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아이로 장사..." 제자의 말, 마음 아프다

[주장] 세월호 공동수업안이 편향이라니... 보수의 '진실' 그립다

등록 2014.09.21 13:04수정 2014.09.21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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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보강 : 21일 오후 9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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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가족, 박 대통령 발언에 대한 입장 발표 세월호 가족대책위가 16일 오후 국회 본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에 대해 "국회와 대책위 사이의 논의를 무시하고 2차 합의안으로 끝내라는 지시를 내리는 것 아니냐"며 비판했다. ⓒ 남소연


며칠 전, 보수 언론들은 일제히 전교조의 '세월호 특별법 공동수업안'을 언급하며 전교조 교사들이 편향된 교육을 하려 한다고 비난했습니다. 수업안 내용이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편향된 내용 일색이라며 아이들을 '홍위병'으로 만든다는 원색적 비난까지 더해서 말이죠.

이 기사들은 학교를 쉬며 온통 머릿속이 육아, 육아, 육아이던 저의 일상을 잠시 멈추게 만들었습니다. 졸업생 제자들과 SNS로 세월호 특별법에 대해 몇 차례 얘기를 나눈 탓도 컸습니다.

몇 주 전 저는, 함께 생각해볼 문제라고 생각해 한 언론의 '세월호 특별법,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질 수 있는가'란 제목의 기사를 SNS에 올렸습니다. 소수지만 대학생이 된 일부 제자는 이런 의견을 보였습니다.

"죽은 딸 이용해서 한 자리 해먹으려고 하는 것 아니냐."
"보상금 때문에 죽은 아이들 데리고 장사하느냐."
"이런 걸로 (유가족 자녀가) 특례입학하는 게 말이 되느냐."

제자들의 세월호 의견, 충격이었습니다

어떤 제자는 "(조사위에 수사권, 기소권 부여는) 어쨌든 위헌이잖아요"라고 밝혔습니다. 저는 헌법 몇 조 몇 항에 어긋나는지 말해 보라고 했습니다. 제자는 "그건 잘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너무도 안타까웠습니다. 왜 저렇게 잘못된 사실들을 근거로 세월호 특별법의 핵심 논점인 '수사권과 기소권' 문제에 대한 판단을 내리고 있는지 말이죠. 그저 제 곁의 졸업생 제자들에게만 제대로 된 정보를 알릴 수밖에 없는 처지의 저는, 만일 학교에 있다면 아침 조회 시간이나 진도에 영향 없는 한 시간쯤의 수업 시간을 마련해 이 문제에 대해 토론수업을 해볼 텐데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러던 중 이 수업안에 대한 기사들을 접한 거죠.

사실일까. 저는, 공동수업안을 구해 아이들이 낮잠 자는 사이 꼼꼼히 살펴봤습니다. 솔직히 처음엔 적잖이 당황스러웠습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공감해 보는 시간을 갖거나 현재 대립하는 주장들을 그래프 자료로 소개한 부분은 보수언론의 지적과 달리 문제가 없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가장 논란이 되는 '수사권, 기소권'에 대해 수업안은 '필요하다'는 주장의 논거만을 담고 있어 그랬습니다. 반대편 논거는 제시하지 않은 부족함이 당혹스러웠던 거죠. 본래 교실에서 논쟁 문제로 토론 수업 등을 진행할 땐 어느 한쪽의 입장만 제시해선 안 되니까요.

그런데 다시 곰곰 생각해 보니 공동수업안이 왜 이렇게 만들어질 수밖엔 없었는지가 오롯이 이해됐습니다. 그건 제가 SNS로 졸업생 제자와 대화를 나눈 뒤 세월호 특별법과 관련해 여러 언론의 수많은 글들을 보며 '어쩌면 이렇게도 진상위원회에 수사권, 기소권을 주면 안 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합리적 논거가 없을까'하고 답답해 한 경험과 관련이 있습니다.

반대편에서 제대로 된 논거를 제시한 일이 없으니 공동수업안을 만든 선생님들 처지에선 '수사권, 기소권을 줘서는 안 된다'는 주장의 논거를 학생들에게 전할 수 없었던 것 아닐까요?

교실에서 찬반 양론이 뜨거운 쟁점에 대한 토론수업을 할 때엔, 일명 보수 언론과 진보 언론의 글이 효과적인 자료가 되곤 합니다. 그런데 이번 세월호 특별법의 핵심 쟁점인 수사권, 기소권 문제에 대해선 그럴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보수 언론의 글들이 도무지 학교 현장에서 써먹을 수가 없는 거짓된 자료들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중앙일보> 2014년 9월 6일자 칼럼에는 진상위원회에게 기소권을 줄 수 없는 이유에 대해 '피해자가 포함돼 있는 특정 집단(진상조사위)이 가해자를 직접 수사해 형벌을 주는 이른바 사적구제(私的救濟)는 위헌일 뿐 아니라 근대 자유국가의 작동원리상 허용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앞서 밝혔듯 저의 졸업생 제자들 중에도 '위헌'이라며 수사권, 기소권을 주장하는 것은 '무리'라고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진상조사위원회에서 검사로 임명된 자가 수사권, 기소권을 갖는 것은 특검의 검사 임명 및 활동 원리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위 칼럼과 같은 보수 언론의 기본 관점대로 이를 '민간단체의 수사권과 기소권'으로 본대도 칼럼의 논거들은 사실이 아닙니다.

