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하자는 아내... 병든 개와 내가 뭐가 다른가

[홀로 배낭여행 초보자의 인도 여행기19] 병든 개처럼 바라나시 강가를 걷다

등록 2014.12.26 08:17수정 2014.12.26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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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의 영역을 지키는 바라나시 가트의 개 ⓒ 송성영


일상에서 벗어나 어디론가, 그것도 멀리 해외로 배낭 하나 짊어지고 떠난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동시에 그만큼 고통스러운 일이다. 어디론가 떠난다는 것은 일상에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상이 즐거우면 떠날 이유가 없다. 여행은 고통스런 도피처가 아니라 즐거운 도피처가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나는 인도 델리에서 다람살라, 암리차르를 거쳐 바라나시에 오기까지 내내 그 '고통스런 도피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집을 나가라는 거냐!"
"당신의 그 잘난 고집 때문에 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데! 나는 더 이상 당신에게 맞춰 살지 않겠어!"
"내 삶의 방식이 뭐가 나쁜데!"


나는 아내에게 분노하고 있었다. 아내와 나는 고통스럽게 서로를 향해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꿈이었다. 새벽 5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땀으로 흥건한 몸을 일으켰다. 어제처럼 낡은 천 가방 하나 달랑 걸쳐 메고 게스트하우스를 빠져나왔다.

아내에게 고통을 주었던 순간들, 그땐 몰랐다

비좁은 골목길은 여전히 어둔 기운이 남아 있다. 몇몇 사람들이 맨발로 내가 묵고 있는 게스트 하우스 근처의 힌두 사원으로 향하고 있다. 사원으로 향하는 골목에는 경찰인지 군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정복 차림의 사내들이 탄창이 장착된 기관총을 꿩 총처럼 헐렁하게 둘러메고 서 있다.

화장터로 향하는 길목으로 꺾어 들자 검은 소와 개 한 마리가 쓰레기들이 널려 있는 골목을 뒤적거리며 어슬렁거리고 있다. 어제와는 달리 발걸음이 무겁다. 발걸음보다 머리가 더 무겁다. 그 복잡한 바라나시 골목길을 더듬거리며 갠지스 강, 번 가트(화장터)로 향하고 있는 나는 여전히 꿈 속의 화 기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고통은 어디에서 오는가" 내 고통은 누군가를 미워하는 자비 없는 분노에서 비롯된다. 자비심 가득한 분노는 잘 삭힌 효소처럼 향기가 난다. 하지만 자비심 없는 분노심은 구더기들이 들끓는 썩은 젓갈처럼 구린내가 나기 마련이다. 내 안에서 자비심 없는 '분노의 구더기'들이 나를 고통스럽게 갉아 먹고 있었다.


화장터에 도착하자 어슴푸레한 새벽기운을 밀쳐내며 어제처럼 아침 해가 붉게 떠오르고 있다. 어제와는 달리 머뭇거리지 않고 화장하는 모습을 좀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계단으로 곧장 향했다. 계단 아래에서 강아지 몇 마리가 어미 품에 안겨 잠들어있고 한 사내가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장작불 사이에서 잔뜩 부풀어 있는 살덩어리가 얼핏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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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주일 동안 바라나시에서 머물며 매일 새벽 화장터에 갔다. ⓒ 송성영


화장터에서 장작을 쌓던, 어제 만났던 노인이 보이질 않는다. 노인과 함께 앉아 있던 낡은 돗자리 위에 누군가 잠들어 있거나 앉아서 갠지스 강 위로 시나브로 떠오르는 붉은 아침 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화장터 주변을 아무리 둘러 봐도 노인이 보이지 않는다. 어디로 갔을까. 혹시 병이라도 난 것이 아닐까. 

나는 바라나시에서 머무는 일 주일 내내 화장터에 쪼그려 앉아 비릿한 주검의 냄새를 맡아가며 내 자신을 갉아 먹고 있는 그 '고통의 구더기'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동안 행복이라는 단어를 남발하고 살아오면서 아내에게 고통을 주었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그녀의 고통은 곧바로 나에게로 되돌아 왔다.

농사를 지어가며 적게 먹고 살아가는 소박한 행복론이 담겨 있는 몇 권의 책을 내고 주변 사람들과 어울려 시시때때로 불의에 항거하는 촛불을 들었다. 그 과정에서 그녀와 티격태격했지만 그녀 역시 그 삶을 함께 하는 동반자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녀가 진정 내 삶의 동반자 였을까?라고 그녀의 입장에서 깊이 있게 생각해 보질 않았다.

