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전입' 하는 7살짜리들... 놀랍습니다

[그 여자 그 남자의 다.다.다②] 우리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기

등록 2014.12.22 15:56수정 2015.02.17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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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지 12년. 결혼 초기 비슷했던 생각이 많이 달라졌음을 확인하면서 '다르게 바라보기'를 서로의 관점에서 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그 여자 그 남자의 다르게 들리지만 다르지 않은 다양한 이야기, '그 여자 그 남자의 다.다.다.'를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그 남자 이야기는 남편 지용민 시민기자가, 그 여자 이야기는 아내 박보경 시민기자가 썼습니다.... 기자말


[그 여자의 이야기] "A초등학교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흔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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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초등학교가 소위 영세민 가정이 많이 거주하는 곳에 위치해 있다는 이유로 7살짜리들을 위장전입 시키는 학부모들. ⓒ sxc


우리 아파트 내 엄마들의 인사는 "00이는 학교 어디가요?"다. 서로 모르는 사이일지라도 오다가다 보면서 얼굴을 익히고, 아이의 연령이 취학을 앞두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안부차 묻게 되는 것이다. 나는 웃으며 "A초등학교에 가요"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순간 잠깐의 정적이 흐른다. 그리고 대답은 거의 비슷하게 "아…"로 돌아온다. 그리곤 묻는다. "왜 안 옮겼어요?"

사실 우리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은 모두 A초등학교로 배정을 받는다. 그런데 비슷한 거리의 다른 학교로 배정을 받기 위해 엄마들은 이런 저런 방법을 동원한다. 그리곤 그 방법을 서로 공유하기도 한다.

나 역시 동네 엄마들을 통해 A초등학교의 장단점을 들었다. 학교는 오래됐고, 저소득층 아이들과 함께 다니면서 공부 분위기가 안 잡힌다고 했다. 또 빈 집으로 몰려다니면서 음란 비디오도 같이 보기도 하고 그렇다는 것이다. 학교 분위기가 그런지는 몰라도 선생님들도 언어 폭력이 심하다고 했다. 그 외에도 이런 저런 이유로 엄마들은 A초등학교를 선호하지 않는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그런 이야기를 듣고 머릿속이 복잡했다.

'옮겨야 하나?'


그날 저녁 남편과 상의를 했다.

"A초등학교가 그렇대. 그래서 여기 엄마들은 다 옮긴대. 같은 유치원 다니는 00이네는 B초등학교로 옮기고, 태권도 다니는 00이는 C초등학교로 옮겼대. 우리는 어떻게 할까?"

갈등하던 나와는 달리 남편은 완강했다.

"여기가 강남이야? 목동이야? 보내 그냥."

남편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한다. 하지만 그래도 남편이 A초등학교의 단점을 잘 못 알아듣고 고집을 부리는 것 같아 다시 한 번 설명을 해 주었다. "그래도 괜찮을까? 걱정돼.."  "그 얘기는 더 하지마. 당신이랑 내가 바라는 사회가 그런 사회야?" 그냥 애들 학교 문제에 사회 어쩌구를 운운하는 게 얄미웠지만, 그 한 마디에 나는 더 말을 붙이지 않았다.

맹모도 자식 교육 위해 세 번 이사했는데...

그래, 우리가 바라던 사회는 그런 사회는 아니었다. 강남의 엄마들이 임대아파트 아이들과 자기 아이들이랑 같은 반이 되어 섞이는 것을 싫어한다는 뉴스가 나왔을 때 너무 하는 거 아니냐고 흉을 봤던 게 엊그제 일이다. 아이들은 모두 사랑 받고 존중 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사람도 역시 나다. 더욱이 우리 아파트가 주변의 저소득층을 분리해서 생각할 만큼 고급 아파트에 고소득층이 모여 사는 그런 곳도 아니었다.

'내가 뭔데 아이들을 재단하고 구분 짓는가, 우리 아이는 부모인 우리가 잘 키우면 되는 거지'라며 나름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정했다. 때마침 취학통지서도 집으로 도착했다. 갑자기 우리 집이 이사 가지 않는 한 우리 아이는 A초등학교에 가게 되는 것이다. 취학통지서에도 그렇게 적혀 있었다. 이제는 어떻게 더 할 도리가 없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놀이터에서 7살 아이 엄마를 만났다. 당연히 인사는 초등학교 입학과 관련된 것이다. "어머, 학교 정하셨어요?" "네.. A초등학교 가요.." "아… 왜…?" "네, 그냥 보내려고요." 한동안 학교와는 관련이 없는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질 때가 되자 그 엄마는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통지서 나와도 입학하기 전에 옮겨 놓으세요. 통지서 나오고 이사했다고 동사무소 가서 얘기하면 학교 바꿔 준대요.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에요. 아직 늦지 않았어요."

잘 들어가라는 인사를 하고 그 엄마가 한 번 더 뒤돌아 강조한 이야기는 '아직 늦지 않았다'는 것이다. 집에 들어오는 내내 '내가 지금 잘 하고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했다.

강남으로 이사는 못 갈 망정, 사립초등학교는 못 보낼 망정, 과연 A초등학교에 보내는 것이 맞는 것인지 주책 맞게 또 다시 흔들리고 있다. '맹모(孟母)'도 아이 교육을 위해 세 번이나 이사를 했다는데….

