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선씨 '난방투사'된 뒤
우리 아파트도 점검했더니

아파트단지 회장이 밝힌 '아파트 비리' 막는 가장 좋은 방법

등록 2014.10.19 20:42수정 2014.10.19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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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의 한 아파트 단지 모습. ⓒ 연합뉴스


2007년 10월 26일은 내 인생에서 쉽게 잊혀지지 않을 중요한 날이다. 그날은 바로 내가 오랫동안 생각만 했던 어떤 결정을 실행했기 때문이다. 남들이 보면 '뭐 대단한 일이라고' 힐난할지 모르겠으나 그날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아파트로 이사했다. 태어나 내내 주택에서만 살아 오면서 아파트를 동경해 왔는데 마침내 그 염원을 이뤄낸 것이다.


그렇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 '아파트 살기'는 일종의 환상이었다. 주택에서 살면서 느꼈던 여러 불편함을 일거에 해결해 준다는 기대감도 있었고 또한 도시 생활의 상징은 아파트라고 여긴 것도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 아파트에는 관리사무소가 있어 주민 불편을 다 알아서 해결해 준다니 우아하게 관리받고 사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정말 꼭 한 번은 그렇게 살아보고 싶은 유혹이었다.

그래서 아내와 함께 몇 년에 걸친 계획과 궁리 끝에 아파트로 이사하게 되었으니 어찌 기쁘고 행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데 그렇게 시작한 '아파트 살기'에서 나는 지금 전투 중이다. 그 사연이다.

내가 아파트 대표로 나서게 된 그 사건

아파트로 이사하고 1년여가 지날 때였다. 아파트의 삶은 기대했던 것만큼 행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부조리한 일상이 하나 둘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중에 태반은 역시 입주자 대표회의와 관리사무소장에 관한 안 좋은 소문이었다. 누구 누구가 누구와 뭐해서 어쨌다는 말도 들리고, 또 우리 단지가 타 단지에 비해 관리비가 더 많은데 그 이유가 관리소장 비리 때문이라는 말도 들렸다. 그래서 한 입주민이 관리비 항목을 따지니 이에 대한 관리소장의 태도가 어쨌다는 등의 불만 소리도 들렸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누구나 그렇듯 어떤 불합리한 일의 피해자가 자기가 된다면 경우가 다르다. 바로 내가 당한 엘리베이터 사건이었다. 사건 내용은 어쩌면 유치했다. 2009년 가을 어느 날이었다. 엘리베이터 안에 관리소장 명의로 한 장의 안내문이 붙었다. 그런데 내용이 좀 황당했다.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 아파트 4층 이하 거주 주민은 앞으로 엘리베이터 이용을 자제하고 계단을 사용해 달라는 것이었다. 좀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참았다. 따지려니 좀 치졸해 보여서 그랬다.


그런데 나를 분노케 한 사건은 그날 저녁에 벌어졌다. 학교에서 돌아온 당시 초등학생 딸 아이가 울먹이며 집에 들어선 것이다. 이유를 물어보니 바로 그 엘리베이터 안내문이 문제였다.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을 누르니 누군가가 안내문을 가리키며 "앞으로는 계단으로 걸어 다니라"며 윽박질렀다는 것이다. 그 순간 나는 내 눈과 귀에서 불꽃이 튕겨 나가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 대한민국 부모 중 이런 일을 겪으면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나는 바로 관리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최대한 침착하려고 노력하면서 방금 내가 겪은 사례를 설명했다. 그래서 엘리베이터 안내문을 즉각 철거해 줄 것을 소장에게 요구했다. 하지만 관리소장의 태도는 정리하면 '웃기지 마셔'였다.

그는 "에너지 절약 차원도 있지만 걸어 다니면 건강에도 좋지 않냐"며 철거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그의 태도에 더 화가 났다. 그래서 "4층 이하 엘리베이터 사용 금지 근거가 뭐냐"고 따졌다. 그러자 그는 답을 못했다. 당연했다. 그러더니 "싫으면 그 집은 그냥 엘리베이터 타세요. 누가 뭐라고 하겠어요?"라며 말하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나는 인내심을 상실하고 울컥할 뻔했다.

그래서 나는 참 예의 없는 소장에게 다시 따졌다. "그럼 4층 이하 세대는 엘리베이터 사용을 자제하라고 했으니 앞으로는 나처럼 4층 사는 사람과 3층, 2층 세대의 관리비에는 엘리베이터 사용료가 빠지는 것이냐"고 물었다. 순간 소장은 허가 찔린 듯 당황하더니 "그렇게는 안 된다"고 답했다. "아니, 엘리베이터를 안 쓰는데 사용료는 청구하냐"고 재차 따지니 "실제로 사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빼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나는 폭발했다. "앞뒤가 맞는 말을 해라, 엘리베이터를 쓰지 말라면서 그 사용료는 계속 청구하는 것이 말이 되냐, 입주민들이 바보냐?"며 버럭 화를 냈다. 그러자 소장의 반응은 간결했다. "모르겠다, 맘대로 하라"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 버린 것이다.

