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이 '0000'라니... 정부는 왜 '사람' 취급 안 할까

신분 증명할 방법이 없어 설움 겪는 아카족 이야기

등록 2014.10.15 18:56수정 2014.10.16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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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상담을 하다보면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 할 법한 일들을 종종 경험한다. 그런 상담을 접수하고 해법을 찾다보면, 당사자 외에는 그 문제의 심각성에 동의하거나 공감하는 경우가 없어서 해법 찾기가 쉽지 않다.

흔하게 경험하는 문제는 최저임금이나 퇴직금 등을 지급하지 않으려는 업체들의 편법인데, 그에 못지않게 자주 신분 증명 관련 문제를 접한다. 그 중에는 합법적인 절차로 입국하고, 외국인등록증을 갖고 있음에도 자신의 신분을 증명할 방법이 없어 불편을 겪는 사람도 있다.

태국 아카족 출신 결혼이주민

무OOO라는 태국 여성은 태국 내 소수부족인 아카족 출신으로, 결혼이민으로 한국에 왔다. 그는 한국에 오기 전까지 신분증 없이 태국 국민으로써 제대로 된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경제활동을 할 때나, 학교 다닐 때나, 어디를 갈 때도 일일이 지역관청에 신고하고 다니는 불편을 감수하며 살았다고 한다.

그러던 그녀는 결혼하면서 평생 처음 신분증을 발급받았다. 남편의 도움으로 태국 출국에 앞서 신분증과 여권을 같은 날 발급받은 그녀는 대한민국에서 신분증 없는 설움을 겪으리라고 상상도 못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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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가 난생 처음 만든 태국 신분증 생년월일에 ..1994 라고 연도만 기록돼 있다. ⓒ 고기복


그의 여권을 보면 생년월일(Date of Birth)을 적는 곳에 xx xxx 1994라고 적혀 있다. 여권만 놓고 보면 태어난 해는 알 수 있지만, 몇 월 며칠에 태어났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여권이 그렇게 만들어진 이유는 그녀의 태국 신분증 때문이다.

유효기간이 12년인 태국신분증에도 여권과 마찬가지로 생년월일에 1994라고 출생년도만 적혀 있고, 생일은 기록돼 있지 않다. 이런 신분증은 신분증 형식을 갖추고 있지만, 실질적인 부분에 있어서 여러 가지 불편을 초래한다.

생일이 0000이라니, 불편 초래한 외국인등록번호

그는 생일이 적혀 있지 않은 신분증을 갖고 출국할 때부터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았다. 그리고 한국에서 신분증을 만들 때, 또 다시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선진국은 자국으로 입국하려는 사람들에 대한 정보를 미리 확보하고자, 상대방 국가에서 출발하는 시점에 해당 항공편에 탑승한 승객들의 명단과 개인정보를 전송받는다.

흔히 사전입국심사제도 (Advanced Passenger Information System)라고 하는데, 이때 요구되는 자료가 성명, 생년월일, 여권번호, 국적, 성(性)별, 탑승편명, 탑승일자, 탑승구간 등이다. 그런데 여권 소유자 성명, 여권 번호, 국적, 생년월일 등은 전 세계 여권 공통항목인데, 언급했듯이 기본적인 구성 요건을 갖추지 못한 여권을 갖고 있다 보니까, 항공사나 출입국이 난감해 한다. 여권이나 태국 신분증을 보면 위조는 아닌데, 마땅히 있어야 할 정보가 없다 보니까, 당연히 출입국에 애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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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아카족 여권 생년월일을 xx xxx 1994 라고 표기하여 생일을 알 수 없다. ⓒ 고기복


생일이 기록돼 있지 않은 신분증 때문에 큰 불편을 겪어왔던 그는 외국인등록증을 만들 때, 자신의 생일을 적어서 제출했다. 하지만 출입국에서는 외국인등록번호 앞자리를 940000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렇게 만들고 나자, 한국에서는 더 큰 불편이 발생했다. 한국에서 신분증 역할을 해줘야 할 외국인등록증이 위조가 아닌데도, 어디 가서 제출하면 의심의 눈초리를 받고, 이상한 사람 취급당하는 일이 번번이 발생했다고 한다.

그런 일이 반복되자 남편에게 문제 해결을 부탁했지만, 남편은 부인이 겪는 불편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남편은 그런 불편을 감수하도록 강요하기까지 하면서 부부관계가 악화되었다. 이들은 현재 별거 중이다.

