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싸가지론', 고작 이겁니까?

[주장] 강 교수의 22일 자 <한겨레> 칼럼을 읽고... 근거 약한 비약일 뿐

등록 2014.09.23 13:48수정 2014.09.23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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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전북대 교수 ⓒ 남소연

나는 오래 전부터 스스로를 진보주의자가 아니라 양심주의자라고 자처하고 있다. 최소한 2008년 이명박이 권력을 잡은 이래 대한민국은 보-혁이 아니라 상식과 몰상식, 양심과 비양심, 합리와 불합리가 맞서 싸우는 중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여기서 상식과 양심, 합리를 추구하는 이들은 진보냐 보수냐를 떠나 뭉뚱그려 '양심주의자'라 부를 만하다고 본다.

하지만 최근 강준만 교수가 <싸가지 없는 진보>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는 소식에 갑자기 기분이 나빠지는 나를 발견하고는 내가 여전히 진보라는 카테고리에 속해 있음을 절감했다. 내가 '진보'니 '지식인'을 논할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내 경험상 나를 포함한 일부 진보적 지식인과 야권 정치인들은 '싸가지가 없다'는 강 교수의 견해에 동의한다. 나 역시 그들과 어울리고 나면 밥맛까지 떨어지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최근 한 친구가, 몇 년 전 서울의 큰 사찰 주지로 있다가 지방 작은 절에 쫓겨가 있는 한 스님의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서울에서 알고 지내던 한 수구신문의 중견 언론인이 인사차 자신을 찾아와 봉투 하나를 놓고 가더라며 "옛날 절 문턱이 닳도록 뻔질나게 들락거리면서 도움을 청하던 이른바 진보인사들의 으~리(의리)는 도대체 어디로 도망가 버렸느냐"고 한탄하더라는 것이다. 진보의 '싸가지' 문제는 내 생각, 내 경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하지만 이런 '싸가지 없음'이 진보로의 정권교체에 결정적인 장애물이 된다는 식의 분석은 참으로 터무니없다. 논리의 비약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내 생각에 정권교체가 어려운 이유는, 집권 수구세력의 힘은 엄청 세고 단단히 결집해 있는 반면 진보세력은 단결조차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의 수구세력은 정치세력-재벌-권력기관-관료기구-언론-대형교회 등을 망라한 철통같은 '권력 카르텔'을 구축한 채 온갖 수단을 총동원해 정권유지에 전력을 다 하고 있다.

딱 한 가지 예만 들자. 많은 정예 요원들이 '1조 원+알파'의 막대한 예산을 쓰는 국정원이 정권유지기구로 전락한 채 법을 무시하고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면허'를 받고 설쳐 댄다면 무엇으로 이를 막을 수 있는가.

정권교체 힘든 건 '싸가지' 아닌 '분열' 때문


그럼에도 야권은 여전히 분열을 일삼고 있다. 김대중·노무현 민주정부 때는 강고한 '진보 카르텔'을 만들지 못한 채, 탄핵 반대파-찬성파로 갈려 싸웠고 친노-반노로 갈려 싸웠다. 이젠 여러 계파로 나누어졌고 이마저 강경-온건으로 갈린 상태다.

대개 야권의 분열세력들은 외부세력의 부추김과 자신의 이익에 눈이 멀어 분열하면서도, 분열의 이유로 상대방의 '싸가지 없음'을 든다. 이념과 이익 문제를, 강준만 교수의 언어에 따르면 태도의 문제로 치환하는 것이다. 그런 면(싸가지가 일정 부분 분열을 조장한다는 면)에서라면 나는 강 교수의 견해에 또 한 번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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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30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앞에서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국민공감혁신위원장을 비롯한 의원과 당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세월호특별법 제정 촉구 문화제'가 열렸다. ⓒ 권우성


그러나 22일 자 <한겨레>에 실린 그의 칼럼 '싸가지없는 진보를 넘어서'를 보면, 강 교수는 아주 작은 논리조차도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자신이 기왕에 내뱉은 '싸가지'라는 야박스런 단어를 변호하고 판매하기 위해 강변에 강변을 거듭하고 있을 뿐이다.

강 교수는 "새정치민주연합의 국회의원들은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런 인정을 옳지 않은 타협으로 간주한다"면서 "타협을 기본적인 행동 양식으로 삼아야 할 정당의 주체"로서 새정치연합 국회의원들은 "설사 상대 정당이 '패륜집단'이라 하더라도 그 집단이 '있는 그대로의 세상'에서 자기 집단보다 더 큰 힘을 갖고 있다면, 그들을 타협의 대상으로 삼아야만 한다"고 충고하고 있다.

그는 또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미스터리'는 지금에 와서 핵심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전제를 깔고 "'7시간 미스터리'를 양보하는 대신 보다 많은 것을 얻어내고 진보적 민생 의제로 옮겨가는 타협의 정치"를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와 유족들을 더 위하는 길"일 것이라고 제안한다.

