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만 골프장에 조소를 보낸다

[단상] 천수만 B지구 골프장을 돌아보며

등록 2014.12.18 10:31수정 2014.12.18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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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태안성당 50년사 집필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1956년부터 8년 동안의 '공소(公所)' 역사를 갖고 있는 태안성당은 1964년 8월 사제가 상주하는 '본당(本堂)'으로 승격된 후 어언 50년의 연륜을 쌓고 있다. 도합 58년의 역사를 한 권의 책으로 담아내려는 50년사 집필 작업은 자못 비장한 마음을 지니게 한다.

최근에는 1985년의 일들을 기록했다. 천수만 간척사업으로 생업의 터전인 해태양식장이 모두 멸실되어 큰 곤경에 처한 안면도 누동리 공소 신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대전교구장 경갑룡 주교가 몸소 누동공소를 찾았던 일을 기록하면서 다시 한 번 당시의 가슴 아팠던 일들을 회억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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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여에서 바라보던 B지구 저녁 풍경 예전에는 섬이었던 '검은여'에서 바라보던 서쪽 B지구 간척 농경지는 이제 사라지고 없다. 골프장이 건설되었기 때문이다. ⓒ 지요하


나는 1980년대 초의 천수만 간척사업의 발단과 전개 과정, 피해 상황과 보상 문제 등에 관해 비교적 소상히 알고 있는 사람이다. 당시 경향신문사에서 발간하는 월간 <정경문화> (후에 <월간경향>으로 이름이 바뀜)의 청탁을 받고 수많은 자료들을 바탕으로 정밀 현장취재를 해서 100매가 넘는 르포를 쓸 수 있었다. '현대, 서산 땅 정복하다'라는 제목의 그 글은 <정경문화> 1986년 신년호에 발표되었는데, 많은 대학교수들과 환경학자들이 참고할 수 있는 '자료'가 되었다.

천수만 간척사업의 최대 명분은 국토확장과 식량증산이었다. 천수만 일대 주민들에게는 한마디 물어보는 절차도 없이, 타당성 조사도 제대로 시행하지 않은 채 졸속으로 밀어붙인 개발독재의 산물이었다.

나는 한반도 영구 지배를 굳게 믿은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앞두고 군량미 확보를 위해 천수만 매립공사를 계획했다가, 농산물 수확보다 수산자원 상실 문제가 더욱 크다는 조사 결론에 따라 공사 계획을 철회했다는 설을 사실로 믿는다. 국토확장과 식량증산이 천수만 황금어장 상실로 인한 수산자원 피해를 결코 상쇄하지 못한다는 것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 천수만 간척사업으로 인한 환경오염과 날로 썩어가는 간월호와 부남호 두 인공호수의 수질 개선과 유지를 위한 비용 등을 놓고 볼 때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큰 기형상태는 마냥 지속되고 있다.

언젠가는 천수만 제방을 열어 간척지를 다시 바다로 환원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천수만 A지구와 B지구 제방의 한 부분을 절개하여 완만한 아치형 다리를 만들게 되는 날을 꿈꾸기도 한다. 아치형 다리는 도로 구실을 하고, 그 다리 밑으로는 바닷물이 소통되어 천수만 간척지 일대가 다시 바다가 되는 꿈이다. 그렇게 되면 육지가 되었다가 다시 바다가 된 천수만의 역사성과 고유한 풍경, 긴 제방과 아치형 다리가 어우러진 도로는 그야말로 전국 최고의 관광명소가 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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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천수만 간척지의 B지구 농경지 천수만 간척의 최대 명분은 국토확장과 식량증산이었다. 그 목적대로 천수만 간척지가 농경지로 남아 있기를 소망했다. 하지만 그 소망도 대규모 골프장 건설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 지요하


라인 강을 우리나라의 4대강 파괴공사 식으로 개조했다가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려놓은 독일의 예와, 수많은 크고 작은 제방들을 허물어서 간척지들을 원래의 바다로 되돌려놓는 사업을 진행 중인 일본과 네덜란드 등의 경우를 놓고 보면 천수만 바다 환원이 결코 터무니없는 꿈인 것만은 아니다. 


