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로 첫 '올해의 작가상' 노순택
"나는 넝마주이... 현장 더 떠돌고 싶다"

[인터뷰] "사진은 세상이라는 몸통이 흘린 한 가닥 털"

등록 2014.10.08 15:38수정 2014.10.08 15:38
1
원고료로 응원
a

노순택 작품 ⓒ 노순택


두 점의 사진이 있다. 검은 양복을 입고 국가가 손대기 꺼림칙한 일을 대신 처리하기 위해 들판을 가로 지르는 사내들. 안개인지 연기인지 알 수 없는 그 무엇이 사위를 감싸고 있다. 2006년 평택 대추리.

이런 살벌한 풍경 속을 누비며 각자의 목적에 따라 셔터를 눌러대는 사진 생산자들. 그들의 차림새와 동작은 엇비슷하지만, 목적은 다르다. 누군가는 취재보도를 위해, 누군가는 채증을 위해, 또 누군가는 주의주장을 위해. 어떤 현장에서 그들은 누구랄 것 없이 군무를 춘다. 2013년 세계노동절 기념집회가 열리던 서울시청광장 한 켠 경찰진압차량 위에 올라선 한 무리도 그랬다. 그들은 마치 총을 겨누듯 카메라를 겨누고 있다.

'무능한 풍경의 젊은 뱀'

국립현대미술관 '2014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한 사진가 노순택(43)이 자신의 사진연작에 붙인 제목이다.  

a

노순택 작품 ⓒ 노순택


#사진 1 : 잔인하기 전에 무능한 풍경

지난 5일 <오마이뉴스> 서울 서교동 마당집에서 만난 그에게 '무능한 풍경'의 의미를 물었다. 대추리 싸움, 밀양 송전탑 싸움, 쌍용차 해고자 투쟁, 제주 구럼비 싸움……. 지리멸렬하고, 번번히 져온 싸움을 '무능한 풍경'으로 자조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다. 내가 말한 '무능'은 국가폭력 앞에 저항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을 향한 것이 아니다. 내가 무능하다고 바라본 이들, 집단은 '국가'거나 '정권'이었다. 내가 사진으로 드러낸 많은 장면들은 국가가 일사분란하게 '작동'하는 풍경의 단면이다. 나는 그 작동이 오작동이라고 생각한다. 국가가 잘 작동했더라면 저런 살벌하고 잔인한 풍경들이 빚어졌을까. 체계적이고 일사분란하여 유능하게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 모습들은 무능이 빚어낸 풍경에 다름 아니었다. 


연평도 포격사건만 하더라도, 충돌과 도발이 예상되는 숱한 정황들이 있었다. 군과 정부가 조금 더 침착하고 정교한 전술을 펼쳤더라면 사태를 피할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하물며 사태 뒤 여당대표가 벌인 '보온병 해프닝'을 생각하면 웃어야 하는가, 울어야 하는가. 연평도 포격사건은 남북한 권력 모두에게 반사이익을 주었을 것이다. 무능한 권력은 적대적으로 공존함으로써 시민과 인민을 제물 삼는다.

강정마을에서도, 용산참사에서도, 쌍용차 해고사태에서도 국가는 무능했다. 그 총체가 세월호 참사다."

노순택은 국가의 폭력성 뒤에 숨은 무능한 얼굴의 실체를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a

노순택 작가 ⓒ 노순택


#사진 2 : 난 젊은 뱀이다

그렇다면 그는 이 장면을 찍는 사진쟁이들을 왜 '젊은 뱀'으로 규정했을까? 물론 그 속에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사진은, 누군가의 즐거움은 물론이거니와 누군가의 고통마저도 '근사한 장면'으로 만든다. 허나 사진이 근사하다고 사진이 만들어지는 과정마저 근사한가. 다이아몬드가 아름답다고 해서, 그 생산과정마저 아름다운가. 사회적 갈등과 충돌의 장면은 더욱 그러하다. 누군가 울고 있고, 화내고 있고, 쓰러져 있는데, 또 누군가는 사진기 뒤에 숨어 표정을 감춘 채 각자의 방식대로 '근사한 사진'을 만든다. 그것은 멋지고도 추악하며, 순진하고도 사악하다."

그는 발명된 지 175년밖에 안된 젊은 매체, 사진의 속성을 이야기한다. 

