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길' 고집하는 남편... 어찌 말리겠습니까

시민기자와 함께 떠난 가을 소풍... <오마이뉴스> 청남대 여행

등록 2014.10.20 16:36수정 2014.10.20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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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남대에서 본 대청호 ⓒ 최규화


가을, 어디로든 떠나야 하는 날씨다. 하늘은 높고, 날은 맑으며, 바람은 시원하다. 이런 가을 날 집에만 있는 것은 아이들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그리고 날씨에게도 미안한 일이다. 때는 10월 18일. 마침 옛 대통령들의 별장인 '청남대'(충북 청주시 문의면)에서 만나자는 선약이 되어 있어서 어디로 떠나야 할지 고민 없이 새벽부터 부지런을 떨었다. 자는 아이들을 깨워 부랴부랴 아침을 먹고 약간의 간식을 준비하고 옷을 두툼히 입혀서 드디어 출발했다.

예상한 출발 시간보다 약간 지체되긴 했지만 약속에 늦을 만한 시간은 아니었다.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너나 없이 가을여행길에 나섰다는 것이다. 생각보다 길이 막혔고, 의도하지 않게 길을 잘못 들어 한참을 돌아야 했다. 그러나,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랴. 우리는 소풍 가는 길인 것을. 순간 순간이 즐겁고 매시간 행복하기만 해도 아까운 맑은 가을 날인 것을.

약속 시간보다 1시간 가량 늦게 도착했다. 도착하고 보니 프로그램은 이미 시작하고 있었다. 부스럭부스럭 자리를 잡고 주변을 돌아보며 어색한 첫인사를 나눴다. 쨔잔!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들과 상근기자들이었다. 나로서는 첫 대면이었다. 얼굴을 마주하기보다는 늘 컴퓨터를 통해서 만났던 사람들. 혹은 전화를 통해 목소리만 들었던 사람들. 그 사람들이 그곳에 모여 있었다.

신기하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했다. 자리를 잡고 10초가 지나지 않았는데 아이들이 "엄마, 나가고 싶어요"라고 한다. "우리 조금만 참아 보자"라고 말했지만 아이들은 이미 이 분위기가 어떤 분위기인지 눈치 챈 모양이다. 절대 떠들거나 뛰어서는 안 되는 분위기. 아이들은 이런 것을 감지해내는 특별한 레이더라도 갖추고 있는 것 같다. 이번엔 남편이 양보하기로 했다. 조용히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첫 번째 프로그램인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님의 특강은 이미 진행 중이었다. 늦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듣지 못했고, 뒷자리에 앉아서 특강의 내용을 모두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그 분의 말씀을 가만히 듣고 있자니 뭔가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각오만큼은 확실하게 들었다. 정말 그분은 '별 걸 다 기억하는 역사학자'였다.

'대통령 별장' 청남대. 충북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에 있다. ⓒ 최규화


한홍구 교수(왼쪽 첫 번째)의 특강. 오른쪽 두 사람은 오마이뉴스 편집부 김지현(오른쪽 첫 번째), 박상규(오른쪽 두 번째) 기자. ⓒ 곽우신


보고만 있어도 행복한 파란 하늘... 황홀한 산책길

특강이 진행되는 동안 남편은 들어오지 않았다. 아이들과 한 시간 가량을 밖에서 논 것이다. 특강을 마치고 다시 만난 남편은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고작 한 시간 동안 애들을 보고 힘들어했다.

점심식사와 대통령역사문화관 관람을 마치고 역대 대통령의 이름을 딴 산책로를 따라 산책하는 것이 두 번째 프로그램이었다. 청남대에는 전두환 대통령부터 이명박 대통령까지 여섯 명의 대통령 이름을 딴 산책로가 있다. 남편은 굳이 '노무현 대통령길'을 고집했다. 사실 그 길이 제일 평이해서 우리같이 어린 아이들이 있는 가족이 편하게 갈 만한 곳이었다. 그런데도 남편은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따라 가는 것이라고 우겨댔다.

'네… 그러세요. 좋아하는 걸 어찌 말리겠습니까.'

속으로만 중얼거리고 길을 나섰다. 산책길은 황홀했다. 장대 같은 나무들이 가득했다. 쉬엄쉬엄 가다가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아이들은 흙장난을 했고 우리는 벤치 하나씩을 골라 누워서 하늘을 올려다 봤다. 나뭇잎이 가득한 파란 하늘을 보고만 있어도 행복해졌다. 하늘은 푸르고 또 파랬다.

그런 하늘을 본 게 얼마만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럴 때는 서로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옆 사람과 내가 생각하는 것이 다를 테니 서로 방해하지 않아야 한다. 아니 어쩌면 그럴 때는 생각하지 않고 바라만 보는 것이 제일일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은 오솔길처럼 생긴 산책로가 시멘트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남편과 이야기를 나눠봤지만 서로 이해할 만한 이유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흙 길을 밟으면 훨씬 더 행복했을 텐데. 훨씬 폭신하고 자연스러웠을 텐데.

빽빽한 나무 사이로 나 있는 산책로를 걷자니 가을의 수확들이 여기저기 눈에 보였다. 주워가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중간중간 은행 열매들은 누군가 와서 세숫대야로 쏟아놓은 것처럼 우르르 우르르 모여 있었다. 큰아이는 은행 열매에서 나는 냄새를 아는지 밟지 않으려고 까치발을 들고 다녔고, 작은아이는 이러거나 저러거나 무조건 뛰어다녔다.

