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기륭' "목숨 걸고 만든 합의, 휴지 조각돼"

[인터뷰] 비정규직 투쟁의 상징, 기륭전자 유흥희 분회장

등록 2014.11.09 14:35수정 2014.11.09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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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4일 오전 9시 서울 상도동 중앙하이츠빌 앞길. 유흥희(44) 전국금속노동조합 기륭전자분회장 등 노조원 3명이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가운데 우비를 입은 채 손팻말을 들고 섰다.

'8년을 기다려 복직했다. 기륭전자 최동열은 체불임금 지급하고 생산라인 설치하라!'고 쓰인 팻말 앞을 행인들이 무심하게 지나쳤다. 한 시간이 넘는 동안 "이게 효과가 있어요?"라고 묻는 사람이 딱 한 명 있었을 뿐이다. 지난해 12월 30일 기륭전자 최동열 회장이 회사 짐을 몰래 빼서 '도둑 이사'를 한 뒤, 노조원들은 평일 아침마다 이렇게 회장집 앞으로 '출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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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흥희 분회장이 최동열 회장 집 앞에서 피켓을 들고 서 있다. ⓒ 함규원


노조원 피해 도주한 회장 집 앞에서 매일 출근투쟁

기륭전자노조는 지난 2010년 11월 1월 이후 '비정규직 투쟁의 상징'이 돼 왔다. 사측의 해고에 맞서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내걸고 1895일을 싸운 끝에 조합원 10명의 정규직화라는 노사합의를 끌어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해고노동자 중 최초로 정규직 직접고용 약속을 이끌어낸 승리였다. 5년 2개월 동안 천막농성을 벌이고, 그 사이 조합원들이 번갈아 가며 다섯 차례의 고공농성과 생명을 건 세 번의 단식을 불사한 결과였다.

이들은 회사 측이 경영상의 사정을 이유로 제시한 복귀유예기간을 받아 들여 2년 6개월만인 2013년 5월 일터로 돌아왔다. 그러나 회사는 복직 후에도 일거리를 주지 않더니 지난해 12월 30일 아무런 통보 없이 서울 구로공단에 있던 회사 사무실을 옮겨버렸다. 출근투쟁 현장과 지난 7일 전화 인터뷰 등 모두 세 차례 <단비뉴스>를 만난 유 분회장은 "목숨을 걸고 만들어 낸 사회적 합의가 휴지 조각이 됐다"며 분개했다.

"2005년 8월 파업을 시작한 뒤 7년 9개월 만에 일터로 돌아왔지만, 사측은 생산라인이 없다며 일자리를 주지 않았어요. 복직 이후 단 한 번도 월급을 받지 못했고요. 사측은 생산직에 배치돼 일하지 않는 한 기륭직원이 아니라며 근로계약체결을 명시한 합의서를 전면 위배하는 얘기까지 하더군요."

당시 합의서에서 회사는 '기륭전자분회 조합원 10명을 고용한다'고 명시했지만, 막상 복귀해보니 고용을 위한 준비를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최동열 회장은 또 알짜기업이었던 기륭전자를 유령회사로 만들었다고 유 분회장은 주장했다.

2005년 기준으로 연 매출 1650억 원, 순이익 76억 원을 올리던 회사가 복직이 예정되어 있던 2012년에 160억 원 적자로 돌아섰다. 기륭전자는 지난 2월 19일 상장 폐지됐다. 회사 측은 생산시설이 없는데도 16억 원의 엘이디(LED) TV를 직접 생산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허위공시를 하는 등 불법행위로 자금을 모은 뒤 야반도주했다고 유 분회장은 주장했다.

노조원들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회사 측이 공시한 새 주소로 찾아갔지만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이들은 이부자리와 생활용품을 챙겨와 전기마저 끊긴 옛날 사무실에서 철야농성을 시작했다. 그리고 매일 최 회장 집 앞에서 선전전을 하며 면담을 요구하고 있지만, 회장은 연락두절 상태다. 현재 검찰은 최 회장에 대해 사기죄로 수사를 벌이고 있다.

"회장은 도망갔고 회사는 상장 폐지돼 투쟁하기 힘든 조건이지만, 노동자들이 힘들게 싸워 이뤄낸 합의가 이행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사회적 합의가 지켜질 수 있도록 법이 마련돼야 해요."

장부 조작이 싫어 경리 그만 두고 생산직으로 취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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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륭전자분회는 이 컨테이너박스에서 1895일을 투쟁한 끝에 비정규직 최초의 정규직 고용 합의를 이끌어냈다. ⓒ 정명


유 분회장은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작은 회사에 경리로 들어가 3년 정도 회계업무를 맡았다고 한다. 하지만 부장이 담배 심부름시키고, 장부조작 시키는 게 싫어 싸우고 나와 92년에 생산직으로 취업했다. 4년 동안 공장생활을 하다가 노동자들의 문화단체였던 '반달도서원'과 인쇄노조가 운영하는 취업알선센터에서 상근으로 일했다.

"공장에 취직한 친구들이 꽤 있었고, 현장에서 노동조합 활동하는 친구도 있었어요. 굉장히 피곤해 보이는데도 눈빛이 반짝거리고 즐거워 보이더군요. 자기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도움이 되는 삶이니까요. '나도 용기가 있다면 저렇게 살 수 있을까' 라고 생각만 했어요. 그런데 노동조합을 만드는 거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더군요. 직접 일해 보니까 노조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는 기륭전자와 도급계약을 맺고 인력을 파견한 워커스스테이션 소속의 노동자가 됐다. 원래 도급계약의 경우 원청사업자가 하청노동자를 직접 지휘·명령할 수 없게 돼 있지만, 기륭전자는 워커스스테이션과 또 다른 파견업체 휴먼닷컴 소속 노동자들에게 직접 업무지시를 했다. 불법파견이었다.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은 '반장에게 말대꾸했다', '잡담했다', '잔업에 자주 빠진다' 등 온갖 이유로 툭하면 해고를 당했다. 이런 현실에 분노한 노동자 200여 명이 2005년 7월 5일 금속노조 남부지회 기륭분회를 결성했다.