먼저, '기소권은 검사만 갖는다'는 이른바 기소독점주의는 헌법이 아닌 형사소송법의 원칙입니다. 단순히 수사와 기소의 절차만 규정한 형사소송법 말이죠. 그럼 이 법의 기소독점주의 규정 조항(형사소송법 제246조)을 얼마든지 국회에서 개정할 수 있습니다. 특히 진상위원회가 수사권, 기소권을 갖는 내용으로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할 땐 '특별법 우선원칙'에 따라 진상위원회가 기소권을 갖는 것이 이 조항보다 우선적으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진실 말하는 보수의 칼럼을 보고 싶다

둘째, '사적구제는 근대 자유국가의 작동원리상 허용할 수 없기 때문'이라니요. 그럼 완전한 사소(개인이 기소하는 것)를 현재 시행하고 있는 프랑스와 독일은 근대국가가 아닌 건가요? 또 기소배심제를 통해 간접적으로 사소를 인정하고 있는 미국과 영국은요?

저는 그 칼럼에서 특검을 활용해야 한다고 밝힌 부분이나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박근혜 대통령은 어떻게 해야 한다고 서술된 부분은 문제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그 글을 쓴 이의 주관적인 주장이니까요. 하지만 수사권, 기소권에 대해 칼럼은 거짓을 주장이 아닌 사실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오류가 있는 자료를 어떻게 수업 자료로 쓰나요?

또 다른 보수 언론에선 '자력구제'네, '검사의 권한 침해'네 하는 논거들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자력구제는 무력 등을 동원해 자신의 권리를 찾는 것을 말하는 법적 용어로 전혀 이 논쟁에선 맞지 않는 표현입니다. 또 검사의 권한 침해 문제는 위에서 언급했듯 형사소송법상의 권한 문제이기 때문에 특별법에 따라 진상위원회가 수사권과 기소권을 갖는다고 검사의 권한을 침해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솔직히 저라면 공동수업안에 오류로 가득한 보수 언론의 글들 중 하나를 구겨넣었을 겁니다. 그 주장의 논거들이 얼마나 잘못됐는지 아이들이 직접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말이죠. 하지만 이 수업안을 만든 선생님들은 아무리 거짓을 말했대도 글쓴이를 직접 공격하는 방식의 교육은 피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저 이분들은 그런 언론을 접하면서 거짓을 진실로 오해하는 아이들이 안타까웠을 겁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제가 수업안을 만든 선생님들을 옹호하기만 하는 것 같지만, 저는 사실 그분들에게 부족함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오해를 풀기 위해 '진실 아닌 얘기들은 교육용 자료에 담아선 안 된다'는 것만 생각해 아예 '진상위원회가 수사권, 기소권을 가져야 하는가'라는 세월호 특별법의 본질적 문제에 대해 한쪽의 주장만 담아버리는 우를 범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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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 회원등이 세월호 진상규명 특별법 단식농성장 앞에서 '도시락 나들이' 등 먹거리 집회를 예고한 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앞에서 한 남성이 피자를 먹고 있다. ⓒ 이희훈


민간단체 등 검사 아닌 개인이 기소하는 '사소'가 위헌이고 근대 국가에선 허용할 수 없다는 보수언론의 주장은 거짓입니다만, 그 점과 별개로 수업 자료엔 진상위원회가 기소권을 갖는 사소의 문제들도 담겼어야 합니다.

사소의 문제들로 학자들이 지적하는 부분들을 간략하게만 정리하면, 검사에 비해 전문성이 부족할 수 있고 공정성이 결여될 수 있으며 사소의 남발로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죠. 그런데 보수 언론들은 이런 '합리적인 논거'가 아니라 '이유 같지 않은 논거'들만 늘어놨으니 그런 글들은 수업자료로 도무지 적합하지가 않았던 겁니다.

