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슬과 갤럭시의 만남, 그 난감한 조합

[송준호 교수의 길거리 사회학] 아파트와 차별화

등록 2014.10.09 18:22수정 2014.10.09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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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슬이라는 이름이 붙은 아파트 ⓒ 송준호


가난하지만 전도가 유망한 청년이 있었다. 달동네 자취방을 전전하면서도 그는 대학 4년을 무사히 마쳤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시는 부모님께 손을 내밀 수가 없어서 학비와 생활비도 아르바이트를 해서 스스로 해결했다. 그런 가운데도 청년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공부했다.

일찌감치 미국 유학을 결심했던 청년은 거의 최상급에 해당되는 토플과 토익 성적을 따두었다. SAT도 응시해서 미국 일류대학 입학이 가능한 성적표까지 확보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청년은 자신이 그동안 축적해 둔 스펙을 모아서 미국 어느 명문 대학에 장학금을 신청했다. 얼마 뒤 그 대학에서 답신을 보내왔다.


'우리 대학에 장학금을 신청한 당신은 매우 훌륭한 학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조금 전에 끝난 장학위원회에서는 당신에게 장학금을 지급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했습니다. 우리의 장학금은 학업에 대한 열정은 풍부하지만 가난한 학생들을 위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학비조달 능력이 풍부하다는 것이 장학위원회의 판단됩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지금 성(castle)에 살고 있으니까요.'

대학 졸업을 앞두고 당분간 부모님이 계시는 시골에 내려가 있을 계획이어서 임시로 친구의 집을 연락주소로 적어서 장학금 신청서를 보낸 것이 잘못이었다. 그 친구가 살고 있는 아파트 이름이 '롯데 캐슬(LOTTE CASTLE)'이었던 것이다. 사실은 이름이 그렇다는 것뿐이지 그 친구의 집은 서울 변두리에 있는 작고 허름한 아파트였다. 물론, 우스갯소리다.

'성'과 '은하수'가 만났을 때... 대략 난감

성(城)이 많이 생겨난 것은 중세 프랑스, 영국, 스페인, 독일 등지에서였다. 당시 성은 일반인들은 감히 범접할 수조차 없을 만큼 거대한 힘과 권력의 상징이었다. '자본가'를 뜻하는 '부르조아(bourgeois)'도 중세의 높은 성 안에 사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었다고 한다. 물론 근래 들어 '성(castle)'은 '대저택'을 부르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건축회사에서 아파트를 지을 때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부각 시키려고 이 말을 갖다 썼을 것으로 짐작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물론 '캐슬'이 붙었다고 모두 대저택 수준의 고급 아파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앞서 본 친구의 집처럼 작고 허름한 '캐슬'도 얼마든지 있다. 그렇게 허접한 아파트들하고 어떻게든 차별화를 시키고 싶어서였을까.


출입구와 외벽에 'LOTTE CASTLE GALAXY(롯데 캐슬 갤럭시)'라고 적힌 아파트도 있다. 글자마다 금빛이다. 'GALAXY(갤럭시)'는 요즘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다. 어느 회사의 스마트폰 이름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그 뜻이 '은하(銀河)'이므로 스마트폰 이름으로는 손색이 없는 듯하다. 그걸 아파트 이름에 덧붙여 놓고 보니 얘기가 좀 달라진다. 고급스러운 말이라면 무엇이든 조합된 뜻하고는 상관없이 마구 갖다 붙이면 된다는 천박한 사고의 산물이라고나 할까.

이 '갤럭시'는 '은하(milky way)'를 비유해서 '사람이나 물건 따위의 화려한 집단'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a galaxy of movie stars(갤럭시 오브 무비 스타)'라고 하면 '기라성 같은 영화계 스타들의 모임'이라는 뜻이 되는 것이다. 중세 유럽의 성처럼 화려하게 장식해서 한껏 위엄을 부린 그 'LOTTE CASTLE GALAXY(롯데 캐슬 갤럭시)'에는 그런 '스타'들만 모여 살고 있는 건 아닐까.

호랑이는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풀잎은 먹지 않는다고 했다. 이런 '럭셔리'한 아파트에서 간지 나게 사는 사람들은 곧 죽어도 콩나물 값 따위는 절대 깎는 일이 없을 것이다. 물론 자식을 유학 보내면서 쩨쩨하게 장학금 따위를 신청하라고 시키지도 않을 게 틀림없다.
#아파트 이름 #성 #갤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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