사측은 '계약해지'라는 이름으로 파견직 노동자를 모두 해고했다. 그해 8월 노동부가 휴먼닷컴에 대해 불법파견 판정을 내렸지만, 기륭전자는 벌금 500만 원을 낸 뒤 더 이상의 법적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노조원들은 농성 등으로 맞섰다.

"회사는 조합원들이 업무를 방해했다며 54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농성장을 침탈하려 용역 깡패를 배치했어요. 2007년 무렵엔 조합원이 40명으로 확 줄었죠. 떠나가던 동지들 모습은 평생 못 잊을 거 같아요. 일부는 투쟁 과정에서 서운했던 거 막 얘기하고, 상처를 주고 떠나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동지들이 그렇게 모질게 하지 않으면 미안해서 그랬던 거 같아요."

목숨 걸고 미친 듯 싸웠지만 후회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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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여름, 유흥희 분회장과 김소연 당시 분회장은 무기한 단식 투쟁에 돌입했다. ⓒ 기륭전자분회


우리 사회에서 비정규직 문제가 중요 의제로 떠오른 데는 기륭노조 싸움의 영향이 컸다. 투쟁 1000일을 앞두고 있었던 2008년, 촛불시위와 맞물려 '일터의 광우병, 비정규직 철폐하자'는 구호가 많은 시민의 공감을 얻었다.

'기륭여성비정규직 승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꾸려졌고, 노동조합과 시민단체, 종교계, 학생들이 힘을 모았다. 이 기세를 몰아 조합원 4명이 2008년 여름 서울시청 앞 16미터 조명탑 위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벌었고 당시 분회장이었던 김소연(44)씨와 유 분회장은 무기한 단식을 시작했다.

두 사람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살아서 땅을 밟지 않겠다'며 농성장 천막에 관까지 올려놓았다. 유 분회장은 단식 67일째, 폐에 물이 차기 시작해 목숨이 위태로운 상태에서 병원에 후송됐고 김소연 당시 분회장은 홀로 남아 94일 동안 단식 투쟁을 벌였다.

"우리처럼 (노동부에서) 불법파견 판정을 받고도 승리하지 못하면 희망이 없다고 생각해서 버텼어요. 목숨을 걸고 미친 듯이 싸웠지만, 후회는 없어요.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고, 도망가고 싶을 때가 왜 없었겠어요? 하지만 힘든 만큼 즐거웠던 기억도 많아요. 날마다 지옥 같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투쟁하겠어요?"

유 분회장은 당시의 단식이나 고공농성보다 요즘처럼 매일 하는 출근 투쟁이 사실 더 어렵다고 말했다. 끝없이 반복되는 일상을 감당하는 게 더 힘겹다는 것이다. 함께 하는 조합원들이 없다면 처음 노동조합 깃발을 세웠던 마음을 간직하며 끝까지 싸우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노조를 하면서 고마운 사람들을 참 많이 만났고, 특히 마지막까지 함께 싸우고 있는 10명은 진짜 가족 같은 동지들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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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방검찰청 앞에서 기륭전자 조합원들과 시민사회단체가 최동열 회장 사기죄 고발 기자회견을 열었다. ⓒ 기륭전자분회


기륭분회에 끝까지 남은 조합원 10명은 2년 6개월의 복직유예기간 동안 전국을 돌며 연대 투쟁을 했다. 쌍용차, 코오롱, 재능교육 등 비정규직 사업장 투쟁을 지원했다. 생계를 위해 각자 아르바이트한 돈을 공동기금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기륭이 받았던 연대에 대한 답을 주기 위해서"라고 유 분회장은 말했다. 기륭을 중심으로 한 연대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기륭분회는 사회적 합의 불이행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해 지난 9월 27일 '최동열 회장 사기죄 고발운동'을 시작했고, 지난 3일부터 3주 예정으로 서울 서초동 검찰청 앞에서 최동열 회장의 구속처벌을 촉구하는 시민들의 일인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어머니는 2005년 노조 만들 때, 그 농성 끝나면 그만하라 하셨고, 2008년 단식 때는 거기까지만 하라고 하셨어요. 2010년 승리했을 때는 이제 다 끝났다며 어머니가 제일 기뻐하셨죠. 그런데 이 일을 안 하면 내가 안 행복할 것 같더군요. 끈질기게 싸웠던 이유를 사람들이 많이 물어봐요. 나만 행복한 게 아니라, 남들도 같이 행복해지기 위해서였어요. 우리 조합원들뿐만 아니라 구로공단 노동자들, 전국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 41부는 지난달 30일 유 분회장 등 노조원 10명이 기륭전자를 상대로 낸 임금지급 청구소송에서 '회사가 1년 1개월치에 해당하는 임금 1693만 원씩을 각 조합원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회사 측은 복귀한 노조원을 끝내 외면했지만 법원은 이들을 기륭전자 직원으로 인정한 것이다. 유 분회장은 "이 판결 하나로 어떻게 되는 건 아니지만 직원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노동자 권리 찾기'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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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마친 유흥희 분회장이 환하게 웃고 있다. ⓒ 함규원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온라인 미디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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