그때 결심했다. 입주민의 항의에 비아냥대는 오만한 관리소장, 그리고 이런 말도 안 되는 관리소의 업무를 제대로 통제하지 않는 허울뿐인 입주자 대표회의를 그냥 둘 수 없다는 각오였다. 그래서 내가 직접 바꿔야 하겠다는 특유의 오지랖이 발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이듬해인 2010년 2월, 나는 새로 선출하는 입주자 대표회의 선거에 동 대표로 출사표를 던졌다. 이것이 내가 입주자 대표회의에 참여해 오늘에 이르게 된 계기였다.

동대표 출마, '연임 도전' 현역 단지 회장과 붙다

하지만 출사표를 던졌다고 누구처럼 쉽게 동 대표가 되지는 못했다. 또 한 명의 출마 후보자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대는 막강했다. 전직 경찰서 정보과장 출신으로 연임에 도전하던 당시 아파트 단지회장이었던 것이다.

누가 봐도 뻔한 승부였다. 하지만 나는 기초질서가 바로 서며, 주민 누구에게나 공평한 아파트를 만들겠다는 내용의 유인물을 만들어 열심히 선거 운동을 했다. 그 추운 2월, 오전 6시부터 동 입구에 서서 누군가가 출근하려고 나오면 득달같이 달려가 지지를 호소했다. 지지해 주면 투명한 아파트, 깨끗한 아파트를 만들겠다고 거듭 약속했다.

하지만 상대 후보는 여유로웠다. 사실 그럴 만도 했다. 아파트에서 선거 열기가 있으면 얼마나 있겠나. 그런 상황에서 현역 단지 회장이니 아는 사람도 많은 그는 이미 당선에 필요한 표는 다 확보했다는 계산이 끝난 것 같았다. 그러니 나같은 도전자의 몸부림이 우스워 보인 듯했다.

그리고 마침내 투표일. 결론적으로 말하면 내가 승리했다. 정말 뜻밖의 승리였고 역으로 패배한 현역 단지회장의 표정은 보고 있기 민망한 수준이었다. 사족이지만 선거에서 패배한 그는 이후 어디론가 이사했다. 그만큼 충격이 컸던 것 같다.

나는 이때 처음으로 느꼈다. '말이 없다고 해서 모르는 것이 아니다'는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주민 역시 뭔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덕분에 정말 아는 사람이라고는 내 옆집 밖에 없었던 내가 이른바 큰 거물(?)을 물리치고 동 대표에 당선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그러니 내가 어찌 주민과 약속한 공약을 저버릴 수 있을까.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주민들에게 쫓겨 나지 않으려면.

정말 노력했다. 약속처럼 부정과 비리가 없는 아파트, 그리고 입주민 모두가 정당한 자기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렇게 노력한 2년 후. 이번에는 더 큰 역할을 맡게 되었다. 다시 선출한 입주자 대표회의에서 이번에는 단지 회장으로 당선된 것이다.

이는 당시 우리 아파트 최대 현안이었던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적임자로 내가 인정받은 덕분이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그 문제는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무난히 해결돼 가장 보람된 기억으로 남았다. 나는 이러한 성공적인 기반을 토대로 이후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과감하게 추진하려 했다. 정말 좋은 아파트 만들기에 대한 욕심이었다.

하지만 이는 '나만의 착각'이었음을 깨닫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단지 회장의 법적 임기는 2년. 나는 이 2년 중 현재 1년 8개월간 '참으로 황당한 불의'와 싸우고 있다. 결론적으로 정리하면 내가 꿈꾼 정말 좋은 아파트 만들기는 현재 실패다.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우리 아파트에서 '국민난방 투사'로 불리는 김부선씨 같은 분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약 김부선씨 같은 분이 우리 아파트에 단 한 명만 있었다면 아마도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국민난방 투사' 김부선, 당신을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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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부선 "연예인 , 억울한 사람들 위해 싸워야 한다" 아파트 반상회에서 난방비 관련 문제로 이웃과 다툼을 벌이다 폭행 혐의로 고소당한 배우 김부선이 지난 9월 26일 오후 서울 광진구 서울동부지방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난방비 비리 의혹과 주민 대표 폭행 논란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유성호


