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청첩장이라면... 서로 가고 싶어 안달일 걸?

[가장 나다운 결혼식③] 박동욱, 이지혜 부부

등록 2014.11.02 21:02수정 2015.02.05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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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편일률적 '스드메', 20분 예식, 뿌려 놓은 축의금 걷기, 눈도장 찍기식 참석 등 허례허식 결혼식에서 벗어나 소박하고 특별한 결혼식을 치른 열 쌍의 커플 이야기. 주인공뿐만 아니라, 참석한 모든 이들의 기억에 남았던 예식을 소개해 결혼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에겐 격려를, 돈 때문에 결혼을 포기한 이들에겐 기대를 안겨주고자 한다. - 기자말


결혼 잔치에 초대된 게 기뻐야 하는데, 받고도 기분이 떨떠름해지는 청첩장이 있다. 우연찮게 마주쳤는데, "어 그래, 너!" 하면서 여분을 꺼내 급하게 쥐어주는 청첩장이 그렇다. 날 세워놓고 봉투에다 이름을 휘갈겨 쓰는데, 이름마저 틀린다. 별로 축하해주고 싶지도 않은데, 내 성마저 바꿔놓은 청첩장을 들고 억지로 "축하해"라는 말을 한다. 어색하게 헤어지는 그 순간, 손에 든 청첩장을 버리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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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가 오랫동안 쓰는 도장으로 디자인한 청첩장 ⓒ 박동욱 이지혜


하지만 반대로 몇 년이 지났음에도 고이 모셔둔 청첩장이 있다. 당시엔 애인도 없어서 "대체 내 결혼식은 언제일까" 절규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도 청첩장에 적힌 글귀 하나하나가 정성스러워 쉬이 버리지 못했던 그 내용을 잠시 소개하고자 한다.

* 꼭 정장을 입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날씨가 추우니 편하고 따뜻한 옷차림으로 오십시오.
* 지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능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해주세요.
* 신부 대기실을 마련하지 않고, 예식 30분 전부터 신랑 신부가 입구에서 하객을 맞이하겠습니다.
* 두 사람이 살림을 합친 후 겹치는 책들을 모아서 입구에 놓아두겠습니다. 원하시는 책이 있으면 골라가세요.

청첩장 글귀 하나하나를 읽으며, 입가에 미소가 절로 번졌다. 꼭 가서 축하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결혼식 이후 3년, 두 사람을 지난 9월에 다시 만나 소박했던 결혼의 뒷 이야기를 나누었다.

7년 연애... 정말 오랫동안 기다린 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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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대기실 없이 예식 30분 전부터 같이 하객들을 맞이하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 박동욱이지혜


이지혜(39)씨와 박동욱(41)씨는 그야말로 '오래된 연인'이다. 소개로 만나 결혼에 골인하기까지 자그마치 7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우직하게 기다린 쪽은 신랑 동욱씨. 하자는 결혼은 안 하고, 지혜씨가 훌쩍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을 때도, 그 이후 몇 년이 흐른 뒤에도, 지혜씨가 'OK' 하는 그날까지 잘 인내하고 기다려주었다.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늘 힘이 되어주었어요. 7시간의 시차가 있어서 한국 시간으로 분명 새벽일 텐데 항상 전화해주었죠. '결혼을 한다면 이 사람과 해야지'라고 생각했지만 선뜻 결혼 결심은 쉽게 서지 않았어요. 이 사람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결혼'이라는 제도에 두려움이 컸던 것 같아요. 가족에 대한 상처도 있었고요. 그 시간을 잘 견뎌주고 기다려주고 응원해준 남편이 너무 고마워요."

어떻게 그렇게 기다릴 수 있었냐는 질문에 동욱씨는 "뭐, 의지죠 의지. 하나님도 인간을 계속 기다려줬잖아요. 하하" 하고 농을 던졌다. 결혼을 염두해 구한 신혼집에서도 동욱씨 혼자 죽 살다가, 4년 만에 드디어 함께 살게 되었다. 그렇게 어렵사리, 그러나 견고하고 단단한 결혼생활이 시작되었다.

