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격동은 왜 북촌에서 가장 망가진 동네가 됐나

[북촌기행-⑤ 마지막] 소격동, 화동 그리고 북촌8경이 있는 삼청동길

등록 2014.12.06 09:21수정 2014.12.06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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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의 <소격동> 뮤직비디오는 경복궁 영추문 건너편에 있는 보안여관에서 시작한다. 화면에는 '종로독서실'로 나오는데 이 장소를 첫머리로 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서태지가 태어나 청소년기를 보낸 곳이 서울 북촌 소격동이다. 소격동 한 가운데 자리 잡아 마을 분위기를 스산하게 한 보안사(1991년 기무사로 개칭, 현재 과천시 소재)가 있던 동네다. 

'예쁜 동네'로 돌아오기에는 너무 멀리 가버린 소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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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기무사(보안사) 건물 옛 기무사 터에 국립현대미술관이 들어섰다. 미술관에는 조선의 종친부, 근대의 기무사 건물, 현대의 미술관 건물이 있다. 여러 퇴적과정을 거친 ‘역사지질층’의 횡단면을 보는 것 같다 ⓒ 김정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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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여관 정경 경복궁 영추문 건너편에 있다. <소격동>뮤직비디오 첫머리로 보안여관을 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 김정봉


보안여관(保安旅館)과 보안사(保安司), 이름이 묘하게 겹치는데 보안사의 '보안' 이미지를 보안여관의 '보안'에서 찾았는지 모른다. 청와대 옆에 있어 오해도 많이 사지만 보안여관은 1930년대 지어진 이름, 보안여관 측에서는 이름을 두고 지나친 해석을 말아달라는 얘기도하지만 우리의 생각까지 막을 이유는 없다.

소격동은 서태지의 노래가 나오면서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서태지는 <소격동>에서 무서웠던 시절, 예쁜 한옥, 막다른 골목에 대한 추억과 이런 동네가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상실감을 표현하려했다면서 서슬 퍼런 시대를 배경으로 깔지 않으면 이 노래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을 거라고 했다.

이왕에 <소격동>얘기를 꺼냈으니 여정은 소격동, 그 중에 노래 분위기 전반을 지배하는 '무서웠던' 보안사(이 글에서는 시기에 맞게 보안사, 기무사 혼용) 터에서 시작해 본다.

2013년, 기무사 자리에 현대미술관이 섰다. 건물 뼈대는 그대로다. 소위 1980년대 녹화사업의 현장. 옆에 있던  친구가 어느 날 머리 밀고 나타나 군에 간다고 하던 시절, 또 불현듯 나타나 괴로워하며 이 얘기 저 얘기 주어 담아가던 그 시절, 얼마 안 돼 자살했다는 믿지 못할, 듣지 말아야 할 소리를 들어야 했던 그 무서웠던 시절이 그 건물에 담겨 있어 기억하고 싶지 않은 옛일을 기억하게 만든다.

미술관 뒤에 종친 업무를 맡아보던 종친부(宗親府)가 정독도서관에서 되돌아와 경근당(敬近堂)과 옥첩당(玉牒堂), 두 건물이 나란히 섰다. 1928년 종친부 바로 옆에 경성의학전문학교 부속병원이 들어서더니 1971년 이 병원건물이 보안사건물이 되면서 종친부는 그 그늘에 가려져 있었다. 눈에 거슬렸나, 1981년 보안사는 종친부를 정독도서관으로 쫓아내고 그 자리에 테니스코트를 만들었다.

뱀 허물마냥 보안사는 껍데기만 남았지만 예쁜 동네에 대한 서태지의 추억은 돌아올 줄 모른다. 북촌 중에 소격동처럼 망가진 동네도 없다. 쌀가게 간판을 달고 떡볶이를 팔고 그럴싸한 한옥에서 호떡을 파는 동네가 되었다. 몇 안 남은 마을사람들 일상과 아무 상관없는 음식점, 카페, 옷가게들이 들어서며 예쁜 동네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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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다른 골목에 대한 옛 추억을 더듬을 골목은 외지인의 구미에 맞게 성형된 골목이 되었다 ⓒ 김정봉


기무사 뒤 세탁소와 몇 채 남지 않은 집들이 이 동네를 지키고 있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수북이 쌓인 세탁물을 보고 안도하기는 했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얼마 전에 문 닫은 계동의 '중앙탕'이 되지는 않을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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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관 뒤편 골목이다. 세탁소와 그 옆에 있는 몇 집이 예전 소격동 끝을 잡고 있다 ⓒ 김정봉


꽃동네, 화동(花洞)에서 불처럼 살다간 두 양반

화동(花洞)은 소격동 옆 동네다. 화동, 꽃동네라는 말인데 화동이라 부른 이유가 있다. 화초와 과일을 관장하던 장원서(掌苑署)가 화동 정독도서관 언저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미술관이 소격동을 독차지하다시피 하듯, 정독도서관이 화동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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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독도서관 정경 흙이 붉다하여 홍현(紅峴)이라 불렸던 곳으로 화초와 과실을 담당하던 장원서가 이 언저리에 있었다. 평온하게만 보이는 이곳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간 두 양반, 성삼문과 김옥균이 살던 곳이기도 하다 ⓒ 김정봉


경기고등학교가 떠나고 이 자리에 들어온 정독도서관, 파란만장한 생을 살다간 두 양반이 살던 곳이다. 뛰어난 문신으로 절개를 지킨 성삼문과 갑신정변의 주도자 김옥균이다. 성삼문은 홍성, 김옥균은 공주 사람이다. 모두 충청도에서 태어나 능지처사를 당했다. 묘한 연이다.

