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선거구별 인구편차 2대1 이하로 바꿔야"
정치권 대혼란 예고... 중대선거구제론 급부상

[해설] 내년 말 시한, 대도시 이득-농어촌 손해... 공은 국회로

등록 2014.10.30 14:41수정 2014.10.31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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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보강 : 30일 오후 8시 4분]

헌법재판소는 국회의원 선거구별 최대-최소 인구편차가 3 대 1로 짜여져 있는 공직선거법 제25조 2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선고를 내렸다. 헌재는 선거구 인구편차를 "2 대 1을 넘어서지 않는 것으로 변경하는 것이 타당하다"면서 내년 말(2015년 12월 31일)까지 선거구역표 전체를 개정하라고 밝혔다. 헌재는 30일 오후 재판관 9명 중 6명 다수의견으로 이같이 선고했다.

이에 따라 다음 총선을 약 1년 6개월 앞두고 대대적인 선거구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재판관 9명 중 6명 의견으로 선거법 25조 2항 '헌법불합치' 결정

헌재는 "(지금은) 1인의 투표가치가 다른 1인의 투표가치에 비하여 세 배의 가치를 가지는 경우도 발생하는데, 이는 지나친 투표가치의 불평등"이라며 "인구가 적은 지역구에서 당선된 국회의원이 획득한 투표수보다 인구가 많은 지역구에서 낙선된 후보자가 획득한 투표수가 많은 경우가 발생한 가능성도 있는 바, 이는 대의민주주의의 관점에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또 헌재는 "국회를 구성함에 있어 국회의원의 지역대표성이 고려되어야 한다고 할지라도 이것이 국민주권주의의 출발점인 투표가치의 평등보다 우선시 될 수는 없다"며 "특히 현재는 지방자치제도가 정착되어 지역대표성을 이유로 헌법상 원칙인 투표가치의 평등을 현저히 완화할 필요성 또한 예전에 비해 크지 않다"고 밝혔다. 이어 "인구편차의 허용기준을 완화하면 할수록 과대대표되는 지역과 과소대표되는 지역이 생길 가능성 또한 높아지는데, 이는 지역정당구조를 심화시키는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고 밝혔다.

헌재는 "점차 인구편차의 허용기준을 엄격하게 하는 것이 외국의 판례와 입법추세"라며 "우리도 인구편차의 허용기준을 엄격하게 하는 일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덧붙였다.


선거구 인구편차에 대한 헌재의 위헌 또는 헌법불합치 결정은 이번이 세 번째다. 헌재는 이미 지난 1995년과 2001년 인구편차 위헌 기준을 각각 4 대 1과 3 대 1로 낮추는 결정을 내렸다. 특히 2001년에는 선고를 내리면서 "앞으로 상당한 기간이 지난 후에는 인구편차가 2 대 1 또는 그 미만의 기준에 따라 위헌 여부를 판단하여야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 결정이 있은 지 13년 만에 헌재는 약속대로 인구편차 2 대 1을 꺼냄으로써, 유권자 1인당 표의 평등성을 더욱 높였다.

이번 선고에 대해 박한철·이정미·서기석 헌법재판관은 "2001년 인구편차 3 대 1을 기준으로 위헌 여부를 판단하였던 상황과 크게 달라진 바 없는 현 시점에서는 위 기준을 유지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며 소수의견을 밝혔다.

이들은 "(2 대 1 기준을 적용하면) 도시에 인구가 집중되어 있는 현재 상황에서는 상대적으로 도시를 대표하는 의원수만 증가할 뿐 지역대표성이 절실히 요구되는 농어촌의 의원수는 감소할 것이 자명하다"고 말했다.

[해설] 유권자 1인당 표의 평등성 획기적 개선... 정치개혁 마중물 될까

'헌재발 충격'이다. 이제 다음 총선 전까지 정치권은 대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어 보인다. 개헌론의 부상과 맞물려 이번 헌재 결정이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지, 어떤 결과를 낳게 될지 예측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헌재 결정으로 유권자 1인당 표 가치의 평등성은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불과 20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선거구별 최대-최소 인구편차는 4 대 1을 웃돌았다. 한 지역구에서 유권자 네명의 표 가치가 다른 지역구의 한 명의 표 가치도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이 95년 4 대 1 이하로, 2001년에는 3 대 1 이하로 줄었고, 이번 결정으로 2 대 1 이하로 바뀌게 됐다. 이제 우리나라에서 한 명의 표 가치는 절대 다른 사람의 표 가치보다 50% 이하로 떨어지는 일은 발행할 수 없다.

중요한 점은 이런 추상적인 의미를 넘어 이번 결정이 현실에 미칠 영향이다. 당장 2016년 5월 치러지는 20대 총선에서는 어떻게든 선거구별 인구편차를 2 대 1로 줄여야 한다. 단순히 생각하면 전체 인구수를 지역구 국회의원 수로 나눠 선거구 평균 인구수를 산출한 다음, 그 기준으로 2 대 1이 넘지 않게 최대수와 최소수를 산출해서, 최대보다 인구가 많은 선거구는 분리하고, 최소보다 적은 선거구는 합치면 된다. 하지만 그게 그리 간단치 않다.

