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이 찢기고 피가 튀고... 쌓여가는 사체

2011년 가축 살처분 현장,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등록 2014.12.21 09:51수정 2014.12.21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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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구제역이 전국으로 급속하게 번지면서 양돈농가와 방역당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0일 충북 청주시의 한 양돈농가의 돼지를 정밀 조사한 결과 구제역으로 확진됐다고 밝혔다. 이번 달 들어 14번째 구제역 발생이다.

지난 3일 충북 진천군에서 구제역이 발생한 데 이어 충남 천안시, 충북 증평군, 청주시, 음성군으로 확산됐다. 충청지역에선 지난 3일 구제역 발생 이후 19일까지 돼지 1만5507여 마리를 살처분했다. 지난 2011년에는 구제역 발생으로 전국에서 331만여 마리의 돼지가 살처분됐고, 2조7383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등 큰 손실을 입었다.

2011년 충북 진천지역에서 사육하던 우제류의 50%, 7만9000여 마리가 살처분되면서 축산 붕괴 위기까지 몰렸다. 당시의 악몽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또다시 구제역이 확산 기미를 보이고 있어 양돈농가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그 당시 진천군과 인접한 음성군의 피해는 더욱 커 '가축이 씨가 마른다'는 소리까지 나왔다. 이 지역에서 사육하는 돼지 10마리 중 9마리가 살처분됐고, 공무원들은 밤낮으로 살처분 현장에 투입돼 돼지와 소를 도륙했다. 나는 생생한 그 현장을 목도했고 4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충격적인 영상은 주홍글씨처럼 뇌리에 박혀 있다.

하루 평균 소주 3~5병을 먹어야 작업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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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축 살처분 현장에 투입되고 있는 방역요원들(2011년 자료사진) ⓒ 이화영


2011년 1월 겨울 찬바람이 볼을 할퀴는 이른 아침, 음성군 삼성면의 한 양돈농가에 갈아입을 옷 가방과 함께 투입됐다. 팬티부터 양말까지 모두 챙겨갔다. 구제역 바이러스를 다른 지역으로 옮기지 않기 위해 살처분 작업이 끝나면 지정된 목욕탕에서 몸을 씻고 가져간 옷으로 갈아입었다. 입었던 옷은 소각됐다.

농가에 도착하자 축사 앞으로는 돼지의 이탈을 막으려는 울타리가 쳐져 있다. 울타리가 끝나는 지점부터 30m 정도 떨어진 매몰지까지 돼지가 지나갈 길 양쪽에는 흙으로 두둑이 높게 쌓아 탈출을 막았다. 우리는 이 길을 '저승길'이라 불렀다.


저승길 끝자락에는 돼지 10마리 정도가 들어갈 구덩이 파여져 있다. 돼지들이 묻힐 매몰지는 농구장 3배 넓이에 3m 깊이로 준비됐고, 사방으로 부직포와 비닐 등이 깔려 침출수 유출에 대비했다.

이 길을 따라 육중한 중장비 4대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대기 중이다. 모닥불 주위로 모인 중장비 기사들은 아침부터 쓴 소주를 입안으로 털어 넣고 있다. "아침부터 무슨 술이냐"고 했더니 "안 먹고는 작업을 할 수가 없다"는 답이 돌아 왔다. 하루에 평균 소주 3~5병을 먹는다고 했다. 험한 작업이란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동료 공무원 30명은 살처분 담당자로부터 작업 요령과 주의사항을 전해 듣고 돼지 3600여 마리가 있는 현장으로 던져졌다. 우린 축사 안에서 돼지를 몰고 나오고, 저승길로 인도하는 등 2개 팀으로 나눠 작업을 시작했다. 손에는 1.5m 길이의 쇠파이프와 햄머 등이 쥐어졌다.

가축들의 눈에 비친 나는 저승사자였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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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음성군 원남면에서 구제역에 전염된 소의 사체가 매몰지로 옮겨지고 있다.(2011년 자료사진) ⓒ 이화영


저승길로 돼지를 인도하는 팀에 속한 나는 축사에서 쏟아져 나오는 돼지를 몰아가기 시작했다. 밖으로 나온 돼지들은 열심히 땅을 파며 먹을 것을 찾았고 일부는 그 자리에서 얼음이 되어 버텼다. 쇠파이프로 몸을 툭툭 건드렸지만 요지부동이다.

돼지를 간신히 저승길 입구까지 몰고 갔다. 하지만 낯선 환경 때문인지 아니면 죽음을 예감한 건지 역주행하는 놈에, 높게 쌓아진 두둑을 뛰어 오르는 놈에, 꼼짝도 하지 않고 서서 꽥꽥 소리 지르는 놈에 야단법석이다. 초보일꾼들의 모습이 못마땅했는지 한 중장비 기사가 포클레인의 날카로운 삽날로 가만히 서있는 돼지의 허리를 내리 찍었다. '우두둑' 척추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허공을 가르고 들려왔다.