그녀는 본래 그녀의 가족과 고향 사람들처럼 보수적인 성향이 짙었고 돈벌이에 매달려 그 어떤 일이든 가리지 않고 살아왔다. 나하고 전혀 반대의 삶을 살아왔음에도 10여 년을 내 삶의 방식에 맞춰 살아왔으니 얼마나 괴롭고 고통스러웠을까. 그렇게 그녀의 괴로움을 이해하면서도 결국은 내 삶의 방식을 고집스럽게 내세웠다. 

"고통스럽게 돈벌이 하다가 결국은 고통스럽게 삶을 마감하는 그런 삶이 뭐가 좋아서, 왜 버리지 못하는 거지?"

나는 '그녀의 삶은 그르고 내 삶의 방식이 옳다'라는 결론을 내리면서 얼치기 진보주의자가 되어 그녀를 공격하곤 했다. 그녀는 이혼을 내세워 고통스럽게 반격해 왔다. 나는 그 고통의 사슬을 끊어 보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부조리한 세상을 비판하고 있었지만 내 자신 또한 그 부조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이었다. 행복한 세상을 꿈꾸고 있었지만 가장 가까이에 살고 있는 그녀에게 고통을 안겨 주고 있었다. 나는 그 부조리한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시포스의 신화'에 나오는 시시포스처럼 고통스럽게 언덕 위로 돌을 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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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나시 화장터에서 만난 강아지 ⓒ 송성영


통통하게 살집이 오른 강아지 한 마리가 단잠을 자고 있는 화장터 주변에는 암수 개 한 쌍이 짝짓기를 시도하고 있다. 그 옆에서 장작불을 뒤적거리던 인도 사내가 막대기를 휘젖어 그 개들을 쫓아내며 한바탕 웃는다. 그 한 옆에서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화장터를 둘러보고 있는 외국인 몇몇이 현지인의 설명을 듣고 있다. 바라나시 화장터가 관광의 한 코스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삶의 언덕 위를 향한 돌 굴리기에 지친 나는 병든 개처럼 화장터 주변에 쪼그려 앉아 스스로에게 물었다.

"시신을 태우는 불쏘시개, 최소한 제 몸을 태우는 저 장작개비의 자비심만큼이라도 온전하게 베풀며 살아가고 있는가."

그렇게 한두 시간을 쪼그려 앉아 있다 보니 어느새 따가운 아침볕이 온몸으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어제 노인과 함께 앉아 있던 그늘진 천막은 이미 다른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다. 나는 어제처럼 다시 갠지스 강을 따라 메인 가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저 병든 개와 내가 뭐가 다른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화장터를 빠져 나오고 있는데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화장터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던 개들이 그 개 짖는 소리를 향해 일제히 몰려간다. 우르르 몰려간 개들은 비쩍 마른 개 한 마리를 둘러싸고 위협을 가하고 있다. 위협을 당하는 개는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 있다. 배를 드러내 놓고 네 다리를 하늘로 치켜세운 항복의 자세로 잔뜩 겁에 질려 있다.

화장터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는 개들에게도 자신들의 영역이 있었던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그 영역 다툼을 몇 차례 목격할 수 있었다. 한 녀석이 화장터로 꺾어지는 길목에서 보초를 서고 있었고 다른 개들이 접근하면 여지없이 짖어댔다. 그 소리에 여기저기서 예닐곱 마리의 개들이 떼로 몰려들어 자신들의 영역 밖으로 쫓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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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터 입구를 지키고 있는 개. 바라나시 가트에서 어슬렁거리는 개들은 자신들의 영역이 따로 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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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터 입구에 다른 개가 들어서자 화장터 개들이 일제히 모여들었다. ⓒ 송성영


화장터 주변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성성한 이빨을 드러내는 개들과 사람 사는 세상이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아니, 개들과 사람은 다르다. 내가 본 바라나시 개들은 다른 영역의 개들에게 위협만 가할 뿐이지 죽도록 물어뜯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서는 물불 가리지 않고 전쟁까지 일으켜 종족들까지 죽이지 않던가.

항복한 개는 부리나케 화장터 영역 밖으로 달아났다. 나는 그 개가 달아난 방향을 향해 걷는다. 메인 가트 오른편, 온갖 오물들이 동동 떠다니는 강가에서 몇몇 사람들이 낚시를 하고 있다. 낚싯대가 따로 없다. 조악한 낚시 줄 끝에 바늘을 달아 강물에 던져 놓고 막대기에 그 줄을 걸어놓았다.

