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일기 들춰보는 기분... '솔직 담백'

[서평] 남편과 아내가 쓴 책 <자전거 타는 남자, 버스 타는 여자>

등록 2014.10.17 10:37수정 2014.10.17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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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지나면 감정은 무뎌지고 기대감은 사라진다. 익숙해지고 지루함이 밀려온다. 가까이 있는 사람에겐 무심해지고 소홀해진다. 그래도 가끔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곁에 있는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 사람이 요즘 무엇에 관심 있고 무슨 꿈을 꾸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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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타는 남자, 버스타는 여자 ⓒ 마음지기

<자전거 타는 남자, 버스 타는 여자>는 부부가 쓴 '원 플러스 원' 책이다. 저자 두 명이 쓴 책을 한 권 책에 묶어낸 독특한 책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한이불 덮고 사는 남편과 아내다.


책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처럼 남자와 여자는 생각과 행동이 참 많이 다르다. 그 다름에서 오해가 생기고 그 오해를 퍼즐처럼 풀면서 둘은 가까워진다. 이 책에서도 그런 다름과 오해, 갈등들이 얌전하게 담겨 있다.

남편 박정규는 제목처럼 자전거를 닮았다. 느리면서 우직하다. 남과 다른 자기만의 길을 개척한다. 그는 2006년 5월 16일 단돈 230만 원과 자전거만 가지고 한국을 떠났다. 2009년 4월 7일 귀국하기까지 1055일 동안 16개국을 누볐다.

재미있는 점은 귀국할 때도 통장엔 230만 원이 고스란히 있었다는 점.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그는 세상은 놀라울 만큼 따듯했고, 많은 사람이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고 했다. 가보지 않은 사람에겐 마법과 같은 일이지만 '가 본' 그는 숱하게 겪은 일이라고 털어놓았다.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그는 여전히 자전거를 통해 세상과 소통한다. 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인 '하자센터'에 들어가 버려진 자전거를 재활용하는 일에 나섰다. 몸이 현실에 익숙해졌다고 느낀 순간, 그는 운동을 겸한 출퇴근에 나섰다. 자전거와 달리기가 그의 출·퇴근 수단이다. 서울-해남 무박 자전거 여행에도 나서고 철인 3종 경기에 도전했다. 이쯤 되면 에너지가 넘치는 야성남을 떠올릴지도 모르지만 아내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자전거 닮은 남편, 버스 닮은 아내


아내 신혜숙은 버스를 닮았다. 버스처럼 수시로 멈춰 서서 주위를 살피고, 세상을 탐구한다. 정확히 아내를 닮은 버스는 마을버스다. 목적지를 향해 고속 운전을 하는 고속버스나 시외버스는 그녀와 거리가 멀다. 아내는 먼 곳을 응시하기보다 가장 가까운 내면을 응시하면서 사색을 즐긴다.

책에는 15년 동안 20권 수첩에 메모해 둔 아내의 내면이 고스란히 펼쳐진다. 때로는 여고생의 감수성이 느껴지고, 때로는 첫사랑 앞에서 두근대는 소녀의 설렘이 느껴진다. 책을 읽다 보면 때때로 한 소녀의 일기를 들춰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아내는 남편이 생각과 달리 너무 조용하고 순한 사람이라서 놀랐다고 털어놓았다. 남편은 아내를 '웃긴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선입견이 만든 누군가에 관한 이미지, 그 이미지가 달라지는 과정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겪는 인간관계의 한 부분일지도 모른다.

아내는 2008년 사진 한 장을 보고서 '미래의 남편'을 점 찍는다. 남편은 2009년 4월 남산에서 처음 만난 뒤 이내 사랑에 빠진다. 두 달 뒤 남편은 아내에게 고백을 하지만, 아내는 시치미다. 어쩔 수 없이 여자는 여자, 남자는 남자다. 이미 오래전 여자는 남자를 사랑하기 시작했지만 남자는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 연애 영화에서 흔히 나올 법한 스토리를 부부가 쓴 수필집에서 보는 건 또 다른 재미다.

이 책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사랑에 빠지는 연애담이다. 한 편으로는 아내와 남편으로 만난 뒤 서로 새롭게 보는 결혼 후일담이기도 하다. 서로가 각자 꿈을 찾아가는 꿈 도전기이기도 하고, 수시로 자신을 부정하고 흔들리는 솔직 담백한 고백기이기도 하다.

400페이지에 이르는 두꺼운 책이지만, 책은 두 사람의 다이내믹한 일상을 다 담지는 못했다. 부부가 진행한 버스 운전기사와 손수레를 끄는 어르신들에게 선물을 드린 '오라이 프로젝트'는 신문과 방송에 소개되며 화제를 모았다. 면접을 100곳 이상 봤다는 아내의 고백담도 드라마틱하다.

두 사람이 끊임없이 일을 꾸미고, 행동에 나서길 주저하지 않는 행동파라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 벌써 또 다른 계획을 벌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와 다른 것 같지만 우리와 꽤 닮은 그들의 모습에서 친근함을 느낀다. 따뜻하면서 풋풋한 책표지는 두 사람을 꼭 닮았다.
덧붙이는 글 <자전거 타는 남자, 버스 타는 여자>(박정규, 신혜숙/ 마음지기/ 2014. 10. 06/ 416페이지/ 1만 4400원)

자전거 타는 남자, 버스 타는 여자

박정규.신혜숙 지음,
마음지기, 2014


#자전거 #버스 #오라이프로젝트 #박정규 #신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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