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시정연설, 내겐 '협박'으로 들렸다

[게릴라칼럼] 모순의 극치를 보여주는 공공요금 인상 이유

등록 2014.10.29 17:26수정 2014.10.29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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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탈탈 다 터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발가벗길 기세네…. 아침 눈뜨기가 무섭다. 안 오르는 게 없어…."

아침에 눈 뜬 뒤 만난 첫 뉴스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의 버스와 지하철 요금이 200원 오른다는 소식이다. 아내의 한탄이 이해가 간다. 벌써 며칠째 쉴 새 없이 공공요금 인상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국민의 건강을 위해 담뱃값을 2000원 올리겠다고 발표한 게 불과 한 달 전인데, 고속도로 통행료 인상, 상하수도 요금 인상 등 각종 공공요금 인상안들이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터져 나오고 있다. 출근해 사무실 컴퓨터를 켜니, KBS 사장이 내년 상반기까지 수신료를 현실화하겠다고 밝혔다는 기사가 떴다. 아내의 말처럼 정말이지 서민들의 살림살이를 발가벗길 모양이다.

새해 첫날인 1월 1일 도시가스 요금이 5.8% 인상됐다. 한국가스공사는 원전3기 가동 중지로 인해 발전용 LNG를 스팟 구매(예정되지 않은 현금 구매)했고, 이로 인해 적자가 누적됐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원전 부품 납품 비리의 책임을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지우는 꼴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건강보험료도 1.7% 인상됐고, 2월에는 우체국 소포요금이 500~1500원 가량 오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공공요금을 수입으로 하는 공공기관은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인상안을 꺼내 들었다. 새해 벽두부터 몰아친 '인상 러시'의 수위는 점점 더 올라가고 있고, 서민들의 살림은 높은 파도에 휩쓸린 듯 휘청거린다.

오르는 공공요금... 아침에 눈뜨기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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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요금 인상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 sxc


28일 박근혜 대통령은 영상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지방세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논란이 된 주민세와 자동차세의 인상은 물론 재산세 대폭 인상 내용도 포함됐다. 재산세의 경우 조세저항을 우려해 2018년부터 단계적으로 인상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전월세 급등 등 최근의 상황으로 미뤄볼 때 재산세 인상도 결국 세입자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2012년 5월 23일, 당시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전기요금 인상 관련 "국제유가와 가스의 가격이 상승해 전반적인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비단 이때만도 아니었다. 정부와 공기업들은 각종 공공요금을 인상할 때마다 유가 및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면서 서민의 생계를 위해 인상폭을 최소화하겠다는 것과 강도 높은 자구책을 마련하겠다는 약속도 빼놓지 않았다. 더불어 원가와 물가 연동제를 내세워 마치 유가와 물가가 떨어지면 다시 공공요금을 인하할 것처럼 강변해왔다. 물론, 믿는 서민들은 없었지만.


"최근 이례적으로 낮은 오름세를 지속하고 있는 물가상황과 관련, 금융위기 이후 오랜 기간 억제되었던 전기요금 등 공공요금을 현실화하는 기회로 활용한다면 긍정적 효과가 상당할 것이라고 봄. 아울러, 최근 부각되고 있는 공공부채 부담의 완화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임."

2013년 7월 2일 한국은행 제11차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 일부다. 박근혜 정부 들어 국제 유가가 하락하고 내수 침체가 이어지자, 고공행진을 이어가던 물가 인상폭이 둔화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한국은행과 정부는 앞 다퉈 낮은 물가가 성장 동력의 걸림돌이 될 것이라며 저물가에서 벗어나야 된다고 강변하기 시작했다. 29일 2015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 나선 박근혜 대통령도 우리 경제의 위기 요인으로 저성장과 엔저, 저물가를 언급했다.