대한민국에서 신분증 없는 설움 더 커져

그는 한국에서 일반적인 가정주부로써 경제활동을 하려고 했지만 그게 뜻대로 되지 않았다. 통장을 만들려고 해도, 본인 명의로 통장을 만들 수가 없었고, 신용카드도 만들 수 없었다. 본국에 송금하려고 해도 남편 도움 없이는 송금할 수가 없었다. 핸드폰을 개통하려고 해도 본인 명의로 할 수 없었다.

은행에서는 "고객님의 불편을 이해하지만 생년월일이 다 나와 있지 않은 외국인등록번호로는 계좌 개설이 어렵다"면서 '국가인권위나 국민권익위' 같은 곳에 진정을 내서 문제를 풀어보라고 권했다고 한다.

평생 신분증 없는 설움을 겪었던 그녀에게 한국은 더 큰 설움을 안겨주었다. 남편과 별거를 결정하고 직장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역시 같은 문제가 발생했다. 회사에서는 생일이 나와 있지 않은 외국인등록증을 보고, 위조한 거 아니냐며 미등록 이주노동자 취급했다. 이처럼 외국인등록증은 불편만 초래했다.

출입국은 그런 불편이 있을 거라는 걸 몰랐을까

관할 출입국 답변은 이렇다고 한다. "외국인등록증 발급은 여권 정보를 토대로 하는 것이니만큼, 출입국이 여권에 기록되지 않은 생일까지 기록할 의무가 없다." 아무런 기능을 할 수 없는 외국인등록번호 때문에 등록증 소유자가 불편을 겪는데, 해법을 찾아봐 달라고 했지만, 출입국은 '그런 불편 때문에 외국인등록증을 변경하려면, 여권을 먼저 변경하라'는 말만 할 뿐, 실질적인 해법을 찾기 위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

출입국은 결혼이주민 무OOO가 겪는 문제의 심각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고, 관심조차 가지려 하지 않았다. 한편 주한 태국대사관 역시 여권 정보 정정 요청에 대해 "여권을 갱신하려면 본국 신분증 갱신이 우선돼야 한다. 본국 신분증 유효기간이 12년인데, 정보를 정정해야 할 사유가 전혀 없다. 지금 상황에서 여권 정보 정정은 대사관 소관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번호 정정 권한을 갖고 있는 출입국은 여권을 먼저 바꾸라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실정이다. 무OOO는 현재 별거 중이라고 하지만, 결혼이민자이고, 국내 정착을 목적으로 입국한 사람이다. 그렇다면 무OOO의 불편은 당신 문제니, 당신 혼자 해결하라고 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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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이 없는 외국인등록번호 외국인등록번호 앞자리가 940000-으로 돼 있다. ⓒ 고기복


주민등록번호나 외국인등록번호는 관이 개인 식별 번호를 부여하는 것인데, 당사자가 그로 인해 불편을 호소하면 발급관청에서 해법을 모색하는 게 도리지, 스스로 해법을 찾으라고 하는 것은 민원처리를 하지 않겠다는 말과 다름없다. 우리나라 국민 가운데는 어떤 이유로 주민등록이 말소되어 불편을 겪는 경우가 있다. 정부는 이런 사람들을 위해 종종 구제 절차를 거쳐서 다시 주민등록번호를 부여한다. 그런 면에서 외국인등록번호 정정 요청에 대해 출입국이 좀 더 전향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주노동자가 신분 증명 때 불편한 이유

지난 5일 서울시가 '외국인주민 서울생활 살피미'를 대상으로 모니터링한 결과, 아시아권 이주노동자들은 일상생활의 불편함으로, 이름 표기나 신분 증명 때 불편함을 많이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분증명서에 기관마다 한글명이 다르게 표기되어 신분증 위조 혹은 도용 의혹을 받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불편은 사실상 이주노동자들을 볼 때마다 미등록자가 아닌지, 혹시 범죄자는 아닌지 살피려는 사회적 인식, 즉 차별적 인식 때문에 발생하는 것일 수 있다.

그들이 왜 그런 번호를 갖고 있고, 왜 이름이 다르게 표기되었는지를 살피기에 앞서, 색안경을 끼고 보기 때문에 이주노동자들이 불편을 느낀다는 것이다. 우리사회가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이주노동자들을 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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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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