결혼할 당시 동욱씨는 종교 관련 잡지사 편집장이었고, 지혜씨는 출판사 편집자를 거쳐 번역 일을 하고 있었다. 둘의 살림 중에 가장 많이 차지하는 것은 단연 책. 살림을 합치고 보니 중복된 책들이 꽤 많이 나왔다.

아마도 비슷한 가치관을 품고 살게 된 것은 그렇게 같은 책들을 읽은 덕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중복된 책들을 모두 걷어 결혼식장 앞마당에 쌓아놓았다. 선착순인데다, 출판 관련 지인들이 많은 터라 식이 시작하기도 전에 동이 나고 말았지만 기억에 남는 답례품이 되었다.

둘 다 꼼꼼하고 세심한 성격이라, 사소한 일이지만 모두가 즐거울 수 있는 사려 깊은 결혼식이 무엇일지 고민하고 생각했다. 결혼식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허례허식이 될 부분은 과감하게 생략했다. 대신 좋은 기억으로 남겠다 싶은 부분은 충분히 활용했다.

우선 신부 대기실. 대기실에 오도카니 앉아 억지 웃음을 지으며 흘러가는 시간이 지혜씨에겐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또 반대로 생각하면 신랑은 사람들을 맞이 하느라 지인들과 사진을 찍을 겨를도 없다. 그래서 두 사람은 예식 30분 전부터 식장 앞에 같이 나와 하객들을 맞이했다. 단체촬영 없이, 그 자리에서 사진을 찍고 싶은 하객들과 두 부부가 함께 사진을 찍었다.

또 하나의 고민은 식장에 장식된 꽃. 일회용으로 버려질 꽃장식들은 예식장에서 가장 비싼 비용을 들여야 하는 품목 중 하나다. 두 사람은 이 꽃을 잘 활용했다. 꽃길을 꽃바구니로 만들었고, 그간 고마웠던 사람들의 이름을 써놓았다. 식이 끝나고 미리 말을 들었던 사람들이 꽃바구니를 한아름씩 안고 집으로 돌아갔다. 기억에 남는 근사한 선물이 된 것이다.

"평생 함께 걸을 사람이 있어 충분히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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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길 걷는 부부 7년의 연애 끝에 결혼한 부부 ⓒ 박동욱이지혜


"웨딩드레스는 나중에 리폼해서 평상복으로도 입을 수 있도록 하나 맞췄어요. 하루 대여하는 데 몇 백씩 드는 드레스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요. 그런 화려한 드레스는 저랑은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저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옷으로 입고 싶었고, 또 이렇게 간직할 수 있으니 좋아요. 게다가 식전에 하객들 맞이할 때, 바닥에 놓아두었던 촛불에 드레스 뒤가 조금 그을렸어요. 비싼 돈 주고 빌린 드레스였으면 어쩔 뻔했어요. 하하. 원한다면 진희씨 결혼할 때 빌려줄 수도 있어요."

단 한 번 있는 결혼식에 세심한 배려들까지 놓치지 않으려 애쓰느라 고생했던 날이었다. 실수도 있고 뜻대로 되지 않은 일도 있었지만, 오랜 기다림 끝에 맺은 아름다운 결실 앞에서 그 어떤 일도 불만스럽지 않았다. 축하해주러 온 이들도, 두 사람도 모두가 마음 따뜻해지는 결혼식이었다. 앞으로 어떤 꿈을 꾸며 두 사람이 살아갈 거냐는 질문에 동욱씨는 이렇게 말했다.

"언젠가 지인이 '어떻게 살지를 정하면, 누구와 살지가 정해진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저는 오히려 반대였던 것 같아요. 누구와 살지를 정하면서 어떻게 살지가 결정되었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특별히 꿈꾸거나, 이루고픈 소망이 있다기보다 지금처럼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다는 그 자체가 행복한 것 같습니다. 지혜씨가 내 인생길에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할까요? 너무 닭살스럽나요?"

물론 내 팔뚝에야 닭살들이 올라오긴 했다만, 평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한 이에게 이보다 더 평화로운 속삭임이 또 있을까.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 http://askdream.com에도 게재할 예정입니다.
#결혼식 #니콜키드박 #박진희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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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담도 순식간에 뒤집어 즐겁게 살 줄 아는 인생의 위트는 혹시 있으면 괜찮은 장식이 아니라 패배하지 않는 힘의 본질이다.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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