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동안 산에서 살았다고 29년을 감옥에서...

[서평] 남궁윤의 <유영쇠 평전>... 무명의 빨치산이 말하는 한국사회

등록 2014.11.03 09:55수정 2014.11.03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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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빨치산 문학으로 불릴 만한 저작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던 때가 있었다. 1980년대 말쯤이지 않았는가 싶다. 훗날 영화로도 만들어지는 소설 <남부군>(이태 작)도 그 무렵 출간되었다. '남부군'은 남한 빨치산의 전설적인 존재였던 총수 이현상의 직속부대였다.

하지만 빨치산 문학은 먼 과거가 된 지 오래다. 빨치산 이야기는 유행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더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못한다. 이런 시대에 무명의 빨치산을 주인공으로 하는 책 한 권이 나왔다. 남궁윤 전북교육연구소 소장이 쓴 <유영쇠 평전>이다. 유영쇠(1928~현재)는 전북 김제 출신의 빨치산이었다.


엄혹한 시절이다. 빨치산 책은 거의 팔리지 않는다. 그 불온함 때문에 탄압의 표적이 될 위험성도 있다. 악명 높은 '서북청년단'을 재건하겠다며 나선 이들이 활개를 치고 있는 세상이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저자가 한 물 간 빨치산 책을 내놓은 이유가 무엇일까.

저자는 유영쇠와 여러 해를 교류하면서 수없이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그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구술을 채록하고, 관련 자료를 수집·분석하여 정리했다. 그렇게 해서 우리 민족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한 시대가 눈앞에 고스란히 펼쳐지게 되었다. 우리의 비극적인 현대사가 무명의 빨치산이었던 '유영쇠'라는 프리즘을 통해 생생하게 드러났다.

저자가 전하는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따라가 보자. 유영쇠는 전라북도 김제군 봉남면 대복리의 한 가난한 품팔이꾼 집안에서 유복자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제대로 된 이름도 없어 '유복'이라는 일반명사로 불렸다. 가난 때문에 14살 때까지 학교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 그 뒤 10여 리 떨어진 야학당을 다니면서 배움의 갈증을 채웠다. 나중에는 야학교 선생님이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김제농업중학교에 들어갔으나 3학년 때 한국전쟁이 터졌다. 그의 나이 23살 때였다.

이 해(1950년) 12월, 유영쇠는 고향 마을 청년 7명과 함께 입산했다. 유격대에서 40여일 간 훈련을 받은 뒤 정찰대에 배정되었다. 적군의 동태를 파악해 전황을 분석하고, 그 결과를 참모부에 제공하는 일이 주된 임무였다. "총 맞아 죽을 각오, 굶어죽을 각오, 얼어 죽을 각오"라는 '3대 각오'를 되새겨야 하는 빨치산의 고된 삶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갖은 고난 속에서도 유영쇠는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 나갔다. 빨치산 생활은 1954년 4월 24일까지 이어졌다. 오랫동안 사용해 오던 비트(비밀 아지트)가 경찰에 발각되면서 체포되었다. 이후 29년간의 장기수 생활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최초 재판에서 사형 구형에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4·19 혁명 후 20년 형으로 감형되었다. 그의 만기 출소는 1975년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출소하지 못했다. 1975년 박정희 독재 정권이 도입한 사회안전법 때문이었다.

유신의 칼날이 일반 시민들의 삶에도 드리워진 시절이었다. 사회안전법은 '검사'의 의견으로 '위험성'이 있는 대상자를 '보안감호' 즉 구금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유영쇠는 '위험성'이 있는 자로서 보안감호 처분을 받아 대전교도소로 옮겨졌다. … 사회안전법의 보호감호는 2년마다 재심사하여 갱신되는데 사실상 검사에 의한 무기한 구금이나 다름없었다. 유영쇠는 4번의 '심사'를 통해 8년째 구금생활을 하고 있었다. (233~234쪽)

폭력적인 전향 공작 역시 사회안전법과 마찬가지로 야만적인 시절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빨치산 출신의 장기수들에게는 전향 공작을 위한 탄압과 끊임없는 회유가 이어졌다. 한겨울에 밖으로 끌어내 찬물을 끼얹거나, 며칠 동안 수갑을 뒤로 채우는 '뒷수정' 상태를 강요했다.

뒷수정에 얽힌 잔인한 이야기가 있다. 책에는 박정희 시절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이 직접 면담을 요청하기도 했다는 김규호라는 인물이 비중 있게 소개되어 있다. 유영쇠는 그를 광주형무소에서 만났다. 해방 후 서울대 철학과 교수로 있다가 월북한 김규호는 김일성대 철학과 교수, 농민일보 주필을 거친 뒤 당 중앙위원이 되었다. 일종의 거물 빨치산이었다.

