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출신 황우여 장관이 내린 결정, 실망

[게릴라칼럼] 자사고 취소에 대한 교육부장관 직권취소, 취소가 타당

등록 2014.11.21 15:48수정 2014.11.21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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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한나라당 원내대표와 새누리당 대표를 지낸 정치인이자, 교육부 장관으로는 드물게 판사 경력을 갖고 있다. 3공화국 시절 교육부 수장을 맡은 검사 출신 권오병 전 장관이 있지만, 사법부 출신 교육부장관으로는 황우여 장관이 유일무이한 듯하다.

그가 서남수 장관에 이어 박근혜 정부 2대 교육부 장관에 내정되었을 때 우려가 많았다. 유아교육부터 대학까지 나라의 백년대계의 총책임자인 교육부장관 후보자가 교사 경력도 없고 전공도 법학이어서 교육적 전문성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게 이유였다. 그가 국회 교육상임위에서 활동했고 상임위원장을 맡은 적이 있다는 것이 교육과 연결된 유일한 끈이었다.

황 장관에게 전문성이 없다는 비판은 잦아들지 않았지만, 그는 무난히 청문회를 거쳐 교육부 장관에 임명되었다. 그나마 작은 기대를 걸었던 부분은 그가 판사 출신이란 점이었다.  판사는 우리 헌법이 특별히 규정하고 있는 '양심과 독립성'을 생명으로 하는 자리기 때문에 적어도 MB정부 시절 심각하게 훼손된 교육의 독립성을 조금이라도 회복시킬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MB정부 시절 일제고사, 교사 시국선언, 소액 정당후원금 등을 이유로 50명에 가까운 교사들이 무더기로 해고됐다. 각계각층에서 '법적 해고 대상이 아니'라고 비판했지만, 결국 교사들은 해고됐고 수년의 법정 다툼을 통해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일이 반복됐다.

판사 출신 황우여 의원이 교육부장관이 되면서 적어도 이런 법적 무리수는 두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다. 그러나 이런 기대도 지난 18일 서울교육청의 자율형사립고 취소 처분에 대한 교육부 장관의 직권 취소를 보면서 산산이 무너져 내렸다.

자율형사립고 지정 취소의 주어는 '교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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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연 서울시교육감 ⓒ 이희훈


현재 서울교육청 조희연 교육감과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자율형사립고 지정 취소를 두고  극하게 대립하고 있다. 자율형사립고 지정 취소를 규정하고 있는 초중등교육법 제91조의3(자율형사립고) 4항에 대해 서로 다르게 해석하기 때문이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91조의3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① 교육감은 다음 각 호의 요건에 모두 해당하는 사립의 고등학교를 대상으로 법 제61조에 따라 학교 또는 교육과정을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고등학교(이하 "자율형 사립고등학교"라 한다)를 지정·고시할 수 있다. 다만, 제77조제2항에 따라 교육감이 입학전형을 실시하는 지역의 고등학교를 자율형 사립고등학교로 지정하려는 경우에는 미리 교육부장관과 협의하여야 한다.
④ 교육감은 자율형 사립고등학교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그 지정을 취소할 수 있다.
⑤ 교육감이 자율형 사립고등학교의 지정을 취소하는 경우에는 미리 교육부장관과 협의하여야 한다.

그리 복잡해 보이지도 않고, 어려운 법률 용어가 등장하는 것도 아니다. 제1항에서 "교육감"이 자율형사립고를 지정·고시할 수 있으며, 단서 조항으로 평준화지역에서 자율형사립고를 지정하는 경우에는 미리 교육부장관과 "협의"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교육부장관이 아닌 시도교육감이 자율형사립고의 지정권자라는 이야기다.

지정 취소는 어떨까? 동조 제4항에서 자율형사립고의 지정 취소에 대한 것을 규정하고 있는데, 역시 주어는 교육부장관이 아닌 "교육감"이다. 교육감이 자율형사립고 지정을 취소할 수 있는데, 제5항에서 자율형사립고 지정을 취소하는 경우에 미리 교육부 장관과의 "협의"를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지방자치법과 이를 준용하는 지방교육자치법에 의하면, 시도교육감의 자치사무에 대해서는 교육부장관이 취소하거나 정지시킬 수 없다. 다만, 원래 교육부장관의 권한인데 시도교육감에게 위임한 위임사무에 대해서만 직권 취소 권한이 명시되어 있다. 여기서 쟁점은 자율형사립고 지정 또는 취소 처분이 교육감의 자치사무이냐, 아니면 위임사무(원래 교육부장관의 권한)이다. 그런데, 초중등교육법과 시행령은 자율형사립고 지정과 취소의 권한 주체를 "교육감"으로 명시하고 있다. 교육감의 자치사무라는 것이다.

