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나서 싫은 건가"... 암 수술 이후가 문제였다

[나의 암 극복기 ④] 야속하기만 했던 가족... 서서히 시작된 회복

등록 2014.11.26 15:26수정 2014.12.01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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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두 가지 암 수술을 했다 ⓒ freeimages


동시에 두 가지 수술을 하느라고 마취를 많이 해서 그런지 마취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과정이 무척 괴롭다. 머리에는 납으로 만든 추가 달린 그물을 뒤집어 쓴 것처럼 정수리부터 짓누르는 느낌 때문에 앉아도 괴롭고 누워도 힘들다.


얼굴에는 수만 마리의 벌레가 기어다는 것 같기도 하고, 거미줄이 잔뜩 쳐진 것 같기도 하다. 아무리 손으로 얼굴을 쓸고 머리카락을 잡아당겨도 그 두렵고 기분 나쁜 것은 없어지질 않았다. 나는 수술 때문에 내 손이 맘대로 안 움직여서 그런 줄 알고 남편, 언니, 아이들에게 얼굴의 거미줄 좀 떼라고 사정도 해보고, 벌레 좀 잡으라고 악도 써보지만 모두 "아무것도 없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다. 참 서러웠다. 모든 사람이 멀게만 느껴졌다.

'아, 저 사람들은 내가 아니구나!'

아무것도 없더라도 가까이 와서 얼굴을 만져주거나, 벌레를 잡는 시늉이라도 하면 위로가 될 텐데. 얼굴이나 머리를 만져주면 시원한 느낌으로 인해 진짜로 거미줄이 걷히고 벌레도 잡히고 그물이 걷히는 줄 알고 안도할 텐데. 어쩌면 저리도 무심한지, 저 사람들이 가족이 맞기나 한지 의심스럽고 화가 났다. 심지어 '내가 살아나서 싫은 건가?' 하는 억지스런 생각도 들었다.

목에 호스 하나 꽂고, 가슴에도 하나 꽂고, 손에는 링거를 꽂았다. 호스에는 각자 이물질을 담아내는 주머니가 달려 있다. 내 꼴 참 우습게 됐구나 싶다.

수술 들어가기 전에 미리 간호사에게, 외부의 사람이 내가 입원한 줄 모르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렇게 하면 가족을 통해서 입원실을 안 사람만 면회를 할 수가 있다.


남편과 아이들은 다 돌려보내고 언니만 남았다. 병실이 조용했다. 평소에 세심하고 배려심 깊은 언니도 나를 돌보는 데 한계를 느꼈다. 본인이 수술한 경험이 있기는 하지만, 동시에 두 가지 암을 수술한 사람과는 근본적으로 몸 상태가 다르기 때문이었다.

'내가 살아나서 싫은 건가'... 모두가 멀게만 느껴졌다

병으로 봐서는 유방암이 훨씬 큰 병이지만, 수술 직후에 느끼는 고통은 갑상선이 훨씬 심했다. 사람에 따라서 다를 수도 있겠지만, 목을 조이는 느낌 때문에 제일 많이 힘들었다. 저녁에 갑상선 담당의께서 회진을 오셨다.

여전히 활짝 웃는 모습으로 환자를 대하는 모습이 환자로 하여금 안도감을 갖게 하고 친근감을 갖게 한다. 웃으니 선생님 얼굴도 훨씬 미남으로 보인다. 덕분에 그 고통 속에서 나도 웃을 수 있었다. '환자를 대하는 의사들이 다 저 선생님만 같으면 그나마 환자들에게 위안이 될 텐데'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든다.

"선생님, 너무 힘들어요. 누가 목을 막 조르는 것 같아요. 누우면 더 해요."
"많이 힘드시지요? 중하기는 유방 쪽이 훨씬 중하지만, 목은 예민한 곳이라서 유방보다 더 힘들게 느껴질 거예요, 하지만 곧 괜찮아질 거예요. 목소리도 잘 나올 거예요."

다음 날은 목과 함께 유방에도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마취가 그때서야 완전히 풀렸나 보다. 간호사에게 무통주사를 놔달라고 했다. 간호사는 무통주사와 진통제의 다른 점을 얘기하며 무통주사보다 진통제를 맞는 게 환자한테 좋다며 진통제를 놓아 주겠단다. 값은 무통주사가 더 비싼데. 참 고마웠다.

오전에 유방을 수술한 선생님이 오셨다. 되게 무뚝뚝하다. 웃으면 어디가 덧나나? 질문을 하면,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끙!

진통제를 한 대 맞고 통증이 진정되고 난 뒤에 언니에게 물었다.

"언니야, 나 수술 어디를 먼저 했어?"
"유방 먼저 한 것 같아. 유방외과 선생님이 먼저 나오시고 두어 시간 뒤에 갑상선 선생님이 나오셨으니까."

예민해진 후각... 항암치료 시작하기도 전에 '구토'

그러니 다른 환자보다 마취를 곱절은 더 했고, 깨는 데도 그 야단이 났던 것 같다. 통증! 수술을 했으니 통증은 당연히 동반되고 통증에 따른 고통도 수반된다는 사실은 각오하고 있었지만 문제는 다른 데서 불거졌다.

후각이 지나치게 예민해졌다. 예를 들면, 누가 식사를 하고 오면 그 사람이 먹은 음식에 들어간 양념 냄새 하나하나가 각기 내 코를 자극하는 바람에 항암치료를 시작하기도 전에 구토에 시달려야 했다. 화장품 냄새에도 민감해져서 딸아이가 가까이 오지를 못했다.

사람들이 면회랍시고 와서 내 한쪽 유방이 없어진 것을 아는 게 자존심 상해서 1인실을 고집했는데, 예민해진 후각 때문에라도 1인실을 쓰는 게 다행이다 싶었다. 우리 집 형편이 넉넉해서가 아니라, 보험 혜택이 나를 병원비 걱정으로부터 벗어나게 한 것이다.

언니가 입원했을 때 한 말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병원에 있어 보니까 환자의 부류가 두 가지로 나뉘더란다. 보험 있는 사람은 표정이 밝으면서 치료에 전념하고, 없는 사람은 병원비 걱정에 치료를 받으면서도 얼굴에 근심 걱정이 가득하더라는 얘기였다.

옛말에 우환이 도둑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은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매월 불입할 때는 힘들겠지만, 혹시 모를 우환에 대비해 보험을 생각해 보도록 독자들에게 조심스럽게 권한다. 환자들이 병원비 때문에 우울해하지는 말아야 될 것 같아서 한 주저리 늘어놓았다.

무엇 때문에 그리 살고 싶었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아마 살고자 하는 본능이 아니었나 싶다. 수술 후 3일째 되는 날부터 나는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내 딴에는 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옆에서 부축하겠다는 손길을 뿌리치고 혼자 걸었다. 혼자 일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암으로부터!
#유방암 #갑상선암 #수술 후 통증 #보험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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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는 시원한 청량제, 겨울에는 따뜻한 화로가 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쓴 책 : 김경내 산문집<덧칠하지 말자> 김경내 동시집<난리 날 만하더라고> e-mail : ok_0926@dau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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