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오' 외친 유일한 재판관
"헌법정신 수호하기 위해 기각해야"

[통합진보당 해산] 김이수 재판관 "정당해산 여부는 정치적 공론에 맡겨야"

등록 2014.12.19 15:55수정 2014.12.19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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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수 재판관 유일하게 '통합진보당 해산 기각' 의견 통합진보당 정당 해산심판 선고기일인 19일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김이수 재판관이 앉아 있다. 김이수 재판관은 9명중 유일하게 '해산 기각' 의견을 냈다. ⓒ 사진공동취재단


"이 사건 심판청구는 기각되어야 한다. 이는 피청구인의 문제점들에 대해 면죄부를 주고 피청구인을 옹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우리가 오랜 세월 피땀 흘려 어렵게 성취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성과를 훼손하지 않기 위한 것이고, 또한 대한민국의 헌정질서에 대한 의연한 신뢰를 천명하기 위한 것이며, 헌법정신의 본질을 수호하기 위한 것이다."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에서 김이수(61) 헌법재판관이 마지막에 밝힌 발언이다. 그는 헌법재판관 9명 중 유일하게 진보당 해산에 찬성하지 않고 기각 의견을 밝혔다. 그의 소수의견이 주목되고 있다.

그는 야당 몫으로 헌법재판관에 추천된 인사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인 지난 2012년 9월 새정치민주연합의 전신인 민주통합당이 그를 추천했다. 그를 제외하고 민주통합당이 추천에 관여한 인사는 강일원(55) 헌법재판관이 있지만, 강 재판관은 여야 합의 몫으로서 온전히 야당 추천은 아니다.

광주 전남고등학교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연수원 9기로 서울남부지방법원장, 특허법원장, 사법연수원장 등을 지낸 고위법관 출신인 김 헌법재판관은 80년 5·18광주민주항쟁 당시 군 검시관으로서 희생자들의 시신 검시에 참여했다.

그 때 경험이 향후 행보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당시 군사재판 참여에 대해 "어떻게 보면 피하고 싶은 자리였다"면서 "내가 광주 사람으로서 어떻게 보면 광주민주화운동에 참여해야 될 입장에도 있는 사람인데 군인 신분으로 재판을 맡게 됐다, 그래서 아주 복잡한 심경이었다"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 김이수 후보자 "5·18 때 대검에 찔린 시신 봤다")

그로부터 34년이 지난 2014년 12월 19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의 기본질서'가 어디까지인지를 규정하는 중차대한 헌법재판에서, 그는 나머지 8명의 다수 의견에 흔들리지 않고 유일한 해산 반대자로 남았다.

80년 광주민주화항쟁 군 검시관, 34년 뒤 유일한 반대자


그는 "이석기 등 일부 당원들이 보여준 일탈 행위를 이유로 피청구인(통합진보당)을 해산해 버린다면, 이 노선과 활동을 지지해온 대다수 일반 당원들(약 10만여 명)의 정치적 뜻을 왜곡하고 그들을 위헌적인 정당의 당원으로 만듦으로써 그들에게 사회적 낙인 효과를 가하게 될 것"이라며 "이는 피청구인 자체를 반국가단체로, 그리고 당원 전체를 반국가단체의 구성원으로, 피청구인을 지지한 국민을 반국가단체 지지자로 규정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1950년대 독일의 정당해산 선례를 거론했다.

"과거 독일에서 공산당 해산심판이 청구되고 해산 결정이 이루어진 후 다시 독일공산당이 재건되기까지, 12만 5천여 명에 이르는 공산당 관련자가 수사를 받았고, 그 중 6천~7천 명이 형사처벌을 받았으며, 그 과정에서 직장에서 해고되는 등 사회활동에 제약을 받는 문제가 발생하였던 것에 비추어 보면, 이 결정(해산)으로 우리 사회에서 그러한 일이 나타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그는 법무부와 헌법재판관 다수 의견에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는 "자주파가 주축이 된 피청구인의 목적이 1차적으로 폭력에 의하여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최종적으로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현하는 데 있다는 법정의견(다수의견)의 판단이 정당해산심판 사유를 엄격하게 해석 적용한 결과인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정당해산의 요건을 해석하고 적용함에 있어서는 어떤 논리적 오류나 비약도 있어서는 안된다"면서 "일부 구성원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사상을 가지고 있으므로 나머지 구성원도 모두 그러할 것이라는 가정은 부분에 대하여 말할 수 있는 것을 전체에 부당하게 적용하는 것으로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주장했다.