[그 남자의 이야기] 보수주의자의 고백 "우리가 만든 질서는 지켜야 합니다"

큰 아이에게 취학통지서가 배달됐다. 아내의 표정이 매우 어둡다. 학부모가 된다는 설렘도 있을 텐데 근심이 가득하다. 통지서에 고지된 배정학교인 'A초등학교' 때문이란다. 학교가 왜? 그러나 아내의 고민은 심각했다.

거주 지역에서 가장 가까운 초등학교에 배정되는 것이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이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에는 큰 아이와 같은 7살 동갑내기 친구들이 몇몇이 있다. 큰 아이와 같은 유치원에 다니는 친구도 있고, 놀이터에서 오가며 이름을 알게 된 아이도 있다. 그 아이들도 A초등학교에 갈 텐데 도대체 무슨 문제란 말인가.

그러나 아내의 고민은 현실에 발 딛고 있었다. 아파트에 거주하는 7살 아이들 상당수는 이미 주소지를 이전했단다. A초등학교에 가지 않기 위함이고, 그들 중 상당수는 B초등학교 인근 거주지로 주소를 이전했단다. 아이들을 위장전입 시켰다는 말이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왜 7살짜리들이 위장전입을 하고 있다는 말인가.

그들이 꺼려 하는 A초등학교는 소위 영세민 가정이 많이 거주하는 곳에 위치해 있다. 소중한 내 아이가 가정환경이 어려운 아이들과 어울리는 게 싫어서, 그 이유 때문인가? 대명천지에 그런 이유로 7살짜리를 위장전입 시킨다는 게 말이 되는가?

아내도 나 모르게 고민이 많았나 보다. 이미 주소를 옮긴 아파트 주민들이 '아직도 안 옮겼느냐'는 질문을 만날 때마다 받는다면서 '그 정도로 A초등학교가 안 좋은 곳인데 아이를 그 학교에 가도록 이대로 있는 게 맞을까?'라고 내 의견을 넌지시 묻는다.

조반유리(造反有理, 모든 반대행동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존재한다. 문화대혁명 당시 마오쩌둥이 홍위병 행동을 지지하면서 한 말)라는 말의 철학적 지향에 동의한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반대행동에도 분명 그 나름 이유가 존재할 것이다. A초등학교에 보내지 않으려고 위장전입하는 학부모들 논리에도 분명 더 큰 다른 이유도 있을 수 있다.

스스로를 '보수주의자'로 생각하고 있기에 나는 부정한 행동을 할 수 없다고 아내에게 말했다. 두 가지에서 아내는 놀랐다. 당신이 보수주의자냐며 놀람을 표현했고, 아이 초등학교 배정문제에 왜 사상(보수주의)이 등장하느냐며 놀람을 표시했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 사회가 만든 질서는 지켜야 한다고!

편 가르는 부모들... 아이들이 학교에서는 화합하며 지낼 수 있을까요?

큰 아이는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에 다닌다. 지난주에는 '성탄제(연극제)'에 다녀왔다. 아이가 맡은 배역은 가브리엘 천사였다. 배역은 선생님이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 선발했다고 한다. "희망하는 배역에 손을 들고 앞에 나가면 아이들이 투표해서 뽑았어요"라고 아이는 설명했다.

아이들이 배역도 알아서 뽑는다면 선생님의 역할은 무엇인가. 성탄제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시장상인, 로마병정 등 중요도가 낮은 역할은 중간중간에 나오는 중창에서 중요한 역할로 부각됐다. 연극에서 주인공이 아닌 아이들은 다른 방식으로 공연에 온 부모님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었다.

공연이 끝났다. 내 시선은 가브리엘 천사만 따라 다녔다. 로마병정의 엄마도 로마병정만 따라다녔다. 20명의 아이들이 공연을 했고 그들의 부모들이 한 자리에 앉았지만 각기 자신의 아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각자의 영화를 보는 듯했다. 당연히 누군가는 대사를 놓쳐서 공연에 긴장감이 돌았지만 으레 그러하듯 큰 웃음으로 마무리됐다.

부모들끼리 인사를 나눴다. 역시나 주된 관심사는 입학할 초등학교였다. 몇 명의 엄마들이 아내에게 "어느 초등학교에 가나요?" 하고 물었다. 아내는 순간 위축된 모습으로 'A초등학교' 이름을 댔다. 그 대답을 들은 엄마들 반응은 다 똑같았다. '아…' 하고 그것으로 얘기는 끝났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가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우리 아파트에 아이들 중에 상당수가 주소지를 옮겼대. B초등학교에 보낸다고." 우리 둘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 사회는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가. 7살짜리를 두고 편 가르는 부모들을 아이들은 배우고 자라지 않을까. 나는 심한 갈증을 느꼈다.

그러나 나 역시 주변의 A초등학교에 대한 말 때문에 맘이 편치는 않다. 1년 지난 시점에 아이의 전학 문제로 '그 여자 그 남자의 다.다.다'를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A초등학교에서 좋은 친구들과 좋은 선생님을 만났으면 바란다. 나 역시 아이를 사랑하는 평범한 아버지일 뿐이다.
#취학통지서 #위장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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