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때릴 수도 있지..." 교육청의 '황당한' 징계

[인터뷰] 2008년 촛불집회로 징계 받은 서울시교육청 소속 김아무개씨

등록 2014.11.21 17:12수정 2014.11.21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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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8년 8월 5일 밤 서울 종로 3가에서 부시 미대통령 방한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던 깃발을 든 시위자가 골목까지 쫓아온 경찰에 강제연행되고 있다. ⓒ 권우성


지난 2008년 8월 5일 오후 8시 30분께 서울 청계천 광교 인근. 서울시교육청 남부교육지원청 소속 주무관 김아무개(46)씨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 길을 걷고 있었다. 도로에서는 당시 부시 미국 대통령 방한에 앞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등을 외치는 시민들이 행진을 벌이고 있었다.

김씨의 눈 앞에서 경찰은 시민들을 마구잡이로 연행했다. 아수라장 속에서 김씨는 도로로 밀려났다. 경찰이 연행과정에서 시민들을 폭행하자, 김씨는 휴대전화 카메라로 이 광경을 찍었다. 갑자기 그의 얼굴에 주먹이 날아들었다. 경찰이었다. 김씨는 연행됐다.

그로부터 6년 3개월 뒤인 지난 6일. 김씨는 남부교육지원청 인사위원회에서 품위 유지 위반을 이유로 징계를 받았다.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견책 처분이었다. 21일 오전 남부교육지원청의 한 기관에서 만난 김씨는 "경찰에게 공권력은 국민을 보호하라고 주는 것이지 무고한 시민들을 두들겨 패라고 주는 거 아니지 않느냐"면서 "진실을 알리기 위해 사진을 찍었다가 징계를 받았다"고 말했다.

경찰의 인권유린 촬영하다 연행... "진실 밝히는 건 공무원의 도리"

2008년 8월 5일 김씨가 도심에 간 이유는 책을 사기 위해서였다. 서울 청계광장에서는 시민 7000여 명이 모여 집회를 열었다. 오후 8시 30분께 경찰은 강경 진압에 나섰다(관련 기사 : 깃발 뺏으며 박수치고 V 그리는 경찰, 색소 물대포 발사... 시민 150여명 연행).

김씨는 "전경들이 인사불성이 되어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취객, 일반 시민까지 무차별로 연행하는 가운데 일부 전경이 시민기자의 카메라를 부수며 집단으로 폭행하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그는 휴대전화 카메라로 경찰이 시민을 연행하는 장면을 찍었다. 하지만 그도 경찰에 폭행을 당한 뒤 연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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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8년 8월 5일 저녁 서울 종로 보신각앞 네거리에서 부시 미 대통령 방한 규탄 시위를 벌이던 시민들을 경찰들이 강제연행하고 있다. ⓒ 권우성


김씨를 연행한 경찰은 다른 경찰에게 그를 인계했다. 그 후 김씨는 종암경찰서에서 3일 동안 구금돼 조사를 받았다. 김씨는 경찰에 "촛불집회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경찰의 마구잡이 폭행 사진을 찍어 진실을 밝히는 게 국민의 봉사자인 공무원의 도리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후 김씨는 학교로 돌아갔다. 그는 "당시 교장이 보수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에 힘들었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했다"고 말했다. 이듬해 3월 김씨가 근무하고 있던 학교에 공무원 범죄처분경과 통보서가 날아들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이 김씨를 '일반교통 방해'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위반' 혐의로 약식 기소해, 벌금 150만 원을 청구한다는 내용이었다. 

김씨는 누명을 벗기 위해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법원이 촛불집회 참가자들의 사건을 다루면서 헌법재판소에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 옥외집회·시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집시법 조항에 대해 위헌제청을 하면서, 재판은 중단됐다. 결국 관련 조항이 한정 위헌 판결을 받으면서, 김씨는 곧 마음고생을 끝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법원은 김씨의 일반교통 방해를 인정해, 벌금 50만 원 판결을 내렸다. 김씨는 "당시 나를 체포했던 경찰이 아닌 인계받았던 경찰이 증인으로 나왔다, '시위용품을 가지고 있거나 구호를 제창하는 건 보지 못했지만, 시위대와 같이 있었다'고 허위 증언했다"면서 "결국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김씨를 변론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이소영 변호사는 "김씨가 집회에 참석했음을 보여주는 경찰의 채증 기록도 없고, 김씨를 체포했다는 경찰의 진술도 애매모호했다"면서 "하지만 재판부는 당시 촛불집회 사건으로 법정에 선 많은 시민에게 일괄적으로 30만~50만 원의 벌금형을 내렸다"고 지적했다.

그는 "법원이 진실을 외면했다, 실체적인 진실을 밝혀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면서 "재판부가 권력의 눈치를 보고 정치적인 판단을 내린 것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인사위원의 일갈 "경찰이 때릴 수도 있지..."

김씨의 마음고생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심 판결 이후, 남부교육지원청 인사위원회가 열렸다. 김씨는 억울함을 설명했지만, 인사위원들은 냉혹했다. 이들은 "경찰이 시민들을 연행할 때 사진을 찍는 것은 공무집행방해 아닌가", "경찰이 공무집행을 할 때 저항하면 때릴 수도 있는데, 왜 사진을 찍었느냐"고 김씨를 몰아붙였다.

인사위원회는 지난 6일 그에게 견책 징계를 내렸다. 위원회는 징계의결이유서에서 "판결 내용으로 판단하건대 품위유지 위반에 해당한다"면서 "징계혐의자의 가담 정도가 중하지 않아 '비위 정도가 경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를 감안해 징계를 내린다"고 밝혔다.

김씨는 이튿날 서울교육소청심사위원회에 소청심사를 청구했다. 그는 "사건의 본질은 경찰의 무모한 진압 과정에서 인권유린이 일어난 것"이라면서 "인사위원회는 사건의 본질을 외면한 채 법원이 교통방해 50만 원을 선고한 것만 가지고 징계했다"고 비판했다.

김씨는 "진보적인 서울시교육감이 탄생해 징계가 내려지지 않을 것으로 기대했다"면서 "하지만 교육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바뀌지 않고 여전히 보수적이라 실망했다, 소청심사에서도 크게 바뀌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촛불집회 참석했다가, 6년 뒤 징계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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