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케이 기소, 사이버 망명
이런 열풍에 익숙해진 까닭

[取중眞담] '이명박근혜', 너무 닮은 두 사람을 확인하다

등록 2014.10.11 11:11수정 2014.10.11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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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어쩐지 익숙했다. 검찰이 '사이버상 허위사실 유포에 엄정 대응하겠다'며 칼을 빼든다, 전담수사팀이 꾸려지고 누군가 불려간다, 온라인상에선 '사이버 망명' 열풍이 분다… 낯설지 않다.

딱 5년 전의 재현이었다. 2009년과 2014년, 한국의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상황은 등장인물과 단어 몇 개를 빼면 크게 다르지 않다. 진행 과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발단] 국가의 책임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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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보도한 MBC 제작진이 2009년 10월 7일 재판을 받기 위해 법원에 도착했다. ⓒ 유성호


시작부터 비슷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모두들 '국가의 책임'을 물었다. 2008년 이명박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연령 제한 기준을 낮추는 쪽으로 협상을 타결했다. PD수첩은 이 일로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가 국내에 들어올 수 있다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사람들은 국민의 건강권을 지켜야할 정부가 제 역할을 다 못한 것 아니냐며 분노했다. 광장은 촛불로 채워졌다.

2014년 봄, 세월호가 가라앉았다. 살아 돌아올 수 있었던 사람들은 불귀의 객이 됐다. 구조 책임을 져야할 국가는 보이지 않았다. 생때같은 아이들을 가슴에 묻은 부모들은 왜 구하지 못했느냐며 오열했다. 진실을 알고 싶다고, '참사의 최종 책임자는 저'라던 대통령은 그날 어디서 무엇을 했느냐고 따져 물었다. '사라진 7시간'은 무엇이냐고 외쳤다. 광장은 노란리본으로 채워졌다.

[전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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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인터넷상에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전기통신기본법 위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박아무개씨(자료사진). ⓒ 유성호


그때에는 대통령이 분노했다. "촛불은 무슨 돈으로 샀느냐"는 이명박 대통령의 반응에 정부는 '엄정 대응'을 선포했다. PD수첩 제작진이 곧바로 수사대상에 올랐다. 하지만 검찰 내부에서도 반발이 거셌다. 결국 수사는 2009년부터 급물살을 탄다. 검찰은 정운천 당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등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제작진을 긴급체포했고, 그들의 이메일을 뒤졌다. 같은 해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박아무개씨가 체포, 구속 상태로 기소됐다. 다음 아고라 등에 정부 경제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올려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혐의였다.


이번에도 대통령이 화를 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9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자신의 7시간을 두고 논란이 커지자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인 발언도 그 도를 넘고 있다"고 했다. 이틀 뒤, 검찰은 '사이버상 허위사실 유포에 엄정 대응하겠다'며 주요 포털사이트 관계자들까지 불러 모아 대책회의를 열었다.

곧바로 전담수사팀을 꾸리고 인터넷 실시간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는 대책이 나왔다(관련 기사 : 박근혜 발언 이틀만에...검찰 "사이버 명예훼손 무관용"). '대통령의 7시간'을 기사에 언급한 일본 <산케이 신문>의 가토 다쓰야 전 서울지국장은 검찰에 불려갔다(관련 기사 : '대통령 명예훼손'에 팔걷은 검찰, '7시간 의혹'은?).

[절정] '사이버망명' 바람이 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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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우 노동당 부대표는10월 1일 검찰의 카카오톡 압수수색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어 무자비한 검열이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 권우성


망명이 시작됐다. 2009년 6월 18일 검찰은 PD수첩 제작진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압수수색한 이메일 일부를 공개했다. 그보다 두 달 전 주경복 전 서울시교육감 후보의 선거법 위반 혐의를 수사했을 때엔 100여 명의 7년치 이메일을 몽땅 압수수색하기까지 했다. 여기에 미네르바 사건까지 더해지면서 이메일과 블로그 등을 국내법의 효력이 미치지 못하는 해외 서버로 옮기는 사람들이 줄지어 등장했다.

사람들은 지금도 망명 중이다. 2014년 9월 18일 검찰 발표 직후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 역시 실시간 모니터링 대상이라는 소식이 잘못 알려졌다. 하지만 논란이 커지는 과정에서 '카카오톡 역시 감청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누군가와 나눈 대화가 언제든 수사기관에 노출될 수 있음에 사람들은 하나 둘 러시아산 메신저 '텔레그램'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보안성이 강하다고 알려진 텔레그램은 10월 10일 현재에도 큰 인기다(관련 기사 : '카톡→텔레그램' 사이버 망명... "이제 몸만 옮겨오면 되겠군요").

[결말] 얼어붙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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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과 관련한 의혹을 제기한 기사를 쓴 뒤 고발당해 8월 18일 오전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한 일본 산케이 신문 가토 다쓰야 전 서울지국장. ⓒ 연합뉴스


2011년 검찰이 미네르바사건 항소를 취하하면서 박아무개씨의 무죄판결이 확정됐다. 1심과 2심 연달아 무죄판결을 받았던 PD수첩 제작진의 대법원 상고심 결과 역시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지난한 수사·재판 과정을 지켜본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닫게 됐다. '국경 없는 기자회'가 2006년 초 발표한 한국의 언론자유지수는 31위였으나 2008년 47위, 2009년 69위까지 떨어졌다. 2010년에는 '반짝' 42위로 올랐지만 이듬해 44위로, 2013년엔 50위로 하락했다.

박근혜 정부는 첫해부터 이보다 더 낮은 언론자유지수(57위)를 기록했다. 내년 전망은 더 우울하다. 가토 전 지국장은 지난 8일 결국 박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관련 기사 : 검찰 '박 대통령 사생활 의혹' 산케이 전 지국장 기소). 오늘도 기자의 텔레그램에선 누군가의 가입을 알리는 메시지가 계속 뜨고 있다. '이명박근혜', 두 정부의 스산한 풍경은 닮아도 너무 닮았다.
#이명박근혜 #카카오톡 #사이버망명 #산케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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