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 때려 뇌사 빠뜨린 집주인 '정당방위' 논란

법원, 실형 선고에 찬반 엇갈려... "지나친 판결" vs "폭행 과해"

등록 2014.10.24 18:48수정 2014.10.25 11:15
67
원고료로 응원
[기사 대체 : 24일 오후 7시 7분]

도둑을 잡았지만, 그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뇌사상태에 빠뜨린 집주인이 실형선고를 받았다. 법원은 여러 사정을 고려할 때 집주인의 행동이 지나쳤다고 판단했지만 한쪽에선 "법원이 정당방위 인정에 보수적"이라고 비판한다. 다시 한 번 '정당방위'의 범위를 두고 논쟁이 붙는 모양새다.

8월 13일 춘천지방법원 원주지원 박병민 판사는 지난 3월 자신의 집에 몰래 들어와 서랍장을 뒤지고 있던 A(56)씨를 주먹과 벨트, 빨래건조대 등으로 수차례 폭행한 B(20)씨에게 징역 1년 6개월형을 선고했다. '집주인이 도둑을 잡았는데 무슨 문제인가'라고 보기에는 B씨의 행동이 지나쳤다는 이유였다.

법원 "절도범이어도 무방비 상태였는데... 정당방위 넘어섰다"

a

집에 들어온 도둑을 때려 뇌사상태에 빠지게 한 집주인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 이희훈


보통 도둑이 들면 집주인은 그를 제압한 뒤 경찰에 넘긴다. 그런데 이 경우엔 달랐다. 사건 당일 B씨는 술을 마신 뒤 오전 3시쯤 강원도 원주시 자택으로 돌아와 불을 켰다. 이때 그의 눈에 훔칠만한 물건을 찾는 A씨가 들어왔다.

B씨는 "당신 누구야?"라고 소리친 뒤 A씨의 얼굴을 주먹으로 쳐 쓰러뜨렸다. 그가 넘어진 채로 계속 도망치려고 하자 B씨는 뒤통수를 발로 걷어차고 주변에 있던 알루미늄 빨래건조대로 A씨의 등을 가격했고, 벨트를 풀어 때리기도 했다. A씨는 정신을 잃은 채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현재까지도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행동은 정당방위 한도를 넘어섰다"고 판단했다. 아무리 A씨가 절도범이라고 해도 ▲ 무방비 상태였고 ▲ 지금껏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데다 ▲ 앞으로 가망이 없을 정도로 폭행정도가 과했던 만큼 B씨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얘기였다.


A씨의 가족사도 처벌수위에 영향을 줬다. 그의 보호자 역할을 하던 형은 A씨의 병원비가 2000만 원을 넘기자 부담을 느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때문에 A씨의 조카는 재판부에 B씨를 엄벌에 처해달라고 호소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면 피고인에게 실형을 선고함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다만 A씨가 사건의 원인을 제공한 점 등을 유리한 요소로 판단, 1년 6개월형을 선고했다. 법원 관계자는 "도둑이 들어와서 협박을 한다면 당연히 격투를 해서 제압해야 하지만 그가 '잘못했다, 살려 달라'고 하는데도 과하게 폭행한 부분은 따져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과잉방위여도 실형은 지나쳐... 외국은 정당방위 강력히 인정"

반면 조국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실관계를 봐야 하지만, 설령 B씨가 과잉방위했다해도 실형은 지나치다"고 말했다. 엄밀히 따져볼 때 A씨의 가족사는 사건 자체와는 별개며 B씨가 범죄 피해에 놓일 뻔한 상황이었음을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 법원은 정당방위를 판단하는 기준이 엄격한 편이기도 하다. 조 교수는 "외국은 강도에 저항하던 사람이 그를 죽이더라도 정당방위라 할 만큼 강력히 인정하는 편인데 한국은 '꼭 죽여야 했냐'며 과잉으로 본다"며 "2심에서 뒤집히긴 했지만, 성폭력 피해 여성이 가해 남성의 혀를 깨문 일이 유죄로 나온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법원은 정당방위를 잘 인정하지 않는 편이라 학계의 비판을 많이 받아왔다"며 "이번 사건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B씨 역시 자신의 행동이 다소 과할 순 있어도 정당방위였다며 판결에 불복했다. 항소심을 맡은 춘천지방법원 형사합의1부(부장판사 최성길)는 11월 12일 두 번째 공판을 진행한다.
#법원
댓글67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61세, 평생 일만 한 그가 퇴직 후 곧바로 가입한 곳
  2. 2 죽어라 택시 운전해서 월 780만원... 엄청난 반전이 있다
  3. 3 "총선 지면 대통령 퇴진" 김대중, 지니까 말 달라졌다
  4. 4 민주당은 앞으로 꽃길? 서울에서 포착된 '이상 징후'
  5. 5 버스 앞자리 할머니가 뒤돌아 나에게 건넨 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