낚시하는 사람들 주변은 쓰레기 천지다. 그들 옆에 쪼그려 앉았다. 땡볕이 따갑다. 눈앞에서 고기들이 펄떡펄떡 뛰고 있는데 좀처럼 낚시 바늘을 물지 않는다. 나는 일이십 분도 채 버티지 못하고 일어섰지만 낚시하는 사람들은 붙박이인 듯 쪼그려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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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로 너저분한 갠지스 강가에서 낚시 줄을 던져 놓고 있는 인도 사람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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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들이 널러 있는 갠지스강가에서 낚시질 하는 사람들 ⓒ 송성영


저들은 낚시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더러움과 깨끗함을 가리지 않고 쓰레기 더미 위에서 낚시 바늘을 던져 놓고 있듯이 고기잡이에 집착하지 않아 보인다. 잡히면 좋고, 안 잡혀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마냥 쪼그려 앉아 있다. 살생이니 뭐니 따지지 않는다. 저들의 조상들이 그러했듯이 죽으면 바라나시 화장터에서 한 줌 재가 되어 이 강물에 뿌려질 것이고 또한 물고기 밥이 될지도 모른다. 저들의 고기잡이는 그저 생활의 일부처럼 보인다.

내가 옳으니 그르니, 추하거나 아름다움을 따져가며 잔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바라나시 갠지스 강은 쓰레기가 둥둥 떠다니는 무질서 속에서 어제나 오늘이나 삶과 죽음이 질서 정연하게 일상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내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쪽에서는 시신을 불살라 그 재를 강물에 뿌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 화장한 시신의 재를 먹고 자랐을 물고기를 낚기 위해 낚시 바늘을 던져 놓을 것이다. 땡볕 아래 녹아내리는 시간처럼 갠지스 강은 더러움과 깨끗함, 삶과 죽음을 느리게 흘려보내고 있다.

나는 낚시하는 사람들 틈에서 빠져나와 제 영역도 없이 떠도는 개처럼 땡볕 아래 흐물흐물 걷는다. 걷는 그림자가 흐릿하게 녹아내린다. 흐릿해지는 의식을 되찾기 위해 하늘을 바라본다. 하늘 높이 새 한 마리가 날아가고 있다. 말과 언어들의 환상에 사로 잡혀온 세월들을 다 녹여 버리고 저 우주 끝까지 훨훨 날아가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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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나시 갠지스강 가트, 뜨거운 땡볕 아래 맨발로 걷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수 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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갠지스강가 모래밭에 누워 있는 개들 ⓒ 송성영


지구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저 푸른 하늘, 문득 나의 보금자리 한국의 고흥 앞바다에서 하늘을 보고 있다는 느낌에 정신이 아찔해진다. 끝없이 이어지는 고통의 수레바퀴를 언덕 위로 굴려가며 똑같은 길을 반복해서 걷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땡볕 때문인지 모른다.

때마침 담벼락에 박혀 뿌리째 서 있는 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그 그늘 밑에 강아지 한 마리가 힘없이 누워 있다. 통통하게 살집이 오른 화장터의 강아지와는 다르다. 저 아래 강가 모래사장에서 늘어져 잠들어 있는 개들과 외떨어져 있다. 어미도 없고 친구도 없는 비쩍 마른 병든 강아지다. 그 병든 강아지를 보듬다가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바라나시에서 병든 개처럼 땡볕 아래 헤매고 있는 내 처지와 다름 없음에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누군가를 보듬기 이전에 먼저 보듬어야 할 것은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내 자신이었다.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너 자신의 일상조차 보듬지 못하고 어떻게 너 아닌 다른 사람, 다른 이웃을 보듬을 수 있겠는가."

뿌리가 드러난 그늘진 고목이 그렇게 내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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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벽을 뚫고 자란 고목. 그늘진 곳에서 병든 강아지를 만났다. ⓒ 송성영


바라나시 강가를 헤매다가 만든 졸시 '그림자'를 큰 아들 송인효가 아버지의 간곡한 협박에 못이겨 작곡 노래를 불렀다. ☞ 원곡을 듣고 싶으면 클릭

그림자

작사: 송성영
작곡 노래: 송인효

늘어진 시침 분침
땡볕에 녹아 내리네
길은 흐릿해 지고
어디로 가시나
그대 어디로 가시나요
발가벗은 새 한 마리
날개도 없이 날아가네

끝없는 저 우주 끝으로
점 하나
주저앉아 노래하네

메말라 버린 눈물의 노래

어디로 가시나요
타는 몸
발걸음은 익어가고
탱볕 아래 걷는 그림자
그대 술퍼 말아요
지친 영혼 쉬어 가는 길목에
그늘진 나무 한 그루
발가벗어 뿌리째 서 있잖아요
그대 울지 말아요

#바라나시 화장터 #불쏘시개 #화장터 개들 #삶과 죽음 #병든 강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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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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