"다양한 시각매체 가운데 사진은, 발명된 시점을 특정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매체다. 회화의 나이와 비교한다면 어린 아기에 불과하다. 하지만 175년의 짧은 역사에도 사진은 인간의 시각을 거의 장악하다시피 했다. 오늘 우리가 사진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을까. 사진은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장치다. 특히 포토저널리즘은 험악한 폭력의 현장 속에 우리를 몰아넣지 않으면서도, 그 폭력의 절정을 안전하게 엿볼 수 있게 해 주었다. 하지만 그 사진을 봄이 곧 세계의 이해일 수 있을까. 용산참사의 사진을 보았다고, 용산참사의 실체를 안다 말할 수 있을까. 사진은 단편을 드러낼 뿐이다. 아주 협소하고 편협한."

a

노순택 작품 ⓒ 노순택


#사진 3 : 세상의 털

그는 에둘러간다. 확실하고 강력한 것 같지만, 사실은 모호한 매체인 사진의 속성을 닮았다. 사진가로서는 처음인 '올해의 작가상' 수상 소감도 직설이 아니라 은유로 마무리했다.

"이를테면 사진은 세상의 털이지요. 몸통은 아닙니다. 하여 털을 보여 드릴 테니, 그 털이 어떤 몸에서 비롯된 것인지 생각해 보시렵니까. 그러면 털에서 거울을 볼 수도 있을 겁니다. 이런 '털로 된 거울'을 만들고자 당분간은 거리에 머물 생각입니다."

그와 만나기 전, 수상소감의 이 구절을 해석하려고 한참을 생각했다.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아무리 유능하고자 발버둥을 쳐도, 사진은 세상의 협소한 공간과 찰나를 담을 뿐이다. 결코 세상이라는 몸통을 보여줄 수 없다. 터럭만큼이나마 보여준다면 다행이다. 헌데 그 터럭이 어디서 비롯되는가. 몸통 아닌가. 털을 잘 보는 것만으로도 그 털이 동물의 털인지 사람의 털인지, 남자의 털인지 여자의 털인지, 또는 어느 부위의 털인지 알 수 있다. 털은 몸통이 아니지만, 분명코 몸통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몸통을 짐작케 한다. 사진이 비록 편협할지나 그것이 세상의 흔적이라는 사실만큼은 유효하지 않은가. 나는 사진이 세상이라는 몸통이 흘린 한 가닥 털이라 생각한다."

그는 사진이 전하는 메시지를 '세상의 모든 진술'로 치환시켰다. 사실은 사실이지만, 또 다른 각도, 또 다른 시공간에서는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목격자에겐 진술의 책무가 따른다. 하지만 진술이 진실의 동반자일까? 세상의 모든 진술은 결함을 가질 수밖에 없다. 문자 언어처럼 사진적인 진술도 그렇다. 나는 진술자에게 확신보다 의심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장면은 정의입니다. 저 장면은 불의입니다. 그러니 환호하세요. 또는 분노하세요.' 이런 식으로 말 걸기가 두렵다. 나는 내 진술이 결함투성이라 여기거니와, 관객 또한 내 진술에서 결함을 보기를 바란다."

그는 자기 사진을 독자에게 내놓으면서 의심하라고 권하는 '이상한 작가'다.

a

노숙택 작품 ⓒ 노순택


#사진 4 : 털로 만든 거울

겸양의 표현이든 사진의 한계를 지적한 자조 섞인 표현이든, 단순하게 말하면 사진에서 자기주장을 강요하지 않고 판단을 독자에게 건넨다는 뜻이다. 사진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그걸 매개로 인식을 확장하라는 것이다. 그럼, 사진을 관찰하면 '털로 된 거울'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일까?

"사진은 가위질 된 시공간을 보여준다. 그걸 털로 비유했다. 사진이 세상을 들여다보는 창인가, 스스로를 비추는 거울인가를 둘러싼 오래된 논쟁이 있다. 나는 창일 수만도, 거울일 수만도 없다고 생각한다. 세상이라는 몸통에서 돋아난, 사진이라는 털을 보면서 무엇을 생각할지는 각자의 몫이다. 타자에게서 자신을 발견하는 일 또한 각자의 몫이다.

