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만 원어치 질렀다", 지금도 통할까?

개정 도서정가제 시행... 출판 시장의 해빙기를 바란다

등록 2014.11.25 11:41수정 2014.11.25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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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개정 도서정가제가 시행됐다. 사진은 서울의 한 서점 풍경. ⓒ www.flickr.com


2013년 8월을 아직도 기억한다. 처음으로 직장에서 '잘린' 때이다. 여지껏 어디서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정리해고'라는 단어가 현실로 다가온 순간이었다.

나는 대형서점 체인의 한 지점에서 반년 정도 일했다. 서점의 하청업체에 간접고용된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지점으로 운송된 책을 옮기면서 쌓고, 진열하고, 또 정리하는 것이 주된 업무였다.

고객이 요청하는 경우에는 도서를 서가에서, 혹은 창고에서 찾아 꺼내주는 일도 맡았다. '책'을 좋아하기에 서점에서 일하며 다양한 책을 가까이 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런 내 순진한 기대와 달리, 현장의 업무내용은 감정노동과 육체노동이 결합된 고된 일이었다.

서점 비정규직으로 일하면서 본 풍경들

당시 전 지점의 비정규직 90% 정도를 정리해고 한 사유는 '경영난'이었다. 판매 악화로 회사가 재정난에 봉착하자, 비정규직을 줄여 인건비를 절감하겠다는 차원이었다. 최소한 내가 관리자로부터 들은 설명에 따르면 그랬다.

대부분의 사원들이 '다음 달에 소수 인원을 남기고 정리해고 된다'는 소식을 듣고 황당하다는 반응이었지만, 결국 어쩔 수 없이 수긍하는 쪽이 많았다. 나는 '이런 식으로 회사의 이익을 위해 잘리다니?' 하고 생각했지만, 정작 일에 지쳐서 곧 그만두려던 참이었기에 그러려니 하고 말았다.

사실 해고통보를 듣기 몇 달 전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어깨 너머로 들은 대화로는, '판매실적 향상을 위한 방안'을 주제로 과장급에서 정규직 사원들을 채근하는 일이 잦았다. 물론 과장급 직원도 상부에서 요구한 사항이었기에 그랬을 터였다.

단순히 업무상 내리는 지시라기엔 뭔가 절박함이 느껴질 정도였달까. 사측에서 직원들에게 일정량의 신간 서평을 의무적으로 쓰라고 지시하는 것에다가, '새로 발매된 자사 전자책 기기'를 구매하고 직접 사용후기를 발표하도록 하는 것을 보면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매월 새로운 판매행사를 계획하고, 할인도서를 정해서 진열대를 바꾸고 또 바꾸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책을 치우고 또 쌓는 일에 비정규직이나 정규직 너나 할 것 없이 지쳤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라도 독자의 관심을 끌어서 판매율을 올리려는 시도였기에 다들 열심히 했다.

'세계문학전집 할인' 행사도 있었고, 유명 저자의 신간이 발매되면 사인회를 열기도 했다.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개봉하거나 드라마가 방영할 때면 새롭게 판매대를 꾸밀 기회로 삼았다.

그런데도 판매실적은 신통치 않았다. 기획행사 때마다 진열한 책들 중 대부분은 몇 권만 서가로 자리를 옮기고 반품처리 되었다. 혹은 매절(책 수십 권을 묶은 단위)이 남은 경우에는 창고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잊히는 경우도 잦았다. 그런 일이 한참 반복된 결과 '경영상의 이유'로 사측이 결정한 정리해고가 이어졌고, 나를 포함한 비정규직 수백 명은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야만 했다.

