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불안에 떠는 주민들... 괴담 아니다

[서평] 탈핵으로 바꾸고 꿈꾸는 세상 <탈바꿈>

등록 2014.12.22 15:57수정 2014.12.22 15:57
1
원고료로 응원
a

<탈바꿈> 책표지. ⓒ 오마이 북

반찬 몇 개 바꾼다고 될 일이 아니다. 후쿠시마 사태 이후 지금까지도 방사능 오염수가 바다로 유출되는 상황에서, 즐겨먹던 생선 몇 가지 밥상에서 치운다고 안전할 수 있을까.

혹시라도 공기에, 물에, 바람에 실려 올지 모를 방사능 피폭의 위험을 피하고자 애를 쓴다고 한들, 코 앞에 있는 핵 발전소에서 돌이킬 수 없는 사고가 터진다면 말짱 헛일이 아닌가


'누더기 원전'으로 시끌한 시골마을

얼마 전부터 내가 사는 영광이 시끄러워졌다. '누더기 원전' 논란 때문이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는 1970년대부터 위험성이 지적돼 미국 등에서는 사용되지 않는 부실 자재를 한국 원전이 여전히 사용한다고 밝혔다. 그린피스에 따르면 원전 핵심 설비인 증기발생기와 원자로헤드 등 4000개소에 사용되는 '인코넬(Inconel) 600'은 이미 내구성에 심각한 결함이 밝혀진 부품이라고 한다.

증기발생기 내에는 '인코넬 600'으로 만든 열교환기 역할의 가느다란 전열관(지름 2cm 두께 1mm 길이 20m)이 수천 개 있는데, 이 전열관이 부식, 균열되면 방사능에 오염된 냉각수가 누출될 수 있다는 것이 그린피스의 설명이다.

전열관이 동시에 파열되면, 최악의 상황에서는 핵 연료봉이 녹아내려 체르노빌, 후쿠시마와 같은 재난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한다. 지난 10월 한빛 3호기의 갑작스런 가동 중단도 '인코넬 600'이 쓰인 증기발생기 내 전열관 균열로 냉각수 일부가 유출되면서 발생한 것이다.


그린피스는 이 부품이 사용된 한국 원전 14기 중 문제가 심각한 한빛 원전 3, 4호기의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수력원자력은 "문제가 없다"면서도 '인코넬 600'의 조기 교체를 추진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문제는 부품 교체에 천문학적인 비용이 드는데다 교체가 완료되는 시점도 2018년이어서 그 안에 또다시 사고가 발생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는 점이다. 한빛 3, 4호기의 즉각적인 중단을 촉구하는 이유다.

지역 주민들은 불안하다. 핵 발전소의 참사 가능성, 이것은 괴담이 아니다. 명백하게 실재하는 생존의 위협이다. 아직 터지지도 않았는데 너무 비관적으로만 보는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한국 핵 발전소의 현 주소를 알려주는 몇 가지 사례만 짚어보더라도 이것이 한낱 기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탈바꿈 : 탈핵으로 바꾸고 꿈꾸는 세상>은 핵 발전에 관해 잘 모르는 사람도 그 실태와 문제점을 한 눈에 알 수 있도록 잘 정리한 책이다.

작은 부품이라고 얕봤다가는 대형참사 부른다

a

탈핵 희망하는 그린피스 8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3주기 탈핵문화제'에 참석한 그린피스 회원들이 해골 그림에 방사능 마크가 새겨진 종이를 들어보이며 노후원전 폐쇄와 신규원전 증설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한국에서 핵 발전소가 처음 상업적 운전을 시작한 1978년부터 2014년 9월 30일까지, 사고와 고장으로 발전이 정지된 횟수는 568회에 달한다. 568회의 사고와 고장이 있었다는 것은, 다시 말해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안방에서 568번이나 위험한 순간이 있었다는 얘기다. 아찔하다.

핵 발전소는 100만개 이상이 부품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시설이다. 100만개 중에서 작은 부품 하나 쯤 불량이라고 뭐 대수냐 한다면 오산이다. 규모도 규모거니와 대단히 복잡한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핵 발전소에서 작은 나사못 하나라도 잘못되는 날이면 돌이킬 수 없는 대형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 심지어 수명이 다한 낡은 시설을 무리하게 연장 운행한다면 위험은 더 높아질 수 밖에 없다.