모순의 극치를 보여주는 공공요금 인상의 이유

박근혜 정부에서 추진되고 있는 각종 공공요금 인상 뒤에는 이러한 인식이 깔려 있다. 공공요금 인상으로 저물가에서 벗어나고 공기업의 각종 부채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마른 수건 쥐어짜기에 지나지 않는다. 검증되지 않는 방법은 서민들의 고통만 키울 뿐이다. 또 국제 유가와 원자재 상승이 있을 때마다 공공요금 인상의 불가피성을 역설하던 공공기관과 정부가 국제 유가와 각종 원자재 가격이 큰 폭으로 하락하고 있음에도 오히려 공공요금 인상하는 것은 모순의 극치다.

공공기관의 적자 타령도 후안무치하기 이를 데 없다. 도로공사 빚은 26조 원에 달한다. 이 적자를 메우기 위해 7% 인상이 필요하다는 것이 도로공사 측의 설명이다. 그러나 이렇게 늘어난 적자는 무분별한 도로의 개설과 700억 원 성과급 잔치, 휴게소 입찰 비리가 빚어낸 산물이다.

수자원공사도 상·하수도 요금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 빚의 대부분은 4대강 사업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또 한국가스공사나 한국전력의 적자는 대기업과 수출기업의 편의를 봐주는 요금체계가 키운 것이나 다름없다. 이렇듯 대다수의 공기업들이 적자를 기록하고 있지만, 그 누구도 이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다. 더 한심할 때는 이런 곳들이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다. 이런 행태를 방치한 채 서민의 호주머니를 털어 공기업 적자를 메우겠다는 발상이 대통령이 말한 비정상의 정상화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적자라면서, 그래서 요금을 올릴 수밖에 없다면서도, 정부는 공공기관 보수를 3.8%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는 최근 3년간 최고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공기관의 보수를 인상하며 민간의 임금인상을 유도해 내수 경기에 도움이 되게 하겠다는 게 정부측 설명이다. 그러나 너무 궁색한 변명이다. 이명박 정권이 집권 후부터 줄곧 부르짖은 '기업과 부자들이 돈을 많은 벌어야 서민들도 살기 편하다'는 '낙수 효과론'과 별반 다르지 않다.

대통령의 공기업 혁신 시정연설, 오히려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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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 남소연


"공공기관 혁신도 지속 추진해 나가서 부채를 줄여갈 것입니다. 올 한 해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을 차질 없이 추진하여 고질적인 방만 경영이 상당부분 바로 잡혔고 공기업 부채도 연말까지 33조 원 이상 줄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5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공기업 혁신을 강조했다. 그리고 방만한 경영의 상당부분이 개선되었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서민들이 체감하는 공기업 혁신은 미미하기 그지없다. 이명박 정권 하에서 4대강 사업, 자원외교 등으로 쌓인 막대한 공기업 부채에 대해서는 책임지는 사람도, 책임을 묻는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 시정 연설을 두고 여야 대표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지만, 공기업 혁신과 부채 감축을 강조한 대통령의 연설이 '공공요금을 올려서라도 빈 곳간을 채우겠다'는 무서운 협박으로 들리는 이유는 뭘까.

대통령의 지적처럼 현재 우리 경제는 위기다. 물가가 아무리 낮아졌다고 해도 내수 침체는 서민들의 삶을 빚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다. 때문에 저물가를 해소하기 위해 공공요금을 올려야 한다는 발상은 재고돼야 한다. 차라리 국제 유가와 원자재의 하락 국면을 기회로 물가와 공공요금을 낮춰 서민들의 숨통을 열어주는 방식으로 내수 활성화를 고민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기업이나 국가 경제를 위한 지렛대가 아니다. 연일 터져 나오는 공공요금 인상 소식... 거부할 수만 있다면 거부하고 싶다. 어깨를 누르는 삶의 무게 탓만은 아니다. 정부의 인상안에서 어떠한 합리성이나 당위성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시정연설 #공공요금 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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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진보는 냉철한 시민의식을 필요로 합니다. 찌라시 보다 못한 언론이 훗날 역사가 되지 않으려면 모두가 스스로의 기록자가 되어야 합니다. 글은 내가 할 수 있는 저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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