고막을 찢는 듯한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그 돼지는 옆구리가 터져 내장이 쏟아졌다. 다음 광경은 더 끔찍했다. 붉은 피와 함께 쏟아진 내장을 동료 돼지들이 뜯어 먹었다. 사료가 남아 있어야 사료 값을 보상해 준다는 정부 정책 때문에 돼지가 3~4일 동안 굶었다는 얘기를 나중에 들었다. "이 사료도 결국 폐기처분할건데 먹이지..." 잡식성이고 먹성 좋은 돼지가 긴 시간을 굶었으니 뵈는 게 없었던 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돼지들을 몰고 가자 저승길의 종착역인 매몰지 입구 구덩이에 도착했다. 이곳은 참혹했다. 구덩이에 돼지가 몰아넣어지자 아침에 소주를 연신 들이키던 중장비 기사가 포클레인에 달린 육중한 쇠바가지를 높게 치켜들었다가 돼지를 빻는 동작을 반복했다. 살이 찢기고 피가 튀기 시작했다. 요란한 돼지의 피울음은 숨을 멎게 했고, 피비린내는 진동했다.

어디에선가 덩치가 산만한 모돈(새끼를 전문적으로 낳는 암퇘지)이 실려왔다. 살처분을 위해 불룩한 배를 중장비가 누르자 새끼돼지 6마리가 튕기듯이 빠져 나왔다. 이 광경을 목격한 나와 동료들은 기겁을 했다. 결국 이 새끼 돼지들도 살처분의 칼날을 비껴가지 못했다.

이렇게 죽임을 당한 돼지는 매몰지로 던져졌다. 그 안에는 돼지 사체들이 쌓여갔고 일부 숨이 붙어 있는 녀석들은 마지막 호흡을 몰아쉬고 있다. 이런 광경을 목격한 신입 공무원은 구역질을 하기도 하고 쇠파이프를 어깨에 걸치고 넋 나간 사람처럼 앉아 있기도 했다.

학살당한 가축들에게 용서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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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소의 사체를 확인하고 있는 방역요원들(2011년 자료사진) ⓒ 이화영


이렇게 오전 작업이 끝나고 점심시간, 땅바닥에 판자나 짚을 깔고 둘러앉았다. 메뉴를 확인하는 순간 동료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공교롭게도 김치찌개였다. "왜 하필 돼지고기냐"는 볼멘소리가 이어졌다.

오후는 오전에 비해 제노사이드(genocide.집단학살) 집행 속도가 빨랐다. 돼지를 툭툭 건드리던 쇠파이프에는 힘이 실렸고 녀석들의 등이며 엉덩이에는 길다란 멍 자국이 생겨났다. 그렇게 나와 동료들은 "이 녀석들이 빨리 죽어야 일이 끝난다"는 생각에 난폭하다 못해 점점 잔인해져 갔다. 우리는 그렇게 아우슈비츠의 학살자로 변해갔다. 이날 살처분은 땅거미가 기어 다닐 때쯤이 돼서야 끝이 났다.

돼지에 비해 소의 살처분은 수월했다. 소에게 주사액이 투입되면 1분 정도 지나 심장이 멎었고 매몰지로 옮겨져 처리했다. 하지만 소의 커다란 눈망울을 바라보는 건 고통이었다. 수의사가 주사액을 투입할 때 소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소의 고삐를 잡고 있었는데 커다란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소의 눈엔 내가 저승사자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생명은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돼지나 소라고해서 다르지 않다. 다른 종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나 배려, 윤리의식은 그 현장에 없었다. 동료 공무원들은 살아 있는 생명을 죽였다는 충격 때문에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트라우마)에 시달렸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뚜렷한 기억으로 남은 걸 보면 트라우마는 현재 진행형일지도 모른다.

구제역이 빠른 속도로 번지는 상황에서 유쾌하지 않은 기억을 풀어놨다. 마음속에 담고 있던 응어리를 꺼내 놓은 듯한 기분이다. 굳이 4년 전 기억을 꺼내 놓은 건 같은 일이 재발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 자리를 빌려 학살당한 가축들에게 용서를 구한다.
덧붙이는 글 공무원u신문에도 송고합니다.
#구제역 #살처분 #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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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이의 아빠입니다. 이 세 아이가 학벌과 시험성적으로 평가받는 국가가 아닌 인격으로 존중받는 나라에서 살게 하는 게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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