. 룸메이트는 크기나 색깔로 보아 새끼일 것이라고 했다. 이날 처음으로 지네를 봤다. 그 생김새나 색깔이 징그러워 무서웠다. 의자에 올라앉아 바닥에 내려오지 못하는 내게 그가 말했다.

"좋은 경험 했제. 하하."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그가 얄미웠다. 그 뒤로 화장실을 갈 때마다 신발을 뒤집어 지네의 유무를 확인했고 바닥이 평평한 욕실화로 바꾼 뒤에야 안심했다. 혼자 있을 때 지네가 나타난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지네가 자주 나타나는 곳에서 살아갈 수 있을지 많은 생각들로 괴로웠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지네에게 물린 사실은 잊혔다.

작년 초여름, 지네가 다시 나를 찾아왔다. 어느 구멍을 통해 들어왔는지 알 수 없지만 지네가 내 이불 속까지 침범한 것이다. 허벅지를 사정없이 물었다. 지네에게 물린 경험이 있던 터라 그 아픔의 원인을 금세 알 수 있었고 촉감으로 전해지는 수많은 발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었다.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물림과 동시에 나는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이불을 들추자 지네가 보였다. 내가 내지른 소리에 룸메이트가 달려와 지네를 잡았다. 허벅지 주위가 붉어지며 부어올랐다. 다음 날 내 허벅지를 보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a

물리기 전과 물리고 난 후, 하루가 지나고 난 손이다. ⓒ 김윤희

마침표 같은 점 두 개가 선명하게 드러났고 피부가 갈색으로 변해 있었다. 물린 위치가 허벅지라 병원도 가지 못했다. 갈변한 피부가 원래대로 돌아오기까지 보름 이상이 걸렸다. 잠을 잘 때만이라도 나타나지 않는다면 이렇게 공포에 떨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둠만 내리면 이불 속으로 찾아오는 지네 때문에 잠을 청할 수 없었다.

검은 선만 봐도 지네로 보여 소리치기 일쑤였고 구석진 자리에서 금세라도 지네가 튀어나올 것 같아 방안을 돌아다니는 것도 어려웠다. 방안을 돌아다닐 때마다 바닥을 살피며 걸었고 작은 소리에도 고개를 돌려 지네를 확인하는 버릇이 생겨 버렸다.

룸메이트의 말처럼 지네는 4, 5월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뜨거운 여름에도, 선선한 가을에도, 심지어 12월 초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벽을 타고 움직이는 지네의 모습도 징그럽지만 수많은 발이 움직일 때마다 나는 그 소리는 더 끔찍했다. 소리는 마치 손톱으로 종이를 긁어대는 것과 같았고 점점 더 크게 들려와 나를 두려움에 떨게 했다.

올 추석 일주일 전에도 지네는 나를 찾아왔다. 지네가 내 몸 위를 기어오르고 있었지만 깊은 잠에 빠져 있던 나는 알지 못했다. 그날 두 손을 가지런히 배 위에 올린 채 잠이 들었다. 무언가 내 몸 위를 기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피곤함에 일어나지 않았다.

'그냥 작은 벌레겠지' 생각을 하다 말고 벌떡 일어났다. 자리에서 일어나 이불을 털고 주위를 살폈지만 지네는 보이지 않았다. 그때 내 옷 위를 기어오르는 지네를 목격했다. 화들짝 놀란 나는 제자리에서 마구 뛰었다. 지네가 바닥으로 떨어졌지만 빠른 속도로 달아나 잡지 못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지네가 손가락을 세게 물지 않았다는 것이다. 통증은 금세 가셨다. 며칠 후, 지네는 싱크대 위를 기어가다 룸메이트에게 잡혔다.

지네는 왜 나를 찾아오는 걸까? 내 몸에서 지네를 부르는 냄새가 나는 걸까? 왜 자꾸만 이불 속으로 들어오는 것일까? 밤마다 찾아오는 지네 손님 때문에 나는 편히 잠을 청할 수가 없다. 
#지네 #부은 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의 경의로움에 고개를 숙이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캐나다서 본 한국어 마스크 봉투... "수치스럽다"
  2. 2 황석영 작가 "윤 대통령, 차라리 빨리 하야해야"
  3. 3 100만 해병전우회 "군 통수권" 언급하며 윤 대통령 압박
  4. 4 300만명이 매달 '월급 20만원'을 도둑맞고 있습니다
  5. 5 두 번의 기회 날린 윤 대통령, 독일 총리는 정반대로 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