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태양초 고추가루를 만들었어요

태양초만들기 정말 힘들어요

등록 2014.09.19 17:41수정 2014.09.19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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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앞마당에 널어 놓은 고추 ... ⓒ 정현순


"색깔 참 곱다. 집에서 말렸나 봐요?"
"네, 다행히도 요즘 날씨가 좋아서 아주 잘 말랐어요."
"이건 고추씨 버리지 말고 씨 채 다 빻아도 좋겠네."
"그렇지 않아도 그러려고요. 고추씨가 흔들리면 아주 잘 마른 거라고 고추를 본 사람들이 한마디씩 하더라고요. 해서 씨 채 빻으려고 해요. 고추를 흔들어 보세요. 고추 안에 있는 씨가 흔들리거든요."


그는 고추를 흔들면서 "이렇게 말려야 좋은데 난 산 거라 빛깔이 완전히 다르네"한다. 추석을 앞뒤로 해서  고추말리기에 아주 좋은 날씨라 잘 말릴 수 있었다. 그땐 고추를 거두어 집에 가지고 올 땐 고추가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만져 보고 또 만져 보곤 했었다.

며칠 전 힘들게 말린 고추를 빻으려고 고추방앗간을 갔다. 그곳에는 고추를 빠러 온 2~3명의 주부들이 있었다. 서로의 고추를 보면서 평을 내놓기도 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고추방앗간 주인은 "이번에는 제대로 말려왔네요. 아이구 제법 맵다"한다. 이번이 3번째 말린 고추를 빻으러 간 것이다. 다행히도 3번째 고추는 합격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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눌린 쥐포처럼 나오는 고추가루 ... ⓒ 정현순


첫 번째 고추는 8월 말께 빻았는데 그땐 고추가 덜 말라 방앗간에서 "이거 적으니깐 빻아주지, 많으면 못 한다"고 했다. 고추가 기계에서 빻아 나오는 것을 보니 덜 말라도 너무 덜 마른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치 눌린 쥐포처럼 나왔다.

지난 8월에는 뒤늦은 여름장마로 고추말리기가 쉽지 않았다. 선풍기에도 말려보고 건조기에 찌어내기도 해보았지만 햇볕만큼 좋은 것은 없었다. 내가 아무리 부지런을 떨어도 하늘이 도와주지 않으니 속수무책이었다.

그렇게 2~3일만 날씨가 더 안 좋았으면 다 버려야 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햇볕이 하루 이틀 반짝였다. 그 틈에 이른 아침부터 아파트 안마당에 이틀을 널어 말리니 빻아도 될 것 같았다. 일기예보는 다음날에도 비가 또 온다기에 부지런히 손질을 해서 방앗간에 가지고 간 것이다.


가지고 가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조금은 걱정했던 내 생각이 맞아 떨어진 것이다. 고추 집에서 판매하고 있던 고추나 내가 가지고 간 고추나 건조 상태는 비슷해보였지만 완전 다르다고 했다. 거기에 있는 고추는 완전히 마른 상태에서 습해진 것이고 내가 가지고 간 것은 처음부터 덜 마른 것이라고 했다.

하여 그렇게 빻은 고춧가루는 그늘에서 더 말려주거나 될 수 있으면 빨리 먹으라고 방앗간에서 가르쳐주기도 했다. 태양초 만들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남편이 열심히 농사지은 것을 잘 말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힘들다는 생각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내가 고추를 내놓거나 들여놓은 것을 본 동네사람 중에 "재미있지요?"하며 묻기도 한다. "아니요 재미는요. 너무 힘들어요."하면 그는 "그렇지요 힘들지요? 사먹는 것이 싸게 먹는 겁니다."하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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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로 짧게 잘라 말리는 고추 .. ⓒ 정현순


주말농장에서 따오는 고추이니 한꺼번에 말리지는 못한다. 하여 두 번째 고추를 말릴 때에도 날씨가 오락가락 하기가 일쑤였다. 고추를 본 할머니들은 "고추를 길게(세로) 자르지 말고 짧게(가로)잘라서 말려요. 그럼 아주 빨리 말라"했었다. 하긴 언젠가 시장에 갈 때에 어느 집에서 고추를 말리는 것을 봤었다.

그 집은 그야말로 가로로 짧게 잘라서 말리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아주 깨끗하게 잘 마르고 있는 것을 본적이 있었다. 그래서 나도 그 할머니가 시키는 대로 짧게 잘라서 말리니 정말 빠른 속도로 잘 마르는 것 같았다. 첫 번고추보다 잘 마른 것 같기에 조금은 자신 있게 고추를 빠러 갔다.

그러나 고추를 기계에 넣으면서 방앗간 아저씨는 "다음에는 고추를 이렇게 잘라 오지 마세요. 기계에 안 들어가잖아요. 자 와서 봐요"하며 조금은 짜증 섞인 말투였다. 난 아저씨가 보라기에 기계 안을 들여다보았더니 과연 고추가 기계에서 잘 빠지지 않고 있었다. 아저씨는 힘껏 고추를 밀어내고 있었다. "아저씨 다음에는 길게 잘러 올게요." 하는 말밖에 할 말이 없었다.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든 것이다.

거기에 다 빻은 두 번째 고춧가루를 비닐봉지에 담으면서 아주머니 하는 말"비올 때 말려서 큼큼한 냄새가 난다. 이거 가서 뚜껑 열어놔 그래야 냄새가 없어지니깐" "그럼 김치 맛이 이상해지나요?" "아니 그렇지는 않아요." 한다.

도대체 큼큼한 냄새란 어떤 것일까? 집에 와서 냄새를 맡아보니 정말 이상한 냄새가 났다. 태양초 고춧가루 만들기가 올해로 몇 번째인가? 수차례 되는 것 같은데 수월해지기는커녕 더 힘들다는 것이 느껴진다.

두 번째 고춧가루를 끝내고 입병이 다 났으니 말이다. 그래도 빨간 물고추를 가지고 오는 남편은 언제나 싱글벙글이다. 자신이 대견한 모양이다. 그런 모습을 보면 나 힘들다는 소리를 할 수가 없다. 남편도 가족을 위해서 하는 일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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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잘라는 고추가루와 오른쪽 덜 마른 고추가루, 완연히 다른 빛깔 ... ⓒ 정현순


그런데 3 번째 고추 가루를 담는 아주머니 "여태까지 우중충 하던 고추만 보다 이렇게 잘 생긴 고추를 보니 정말 좋구만"한다. 그 소리를 들으니 힘들었던 내 마음도 풀리는 듯했다.
#태양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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