창을 통해 우리는 바깥 풍경을 보지만, 그 창을 살짝 다른 각도에서 보면, 자신의 모습이 되비친다. 요컨대 세월호 참사는 명백히 타인의 일이다. 하지만 전적으로 타인의 일인가. 세월호 참사의 어떤 장면은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창을 제공해 주지만, 똑같은 그 장면이 자신을 돌아보는 거울일 수도 있다."

a

노순택 작품 ⓒ 노순택


#사진 5 : 마음의 온도와 작업의 온도

그는 스스로를 엉뚱하고 실없는 자라고 말했다. 그의 엉뚱함은 첨예한 대결의 현장에서 '풍자와 은유'로 나타난다. '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오마이북 출간)도 그 작업의 일환이다. 왜 엉뚱하게 에둘러 가는가?

"예전에는 마음의 온도와 작업의 온도가 일치하는 걸 선이라 여겼다. 지금도 크게 다르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일치를 추구하지 않게 되었다. 주제파악이랄까. 늘 우왕좌왕, 좌충우돌해 왔으므로 짐짓 점잖은 체 하기보다는 어설픈 작업의 과정을 드러내는 게 바로 내 작업이 아닐까 생각했다. '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는 분단정치의 허우적댐을 추적하는 작업일 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실없이 서성이는 나 자신을 바라보는 작업이었다. 물론 이는 '형식'에 대한 고민의 반영이기도 하다." 

그는 연평도 포격사건 당시 안상수 전 한나라당 대표의 보온병 발언도 황당하지만, 당시 주변의 발언이야말로 분단정치의 오작동을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안상수씨가 보온병을 들고 포탄이라고 외칠 때 그 옆에 있던 황진하 의원은 무얼 하고 있었나? 맞장구를 치면서 포탄의 규격을 설명해 주었다. 그는 3성 장군이자, 포병부대를 호령했던 최고위 지휘관 출신이다. 함께 있던 안영환 대변인 또한 군 장교출신이었다. '행불상수'라는 별명이 붙었던 안상수씨야 그렇다 치더라도, 이른바 국방전문가라는 사람이 보온병을 두고 이건 122미리 포탄이요, 저건 76미리 포탄이라고 규격을 설명하다니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포격사태로 목숨을 잃은 이들을 생각하면 말문이 막힌다."    

노순택이 취한 오작동의 노출 방식은 비분강개가 아니었다. 

"도대체 안상수가 놓고 간 보온병이 어디에 있을까? 그대로 있을까? 혹은 누가 치웠을까? 그런 생각으로 잠을 뒤척였다. 한겨울 연평도에 다시 들어가 그가 떨구고 간 보온병을 찾으려고 섬을 쏘다녔다. 나는 그런 실성한 짓을 얼마나 성실하게 수행했나. 궁금함에 못 이겨 연평도를 어슬렁대는 내 모습은 얼마나 기괴했을까. 나는 분단정치인 안상수를 추적하기 시작했고, 그에게서 나를 보려 했다."

a

노순택 작품 ⓒ 노순택


#사진 6 : 분단은 오작동으로 작동한다

- '보온병'에서 보여줬듯이 노순택의 저변에 흐르는 문제의식은 분단이다. '분단은 오작동으로 작동한다'고 표현했는데, 무슨 의미인가? 또 다양한 소재와 주제 가운데 분단을 주목하는 까닭은?
"전쟁이 발발한 지 어느새 64년이다. 이 전쟁의 상태를 규정하는 용어는 휴전이나 평화협정이 아니라 정전이다. 잠시 멈춘 상태라는 말이다. 허나 잠시라도 멈췄을까? 나는 이 전쟁이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멀리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비롯한 숱한 간첩조작사건들, 가깝게는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사건 심지어 내란음모사건을 보자. 심지어 이 전쟁은 직접적인 연관관계가 없는 일마저 자신의 틀 안에 가둔다.

쌍용차 해고사태, 용산참사, 밀양송전탑 갈등이 종북좌파와 무슨 상관이 있나. 공공재의 민영화를 경계하는 일이 북한을 이롭게 한단 말인가. 자신의 삶에서 세 번이나 강제이주를 해야만 했던 대추리의 늙은 농부들이 정말 김정일과 내통이라도 했단 말인가. 심지어 진실규명을 요구하는 세월호 유가족까지 종북좌파로 몰아버리는 이 분단논리는 정말이지 괴물과도 같다.