아마도 적지 않은 시민들은, 안 그래도 법외노조가 된 전교조가 '편향된 수업'을 했다니 아이들이 걱정돼 불안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그 수업자료가 한쪽으로 편향된 것이 아니라 다른쪽 자료를 채워넣지 못한 부족함이 있었으며, 그 이유는 다른쪽 자료가 거짓이기 때문임을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한마디로 그분들이 일부러 편향된 수업을 한 것이 아니라, 그럴수밖에 없도록 보수 정치인들과 학자들, 언론인들이 만들었단 얘깁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누구든 '민간단체가 기소하는 건 정말 불가능한가' 하는 문제를 고민하며 조금만 인터넷 공간을 헤매어 봤으면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앞서 언급했듯 민간단체의 기소와 같은 사소에도 단점은 있습니다. 따라서 전교조는 그런 단점들을 '어떻게든' 찾아내 정리한 뒤 공동수업안에 담았어야 했습니다.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는 보수쪽 정치인, 학자, 언론인이 없는 현실이지만 논문이라도 뒤져서 반대쪽 논거들을 담아 균형 있는 수업안을 완성했어야죠. 그 점은 분명 잘못입니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저는 또 한 번 묻고 싶습니다.

대체 왜 논문까지 뒤져야 하는 걸까요? 진보쪽 언론에선 너무도 쉽게 찾아지는 합리적인 논거들이 보수 언론에선 왜 그리 찾기 어렵나요? 제가 SNS로 졸업생 제자들과 대화한 뒤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본 건 안타까운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일부 제자들은 제대로 된 반대 논거를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옳은 반대 논거를 들은 일이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저의 제자들은 전문성이나 공정성, 효율성의 문제를 언급하지 않고, '위헌'이란 얘기와 함께 보상금이나 특례입학, 정치적 배후세력 등을 언급했습니다.

이런 일부 의견과 모습은 일베의 폭식투쟁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합법적이긴 하지만 도덕적이라 할 수 없는 폭식투쟁을 한 이들이 말하는 것과 제가 사랑하는 제자들의 일부 의견이 같았으니까요.

'편향'이란 무엇인가

거짓을 말하는 것도 표현의 자유라면 백 번 양보해 인정하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거짓말' 표현을 자유롭게 활용한 이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들의 거짓말이 우리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단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보셨나요? 위헌이네, 근대 국가에선 있을 수 없네, 다 보상금 뜯어낼려고 정치적으로 한 자리 하려고 그러는 거네... 하는 말들을 믿은 우리 아이들은 급기야 저렇게도 야만적인 모습까지 보일 수 있는데 말이죠.

논란이 된 전교조 공동수업안의 제목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으로 안전한 사회 만들자'입니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많은 의혹들을 해결하기 위해 특별법을 만드는 것에 대해선 우리 사회가 합의했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 역시 그에 대해 유족들에게 약속한 바 있고요. 또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것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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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6일 오전 안산 단원고 수학여행 학생과 여행객 등을 태우고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 인근 해역에서 침몰하고 있다. ⓒ 해양경찰청 제공


다만 수업안은, 특별법 제정의 내용과 방향에 대해 학생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설명하는 과정에서 수사권과 기소권 문제에 대해 정당한 반대의 논거들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아무리 언론을 뒤져도 쓸 만한 자료를 찾아낼 수 없었으니까요.

거짓을 담지 않았단 이유로 전교조의 수업안은 '홍위병을 양성하는 편향된 수업안'이 돼버렸습니다. 그것이 세월호 참사 추모를 상징하는 노란 리본을 달거나 세월호 참사 자체를 언급하지 말라는 교육부 지침에 좋은 빌미가 됐습니다. 

같은 십대의 아이들이 그리도 끔찍한 일을 당했는데 어떻게 함께 고민해보지 않을 수 있나요? 그 아픔을 공감하고 우리사회의 움직임을 비판적으로 곰곰 생각해보는 과정은 수학공식보다 영어단어보다 훨씬 더 중요한 공부가 아닌가요? 그것이 진짜 교육인데 그런 교육을 하지 말라고, 너무 정치적이라고 한다면, 우리 아이들은 교실에서 제대로 된 진실을 듣지 못하고 일간베스트 등에서 왜곡된 사실을 배우고 유가족들에 대한 그릇된 혐오감을 배울 수 있습니다. 왜 어른들로서 그걸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나요?

저는 지금이라도 전교조 공동수업안에 '거짓이지만 어쨌든 입장을 달리하는 주장'인 보수언론의 칼럼 하나쯤 넣으면 어떨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홍위병 만드는 세력'이란 치욕을 벗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런데 만일 전교조가 저의 이런 생각에 동의한다면 저는 이번엔 다른 측면에서 안타까워질 것 같습니다. 수업자료에 거짓이 들어가야 편향된 수업이란 오명을 벗는, 노란 리본을 떼어내야 편향된 교사란 오명을 벗는 그런 우리사회의 기막힌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 말이죠.

'편향'이란 대체 무얼까요?
#세월호 특별법 #세월호 전교조 #세월호 편향 수업 #전교조 #홍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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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사회과 교사였고, 로스쿨생이었으며, 현재 [법률사무소 이유] 변호사입니다. 무엇보다 초등학생 남매둥이의 '엄마'입니다. 모든 이들의 교육받을 권리, 행복할 권리를 위한 '교육혁명'을 꿈꿉니다. 그것을 위해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글을 씁니다. (제보는 쪽지나 yoolawfir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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