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해산 후폭풍... '진보의 미래'는?

[전망] 국가보안법 수사 등 공안정국 불가피... 야권 전체 위축될 수밖에 없어

등록 2014.12.19 18:15수정 2014.12.20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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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받치는 감정에 고개 숙인 이정희 대표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에 대해 사상초유의 정당해산 판결을 내린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헌재 판결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날 이 대표는 "민주주의가 송두리째 무너졌고, 박근혜 정권이 대한민국을 독재국가로 전락시켰다"고 입장을 밝혔다. ⓒ 유성호


통합진보당이 결국 해산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국회는 곧바로 정당해산 절차에 착수했다. 적어도 일주일 안에 잔여재산 몰수와 국회 의원실 등 사무공간 철거 등의 따른 조치가 완료될 전망이다. 이와 동시에 통합진보당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유사한 이름, 비슷한 강령의 정당도 창당이 불가능하다. '통합진보당 범국민대책회의'와 같은 해산된 당의 명칭이 들어간 어떤 단체의 설립도 금지된다.

'정당해산의 위력'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해산된 정당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집회 또는 시위'는 누구도 주최할 수 없게 된다. 여기서 '정당의 목적 달성'이 무엇인지 법적 해석의 여지가 있지만, 현재로서는 관련된 대부분의 단체행동은 통제될 것으로 보인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모든 수단이 막혀버린 상황'이다.

이러한 조치에 따른 후폭풍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진보당 해산에 따른 여론 악화와 사회적 반발을 공권력을 동원해 거세게 억누를 것이 예상된다. 그에 따른 공안정국은 피할 수 없는 수순일 듯하다. 또 통일과 노동 분야에서 진보당과 유사한 강령과 정책을 펼치는 것도 어려워질 전망이다. 진보정당들뿐 아니라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권 전반과 진보적 사회단체의 활동도 위축될 수 있다.

진보, 최대 위기 맞았지만 '재결집'은 요원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것은 다른 진보정당들이다. 원내에 진출해 있는 정의당과 원외에 노동당, 녹색당 등은 헌재의 진보당 해산 결정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정당해산이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진단과 함께 진보당과 일부 노선의 차이는 있지만 진보적 사상의 일치성이 있었던 정당들로서 위기감이 표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진보당에서 분화한 정의당과 사회주의 노선을 표방하는 노동당은 진보당 해산이 남의 일이 아니다.

정의당은 "정부가 제시한 정당해산 심판의 이유와 증거에 대해 납득되는 것을 하나도 발견할 수 없었다"라며 "정부의 논리는 민주화운동을 색깔론과 반국가활동으로 몰아 탄압했던 독재정부 시절 억지주장과 다르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일부 주도세력에 의해 주도된 정치행위를 정당 전체가 한 것으로 여긴다면 한국사회 어떤 정당이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라고 비판했다.

노동당 역시 "집권세력과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빌미로 정적을 탄압하고 소수정당을 해산하는 일이 만연하는 국가가 바로 독재국가"라며 " 통합진보당을 빌미로 종북여론몰이가 공세적으로 벌어지고 통합진보당과 관련 있는 사람들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이 일어날 수도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노동당의 강령과 활동에 대해 똑같은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해산시킬 수도 있다"라고 우려했다.


이러한 위기의식이 분열돼 있는 진보정당의 통합과 진보진영의 결집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렇지만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비록 당이 해산됐지만 남아있는 통합진보당의 세력과 함께하려면 분열과정에서 있었던 각 세력 사이 관계의 문제를 극복해야만 한다. 2008년 민주노동당의 분열에서 2011년 통합진보당 창당과 2012년 분열로 이어진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진보세력의 재결집은 요원한 상태다.

게다가 사상 초유에 정당해산이라는 현실이 이들의 눈앞에서 벌어졌다는 것 역시 치명적이다. 이번에 '정당을 해산시킬 수 있다'는 '사례'를 남긴 것은 보수정권이 얻은 최대 성과이기도 하다. 이는 정권의 반대세력, 특히 대북관계에서 유연성과 '평화와 통일'을 말하는 세력에게는 '공포'가 될 수 있다. 누구도 정권에 반대되는 대북관계를 요구하거나, 또 그런 세력과 함께 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어버렸다. 이러한 지점에서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통합진보당 당원 전체가 수사대상, 다가오는 '공안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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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이 민주주의 파괴했다"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밥재판소에서 진행된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에서 해산 판결이 나자 권영국 변호사가 "오늘로써 헌법이 민주주의를 파괴했다.역사적 심판을 받을 것이다. 역사적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라고 외치며 항의하다 입이 틀어막힌 채 끌려나가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정부는 정당해산 결정을 환영하면서 이러한 반발 움직임에 발 빠르게 대처하고 있다. 정부는 검찰총장 주관으로 경찰청 등 유관기관과 진보당 해산에 따른 발생 가능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긴급 공안대책협의회'를 개최한다. 정당해산 절차와 이후 반대집회 등에 대응하기 위한 회의로, 진보당 해산이 관련자들의 추가적인 법적조치로 이어지는 '공안정국'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보이는 지점이다.

당장 보수단체들은 진보당 관계자들의 추가적 처벌을 요구하고 나섰다. '통진당 해산 국민운동본부(위원장 고영주)'와 보수단체 활빈단 등은 헌재의 결정 직후 이정희 대표와 이석기 의원 등 소속 국회의원과 당원 전체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진보당이 위헌정당으로 해산된 만큼, 국가보안법이 정하는 반국가단체이고 그 당원 전체가 반국가단체의 구성원들이므로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선관위가 파악한 진보당의 당원은 2013년 12월 현재 9만8792명이다. 이들이 수사 대상에 오를 수도 있게 된 것. 정부의 신청을 유일하게 기각한 김이수 헌법재판관이 "독일에서 공산당 해산 결정이 이루어진 후 12만 5천여 명에 이르는 공산당 관련자가 수사를 받았고, 그 중 6천~7천 명이 형사처벌을 받았다"라며 "우리 사회에서 그러한 일이 나타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라고 한 우려가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정부와 보수진영의 공안을 앞세운 공세와 진보진영의 대립은 이번 연말과 내년 연초까지 계속 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이석기 내란음모사건의 대법원 판결도 남아 있어 또 한 번 거센 후폭풍이 불 수 있다. 더욱이 내년은 전국단위 선거가 없어 민심의 향방을 가늠해 볼 기회도 없다. 겨울의 시작과 함께 진보진영에게는 진짜 겨울이 시작됐고, 적어도 2016년 총선까지 그 겨울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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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정의당 #노동당 #공안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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