헌법재판관 8명 다수의견은 진보당의 진보적 민주주의 강령에 대해 "그 자체로 특정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도, 그 주도세력이나 과거 활동 등을 놓고 볼 때 궁극적으로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현하려는 '진정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달랐다는 소리인데, 김 헌법재판관의 위 주장은 이에 대한 명확한 반박이다.

김 헌법재판관은 "피청구인의 강령상 '진보적 민주주의'의 구체적인 내용은 이른바 진보적 정치세력들에 의하여 수십 년에 걸쳐 주장되고 형성된 여러 논리들과 정책들을 선택적으로 수용하고 조합한 것"이라며 "실질적으로 광의의 사회주의 이념으로 평가될 수 있으나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또 "피청구인이 우리 사회의 문제를 구조적인 것으로 인식하여 구조적이고 급진적인 변혁을 추구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단순히 확립된 질서에 도전한다는 것만으로는 민주 국가에서 금지되는 행위가 되지 않는다"면서 "피청구인이 표방하는 '일하는 사람들이 주인 되는 사회'나 외세로부터 자유로운 '자주적 정부'는 오래된 정치철학적 전통 속에 있는 주장으로 각국의 다양한 진보정당들이 같은 취지의 주장을 개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과거 독일과 같은 일 우리 사회에 나타나지 않으리란 보장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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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이 민주주의 파괴했다"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밥재판소에서 진행된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에서 해산 결정이 나자 권영국 변호사가 "오늘로써 헌법이 민주주의를 파괴했다.역사적 심판을 받을 것이다. 역사적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라고 외치며 항의하다 입이 틀어막힌 채 끌려나가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그는 내란음모사건을 촉발한 지난해 5월 12일 합정동 모임에서 이석기 의원 등이 한 발언에 대해서는 "국민의 보편적 정서에 어긋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이러한 모임을 되풀이하거나 구체적 실행으로 나아갈 개연성 등을 고려하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고 명확히 했다. 하지만 "이를 피청구인 정당 전체의 책임으로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자주파의 대북정책이나 입장이 우리 사회의 다수 인식과 동떨어진 측면이 있고 자주파가 친북적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지라도, 자주파 전체가 북한을 무조건 추종하고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한다고 볼 수 있는 증거는 없다"면서 "정부와 권력에 대한 비판적 정신과 시각이 북한과의 연계나 북한에 대한 동조라는 막연한 혐의로 좌절되는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주장과 유사하다는 점만으로 북한 추종성이 곧바로 증명될 수 있다고 보아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피청구인에 대한 해산결정은 우리 사회가 추구하고 보호해야 할 사상의 다양성을 훼손하고, 특히 소수자들의 정치적 자유를 심각하게 위축시킬 수 있다, 나아가 피청구인에 대한 해산결정은 우리 사회의 진정한 통합과 안정에도 심각한 영향을 준다"면서 "정당해산제도는 비록 그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최대한 최후적이고 보충적인 용도로 활용되어야 하므로 정당해산 여부는 원칙적으로 정치적 공론(선거 등)의 장에 맡기는 것이 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이날 헌재 대심판정에서 김 재판관은 가운데에서 결정문을 읽은 박한철(61) 헌법재판소장의 바로 왼편에 앉았다. 바로 오른편에는 이 사건 주심이었던 이정미(52) 재판관이 앉았다. 당초 법조계에서는 이용훈 전 대법원장이 추천한 이 재판관까지 최소 2명이 해산에 반대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이 재판관도 해산 쪽 의견에 서면서, 유일하게 김 재판관만 반대 의견에 남게 됐다. 그마저 없었다면 만장일치였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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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정당해산심판 #통합진보당 #김이수 #D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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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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