개정 도서정가제 시행... 오프라인 서점 살아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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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 도서정가제는 개인 소비자뿐만 아니라 공공도서관에도 적용된다. ⓒ pixabay.com


지난 21일부터 개정 도서정가제 정책이 시행되었다. 화제가 된 것은 시행을 앞두고 온라인서점들이 할인에 열을 올려 재고를 대폭 처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시작됐다. '반값 세일'이나 '80~90% 할인'을 내걸거나 '한 권에 990원'에 판매하는 식으로 도서를 '땡처리' 하는 것이었다. 독자들은 인터넷서점으로 몰려들었고, 시행 전날인 20일에는 급기야 인터넷서점 사이트 서버가 과부하에 걸리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개정 도서정가제는 모든 책을 정가로 판매하면서 할인율의 한도를 15%(직접할인 10%+마일리지 등 간접할인 5%)로 축소한 것이 핵심내용이다. 출간된 지 18개월이 지난 책에 시행되던 무제한 할인도 사라지게 된다(종전에는 신간은 19% 이내 할인, 구간 등은 무제한 할인 가능). 새로운 제도에서 구간 도서의 정가는 출판사가 다시 정할 수 있다. 이는 종이책뿐만 아니라 전자책에도 적용된다.

새로운 법안은 온라인 서점이 대폭 할인을 하면서 손님이 몰리는 데 반해 침체를 겪는 오프라인 서점을 활성화시키려는 측면에서 개정되었다. 할인율이 동일하게 적용되면 시중 서점에서 책을 사는 움직임이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보완되어야 할 부분이 여전히 많이 지적되고 있다.

먼저 대형서점에 비해 중소서점은 여전히 경쟁에서 밀린다는 점이다. 실제로 체인 형식의 온오프라인 대형서점은 출판사로부터 직접 정가의 60% 안팎의 금액으로 도서를 공급받는다. 반면 중소형의 '동네서점'은 도매상을 거쳐서 75% 정도로 책정된 가격에 도서를 들여오는 실정이다. 오프라인 서점이 할인율 축소를 통해 인터넷 서점과 격차를 좁힐 수 있겠지만, 도서정가제가 동네서점까지 구원할지는 아직 의문이 남는다.

또한 공공도서관에 공급되는 책도 똑같이 할인 제한을 받는다는 사실도 문제로 제기된다. 기존 도서관 1년 예산에는 큰 변화가 없는데, 책값이 오른다면 새로 배치될 책의 양이 줄어들 게 뻔하다. 정부는 이런 우려에 "내년 예산에 우수도서 구입비로 142억 원을 편성하겠다"고 밝혔지만 올해 예산이 152억 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오히려 줄어든 상황이다.

출판 시장에 빙하기가 오지 않길 바라면서

한 지인은 개정 도서정가제 시행 직전에 "10만 원어치 질렀다. <미생> 만화책을 포함해서"라고 알려왔다. 다른 친구는 "40만 원어치 정도 산 것 같다. 인터넷서점 포인트도 다 쓰려고 한다"며 구매욕구를 불태웠다. 이처럼 개정 도서정가제는 시행 직전 온라인 서점의 판매율 반짝 상승에는 분명히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으려면, 도서관과 중소서점을 지원할 방안을 추가로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미 동네서점이 많이 사라져가는 와중에 시행되는 개정 도서정가제가 '소 잃고 외양간 분양하는 격'이라는 말도 나온다. 한국개발연구원은 지난 16일, 개정 도서정가제 시행으로 인한 소비 위축을 우려하는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개정 도서정가제의 취지가 '지나친 저가 할인을 규제해 중소서점의 숨통을 틔워주려는 것'이라며 반박했지만, 할인율 제한으로 '상대적 가격 상승'을 체감할 독자들이 당장 동네서점으로 발길을 돌릴지는 의문이다.

대안 없는 규제가 출판 시장에 빙하기를 가져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측에서는 "6개월 정도 지나면 제도가 안정적으로 정착돼 저렴한 가격에 양질의 콘텐츠가 제공되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될 것"이라 강조했다.

하지만 1년 전 여름, 나는 대형서점에서 일하던 하청업체 비정규직으로서 이미 찬바람을 맞고 새로운 직장을 찾아야만 했다. 개정 도서정가제 시행이 다시 서점을 붐비게 만들고, 줄였던 직원을 다시 추가로 고용할 발판을 마련할까? 책장을 넘기듯 차분한 마음으로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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