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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을 그리워하다 아들 곁으로 떠난 인병선씨. 그는 아들 태범이의 유해와 나란히 놓였다. ⓒ 강민수
'드르륵 드르륵'
드릴이 네 귀퉁이의 홈을 뚫자 유리문이 열렸다. 사진과 메모지에 가려져 있던 '개인단' 내부가 보였다. 안에는 단원고 2학년 5반 인태범군의 명찰이 놓여 있고, 뒷편으로 그의 유골함이 자리잡고 있다. 추모공원 직원이 태범이 함을 들어 2인용 '부부단'으로 옮겼다. 이어 태범이 아버지 인병선(53)씨의 유골함이 태범이 함 옆에 나란히 올려졌다. 생전에 아들 곁에 묻어달라던 그의 마지막 소원은 그렇게 이뤄졌다.
함 앞으로 두 사진이 놓였다. 생전 태범이가 두 누나와 함께 찍은 사진과 부부 사진이다. 사진속 다섯 사람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사진을 지켜보는 태범이 어머니 정경희(49)씨는 흐느꼈다. 정씨 곁에 선 태범이의 두 누나도 눈물을 흘렸다. 그 뒤로 같은 반 희생자 부모들의 눈이 촉촉해졌다.
가장 추운 날, 먼 곳으로 떠난 태범이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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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병선씨의 빈소 한쪽에는 하얀 종이가 붙어 있었다. 종이에는 ‘태범 아버님 세월호의 진실은 저희가 꼭 밝히겠습니다. 편히 잠드소서. 리멤버 0416’라고 적혀 있었다. ‘꼭’이라는 단어는 빨간색으로 강조돼 있었다. ⓒ 강민수
올해 들어 아침 공기가 가장 차다는 28일 오전 8시경. 경기도 안산 선부동 한도병원 장례식장에서 인병선씨의 영결식이 진행됐다. 인씨는 담도암 투병 도중 지난 26일 숨을 거뒀다. 세월호 침몰사고로 아들을 떠나 보낸 지 약 6개월만의 일이다(관련기사: 암으로 숨진 세월호 유족, 마지막 한 마디는...).
빈소에는 조화와 조기가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아드님 곁에서 편히 잠드소서'라고 적힌 조화도 보였다. 빈소 한쪽 벽에 하얀 종이가 붙어 있었다. 종이에는 '태범 아버님, 세월호의 진실은 저희가 꼭 밝히겠습니다. 편히 잠드소서 리멤버 0416'이라고 적혀 있었다. '꼭'이라는 단어는 빨간색으로 강조돼 있었다.
인씨의 남동생이 영정을 들어 영결식장으로 옮겼다. 그 뒤로 부인 정씨와 그의 두 딸, 그리고 친지 20여 명과 단원고 희생자 부모 10여 명이 따랐다. 영결식장에는 하얀 천으로 쌓인 관이 놓여 있었다. 가족들은 관 앞에서 제사를 올렸다. 사자가 묘지로 떠나기 전 남은 이들의 마지막 인사였다.
장례 차량은 화장장인 인천가족공원으로 향했다. 차가 안산 시내를 가로지르자 가로수에 걸려있는 노란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잎이 노란 단풍나무에 '세월호 참사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 결국 우리 모두의 일입니다', '이제 그만하자 하지 마세요. 아직 밝혀진 것 하나 없잖아요'라고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 밑으로 '단원고 2학년 0반, 누구엄마 000, 누구아빠 000'라고 적혔다. 단원고 희생자 학부모가 인씨를 배웅하는 듯 했다.
아들과 남편 잃은 어머니 "혼자 집에가면 나 어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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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유족 인병선씨의 영결식이 진행되고 있다. 인씨는 지난 26일 오후 10시경, 담도암으로 숨을 거뒀다.
ⓒ 강민수
화장장에 도착한 뒤로 부인 정씨의 눈물은 그치지 않았다. 간밤의 눈물 때문인지 정씨의 눈두덩이는 부었고 두 눈은 퀭했다. 검정색 저고리와 치마에 목도리를 두른 정씨는 몸을 자꾸 떨었다. 정씨는 태범이 이모들의 부축을 받아가며 한 걸음 한 걸음 옮겼다.