나는 현재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장으로서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이번에 김부선씨가 보여준 행동은 참으로 대단한 일이다. 이는 소문으로만 오가던 아파트 난방비 관련 비리를 세상에 증명해냈기 때문만이 아니다. 더 큰 성과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앞으로 대한민국에서 난방 관련 비리는 상상할 수 없는 중대한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김부선씨의 용기 있고 집요한 '희생'이 아니었다면 생각할 수 없는 소중한 성과라고 평가하는 이유다. 절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덕분에 나 역시 김부선씨가 제기한 난방비 비리 문제를 접한 후 바로 우리 아파트 관리소장을 찾았다. 그리고 아파트의 난방비 사용 실태를 긴급 점검했다. 다행히 관리소장과 함께 점검해 본 결과 우리 아파트에서 난방비가 0원으로, 또는 평균 난방비 이하로 청구하는 세대 중 문제가 있는 곳은 발견되지 않았다. 사실은 우리 아파트도 2년 전까지 일부 의혹이 제기되는 세대가 있었지만 지금의 관리소장이 새로 부임하면서 이를 철저히 관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단지 회장으로서 이런 현황을 알리는 주민 안내문을 직접 썼다. 평소에도 이러 저러한 아파트 관련 안내문을 회장인 내가 직접 써 왔기 때문에 별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난방비 비리 의혹에 대해 현황을 보고하면서 단지회장인 나부터 평균 이상의 난방비를 내고 있으니 안심하셔도 괜찮다고 사족의 글도 덧붙였다. 이러한 안내문을 본 주민들의 반응은 당연히 호의적이었다.

하지만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안내문의 끝에 있었다. 바로 주민 참여에 대한 호소였다. 동 대표를 거쳐 단지 회장까지 근 3년 8개월간 입주자 대표회의를 경험하면서 내가 느낀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미미한 주민 참여였다. 우리 아파트에 어떤 비리가 있지 않을까 하는 불신과 의혹은 큰데 정작 이를 감시하는 역할에는 다들 바쁘다며 거부한다. 그러다보니 속된 말로 '직업이 단지 회장'이라며 불리는 사람들만 돌아가면서 입주자 대표회의를 차지하게 된다.

고백하자면, 나 역시 지난 기간동안 동 대표와 단지 회장을 역임하면서 모든 것을 다 잘했다고 자신할 수 없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내 양심을 속이거나 주민에게 지탄받을 행동은 결단코 하지 않았다. 그 어떤 공사 업자와도 사사로이 교류한 적이 없으며, 경비, 청소, 관리 업체 등을 새로 선정할 때도 일체 접촉을 한 적이 없다.

회장인 나를 만날 수 없자 어느 업체 관계자는 자신이 아는 사람을 통해 자리를 만들기도 했다. 모르고 나간 자리가 사실은 업체 관계자 로비 자리임을 알고 불같이 화를 내며 나온 적도 있었다. 정말 제대로 일해서 좋은 아파트, 주민이 행복한 아파트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지 회장이 혼자 잘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잘 될 수 없었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차마 밝힐 수 없는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사례가 너무도 많았다. 어쩌면 내가 지금까지 해온 입주자 대표회의에서의 역할은 이같은 불의한 일부의 강요에 맞서 싸운 '전투의 시간'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정말 누가 들어도 말이 안 될 터무니없는 안건 상정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고, 전형적인 아파트 비리인 부정 업체와의 공사 계약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이를 거부하니 상황은 더 꼬여갔다.

말도 안되는 자신의 요구를 단호히 거부하니 이후 터무니없는 요구를 한 이들이 연대해 정상적인 안건까지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다.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된다며 반대를 위해 반대를 했다. 결국 파행이 거듭되고 참다 못한 내가 서류 뭉치를 던지며 "내가 사퇴할 테니 당신 멋대로 하고 그 책임도 당신이 지라"고 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였다. 나는 매번 쓴 주민 안내문에 늘 부탁하던 말이 있었다. 매월 정해진 대표회의에 주민 여러분이 오셔서 꼭 방청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만약 입주민들이 오셔서 방청한다면 결코 부도덕한 안건 상정 요구, 그리고 터무니없는 억지 요구는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기대는 여전히 쉽지 않다. 아파트 비리에 분노하는 이들은 많지만 정작 자신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 대표로, 또는 단지회장으로 도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래서 생업이 없는 동 대표나 단지 회장이 넘쳐난다. 이런 현실에서 과연 비리 의혹이 해결될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김부선씨를 존경한다. 문제 의식을 갖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주저없이 행동한 김부선씨는 마땅히 존경받을 만한 분이다. 소위 '국민난방 투사'라는 이름이 어색하지 않다. 그리고 나는 또 다른 제2, 제3의 김부선같은 투사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동 대표와 단지 회장 선거에 정말 좋은 분들이 경쟁하고 또 이렇게 선출된 분들이 제대로 잘 하고 있는지 입주민이 매달 한 명만이라도 회의를 방청한다면 단언컨대, 아파트 비리는 불가능하다. 정말 해 볼 만한 일 아닌가.

단지 회장 임기 마지막 날까지, 나는 내가 꿈꾼 좋은 아파트 만들기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임기가 끝난 후 나는 다시 입주민으로 돌아가 매달 입주자 대표회의에 방청객으로 앉으려 한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청렴하고 좋은 아파트 만들기' 운동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나의 전쟁은 계속될 것이다. 함께 하시자.
#김부선 #아파트 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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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운동가,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 의문사 및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을 조사하는 조사관 역임, 98년 판문점 김훈 중위 의문사 등 군 사망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오마이북),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돌베개), 다시 사람이다(책담) 외 다수.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 등 다수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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