나는 우리사회의 다양한 갈등이 분단논리의 이분법이 아니라 보다 풍요롭고 입체적인 논의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사회갈등 안에서 분단을 주목하는 까닭은 '그곳에마저 분단논리가 있다'고 얘기하고 싶은 게 아니라, '거기에서 분단논리를 제거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형 질문을 건네고 싶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를 분단색안경으로 본다는 건, 그러한 논리가 강력하게 먹힌다는 건, 우리가 여전히 분단의 포로라는 얘기다. 김일성과 무관한 일도, 어느새 김일성이 시킨 일이 되고 마는 사회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 아전인수와 남 탓 하기, 유체이탈 화법, 어쩌면 한국사회야말로 거대한 세월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분단이라는 고장난 엔진을 장착한."

a

노순택 작품 ⓒ 노순택


#사진 7 : 찌라시와 예술의 이중생활

- 사진에 담을 소재와 주제를 잡는 기준이 있다면 무엇인가? 가령 왜 대추리로 향했으며, 거기서 왜 <얄읏한 공>을 주제로 잡았나?

"얄읏한 공 작업은 우연의 산물이다. 대추리에서 그런 작업을 하게 될 줄 몰랐다. 문정현 신부님의 요청으로 마을에서 작은 주말사진관을 연 것이 계기였다. 나중에는 아예 들어가 살기도 하면서, 주말사진관을 상설사진관으로 바꿨다. 사진관의 목적은 좁게는 마을 어르신들의 영정사진을 만드는 것이되, 넓게는 마을의 수난을 기록하는 일이었다.

그러다가 필름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미군기지 구조물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게 됐고, 그것의 정체를 찾아가는 여정을 작업으로 정리하게 됐다. '얄읏한 공' 작업은 100여 점의 사진과 원고지 100매 가량의 '추적기'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그 노트는 긴 변명이기도 한데, 나는 왜 대추리 농민에게로 바로 가지 않고, 흰 공으로 에둘러 갔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a

노순택 작품 ⓒ 노순택


#사진 8 : 넝마와 털

그는 자기가 어깨에 메고 다니는 사진기를 '넝마'라고 불렀다.

"나는 현장에서 목격한 숱한 장면들 가운데 내 눈길을 끄는 장면만 골라 사진기에 주워 담고, 그걸 충실하거나 엉뚱한 맥락으로 위치이동 시킨다."

노순택은 사진쟁이와 넝마주이의 공통점으로 "무언가 주우려면 그때, 그곳에 자신과 도구가 함께 있어야 한다는 점"을 들었다. 특별한 계획이 있느냐고 묻자, "당분간 현장을 더 떠돌아다닐 것"이라는 특별하지도 않은 계획을 말했다. 떠돌아 다니면서 세상의 털을 넝마에 주워담겠다는 뜻이다.

노순택 작가는?
<분단의 향기>(2004) <얄읏한 공>(2006> <붉은 틀>(2007) <비상국가>(2008) <좋은 살인>(2010) <망각기계>(2012) 등의 국내외 개인전을 열었고, 같은 이름의 책을 펴냈다. <비상국가>로 '올해의 독일사진집' 은상(2009)을 받았고, 11회 동강 사진상(2010)을 받았다.
인터뷰는 술자리로 이어졌다. 막걸리를 먹고 2차 맥주 집에서 그는 문득 생각난 듯이 중요한 계획을 말했다. 고인의 영정을 생전에 만들 듯, 길 위의 신부 문정현 신부가 살아계실 때, 한국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관통한 그의 투쟁과 험로를 담은 책을 펴내고 싶다고 했다.
#노순택 #올해의 작가상 #사진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환경과 사람에 관심이 많은 오마이뉴스 기자입니다. 10만인클럽에 가입해서 응원해주세요^^ http://omn.kr/acj7

AD

AD

AD

인기기사

  1. 1 캐나다서 본 한국어 마스크 봉투... "수치스럽다"
  2. 2 100만 해병전우회 "군 통수권" 언급하며 윤 대통령 압박
  3. 3 300만명이 매달 '월급 20만원'을 도둑맞고 있습니다
  4. 4 시속 370km, 한국형 고속철도... '전국 2시간 생활권' 곧 온다
  5. 5 두 번의 기회 날린 윤 대통령, 독일 총리는 정반대로 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