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일반인의 '성범죄' 인식 차이, 생각보다 크다

광주지법 양형컨퍼런스... 성범죄 처벌수위는 시민이, 음주운전은 법조인이 높아

등록 2014.09.29 21:02수정 2014.09.29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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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의 상식과 동떨어진 판결이다."
"국민 법 감정에 맞지 않는다."

민감한 사안을 두고 국민 정서와 다른 사법부의 판단이 나올 때마다 단골처럼 등장하는 비판이다. 특히 올해는 벌금 미납 피고인에게 일당 5억 원을 선고한 '황제노역' 판결과 '정치개입은 했지만 선거운동은 아니다'란 국가정보원 대선개입사건 판결이 잇따르면서 법원과 국민의 인식 차이가 거듭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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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의 일당 5억 노역에 대한 비난 여론이 뜨겁던 지난 3월, 광주지방법원 정문에서 광주전남지역 시민사회단체 등이 사법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강성관


광주지방법원(법원장 김주현)이 29일 양형컨퍼런스 '죄와 벌 : 여러분이 판사라면?'에서 발표한 양형 관련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법조인과 일반 시민은 엇갈리는 모습이었다.

올해 초 황제노역 판결로 뭇매를 맞았던 광주지법은 '국민 법 감정'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8월 1일부터 9월 17일까지 광주지역 성인남녀 52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법원은 크게 음주운전 보행자 사망사고, 청소년 대상 데이트강간, 아동 성추행 등 세 가지 사안을 두고 합의 또는 공탁 여부, 피해 정도 등 양형요소에 따라 과연 얼마만큼의 양형이 적당한지 시민 474명과 법조인 52명에게 물었다.


그 결과 '성범죄자는 엄벌을 처해야한다'는 기조는 법조인과 일반인 모두 같았지만, 일반인 응답자들이 더 높은 형을 택하는 편으로 나타났다.

일반인, '성범죄 엄벌' 의견 강해... 법원 "차이 유념해야"

특히 피해자가 어릴수록 처벌의지가 강했다. 일반인 응답자 66%는 피고인이 피해자 쪽에게 1000만 원을 지급하고 합의(피해자가 선처를 바란다고 의사 표시)했을 경우 2년 6개월에서 3년 정도의 징역형을 집행유예하는 게 적정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62%는 피해자의 나이를 만 17세에서 15세로 낮추자 '실형에 처해야 한다'고 의견을 바꿨다. 반면 법조인들은 처음부터 92%가 '집행유예'를 선택했고, 여기서 52%는 상황이 달라져도 처벌 수위를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아동 성추행 사례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 역시 비슷했다. 일반 시민의 28%는 피고인이 피해자 쪽에 사죄하고 합의했어도, 피해자가 정신적 충격을 입었다면 실형에 처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똑같은 의견을 말한 법조인은 단 6%였다. 나머지는 벌금 또는 집행유예가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양쪽은 모두 합의나 공탁(피고인이 합의를 시도했으나 실패할 경우 국가기관에 일정금액을 맡겨 피해자 쪽이 받아가도록 하는 제도) 여부를 중요한 양형요소로 봤다. 피해자 쪽에서 합의했을 경우에도 실형 선고가 필요하다는 일반인 응답자는 68%, 법조인 응답자는 42%였다. 그런데 이 숫자는 합의 없이 공탁을 했을 경우 일반인 79%, 법조인 88%로, 합의도 공탁도 없다면 일반인 87%, 법조인 95%로 뛰었다.

한편 음주운전 사건에는 일반인이 좀 더 관대했다. 가로등 없는 어두운 도로를 무단횡단하던 보행자가 음주운전차량에 치여 사망했을 경우, 보험처리가 됐고 유족들이 합의했다면? 벌금형이 적절하다는 일반인 응답자는 60%, 법조인은 48%였다. 보험처리와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어도 일반 시민의 55%만 실형에 처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법조인들은 83%가 실형 의견을 냈다.

광주지법은 특히 성범죄 양형에서 나타난 일반 시민과 법조인의 온도차에 주목했다. 법원은 "일반 시민들이 법조인에 비해 피해·가해 정도에 훨씬 민감하다"며 "이러한 차이에 유념하면서 신중하게 심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법 감정 #광주지방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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