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사기' 그만 치고 '민낯'을 보여라

[서평] 승자들의 감춰진 심리학 <사기꾼 증후군>

등록 2014.10.19 17:00수정 2014.10.1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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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꾼 증후군? 그런 병도 있어? 그래서 이 책에 끌렸다. 사기꾼들의 이야기여도 재미있을 테고, 사기 당한 이들의 이야기라도 흥미로울 터다. 내가 제목만 보고 <사기꾼 증후군>을 택한 이유다. 그런데 이게 뭐래? 기대는 책표지서부터 박살이 났다. '불안과 우울 뒤에 숨겨진 승자들의 심리학'이라고 부제가 붙어 있다. 그럼, 심리학책? 그랬다. 심리학책이었다.

'사기꾼 증후군(Impostor Syndrome)'은 '가면 현상' '가면 증후군'이라고도 하며, 1978년 미국의 심리학자 폴린 클렌스와 수잔 아임스가 처음 사용한 용어다. 한마디로 민낯을 두려워하는 심리적 현상이다. 비즈니스 및 리더십 개발 분야의 전문가인 저자 해럴드 힐먼은 그의 책에서 '사기꾼 증후군'을 아래와 같이 기술한다.


"주어진 책임과 기대에 부응하고는 싶지만, 자신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낯선 상황으로 인해 자신의 결점을 돌이킬 수 있다는 불안, 혹시라도 실패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자칫 당신의 성공과 승리를 방해하는 존재를 만들어낼 수 있다. 무능한 능력이 드러날까 두려운 마음이 만들어내는 '가면을 쓴 나' 말이다. 이것을 전문적인 용어로 '사기꾼 증후군'이라 부른다." (본문 9쪽 중에서)

박 대통령을 보며 왜 '사기꾼 증후군'이 생각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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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꾼증후군>(해럴드 힐먼 지음 / 김고명 옮김 / 새로운현재 / 2014.10 / 1만 4000원) ⓒ 새로운현재

책에 따르면 스스로 완벽해지려고 노력하는 이들에게 이런 현상이 심하게 나타난다. 성공(했거나)하려는 욕망과 포부가 민낯을 드러내길 두려워하게 만든다. 또 이미 성공한 사람들은 좀처럼 자신의 원래 모습보다 성공한 상태로 남길 원하기에 내면의 소리를 듣는다든가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내는 걸 극도로 두려워하게 된다.

세월호 사건이 터지자 박근혜 대통령은 "철저한 조사와 원인 규명을 해서, 책임질 사람은 모두 엄벌토록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정작 박근혜 대통령 본인은 지난 9월 16일, 세월호 특별법과 관련하여 "그것은 삼권분립과 사법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일로 대통령으로서 할 수 없고 결단을 내릴 사안이 아닌 것"이라고 말했다. 책임을 회피했다. 즉 민낯을 드러내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43일 만인 지난 5월 19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세월호 참사에 대한 최종 책임은 저에게 있다"며 눈물을 흘렸다. 국가개조·적폐해소·관피아 척결 등 후속조치들을 내놓았다. 그러나 지금까지 대통령의 진정성을 엿볼만한 조치들 역시 이뤄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박 대통령은 '엄벌'을 강조하며 '자신의 책임'이라고 했지만 말과 행동이 다른 '가면 증후군'을 벗지 못하고 있다. 유가족이 만나달라고 하는 데도 여전히 침묵 모드로 일관했다. 검찰이나 경찰, 국회에서 알아서 해결하라는 식이다. 정부의 무능을 관계부처로 돌리고 자신은 숨으려는 박 대통령을 보며 이 책이 말하는 '사기꾼증후군'을 떠올리는 것이 너무 나간 생각일까.

2008년 중국 쓰촨성에 대지진이 일어나 많은 희생자를 냈다. 이때 원자바오 총리는 현장으로 달려가 희생자와 유가족들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었다. 그가 그 때 한 말, "얘야, 울지 마라, 나와 중국 정부가 너를 꼭 돌봐 줄께!" 이 얼마나 신뢰가 가는 말인가. 정부가 지켜준다고 한다. 우리는 어땠는가. 책임을 전가하며 호통 치는 대통령은 있어도 지켜주는 정부는 없었다.