4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전북에서 있었다. 2010년 김승환 교육감이 전북 익산 남성고와 군산 중앙고에 대한 자율형사립고 지정을 취소하면서 벌어진 일들을 살펴보자. 김승환 교육감은 전임 교육감이 지정한 자율형사립고를 법정전입금 문제와 교육 공공성 등을 이유로 취소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두 개의 소송이 진행됐는데, 하나는 해당 학교가 전북교육청을 상대로 낸 '자율형사립고 지정취소 처분 취소' 행정소송이고, 다른 하나는 교육부가 전북교육청에 내린 '자율형사립고 지정 취소 처분에 대한 시정명령 취소'에 대한 전북교육청의 기관 소송이었다.

첫 번째 행정소송에서 법원은 자율형사립고 지정 취소가 부당하다면서 학교측의 손을 들어주었다. 두 번째 기관소송에서 대법원은 전북교육청의 소송을 각하했는데 "지방자치단체장(전북교육감)은 지방자치법에 따라 자치사무에 관한 명령 처분의 취소 또는 정지에 대해 이의가 있을 경우 대법원에 소를 제기할 수 있지만 시정명령과 관련해서는 별도의 규정이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 사건을 잘 살펴보면 자율형사립고 지정 취소에 대한 권한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다. 당시 교육부는 전북교육청에 자율형사립고 지정 취소에 대해 시정명령을 내리기는 했지만 직권취소는 못했다. 더 명확한 것은 자율형사립고 지정 취소가 지방자치단체장(교육감)의 자치사무에 관한 것이라는 점이다. 황우여 장관도 지난 국정감사에서 이를 인정한 바 있지만 지금은 또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전북교육청의 자율형사립고 지정 취소 사건을 이번 서울교육청의 자율형사립고 지정 취소 사건에 대입하면 이런 결론이 나온다. 만약 지정 취소를 당한 6개 학교들이 교육청을 상대로 행정 소송을 제기한다면 이것은 다투어 볼 일이지만(서울시교육청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준비중이던 자사고 6곳은 지난 18일 교육부의 직권취소로 다시 지위를 회복했다.-편집자 말), 교육부가 서울교육청에 내린 '직권 취소'는 위법하다는 것이다. 자율형사립고 지정 취소가 교육감의 자치사무이기 때문이다.

황 장관의 협의 거부... 속 보이는 '비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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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과정 예산 관련 답변하는 황우여 장관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교육부와 소속기관 등에 대한 종합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유성호


이제 남은 건 단서 조항 속 "미리 교육부장관과 협의"하여야 한다는 표현이다. 황우여 장관은 이 조항을 근거로 교육부가 자율형사립고 지정취소에 대해 '동의 또는 부동의'를 표할 수 있으며, 교육감은 장관의 동의-부동의 의사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주장 역시 수긍하기 어렵다. 앞서 살펴본 자치사무냐 위임사무냐의 구분에서 자치사무에 속하는 것을 교육부 장관이 부동의 한다고 시행하지 못한다면 자치사무라고 할 수도 없고, 이는 우리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지방자치와 교육자치를 심각하게 부정하는 위헌적 행태가 되기 때문이다.

서울시교육청이 자율형사립고 지정을 취소하는 데 있어서 법적인 절차로 규정되어 있는 교육부 장관과의 협의를 의도적으로 거치지 않았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서울교육청 관계자에 따르면 서울교육청은 교육부에 세 차례나 협의를 요청했고, 검토도 하지 않고 반려해 버린 것은 교육부다. 단 한 차례의 협의 테이블도 차리지 않은 책임은 오롯이 협의를 거부한 교육부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즉,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귀책사유가 명백하게 교육부장관에게 있다는 뜻이다.