"소모성 부품들을 주기적으로 교환하더라도 핵 발전소 전체의 설계수명은 원자로와 경납용기 등 핵심 부품의 설계수명에 맞춰 정해집니다. 핵 발전소 사용에 대한 정부의 인허가도 이에 따라 진행됩니다. 자동차와 달린 핵 발전소는 단 한 번의 사고가 너무나 치명적이 결과를 낳습니다. 방사능은 한번 새어나오면 지구 전체로 퍼지고, 그 피해는 세대를 이어갑니다. 핵 발전소의 설계 수명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 때문입니다." (48쪽)

핵 발전소의 무리한 수명 연장 이유는 '비싸기' 때문이다. 핵 발전소 1기의 건설 가격은 3조 원 정도라고 한다. 쉽게 말해 엄청나게 비싸니까 아까워서 포기를 못하는 것이다. 중요 부품을 교체하면 핵 발전소를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 무한정 쓸 수 있는 기계는 없다. 언제가는 수명이 다할 것이고 폐기해야 한다. 핵 발전소는 운영도 운영이지만 폐기하는 것도 간단치 않다.

"일반 건물은 철거하는 일은 비교적 간단합니다. 요즘에는 폭파 공법이 다양하게 발달해서 큰 건물도 안전하고 빠르게 철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핵 발전소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사용하고 남은 핵 연료인 사용후핵연료는 직접적으로 노출되면 즉사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양의 방사능 물질을 내뿜고 있고, 냉각수로 계속 식히지 않으면 후쿠시마 사고처럼 수소폭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사용후핵연료만큼은 아니지만 원자로와 증기발생기처럼 방사성 물질이 직접 닿았던 부품들도 방사선을 계속 내뿜기 때문에 '중준위 핵폐기물'로 분류되어 별도로 보관해야 합니다." (50~51쪽)

한국은 본격적으로 노후 핵발전 시대에 접어들었다. 23기의 핵 발전소 중 절반인 12기가 2028년 수명이 완료된다. 신규 핵 발전소를 날림공사하 듯 짓는 데만 급급한 나머지, 폐기에 대해서는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것도 큰 문제다. 이미 수명이 완료된 고리 1호기와 월성 1호기의 연장을 중단하고 안전한 폐기 계획을 세워야 한다. 늦장을 부리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에 직면할 수도 있다. 체르노빌, 후쿠시마, 그 다음은 한반도가 되지 말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탈핵은 그 자체로 '대안'이다

후쿠시마가 증명하듯이 핵 발전의 신화는 끝났다. 핵 발전의 위험성과 지속불가능성으로 봤을 때, 더 이상 탈핵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탈핵은 그 자체로 '대안'이기 때문이다. 핵 발전소의 과감한 폐기와 지속가능에너지 체계로의 전환이 가능하다는 것은 2022년까지 모든 핵 시설 폐쇄를 결정한 독일이 잘 보여주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핵 발전은 사양 산업이 되고 있다. 세계 여러 나라는 재생가능에너지 체제로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핵 발전소를 더 짓는 '죽음의 역주행'은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

"핵 발전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생태적 가치로 전환하기 위해, 인간 중심의 물질만능주의에서 벗어나 생명 중심의 공존 사회로 전환하기 위해, 탈핵운동 시즌 2가 이어집니다. 우리는 이 가치의 전환을 위해서 탈핵을 결심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212쪽)
덧붙이는 글 <탈바꿈>(탈바꿈프로젝트 지음/오마이북 펴냄/2014.11.20./239쪽/1만3500원)
이 글은 제 블로그 http://blog.yes24.com/xfile340 에도 게재했습니다.

탈바꿈 - 탈핵으로 바꾸고 꿈꾸는 세상

탈바꿈프로젝트 엮음, 히로세 다카시 외 지음,
오마이북, 2014


#핵 발전소 #원자력 #후쿠시마 #재생가능에너지 #탈핵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작은 시골 농촌에서 하루 하루 잘 살기 위해.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그래서 부끄러웠습니다"... 이런 대자보가 대학가에 나붙고 있다
  3. 3 [단독] 김건희 일가 부동산 재산만 '최소' 253억4873만 원
  4. 4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5. 5 [동작을] '이재명' 옆에 선 류삼영 - '윤석열·한동훈' 가린 나경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