좀처럼 속내를 내보이지 않다가 결정적 순간에 내 갈 길은 내가 간다며 자기주장을 드러내는 기질이 충청도 기질이다. 충청도 말로 '냅둬유' 기질이다. 한용운, 김좌진, 윤봉길, 류관순, 김정희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걸출한 인물이 모두 충청도에서 태어난 것을 보면 얼추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김옥균, 성삼문은 전혀 다른 시대에, 같은 운명을 갖고 태어났다. 역사의 평가는 뒤로하고,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바는 마음을 다하여 무모할 정도로 굳세게 밀어붙이는 그런 기질이 있었다. 모두 대역죄 죄명으로 능지처사를 당했다. 사지를 수레에 묶어 찢어 죽이는 거열형이었다. 김옥균은 상해에서 암살 당한 후 시신으로 돌아와 능지처참 당했다.

정독도서관 뒷골목, 장원서 터 표지석을 끼고 올라서면 화동길이고 이내 삼청동길로 이어진다. 멀리 보이는 '코리아굴뚝'은 세파(世波)에 시달려 몇 채 안남은 이 마을을 인도하는 등대마냥 뾰족하게 서있다. 코리아굴뚝 위로 쭉 뻗은 길은 눈이 시원해 좋다. 서쪽에 인왕산, 북쪽에 백악봉우리, 그 아래에 경복궁이 그림처럼 보인다. 북촌 최고의 길을 꼽으라면 단연코 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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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동길과 ‘코리아굴뚝’ 굴뚝은 세파에 시달려 몇 채 남지 않은 화동 마을사람들을 인도하기라도 하듯 등대마냥 서있다 ⓒ 김정봉


출판사 겸 갤러리인 '학고재'에서 삼청공원으로 휘어져 올라오는 삼청동 아랫길이 까마득히 보인다. 아랫길에서 이 언덕길로 오르는 계단길이 여럿 나있다. 그 중 하나가 북촌 8경이라 부르는 돌계단길이다. 달팽이 등짝처럼 빙빙 돌아가는 아스라한 계단 길도 몇 있지만 이 길을 굳이 8경이라 부르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바위를 깎아 만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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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8경 돌계단길 삼청 아랫길과 언덕길을 연결하는 돌계단길을 북촌8경이라 부른다. 아랫동네와 윗동네를 연결하는 소중한 길이다 ⓒ 김정봉


맹사성 집은 왜 삼청동 언덕바지에 있었을까?

쉬엄쉬엄 걷다보면 언덕 꼭대기. 북촌에서 제일 높은 곳이다. 이곳에 고불(古佛) 맹사성 집터가 있다. 맹사성은 왜 이리 높은 곳에 살았을까? 천하에 청렴하기로 소문난 맹사성이 정도전이 살았던 수송동이나 여덟 명의 판서가 살던 팔판동을 놔두고 집값이 싼 이곳을 택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게다가 자연을 벗 삼아 소타기 좋아하고 음악에 조예가 깊은 맹사성이고 보면 비탈진 북촌 꼭대기 집은 그에게는 금상첨화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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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사성 집터 맹사성은 북촌 맨 꼭대기 언덕바지에 살았다. 청렴하거니와 자연을 벗 삼고 소타기 좋아하고 음악에 조예 깊은 그에게 이 비탈진 언덕꼭대기 집은 금상첨화였을 게다 ⓒ 김정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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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사성 집터에서 본 경복궁 정경 북촌 맨 꼭대기, 맹사성집터에서 보면 근정전과 강녕전 등 경복궁 건물이 아스라이 내려다보인다. 세종은 강녕전에서 맹사성 집을 올려보며 불이 꺼진 후에 잠자리에 들었다는 믿거나말거나 하는 얘기가 전한다 ⓒ 김정봉


맹사성이 소타고 피리 불며 다녔다는 '맹고개'길 따라 뚜벅뚜벅 내려오면 삼청동 아랫길이다. 산 맑고 물 맑고 그래서 사람 인심 맑다고 하여 삼청동이라 했다. 이제 산도, 물도 맑은지 오래되었다. 남은 것이라고는 인심인데 이마저 마을 사람들이 배기지 못해 떠나고 연 없는 외지인이 넘쳐나니 인심이 좋을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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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고개’ 길 맹사성이 소타고 피리 불며 다녔다던 맹고개(맹현)길이다. 이 길 따라 어슬렁어슬렁 소걸음으로 내려오면 삼청동 아랫길에 닿는다 ⓒ 김정봉


수많은 옷가게와 카페, 음식점들이 난잡하게 늘어서 정신이 혼미해 진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도시재활성화)의 후유증인지, 그 이면에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다. 마을사람들이 살 수 없는 동네가 돼 가고 있다.

어둑어둑할 때쯤, 안국동 버스정류장으로 내려오면서 아침에 보았던 세탁소를 다시 보았다. 군복 각 잡던 '터프한' 손대신 와이셔츠나 유니폼 각 잡는 부드러운 손으로 분주히 다림질하는 주인이 보인다. 밖으로 새나오는 스팀은 사람 냄새 풍기며 촉촉이 골목에 내려앉았다. 혼미한 정신이 다시 맑아지기 시작하였다. 북촌사람들이 떠나지 않아도 되는 북촌, 서태지 <소격동>가사처럼 소소한 하루가 넉넉한 북촌이 되기를 바라며 버스에 올랐다.

이제 이 글을 마지막으로 북촌 글을 마무리 할 생각이다. 이 글 때문에 행여나 북촌이 더 망가지지 않을까하는 이런저런 걱정에서 벗어나 홀가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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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不自美 因人而彰(미불자미 인인이창), 아름다움은 절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인하여 드러난다. 무정한 산수, 사람을 만나 정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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