서울교육청이 교육부의 직권취소 직후 대법원에 '직권취소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할 것을 밝히고, 나아가 "헌법재판소에 서울시교육감과 교육부 장관 간의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는 것까지 검토하겠다고 밝힌 이유도 이런 근거들에 대한 자신감 때문이다.

정부법률공단·국회입법조사처 모두 아니라는데...

자율형사립고 지정 취소가 교육감의 자치사무이기 때문에 교육부장관이 직권으로 취소하거나 협의 거부 또는 부동의를 표하며 교육감에게 따를 것을 강요하는 것은 현행법 상 성립될 수 없다고 주장을 하는 것이 비단 서울교육청만은 아니다.

정부기관의 법률 자문을 맡고 있는 정부 설립 로펌인 정부법무공단이 있다. 교육부가 이 법무공단에 공식적으로 자율형사립고 지정취소에 관한 권한이 어디에 속하는 것인지 법률 자문을 의뢰했는데, "초중등교육법에 자사고 지정·취소는 교육감이 하도록 규정돼 있고 지정·취소 권한은 교육부 장관이 교육감에게 위임한 권한이 아니라 교육감 자치사무로 교육감의 권한"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정부법무공단뿐 아니라 국회입법조사처도 똑같은 의견을 냈다. 야당의 질의에 국회입법조사처도 법무법인 3곳의 법률자문을 받아서 결과를 내놓았는데 "자율형사립고 지정 취소 시 교육부 장관과 협의를 거치도록 하는 것은 자문을 요구하는 것이지 동의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교육부 훈령은 상위법인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위배되고 교육감의 권한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서울교육청이 외부 변호사들에게 받은 결과 역시 한결같이 "자율형사립고 지정은 교육감 자치사무이므로 교육감에게 권한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정부로펌과 국회입법조사처, 외부변호사들이 연이어 교육감의 손을 들어주자 교육부는 두 가지 카드를 꺼내들었다. 하나가 자율형사립고 지정취소 권한을 교육부 장관에게 귀속시킬 수 있도록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법제처에 법령해석을 의뢰하는 것이다. 한 법령에 대해 정부기관 사이 해석이 다를 때 최종적으로 유권해석을 내리는 기관이 법제처이므로, 법제처의 유권해석은 행정부 내 최종적인 결론이 된다. 언론에 따르면 교육부는 지난달 16일 법제처에 유권해석을 의뢰했다.

아무리 법제처장이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지만 법령에 명시적으로 교육감 권한이라고 명시되어 있는 것을 아니라고 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법조계와 교육계의 중론이다. 황우여 장관 입장에선 법제처 유권해석 의뢰는 잘 되면 좋고, 잘 안 되더라도 물러설 명분을 쌓는 것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황우여 장관에게 치명타가 될 수도 있다. 그의 판단으로 대혼란이 초래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판사 출신 장관이 법령까지 무시하며 정권 눈치 본다?

물론 자율형사립고에 대한 정책적 판단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억지를 부려서는 안 된다. 특히 판사 출신 장관이 법령까지 무시하면서 정권의 눈치를 본다는 비판을 받는다면, 우리 헌법이 규정한 전문성과 자주성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교육부장관이 서울교육청과 자율형사립고 사이에 이루어지고 있는 행정소송 결과를 지켜보지 않고 직권취소를 한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서울교육청이 세 차례나 요청한 협의를 무시하면서 대화를 통한 해결 가능성마저 저버린 것은 국민들에게 교육에 대한 불신만 키우는 대단히 무책임하고 비교육적인 처사다.

마지막으로, 최종 유권해석 기관인 법제처에 유권해석을 의뢰하였으면 그 결과를 기다려서 그에 따라서 직권취소를 하든, 수용을 하든 해야 할 텐데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직권취소를 해버리면 어쩌자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만약, 법제처에서도 자율형사립고 지정 취소 권한이 교육감에게 있다고 유권해석을 하면 그때는 어찌할 것인가?

이 모든 혼란과 불신의 책임은 황우여 장관에게 있다. 지금이라도 판사출신답게 정부법무법인, 국회입법조사처, 그리고 수많은 외부 법률가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직권취소를 취소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황우여 #자율형사립고 #조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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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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