청남대 대통령길 산책 시작 ⓒ 곽우신


청남대 초가정 앞에서 본 솟대 ⓒ 곽우신


박정희 아니면 노무현... 사람들이 만져보는 건 딱 둘뿐

'초가정'이라는 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사람들이 모이길 기다렸다. 그곳에는 김대중 대통령의 생가인 하의도에서 가져온 농기구와 문의면에서 수집된 전통생활도구가 전시돼 있었다. 우리보다 훨씬 험하고 멀리 돌아서 오는 산책길('김대중 대통령길')에 나선 분들이 우리가 도착하고 얼마 되지 않아 한 분 두 분 모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느림보인지 저분들이 부지런하신 건지 그건 모르겠다. 다시 만난 우리들은 어색하고 반가운 인사를 또 나누었다.

모두 모인 이후 이제는 다같이 이동하기로 했다. 다음으로 간 곳은 '대통령광장'.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대통령 동상부터 노무현 대통령의 동상까지 총 9개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인 우리들을 비롯하여 청남대로 관광 온 많은 사람들은 동상에서 기념촬영에 여념이 없었는데,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사진을 찍거나 동상을 만져보는 등의 관심을 보이는 대통령 동상은 딱 둘뿐이라는 것이다.

바로 박정희 대통령의 동상과 노무현 대통령의 동상. 신기하게도 그 두 동상 외에 다른 동상에는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갈라놓았을까'. '무엇이 사람들을 이렇게 편 가르도록 만든 것일까' 하고 한참을 생각해봤지만 명쾌한 답을 내지 못했다. 이쪽 아니면 저쪽. 그렇게 양쪽밖에는 없어 보였다. 참으로 슬픈 일이라 생각했다.

골프장과 행운의샘, 그늘집 등이 있는 '김영삼 대통령길'을 걸어 넓은 잔디가 펼쳐진 '헬기장'에 모인 우리들은 <오마이뉴스>에서 준비한 간식을 먹으며 둥그렇게 자리를 잡고 앉았다. 사람들이 모두 모여 간식을 다 먹었을 무렵, 만난 지 6시간이 지난 후에야 우리는 자기 소개 시간을 가졌다. 서울에서 버스로 이동한 팀이 예상보다 늦게 도착하면서 자기소개 시간이 뒤로 밀려났다고 했다.

한 분 한 분, 자신이 어떤 기사를 주로 쓰고 있는지, 이름이 무엇인지 소개하는 시간이었다. 울산에서 오신 분도 있었고, 아직 기사를 쓰지 않은 신입 시민기자들도 있었다. 역시나 다양한 생각을 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글로만 만나던 분들의 얼굴을 직접 보니 정말이지 새롭고 다시금 반가워졌다. 어딘지 그분들이 쓰신 기사들과 얼굴이 잘 어울리는 듯했다. 신기하게도 글과 사람이 닮아 있었다.

노을에 물든 대청호 ⓒ 곽우신


시민기자와 함께하는 <오마이뉴스> 청남대 여행. 배꼽 빠지는 오-엑스퀴즈. ⓒ 조혜지


배꼽 빠지는 오-엑스퀴즈... 10년은 너끈히 남을 기억

드디어 그다지 기다리고 기다리진 않았지만 레크리에이션 시간이 되었다. 종목은 오-엑스 퀴즈. 진행은 <오마이뉴스> 편집부 신입기자인 곽우신 기자가 했다. 문제는 생각보다 어려웠다. 여기저기 불만이 터져나왔지만 진행자는 심지가 굳었다.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진행했다. 나는 첫 번째 문제에서 탈락하고 뒤로 물러나 있었다. 남편도 몇 문제 더 풀지 못하고 탈락의 쓴잔을 마셔야 했다.

한참 뒤에 패자부활전이 진행되었다. 역시나 남편과 나는 일찌감치 떨어졌는데, 문제를 이해하지도 못하고 왔다 갔다 하던 아이들은 꽤 오랫동안 살아남아 있었다.

'그래, 너희가 엄마아빠보다 낫구나. 끝까지 살아남아 다오.'

퀴즈가 진행되면 될수록 출제된 문제에 대한 원성은 커져만 갔고, 결국에는 오-엑스 퀴즈에서 가위바위보로 승자를 판정하는 배꼽 빠지게 웃긴 상황이 벌어졌다.

험난한 과정을 거쳐 문제를 풀어내고, 가위바위보에서도 결연한 승부욕으로 끝까지 살아남은 우승자와 준우승자에게는 사회자가 애초 선언했던 '돈으로 살 수 없는 선물'이 각각 주어졌다.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가 최근 발간한 책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선물이 미리 공개됐더라도 그들이 그리 문제를 원망하며 열심히 했을까? 답은 알 수 없다. 사실 이런 추억이 있어야 기억에 오래 남는 법. 그런 면에서 이번 <오마이뉴스> 가을 소풍은 기억 속에 한 10년은 너끈히 남을 것 같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자주 보거나 이야기를 많이 나누진 못했었지만 서로의 기사를 통해서 각자의 생각을 공유하고 있던 사이였다. 그래서 이번 소풍이 반갑고 따뜻했던 것 같다.

시민기자와 함께하는 <오마이뉴스> 청남대 여행 참가자들 ⓒ 곽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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