수도권 등 대도시 이득... 호남과 경북 등 농어촌 손해

3 대 1 기준을 적용했던 19대 총선만 해도 인구가 부족한 농어촌의 경우 한 선거구를 만들기 위해 무려 네 개 행정구가 합쳐졌던 경우가 생겼다. 강원 철원군·화천군·양구군·인제군 선거구와 전북 무주군·진안군·장수군·임실군 선거구가 그곳이다. 그런데 만약 최소 인구수를 더 높인다면, 네 개 행정구가 아니라 다섯 개, 여섯 개 행정구를 묶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럴 경우 농어촌은 지역 대표성이 사실상 사라지게 된다.

반대로 최대 인구수를 초과해 분리해야 하는 선거구는 현실적으로 대도시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지역적 특성이 전혀 차이가 없음에도 단지 인구가 많다는 이유로 한 행정구가 여러개로 쪼개지게 된다. 결국 국회에서 대도시의 목소리는 더 커지고, 농어촌의 목소리는 소수가 될 수밖에 없다. 표의 평등성도 좋지만, 이것이 과연 정치개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선관위 자료를 보면 이런 현상이 더 극적으로 확인된다(아래 표 참고). 9월 말 현재 위에서 설명한 방식을 단순 적용할 경우 총 246개 선거구 중 무려 62개를 조정해야 한다. 이중 상한을 초과해 분리해야 하는 선거구 37개 중 64.8%(24개)가 수도권에 몰려있다.

반면 하한을 미달해 다른 지역과 묶어야 하는 선거구는 25개 중 52%(13개)가 대표적 농어촌 지역인 경북과 전남·북이다. 물론 이는 현재 지역구의 인구를 기준으로 단순 계산한 것이기 때문에 실제 조정에 들어갈 경우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지만, 인구편차 기준을 2 대 1로 바꿀 경우 전체적으로 수도권 등 대도시가 이득을 보고, 호남과 경북 등 농어촌이 손해를 볼 수 밖에 없음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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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9월말 현재 기준 ⓒ 이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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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영


지역구를 늘인다? 의석 수를 늘인다?... 어느 하나 쉽지 않아

농어촌 지역의 박탈감과 저항을 줄이기 위해 하한선은 높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럴 경우 상한선을 더 내려야 하고, 대도시 선거구는 더 잘게 쪼개지게 된다. 무엇보다 이럴 경우 지역구 숫자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는 문제가 생긴다. 지역구를 늘이면 그만큼 비례대표를 줄일 것인가? 가뜩이나 비례대표 숫자(54명)가 적다는 지적이 많은 상황에서 이 또한 정치개혁과는 역행된다.

물론 전체 의원 수(현재 300명)를 늘릴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헌법상 국회의원 수의 하한(200명)은 정해져 있지만, 상한선은 제한이 없다. 하지만 이 문제는 국민정서를 설득해야 한다. 가뜩이나 여의도를 향한 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쉽지 않은 문제다.

현실적으로 통폐합 예상 지역에 기반을 둔 정치인의 경우 그야말로 정치생명이 걸린 문제라는 점을 고려하면, 1년 넘게 시간이 남아있다 해도 과연 정치권에서 선거구 조정을 원만하게 해낼 수 있을지도 우려스럽다. 오히려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파국이 올 수도 있다. 이 참에 선거구 획정 권한을 국회에서 선관위나 다른 독립적 기구로 이관해야 한다는 주장은 그런 점에서 설득력이 있다.

선거구제 개편론의 재부상

이런 복잡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보다 큰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표의 평등성을 높이는 취지도 살리면서 정치개혁의 방향성을 담아내기 위해서는 중대선거구제 도입 등 구조적인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의당 정치똑바로특위 위원장인 심상정 의원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심 의원은 헌재 선고 즉시 성명을 통해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정치개혁의 마중물이 될 것"이라며 "국회의원 지역선거구 획정의 변화는 선거제도의 변화를 촉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행 소선거구제는 국민의 평등권을 보장할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면서 "결선투표제 도입 등 차제에 한국정치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포괄적인 선거법 개정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선거구제 개편론은 개헌론과 함께 대표적인 정치개혁 의제다. 여야를 막론하고 개헌론이 나오고 있는 현재, 선거구제 개편론이 부상하는 점은 매우 중요한 포인트다. 특히 이번에는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인해 어느 때보다 설득력이 크다. 개헌론과 선거구제 개편이 결합될 경우 그것이 미칠 영향은 상상하기 쉽지 않다.

이제 헌재의 결정으로 유권자 표의 평등성은 확 올라갔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정치개혁의 마중물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오히려 역행할까?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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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종현


#선거구 #공직선거법 #헌법재판소 #헌법불합치 #게리맨더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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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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