어머니와 함께 슬픔을 나누고 싶었던 것일까. 정씨는 "친정 엄마가 보고 싶다"고 말했다. 충남 당진에 살고 있는 태범이 외할머니에게는 아직 사위의 죽음을 알리지 않았다. 외손자에 이어 사위의 부고를 알게 되면 건강이 악화될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정씨의 친정 어머니 대신 여동생들이 곁에서 눈물을 닦아줬다.
관이 화로에 들어간 뒤 빨간색 불이 켜졌다. 화장이 시작됐다는 뜻이다. 가족들은 유리창 너머를 바라보며 오열하기 시작했다. 정씨는 "집에 혼자가면 나 어떡해", "나는 어떡하라고"며 가는 목소리를 내며 흐느꼈다.
두 시간 가량 화장을 마친 인씨의 유해는 경기도 평택 서호추모공원으로 옮겨졌다. 이곳에는 단원고 학생 83명과 교사 2명의 유해가 안치돼 있다. 야트막한 산자락에 깃든 추모공원에는 오후의 가을 햇살이 눈부셨다. 태범이 유골이 있는 봉안당 245호실에도 햇살이 비췄다. 태범이 안치단 옆으로 친구들의 유해도 함께 있었다.
안치단에는 저마다 친구와 자식을 향한 그리움이 묻어 나왔다. 단 유리문에는 생전 사진과 명찰, '사랑한다', '보고싶다'는 하트모양의 메모지들이 붙어 있었다. 단 안에는 야구공과 가수의 앨범, 평소에 쓰던 지갑, 작은 곰인형, 조화 등이 놓여 있기도 했다.
아들을 그리워하다 아들 곁으로 떠난 인씨. 그의 유해는 아들과 나란히 놓였다. 부부가 함께쓰는 2인용 안치단을 부자가 함께 쓰게 된 것이다. 유경근 세월호 가족대책위 대변인은 이날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두 유해의 안치소식을 전했다.
이제 인병선 님께서는 아들 태범 군과 함께 계십니다. 우리 눈에는 함께 놓인 봉안함으로만 보이지만 실제로는 어떠한 고통도 없는 곳에서 함박웃음으로 서로 꼬옥 안고 계실겁니다. 이승에서의 한은 저희 남은 가족들이 꼭 풀어드릴테니 편안히 안식을 취하시면서 지켜봐 주세요. 특히 태범이 어머님과 누나들, 동생을 지켜주세요. 저희들도 있는 힘껏 함께 하겠습니다.
태범이에게 남겨진 메모... "아빠가 아프셔, 잘 보살펴줘"
인씨가 마지막 가는 길에 같은 반 부모 십여 명이 배웅했다. 2학년 5반 부모 대표이자 고 김건우군 아버지 김정윤(49)씨는 "아드님하고 이 세상에서 못 누린 삶을 오래오래 함께 하시길 바란다"면서 "큰 슬픔을 이겨내야 하는 태범이 어머니가 가장 큰 걱정"이라고 안쓰러워했다.
고 박성호군의 어머니 정혜숙(46)씨는 "태범이와 행복하게 지내셨으면 좋겠다"며 "아버님이 우리 아이들도 잘 돌봐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정씨는 "살아생전 못다 이룬 세월호 진상규명의 꿈을 남은 저희 부모들이 해내겠다"며 "어머니와 두 딸은 저희가 가족같이 돌보겠다, 걱정말라"고 말했다.
가족들이 자리를 비운 뒤 예전 태범이 유골함 안치단에 붙어 있던 쪽지 하나가 눈에 띄었다. 같은 반 고 이석준군의 아버지가 쓴 메모였다.
"사랑하는 태범아. 잘지내고 있지이? 석준아빠야. 태범아, 아빠가 많이 아프셔. 아빠 아프지 않게 병 나으시게 하늘에서 잘 보살펴 주렴. 불쌍한 울 태범이 그렇게 해줄거지! 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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