그런 상징성으로 인해 김규호는 전향 공작의 표적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결코 전향에 응하지 않았다. 뒷수정의 형벌이 그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오랜 뒷수정으로 근육이 굳어 버리자 수갑을 풀면 오히려 몸이 불편해졌다. 급기야 잠을 편하게(?) 자기 위해 뒷수정을 채워야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교도서에서는 '떡봉이'라 불리는 전향 공작반을 동원해 악랄한 폭력을 일삼기도 했다. 이들은 대개 깡패 출신들로, 전향 성과에 대한 보상을 받았다. 좌익 재소자들은 간수들의 승인까지 받은 이들의 폭력에 무방비적인 상태로 노출되었다. 저자에 따르면 의문사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 자살이나 의문사로 치부되었던 사건들 다수가 강제 전향 공작 과정에서 일어난 살인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1983년 5월 12일, 유영쇠는 수감된 지 29년 만에 출소한다. 그의 나이 56세였다. 그 뒤로 유영쇠는 이리자선원이라는 한 요양시설에서 30년을 보냈다. 이리자선원은 지체장애자와 지적장애자, 소수의 알코올 중독자들을 수용하고 있는 일종의 부랑인 시설(오늘날의 노숙인 시설)이었다.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 대회를 앞두고 전국에 급조된 여러 부랑인 시설 중 하나였다.

그는 그곳에서 정식 직원이 충원되기까지 10여 년간 자선원 업무를 도왔다. 자신이 추구하고 지지하는 사회의 궁극적인 지향을 버림받은 사람들을 돕는 것으로 여겼던 그의 신념에 따른 것이었다.

2013년 6월, 유영쇠는 전립선암 진단을 받았다. 저자는 같은 날 그의 진료서에 9가지 병명이 적혀 있었다고 쓰고 있다. 작년 9월 이후 전북 익산시의 종합복지시설인 익산원광효도마을 요양원으로 옮겨간 그는 지금 알츠하이머와 뇌졸중 등 14가지 질병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유영쇠는 4년간의 빨치산 활동 때문에 감옥에서 29년을 복역했다. 그곳에서 수없이 많은 죽음의 공포를 경험했다. 어느 날 갑자기 사회로 내팽개쳐진 뒤에는 부랑인 시설에서 30년 간 갇혀 지내다시피 했다. 빨치산이 된 이후 그는 우리 사회와 철저히 유리된 삶을 살았다.

그를 가장 절망에 빠뜨린 것은 죽음도 구금도 아닌 자본의 노예가 된, 혹은 되어가는 사회를 목도하는 일이었다. 모든 것이 자본에 종속된 사회에 인간의 존엄성이나 가치는 존립할 수 없다.

자신의 삶을 자각하며 주체적 선택을 할 수 있는 인간이 존재할 수가 없는 사회는 그에게 가해지는 가장 큰 형벌이다. 인간과 세상에 대한 따뜻한 체온을 간직하는 사회를 그는 바란다. 인간의 존엄성이 우선하고 자주와 민주의 가치가 반영된 통일된 나라를 그는 소망한다. (255~256쪽)

유영쇠라는 무명의 빨치산을 제대로 품어 안지 못하는 우리 사회는 어떤 곳인가. 저자가 밝힌 바처럼 그가 바란 것은 인간의 존엄성이 우선하는 따뜻하고 인간적인 세상일 뿐이었다. 새삼 우리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되는 이유다.

4·16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200일이 지났다. 수학여행 배를 타고 가던 꽃다운 아이들 수백 명이 한꺼번에 몰살당했다. 경제 규모 세계 10위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은 단 한 사람의 목숨도 구하지 못했다. 많은 사람이 "이대로는 안 된다"라며 분노했다.

하지만 세상은 요지부동이다. 진실을 밝혀 달라고 피눈물을 흘리며 외치는 아이들의 엄마를, 이 나라의 대통령은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차갑게 외면했다.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도와달라며 무릎을 꿇은 세월호 유가족 앞에서, 여당 대표는 자신의 고급 승용차 안에 앉아 매정하게 문을 닫았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겠다고 눈물까지 흘리며 다짐한 지난 5월의 대통령은 딴 사람이었을까. 선거가 다가오자 길거리에서 피켓을 들고 쇄신하겠다며 국민들에게 표를 호소한 여당 대표는 어디로 갔을까.

'인간 유영쇠'가 바라는 따뜻한 사회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그립다. 그가 말한 대로 "자신의 삶을 자각하며 주체적 선택을 할 수 있는 인간"이 자유롭게 살아가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사회, 인간에 대한 예의를 모르는 사람들이 이끄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

<유영쇠 평전>(남궁윤 지음 / 도서출판 미르 / 2014. 6. 20. / 270쪽 / 15,000원)
덧붙이는 글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com/saesil)에도 싣습니다.
#<유영쇠 평전> #빨치산 #세월호 참사 #박근혜 대통령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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