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여행 생략하고 식탁 산 남자... 부인 반응이

[가장 나다운 결혼 ② 서요셉, 황유정 부부] 다문화가정과 식사나눔

등록 2014.10.14 17:07수정 2015.02.05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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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편일률적 '스드메', 20분 예식, 뿌려 놓은 축의금 걷기, 눈도장 찍기식 참석 등 허례허식 결혼식에서 벗어나 소박하고 특별한 결혼식을 치른 열 쌍의 커플 이야기.주인공뿐만 아니라, 참석한 모든 이들의 기억에 남았던 예식을 소개해 결혼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에겐 격려를, 돈 때문에 결혼을 포기한 이들에겐 기대를 안겨주고자 한다.... 기자말


"그러니까 2012년 3월 17일에 아내를 처음 봤고요. 3월 25일에 부산에 있는 부모님께 결혼 허락 받으러 갔어요."
"네…. 네? 뭐라구요?"

웨딩 및 돌잔치 전문 사진사 서요셉(36)씨 부부와의 첫 대화다. 인터뷰 전날 밤에 그는 노트에 연필로 써가며 지난 2년여의 시간을 정리해 봤단다.

요셉씨는 지인의 소개로 대구에 사는 황유정(31)씨를 만났다. 직업상 주말에 일이 많은 그를 배려해 그녀가 부천까지 올라왔다. 그가 일하는 스튜디오로 바로 찾아온 그녀의 환한 미소에 요셉씨는 한눈에 "내 여자"다 싶었단다. 그건 유정씨도 마찬가지. 그와 그녀는 두 번째 만남에서 결혼을 약속했고, 만난 지 8일 만에 부모님께 인사를 드렸다.

"어머니, 저는 옷도 명품백도 다 필요 없어요. 오빠와 결혼할 수 있게 해주세요."

그녀가 요셉씨 어머니에게 한 첫인사였다고.


부천과 대구를 오가는 장거리연애를 3개월쯤 하다 보니, KTX 승차권이 60여 장 쌓였다. 길 위에 버려지는 교통비와 시간을 생각하니 서둘러 결혼하고 싶어졌다. 만나서 결혼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6개월. 그렇게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은, 만나자마자 서로의 마음 깊숙이 뿌리내린 견고한 가치관이 맞닿아 있는 걸 느껴서일 거다.

결혼식도, 신혼집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뭐 하나 다툴 일이 없었다. "이렇게 할까요?"라고 물으면 "네! 그렇게 해요"라고 대답하기 바빴다. 그래서 돈 들고, 어색하고, 신경 쓰이는 것들은 그들의 결혼식에서 모두 제외되었다. 예물 예단은 생략. 스드메(스튜디오 촬영, 드레스, 메이크업)도 당연히 생략. 남편이 전문 사진사가 아니던가. 3박 4일 대여에 29만 원 하는 웨딩드레스를 하나 빌려 아내를 위한 최고의 사진을 직접 찍어주었다.

철학원 자리에 차린 신혼집... 추웠지만 행복했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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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신혼집 보증금 천에 월세 40만원 하던, 철학원 공간을 첫 보금자리로 선택했다. ⓒ 서요셉


아파트는 꿈도 꾸지 못할 형편이었고, 무리해서 대출 받을 성향도 아니었기에 둘은 부천 지대를 열심히 살핀 끝에 25년 된 철학관 공간을 신혼집으로 낙찰했다. 보증금 1천만 원에 월 40만 원짜리 낡은 건물이었다. 요셉씨가 살던 원룸 전세금을 빼 집을 얻고 나니 오히려 돈이 남았다. 철학관을 리모델링하고도 남은 돈은 적금을 했다.

큰 공간 하나, 샤워 시설까지 개방되어 있어서 정말 숨을 데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공간을 꾸며놓고 보니 제법 그럴싸했다. 시멘트바닥에 라텍스 매트 하나 깔고 잤지만, 그 공간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물론 결혼 후 처음 만난 겨울이 되기 전까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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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델링 후 변신한 집 제법 그럴듯하게 꾸며진 집. 그러나 겨울이 되어서야 난방시설이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시멘트 바닥의 차가움을 혹독하게 겪었다. ⓒ 서요셉


문제는 겨울이 되고부터였다. 난방시설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았던 건물에 추위가 몰아닥쳤다. 정말 한 이불 속에서 둘이 꼭! 껴안고 자지 않으면 얼어 죽을지도 모를 만큼 혹독했다. 겨우내 내내 안고 자서 둘 사이가 돈독해졌다고 유정씨는 웃으며 말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천장에 얼음이 하얗게 서려 있었고 (정말 고통스럽게 추웠지만, <겨울왕국>처럼 아름다웠다고.) 히터를 틀면 천장에서 얼음이 녹아 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렇게 한 해 조금 넘게 그곳에서 함께 살았다. '루디아'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아이가 생기면서 둘은 정부에서 지원하는 임대 아파트에 들어갔고, 1년 가까이 살았던 신혼집은 요셉씨의 베이비 스튜디오로 사용하고 있다.