그러면서 강 교수는 "여우와 같은 지혜로 사회를 실질적으로 바꾸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사자처럼 포효하면서 자신의 존재 증명에 급급한 진보는 '싸가지 없는 진보'로 비치기 십상"이라며 "진보한테 필요한 건 정의감과 도덕적 우월감의 과시가 아니라 어떻게 해서 건 세상을 바꾸려는 꿈과 실천에 대한 갈증과 허기다"라고 결론을 맺고 있다.

싸가지 있으려면 '패륜집단'과 타협해야 한다?

나는 아직 그의 책을 보지 못했다. 다만 여러 서평이나 인터뷰 등을 종합해 그가 쓴 책의 내용을 짐작하건데 이날 그는 '싸가지 없는 진보를 넘어서'라는 칼럼을 쓴 것이 아니라 <싸가지 없는 진보>라는 책의 내용을 반복했을 뿐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그가 '싸가지 없는 진보를 넘어서'기 위해 제시한 근거와 방법은 전혀 터무니 없기 때문이다.

첫째, 정당에게 타협만이 기본적인 행동양식이 아니다. 설득을 통한 동의, 양보에 의한 타협, 협박에 대한 투쟁이 모두 정치행위다. 패륜집단이 설득하려 하지 않고 양보하지 않으면서 나 몰라라 하거나 협박을 일삼을 때, 그 상대방이 택하는 타협이란 굴복이지 결코 타협이 아니다.

둘째, 그럼에도 새정치연합에는 기회만 있으면 '진보적 민생의제'로 옮겨가 '타협의 정치'를 했으면 하는 의원들이 득시글 거린다. 다만 이들은 지금과 같은 엄혹한 시국에서도, 세월호 특별법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줘야 한다는 국민이 절반을 넘는 상황이 두려워 눈만 껌뻑거리고 있을 뿐이다. 강 교수는 이들에게 힘을 주고 싶은가.

셋째, 강 교수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지지율이 새누리당 지지율의 반토막 수준에 머무르는 현실이 지속되는데도 천하태평이다"라고 했는데, 여기서 실로 천하태평인 국회의원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자기의 의원직만 유지하면 '장땡'이라고 여기는 자들뿐이다. 지금의 정치의식 조사는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국민이 절반에 이르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새정치연합에 만일 진보적 국회의원들이 있다면, 이들은 천하태평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등 돌린 지지자들을 어떻게 되찾아 올 것인지 고심하고 있을 것이다.

넷째, 아직 제대로 된 수사가 시작도 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7시간 미스터리'가 핵심 사항이 아니라는 결론을 쉽게 내릴 수 있는가. '딴 짓'은 하지 않았더라도 '아무 짓'도 안 한 것만은 분명하지 않은가.

다섯째, "궁극적으로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와 유족들을 더 위하는 길"이라고 했는데, 이 싸움이 세월호 유족들만을 위한 싸움인가? 진실과 정의를 구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특별법은 유가족만을 위한 것도 아니고 유가족들만이 원하는 것도 아닌, '세월호 이전과 이후'는 분명히 달라야 한다는 양심적인 국민들 모두의 정의를 향한 염원이다. 강 교수는 사태의 본질을 잘못 봐도 한참 잘못 봤다.

여섯째, 최소한의 도덕과 정의를 확보하지 못한 채, 진보가 어떻게 세상을 바꾸려는 꿈과 실천에 대한 갈증과 허기를 채울 수 있는가.

아무 데나 갖다 붙인 '싸가지' 아닌가

'피곤하지 않느냐' '해도 안 될 것이다' '그러니 이젠 그만 하자'고 충고하는 것이 차라리 솔직하다. '싸가지'를 들이밀며 강변할 일이 아니다. 오래 전 나는 한 호남의 친구와 절연한 적이 있다. 나름 상식과 양심을 지니고 합리적인 잣대로 세상을 보려고 노력하는 친구라고 여겨 오랫동안 흉금을 나누며 기꺼이 사귀었던 친구다.

그가 어느 날 "호남이 오늘날 이렇게 낙후된 것은 김대중만 대통령 만들면 된다고 생각하고 너무 비타협적으로 투쟁해 온 결과"라면서 "이젠 호남인들도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는 타협적인 정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에 너무 충격을 받았다. 바로 그 시기 호남 차별에 대해 그 친구와 정확히 반대의 논리를 펴던 강준만이 오늘날 그 똑같은 논리를 새정치연합과 진보에 갖다 대는 것이 놀랍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극히 일부 진보인사들의 싸가지에 대한 강 교수의 문제제기에 동의한다. 그러나 그건 결코 전체 진보의 이야기도 아니고, 새정치연합이 진보의 아성도 아니고, 오직 그것 때문에 정권교체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설사 강 교수가 몇몇 싸가지 없는 진보인사들에게 험한 꼴을 당한 원한이 깊다 하더라도, 당신도 역시 그 싸가지 없는 진보지식인의 하나가 아닌지 돌아 볼 일이다.
#강준만 #싸가지 #새정치민주연합 #세월호 #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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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제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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