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평 아파트에 손님 80명... 격이 다른 백일잔치

[공모-잔치, 어디까지 해봤나요] 애먹기도 했지만, 가족이 있어 따뜻했어요

등록 2014.10.27 10:45수정 2014.10.27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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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린 건 없지만 많이 드세요."


한껏 모양을 내서 차린 첫딸아이의 백일상은 내가 보기에도 그럴듯했다. 아니, 알록달록한 색상의 음식들이 곁들여져서 화려하기까지 했다. 내심, 결혼 전에 미리 요리학원에 다녀서 배우기를 잘 했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있는 교양 없는 교양 잔뜩 떨면서 인사를 마치고 남편 친구들이 손님으로 계시는 안방을 뒷걸음질로 살며시 나왔다.

잠시 후, 모자라는 음식은 없는지 살펴보러 안방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때까지 상의 음식이 숟가락도 대지 않은 채 그대로였다. 음식이 뭐가 잘못됐는가 생각해 무척 당황스럽고 실망스러웠다.

"음식이 입에 안 맞으세요? 어쩌나…."
"저…."
"예, 말씀하세요. 간이 안 맞나요? 간장을 좀 가져올까요?"
"저…, 숟가락이 없는데요."


손님 수저 빼먹은 첫딸아이 백일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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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삼매경 저도 음악 좀 안다고요. ⓒ 김경내


오마이갓! 순간 '얼음'이 됐다. 정신을 차리고 상을 살펴봤다. 열일곱 분 손님 앞에 숟가락이 하나도 없었다. 귀밑까지 화끈거렸다. 조금 전까지 떨던 교양은 어디로 갔는지 홱 뒤돌아 주방으로 냅다 뛰면서 소리쳤다.


"숟가락, 숟가락, 숟가라~악! 몇 개나? 많이 많이 마마마많이."

숟가락 몇 개만 들고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에 들어갔다 나오는 시누이 얼굴은 웃음을 참느라 울룩불룩 빨개졌다. 주방에서 일하던 친척들은 웃음보가 터졌다. 나는 웃을 때가 아니라며 수저 열일곱 쌍을 맞추느라 부산을 떨었지만, 헛수고였다.

예상치 않은 많은 손님들로 인해 수저가 이미 동이 났던 것이다. 남편은 그제서야 상황을 파악하고 뒤통수를 긁적이며 멋쩍어 하고 있었다. 앞집으로, 윗집으로, 아랫집으로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숟가락을 빌려서 가져다 드리고 나니 다리가 후들거렸다. 하지만 내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음식이 식어서 다시 데우는 것은 물론이고, 수저가 없어서 그냥 술을 마신 친구 몇 분이 "어~ 잘 먹었습니다"라고 농담 섞인 인사를 할 때에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그래도 웃음으로 마무리해주신 남편 친구들과 그 광경을 보고 위로하며 어루만져주신 손님들이 참 고마웠다.

"작은 살림에 수고했네"라는 말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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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 백일사진 33년 전엔 저도 귀엽죠? ⓒ 김경내


당시 남편 나이 서른일곱. 나보다 아홉 살이나 많은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결혼해서 16평짜리 소형 아파트에 신접살림을 차렸다. 시어머니께서는 아들 나이도 나이지만 8남매의 맏며느리인 내게 태기가 있는가 싶어서 거의 매주 시골과 서울을 오가셨다.

결혼한 지 꼭 1년 만에 태어난 딸아이의 백일잔치에 시어머님께서는 부를 수 있는 모든 사람은 다 불렀다. 덕분에 16평 아파트가 아침부터 밤까지 복작거렸다. 게다가 친정 식구들에 남편의 친구들까지…. 백일잔치에 오신 손님만 무려 80명이 넘었다.

나는 그 많은 손님들 중에서 특히 남편의 대학친구들에게 신경을 많이 썼다. 거기에는 남편과 학창시절을 함께 보낸 여성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만 어이없는 실수를 하고 만 것이다.

손님들이 다 돌아가시고 친정 식구들과 시댁 식구들이 남았다. 이제 진짜 식구들만 남았으니까 다시 '2차 잔치'가 시작됐다. 시댁은 전남, 친정은 경북. 서로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서 웃고, 풍습이 달라서 웃었다. 그때 친정고모님께서 빙그레 웃으시며 나를 향해 말씀하셨다.

"이 사람, 오늘 애 마이 썼네. 다음부터는 큰 일치를 때 손님을 가늠해서 그릇 준비를 먼저 해놓게. 인제 말이지만 우리 상에도 수저가 모자랐었네."
"그럼 무엇으로 드셨어요?"
"숟가락이나 젓가락 중에 한 가지만 있어도 먹는 데 지장 없어. 옛날에는 꼭 숟가락 젓가락 다 챙겨 먹지 않았네. 그리고 친정식구들인데 뭐 어떤가, 작은 살림에 수고했네."


난 또다시 '얼음'! 그런 내가 무안해 할까봐 식구들은 조금 덜 우스운 얘기에도 박장대소하며 화기애애하고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줬다. 그로부터 33년이 지난 지금도 웃음이 절로 난다. 모든 것이 서툴렀지만 참 소박하고 행복한 백일잔치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잔치, 어디까지 해봤나요' 공모 응모글입니다.
#백일잔치 #숟가락 #남편여자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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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는 시원한 청량제, 겨울에는 따뜻한 화로가 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쓴 책 : 김경내 산문집<덧칠하지 말자> 김경내 동시집<난리 날 만하더라고> 김경내 단편 동화집<별이 된 까치밥> e-mail : ok_0926@daum.net 글을 써야 숨을 쉬는 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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