사기꾼 증후군의 근본 원인은 '프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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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흘리는 박근혜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5월 19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세월호 참사 관련 대국민담화 발표 도중 의로운 희생자 이름을 부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연합뉴스


저자는 민낯을 인기 가수의 언플러그드 공연에 비유한다. 무대조명도 신디사이저도 현란한 몸짓의 댄서도 없이 노래하는 가수 말이다. 그러나 이런 공연을 통해 가수의 목소리가 제대로 들린다는 것이다. 민낯으로 사람을 대하면, '당신이 무엇을 했느냐' 보다 '당신이 어떠했느냐'가 남는다고 한다. 진정한 추억과 관계는 민낯일 때 가능하다.

사기꾼 증후군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대부분 스스로 만들어내는 현상이라는 것, 다른 하나는 더 중요한 역할을 맡았을 때 잘 나타난다는 점이다. 누구든 자기 속에 비판자와 응원자를 두는데 비판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사기꾼 증후군이 잘 나타나게 된다.

저자는 사기꾼증후군의 8가지 증상을 말한다.

▲ 철벽방어 - 비판에 과민하게 반응하고, 정보를 권력에 사용하고, 질의를 위협으로 인식하며,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다. ▲ 장벽구축 - 틀에 박혀 사무적이며, 벽창호 같아 보이고, 태도나 방식을 바꾸지 않아 로봇 같다. ▲ 유아독존 - 잘되면 내 탓, 잘못 되면 남의 탓으로 돌리고, 인정과 양보가 없으며, 논란이 되는 문제는 덮어두고 체면을 유지하려 한다. 이외에도 ▲ 계산 ▲ 고집불통 ▲ 목석 ▲ 모 아니면 도(오만) ▲ 모 아니면 도(소심) 등이 있다.

실은 이런 증상의 근본적인 뿌리가 프레임이다.

"어떻게 생각하는가(생각)는 어떻게 느낄 것인가(느낌)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느낌)는 무엇을 할 것인가(행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생각과 느낌과 행동은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다." (본문 46쪽 중에서)

"어떤 것에 대한 프레임이 형성되어 있으면 그것을 강화하는 증거만 찾게 된다. 그래서 때로는 지극히 타당한 증거인데도 자신, 타인, 상황에 대한 기존의 생각에 반대하면 무시해버린다." (본문 120쪽 중에서)

생각이 느낌을, 느낌이 행동을 만든다. 어떤 것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적용하는 생각과 인식의 틀, 우리는 흔히 그것을 '프레임'이라고 한다. 사기꾼 증후군은 바로 이 프레임이 근본 원인이다. 사람들의 프레임은 다 다르다. 이것을 저자는 '창조적 자아'라고 한다. 프레임은 경험을 통해 형성된다. 프레임 때문에 발생하는 사기꾼 증후군은 프레임을 바꿀 때 치유가 된다.

저자는 사기꾼 증후군을 바꿀 수 있는 해독제는 '진정성'이라고 한다. 가면을 쓰지 않은 참된 본질을 드러낼 때 다른 이들에게 진정한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진정성 있는 사람은 필요하면 홀로 저항할 수 있다. 저자는 말랄라 유사프자이를 예로 든다. 파키스탄 여성도 교육 받을 권리가 있다고 당당히 외치다 총상을 입었다. 2014년 최연소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저자는 사기꾼 증후군이 신종 질환이 아니고 감기처럼 흔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대통령도 걸릴 수 있고, 국민도, 국회의원도, 회사 대표도 걸릴 수 있다. 철벽방어, 방벽구축, 고집불통 등의 사기꾼증후군 증상들을 보면서, '불통'이란 말을 듣는 박 대통령이 떠오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아니라면, '들을 귀'가 필요하다. 세월호 같은 논란이 되는 문제를 그냥 덮어두려고 하면 안 된다.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에 대한 반응은 비판에 과민반응을 보인 결과다. 박 대통령을 볼 때 태도나 방식을 바꾸지 않는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박 대통령의 프레임은 바뀌어야 한다. 국민은 박대통령과 정부의 진솔하고 진정성 있는 민낯을 보기 원한다.
덧붙이는 글 <사기꾼증후군>(해럴드 힐먼 지음 / 김고명 옮김 / 새로운현재 / 2014.10 / 1만 4000원)

사기꾼 증후군 - 불안과 우울 뒤에 감춰진 승자들의 심리학

해럴드 힐먼 지음, 김고명 옮김,
새로운현재, 2014


#사기꾼증후군 #민낯 #진정성 #프레임 #해럴드 힐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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