그런 꿈 때문에 나는 천수만 간척지가 농지로 남아 있기를 소망했다. 개발이라는 허울 좋은 미명으로 공단 따위를 만들기보다는 원래의 목적대로 그냥 농지로 남겨두어야 바다로 환원시키는 작업이 좀 더 용이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태안군이 천수만 B지구에 기업도시를 건설한다는 계획을 발표했을 때 큰 우려와 함께 냉소를 머금지 않을 수 없었다. 기업도시가 건설되면 천수만 간척지를 바다로 환원시키는 일은 좀 더 어려워지겠지만, 과연 기업도시가 제대로 건설될 수 있을까 큰 의문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청사진이야 그럴 듯하지만, 여러 가지 연계 조건들을 놓고 볼 때 기업도시 건설은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님을 직감할 수 있었다.

지난해 가을 어느 날 나는 모처럼만에 천수만 간척지로 가서 걷기운동을 했다. 천수만에 대한 그리움과 사무치는 상실감 때문에 천수만 쪽으로는 별로 가지 않았는데, 그날은 천수만 B지구 안의 골프장 풍경을 살펴보고 싶은 마음이 동해 기업도시 진입로 우레탄 길을 밞고 천수만을 갈 수 있었다.

기업도시 건설이라는 미명하에 조성된 천수만 B지구의 골프장은 한마디로 광대했다. 광활한 간척지의 농지들을 없애고 그 자리에 건설된 골프장의 위용은 정말이지 어마어마했다. 젊은 시절 운동이라면 못하는 게 없어 팔방미인 소리를 들을 정도로 만능이었던 나지만, 골프채는 한 번도 잡아본 적이 없다. 골프가 대중화되었다고는 하나 돈 있고 시간이 남아도는 팔자 좋은 사람들이나 즐길 수 있는 '귀족스포츠'인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골프를 배우는 사람들의 십중팔구는 귀족사회로 편입되고 싶은 신분적 욕구 같은 것의 작용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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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천수만 들길 천수만 바다를 그리워하면서도 가끔 천수만 간척지의 B지구 들길을 걷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이 들길도 걸을 수 없게 됐다. 대규모 골프장 건설로 이 들길마저 잃고, 또 빼앗겼다. ⓒ 지요하


아무튼 골프에는 문외한인 내가 18홀이니 뭐니 하는 식의 수치로 골프장의 규모를 계량할 수는 없다. 그러니 천수만 B지구 골프장의 규모가 어마어마하다는 식으로 말할 수밖에 없다. 그 광대한 골프장 안을 하염없이 걷자니 너무도 비통하여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수산자원의 보고인 천수만 황금어장을 박살내고 그 자리에 고작 골프장이나 건설하는 인간들의 천박하고 치졸한 소갈머리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오래 걸을 수도 없었다. 경비원에게 걸려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골프장에서 쫓겨나면서 그야말로 완벽하게 고향 땅에서 쫓겨나는 심정, 또 한 가지 고향상실의 유형을 절절히 체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천수만 간척지 골프장에서, 아니 천수만 어장에서, 아니 내 고향 땅에서 쫓겨난 그날 밤 나는 밤새 잠을 못 이루며 번민의 늪을 헤매야 했다. 천수만 황금어장을 박살내고 만든 농지마저 없애고, 그 자리에 고작 골프장 따위 귀족들의 위락 시설이나 만들어놓은 위인들의 소갈머리를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고 도저히 용납할 수도 없어 괴롭기 한량없었다.

그러므로 천수만 간척지의 광대한 골프장은 내게 적의를 지니게 하는 조소(嘲笑)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충남 태안의 <태안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천수만 #간척지 #골프장 #환경파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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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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