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뇌 명령 없이도 '움찔'... 당신도 하고 있다

[재미있는 과학이야기 35] 젖먹이 경련이 대표적... 뇌가 인지 못하는 몸동작

등록 2014.10.22 17:43수정 2014.10.22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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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신경의 명령보다 몸이 더 빨리 반응할 때도 있다. ⓒ wikimeda


"호호호, 그땐 뭐 하루가 멀다 하고 땅이 올라와서 머리를 찧곤 했지. 일 주일에 사나흘은 필름이 끊긴 상태였다고나 할까."

50대 중반의 주부 C씨는 처녀 시절 주변에서 알아주는 '주당'이었다. 늦은 저녁 시간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집으로 난 골목길을 갈지자(之)로 걸을 때면, 땅이 올라오고 담벼락이 달려들었다.

다른 행인들이 보면 만취해 넘어지기를 거듭하는 것을 C씨 자신은 땅바닥이 올라오는 걸로 '느꼈다'. 술에 취하지 않더라도 의식이 혼미한 상태에서는 누구나 대취한 C씨와 비슷한 '인식'을 할 수 있다.

정상적인 보통 사람이라면 깨어 있을 때 자신의 행동을 정확하게 알아차린다. 의도적인 움직임은 물론 심장의 박동이나 숨쉬기 같은 무의식적인 움직임까지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눈을 감고 가만히 서 있는데 누군가가 뺨에 살짝 손을 갖다 댄다고 가정하자. 몸에 이상이 없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뺨을 다른 사람의 손에 가져다 댄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자신의 뺨에 손을 댔다는 사실을 인식한다. 하지만 술에 크게 취했을 때 C씨처럼 땅이 올라와서 이마를 가격하는 것으로 우리의 뇌는 판단할 수도 있다. 자신이 한 행동인지, 타자의 움직임인지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다.

인지하지 못하는 움직임도 있다

헌데 정상인들도 자신의 움직임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술 등 약물에 중독되지도, 신경질환이 있는 것도 아닌데 스스로 몸동작을 알아차리는 못하는 것이다. 유아들의 '발작성 경련'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젖먹이들을 키워본 사람들이라면 아이가 자다가 갑자기 경기가 난 듯 다리나 팔을 순간적으로 움직이는 동작을 목격했을 것이다.


처음 이런 현상을 경험한 초보 엄마라면 적잖게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아이 몸에 "어디 이상이 있나?"하며 근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잠에 빠진 젖먹이의 경기 같은 사지 동작은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미국 아이오와 대학에서 이뤄진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유아는 자신의 팔다리가 발작적으로 움직였는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유아의 발작적 움직임은 사람에만 국한된 행동이 아니다. 아주 어린 강아지를 키워 본 사람들이라면 강아지들도 잠을 자면서 발작적으로 다리를 떠는 등의 동작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아이오와 대학 연구팀은 생쥐 새끼를 이용한 실험에서, 발작적 움직임이 일종의 '학습'이란 사실을 밝혀냈다. 팔다리의 움직임이 뇌 신경을 자극해, 뇌로 하여금 팔다리의 움직임이 어떤 것인지를 '공부하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잠든 아기가 경기하듯 사지를 움직이는 것도 뇌보다 몸이 먼저 반응한 결과다. ⓒ pixabay


몸통을 흔드는 꼬리... 신비한 몸의 세계

영어 관용 표현 가운데, 'tail wagging the dog'이란 게 있는데, 딱 이런 상황과 어울린다. 개의 뇌가 꼬리를 흔드는 게 아니라, 꼬리가 몸통을 조절하고 지배하는 것과 같은 상황인 셈이다. 다시 말해, 유아의 발작적 움직임은 뇌가 팔다리에 지시를 내리는 게 아니라 팔다리가 뇌에 가르침을 주는 것이다.

유아의 발작적 몸동작은 팔다리가 뇌를 '교육'하는 만큼, 뇌가 이를 제대로 인지하고 있을 리 없다. 술이나 다른 약물에 중독되지 않더라도, 또 뇌 신경에 이상이 없더라도 우리 몸이 스스로 동작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유아에서 흔한 경련 같은 동작인 것이다.

그러고 보면 옛 어른들은 일찌감치 유아의 발작적 동작을 제대로 꿰뚫어 보고 있었다. 젖먹이들의 팔다리가 발작적으로 움직일 때, 옛날 할머니들 가운데는 "아이가 크느라 그러는 것"이라며 갓난아이를 둔 새댁을 안심시키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 성장을 위한 학습이라는 할머니들의 해석이 현대과학으로 증명된 케이스인 셈이다.

발작적 행동까지는 아니지만 보통 사람들이 뇌로 인지하지 못하는 몸동작은 주로 자는 시간에 나타난다. 잘 때 뒤척이는 동작이 단적인 예다. 자는 사람은 깨닫지 못하더라도 보통 사람이라면 한 시간에 최소한 한번 혹은 두 번쯤 몸을 굴린다. 자면서 왜 몸을 굴리는지 그 이유는 정확하게 메커니즘이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학자들은 혈액 순환을 돕기 위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몸의 특정 부위가 계속 눌려 있거나 접혀 있을 경우 혈액 흐름이 원활치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평생의 3분의 1 가량을 잠으로 보낸다. 게다가 발작적 경련을 경험하는 유아기에 더불어 술에 취하거나 질병에 걸려 뇌의 인지가 정확하지 않은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개인에 따라서는 어쩌면 살아 있는 시간의 절반 안팎 동안 '자신도 모르는' 행동 혹은 동작을 하면서 지낼 수도 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위클리 공감(korea.kr/gonggam)에도 실렸습니다. 위클리 공감은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행하는 정책 주간지입니다.
#두뇌 #경련 #수면 #동작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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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6학년에 진입. 그러나 정신 연령은 여전히 딱 열살 수준. 역마살을 주체할 수 없어 2006~2007년 북미에서 승차 유랑인 생활하기도. 농부이며 시골 복덕방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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