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 경비... 내 말 안들려?"
젊은이 말에 눈이 뒤집혔다

아파트 경비원의 시선으로 쓴 '경비원 모독기'

등록 2014.10.22 13:26수정 2014.10.22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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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서울 압구정동의 한 아파트 경비원이 분신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입주민들의 지속적인 폭언에 상심이 컸다고 한다. 몇 년 전 퇴직 후 아이들을 보며 소일거리를 하는 나는 우리 집 아파트 경비원들과 이야기 나눌 기회가 많았다. 내 또래의 그들이 겪는 일도 분신한 경비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이 이 일을 하면서 갖는 불만은 주로 젊은 사람들이 하는 인격적인 모독에 관련된 것이었다. 뉴스를 본 이후 다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이 글은 경비원의 시선으로 쓴 '경비원모독기'임을 밝힌다. - 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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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경비노동자 분신사고가 일어난 아파트의 한 경비원이 13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현대아파트 정문에서 근무를 서고 있다. ⓒ 이희훈


"개새끼들아! 이리 나와."
"……."
"당신 죽고 싶어?"
"……."

이곳은 전남 광주의 한 아파트 단지다. 지은 지 5년 정도 되는 소형아파트인데, 주차장이 턱없이 부족하다. 세대 당 1대의 주차 수요를 예상했다고 하는데, 애당초 잘못된 집계가 아닌다 싶다. 입주자, 손님, 직원 등 적어도 세대당 1.5대의 주차장이 확보되어야 했다. 부족한 주차공간으로 입주민을 비롯한 방문자들이 차량 통행로나 현관 입구에 차를 주차하기 일쑤다.

임산부나 노약자들은 주차를 하기조차 힘들 지경이다. 앞을 가로막고 있는 차를 이동시키기에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입주민 자치위원회에서 협의 끝에 정해진 데 주차하지 않은 차량에 대해 강력스티커를 붙여 경고하기로 결의했다. 이 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는 나는 자치위원회에서 결의한 대로 주정차 금지 구역에 주차된 차에 스티커를 붙였다. 그리고 나서의 일이다. 30대 후반의 차 주인이 대뜸 경비실 문을 박차고 찾아와 난동을 부렸다.

"어이, 경비"
"경비, 안 들려?"
"관리 좀 똑바로 해."

주차 공간이 없었던 모양이다. 주차가 힘들어도 경비 탓이다. 입주민인지 손님인지 모르지만 대뜸 반말이다. 경비를 경비라고 부르니 틀린 말은 아니다. 새파란 젊은이가 '경비, 경비' 하고 부르니 순간 나도 눈이 뒤집혔다. 그러나 출근길에 다짐, 또 다짐하지 않았나. '누구와도 다툼은 안 된다'라고.


아파트 내 주차위반 딱지 스티커 붙였다고, "당신 죽고 싶어?"

입사 1년차 때 아직 업무 파악이 되지 않은 그때는 조용히 불러서 "너 나이가 몇 살인데 어른한테 반말이야?"라고 화를 내기도 했다. 이젠 그럴 필요조차 없다는 걸 안다. 어차피 우리가 이길 수 없는 싸움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중이 절 보기 싫어도 떠날 수가 없는 것이다.

다니는 회사를 퇴직한 뒤 한 아파트 경비회사 회사에 취직을 했다. 마땅히 다른 할 일도 없고 노후 생활비도 마련할 겸 적어도 70세까지는 일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서다. 노인네가 쉬엄쉬엄 일하기 좋은 게 경비일이라는 소리를 간혹 듣는데, 딱 하루만 일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 아파트는 경비원 네 명이 두 명씩 교대로 1일 24시간 근무한다. 경비원의 업무 중 경비는 사실 부수적인 일이다. 주로 하는 일은 쓰레기 분리, 주차장 관리, 주변 청소, 출입자  통제, 놀이터 안전 관리, 외부 잡상인 통제, 택배 인수 등 잡다하다.

이처럼 아파트 경비가 해야 하는 일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가장 힘든 업무는 쓰레기 관리다. 우리 아파트는 일반쓰레기, 음식물, 재활용품(종이류, 플라스틱, 비닐, 잡병 등), 헌옷 등으로 분류하여 일반 쓰레기는 종량제봉투에 넣어서 버려야 한다.

음식물은 수거통에 넣고 재활용품은 각각 표시된 마대에 버리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아이들 기저귀, 개 똥, 음식물을 일반 비닐에 넣어 놓거나 박스에 뒤섞어 놓는 입주민들도 있다. 일일이 분리하여 관급 쓰레기봉투에 담아놓지 않으면 수거해가지 않으니, 그 처리는 오롯이 경비원 몫이다. 하루 5~6회 정도 순회하면서 정리해야 한다.

시도 때도 없이 가져다 버린 쓰레기를 보다 못해 한 번은 오후 11시가 넘어서 버리는 입주민에게 "빨리 좀 내놓을 수 없느냐"라고 했다가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폭언만 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 사무소까지 찾아가 항의한다. "시간이 없는데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다.

떨어지는 낙엽에 경비원들 한숨이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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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경비노동자 분신사고가 일어난 아파트의 한 경비원이 13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현대아파트 경비초소에서 근무를 서고 있다. ⓒ 이희훈


가을 단풍이 붉게 물든 요즘 경비원들의 마음은 똑같을 거다. 가을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 나뭇잎이 바람에 날려 수북이 쌓이면 내 한숨도 절로 늘어난다. 놀이터에도 주차장에도, 낙엽은 치우지 않으면 쓰레기가 된다. 경비원이 치워야 한다.

작년 겨울에는 유난히 눈도 많이 내렸다. 행여 미끄러질새라 보포도 깔아주고 눈도 치워야 한다. 아파트 내에서 뭐든 치우는 건 다 경비 몫이다. 치워야 하는 것 중에는 마음 아픈 것도 있다. 바로 담배꽁초. 금연 구역에서 담배를 피우는 아이들이 많다. 손자 같은 생각에 야단도 치고 훈계도 해보지만 듣지 않는다. 수북수북 쌓이는 담배꽁초, 주우면 버리고 또 버린다.

이렇게 치워야 할 게 태산인데 경비실을 계속 비울 수도 없다. 자동차 출입도 통제해야 하고 잡상인도 출입을 막아야 한다. 조금만 방치하면 현관 등에 홍보 스티커를 붙여 버린다. 입주민을 대신해 택배도 수령해야 한다. 낮에는 대부분 집을 비우는 세대가 많다. 알아서 찾아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수령해 가도록 연락을 하거나, 시간 여유가 있을 때는 배달까지 해줄 때도 있다.

아파트 경비로 지낸 지 8년째다. 아이들에도 인격이 있다고 하면서 일부 입주민은 아버지뻘 되는 내게 폭언을 서슴지 않는다. 경비원 일도 이쯤하니 그런 폭언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게 된다. 매일 아침 출근 길, 속으로 이런 말을 되뇐다.

"네, 알았습니다."

하루 24시간 중 쉴 틈이 없긴 하지만 그래도 이 일에 조금이나마 보람을 느낄 때도 있다. 간혹 주변을 청소하는 도중 듣게 되는 "수고하십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 한 마디다. 고향에서 수확한 감을 맛보시라고 건네주는 할머니, 택배 물건을 배달 해준 뒤 따라주는 음료수 한 잔에 온갖 피로를 잊는다. 나는 아파트 경비원이다.
#아파트 경비 #경비원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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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며 삶의 의욕을 찾습니다. 산과 환경에 대하여도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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