"난방, 단열, 그런 것은 생각도 못한 채 무모한 신혼생활을 보냈죠. 신혼 때였으니까 참을 수 있었던 고통이기도 했고요. 그해 겨울은 몸과 마음이 정말 춥고 힘들었지만. 정말 신기하죠? 지금껏 살아오면서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웠던 순간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우리 둘은 그때 그 차가운 신혼집 바닥에 부둥켜안고 잤을 때를 가장 먼저 떠올리니까요."

신혼여행 비용과 맞바꾼 식탁 하나

예물도 예단도 없이 요셉씨 어머니가 다니는 교회에서 작은 결혼식을 올렸다. 참 많은 것을 생략했지만 그래도 "신혼여행은 가야지!" 싶어 요셉씨는 300만 원 경비를 모아두었다. 그런데 우연히 가구점에 들렀다가 식탁 하나에 시선이 완전히 꽂혔다. 식탁의 가격은 무려 360만 원. 그는 아내와 상의한 후 그 식탁을 신혼여행과 맞바꾸었다. (유정씬 그때도 "네, 그렇게 해요!" 그랬단다. 아내가 보살이거나 세계 최고 두께의 콩깍지가 씌었거나. - 기자 사족)

그가 결혼을 준비하며 가장 비싸게 산 물건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신혼여행과 맞바꾼 식탁은 그와 그녀의 오랜 꿈을 실행하게 만들어 주었고, 둘보다 더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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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여행과 맞바꾼 식탁 모아두었던 신혼여행 경비로 식탁 하나를 샀고, 거기서 다문화가정과 식사 나눔을 했다. ⓒ 서요셉


결혼을 한 뒤, 둘은 손을 잡고 동사무소로 갔다. 다문화가정 사람들을 초대해 식사를 같이 하고 가족사진을 찍어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동사무소 사회복지사가 연결해준 다문화가정 사람들과 4회에 걸쳐 그와 그녀의 신혼집, 바로 그 식탁에서 식사 나눔을 했다.

360만 원짜리 식탁에서 단 한 번 이루어진 만남이었지만, 그들의 인연은 아직도 간다. 특히 시열이 가족과의 인연은 깊다. 시열이가 가장 좋아하는 삼촌이 된 요셉씨는 얼마 전 그의 유치원 행사에도 다녀왔다.

"엄마와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아빠를 시열이가 당시엔 좀 무서워 했었어요. 유치원에서도 집에서도 늘 주눅 들어 있었는데, 시열이가 가족사진을 찍은 뒤에 성격이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사회복지사로부터 들었어요. 그럴 때 너무 가슴 벅차죠. 별 것 아닌 거지만 이웃과 조금 나누었더니, 저는 항상 이렇게 더 큰 선물을 받게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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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러운 가족 결혼해서 지금까지 돈보단 행복을 만들어가고 있는 루디아 가족 ⓒ 서요셉


서로가 가지고 있는 작고 사소한 무언가가,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영향을 줄 수 있는 것. 그것이 두 사람이 함께 살면서 평생 동안 추구해야 할 가치관이었다.

"저희도 돈 없으면 예민해질 때 있어요. 빠듯하게 살아서 조급하기도 하지만, 막연하게나마 꿈꾸던 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어 참 행복해요. 혼자였다면 사실 용기내지 못했을 일인데, 지지해주고 응원해 주고 또 함께 실천하는 아내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그래서 결혼, 참 잘한 것 같아요."

엄마, 아빠를 닮아 순하디 순한 아가 루디아를 안고 밤산책을 나서는 두 부부의 모습이 별처럼 반짝였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 http://askdream.com에도 게재할 예정입니다.
#결혼식 #신혼집 #신혼여행 #니콜키드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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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담도 순식간에 뒤집어 즐겁게 살 줄 아는 인생의 위트는 혹시 있으면 괜찮은 장식이 아니라 패배하지 않는 힘의 본질이다.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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