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죽으려나 봐"...19살에 떠난 조카

조카 두현아, 하늘나라에선 아프지 말고 마음껏 뛰어놀거라

등록 2015.01.02 10:46수정 2015.01.02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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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치료 겸 선생님과 함께 두현이가 그린 그림. ⓒ 김현


우리 나이로 열아홉 살. 단 한 번도 세상을 뛰지도, 날지도 못했던 두현이가 하늘로 떠나버렸다. 죽을 것 같다는 한 마디만 남겨놓고 조용히 떠났다.


지난달 16일 밤 9시 40분쯤. 웬만해선 전화를 하지 않던 동생이 전화를 해왔다.

"나야."
"엉! 무슨 일 있어? 엄마한테? 목소리가 왜 그래?"

엎드려 졸다 전화를 받은 난 평상시와 다른 목소리에 여러 가지를 물었다. 그러나 동생은 한참 동안 말을 잊지 못했다. 나도 안 좋은 느낌에 가만히 있었다.

"형… , 지금…  와줄 수 있어? 두현이가… 오래… 못 갈 것 같아… ."

동생은 울음을 꾹꾹 참아내며 겨우 말을 꺼냈다. 멍했다.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기 때문이다. 알았다는 말과 함께 벌떡 일어났다. 근데 마지막 말이 날 아프게 했다.


"눈길 위험하니 조심해서 와."

아들이 위독한 상태에서도 동생은 형의 안전을 염려했다. 그럴 정신도 아닌 놈이 말이다.

아침부터 내린 눈은 계속 내렸다. 도로는 이미 빙판길이 되어 있었다. 머리를 감던 아내는 너무 놀라 눈물을 글썽였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입을 닫은 아내는 눈물을 글썽이며 급하게 머리를 말렸다.

평상시 20~30분이면 갈 수 있는 동생 집에 가는 데 거의 한 시간이 걸렸다. 급한 마음을 다독이며 가는 그 길이 너무나 답답했다. 가는 내내 우리는 아무 말도 안 했다. 아내는 앞에 앉아 기도를 하는지 내내 눈을 감고 있었다.

편안하게 잠든 두현이 얼굴... 그게 더 아팠다

동네 입구 집에 다 와 가는데 차량 하나가 불빛을 비추며 마주오고 있는 게 보였다. 동생이었다. 우릴 기다리다 병원에 가보는 길이었다. 오전에 병원에 갔을 땐 큰 이상이 없다 해서 그냥 왔는데 갑자기 악화되어 다시 가보는 길이라 했다. 두현이는 엄마 품에 꼬옥 안겨 있었다. 열아홉살지만 초등학교 2학년 정도의 몸, 살이라곤 전혀 없는 마른 삭정이 같은 몸을 엄마 품에 맡기고 눈을 감고 있었다.

두현이 엄마는 표정이 없는 얼굴로 아들을 안고 얼굴을 비볐다. 편안히 잠든 아이처럼 아들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숨을 쉬는지 안 쉬는지 알 수 없었다. 아내와 몇 마디 이야기를 하던 동생이 차를 집으로 돌렸다. 아이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숨을 쉬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그 얼굴이 너무나 편안해 보였다.

동생은 아들을 안아 거실 소파에 뉘었다. 소파는 두현이의 침대이고 쉼터였다. 학교에 가지 않고 집을 있을 때면 종일 소파에서 지냈다. 거기서 게임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글도 썼다. 그리고 할머니가 보고 싶다는 '6시 내 고향'이나 좋아하는 드라마를 리모컨으로 틀어주곤 했다. 할머니는 엄마가 일하러 가고 없을 때 오줌을 받아내고 고개를 돌려주고 손자 심부름을 했다. 그래서 동생은 침대가 아닌 소파 위에 아들을 뉘었다.

병원에 간다고 나갔던 손자가 10분도 안 돼 다시 돌아오자 할머니는 가슴을 쓸어내고 치며 꺼이꺼이 울어댔다. 할아버지가 살아 계실 땐 할아버지가 똥·오줌 수발을 들어주었다. 몇 년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론 할머니와 있는 시간이 많았고 할머니가 오줌 수발을 들어주곤 했다. 손자는 할머니의 말동무였고, 할머니는 손자의 말동무였다. 그렇기에 할머니의 상심은 너무 컸다.

두현이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지만 초점이 없었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가끔 가슴속에서 그르렁대는 소리만이 가늘게 들려왔다. 그렇게 조용히 눈을 감아가는 두현이의 손을 잡고 두현이 엄마는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볼에 얼굴을 비비고 손에 입맞춤을 했지만 미동도 하지 않았다.

두 동생들은 오빠와 형의 손과 발을 주무르며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 아빠와 엄마는 싸늘하게 식어가는 아들 손을 놓지 못하고 옆에 엎드려 있었다. 그런 가족들의 모습을 아는지 모르는지 두현이는 정말 편안하게 잠든 얼굴로 다시는 오지 못할 영원의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살아선 한 번도 편안한 잠을 자지 못한 두현이는 숨을 거두고야 가장 편안하게 잠을 자는 듯했다. 그것이 더 아팠다.

운동장을 뛰노는 게 소원이라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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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던 책상 위엔 주인 잃은 휠체어와 '먼나라 이웃나라' 책 한 권이 놓여있습니다. ⓒ 김현

두현이의 병은 진행성 근이영양증이다. 일종의 루게릭병과 같은 것이라 한다. 처음 증상을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다. 동생은 같은 또래에 비해 걸음걸이가 이상하고 뛰지 못하는 두현이를 서울대학병원으로 데려갔고 근이영양증이라는 병명을 받아 안았다.

여러 치료를 받았지만 근육병이란 게 희귀병이라 특별한 치료법이 없었다. 정기적으로 병원을 가는 것 외에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운동요법뿐이었다. 그러다 점차 상황이 안 좋아지면서 보조기구를 이용했고 나중엔 그마저 필요없게 되었다.

두현이가 조금도 걸을 수 없게된 건 초등학교 5학년 겨울방학 때부터였다. 그전까진 힘들지만 스스로 일어서서 조금씩 걸었다. 그러나 이때부터는 일어나지 못했다. 거실과 방을 오고갈 땐 엉덩이걸음을 해야만 했다. 평소 자신의 몸이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사실 때문에 말이 없던 두현이는 이때부터 입을 더 닫았다. 꼭 필요한 말만 했다. 그것도 할아버지나 할머니, 그리고 엄마에게만 했다.

세 사람이 없을 땐 어린 동생들이 물을 떠다 주고, 소변통을 갖다 주곤 했다. 그러면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몸은 점차 굳어갔고 몸에 남아 있는 거라곤 작고 여린 삭정이 같은 뼈와 그것을 감싸고 있는 것뿐이었다.

그런데도 두현이는 아프다고, 나는 왜 이런 거냐고 투정 한 번 부리지 않았다. 그저 어린 나이에도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체념한 것 같았다. 6년 이상을 앉아서, 누워서만 생활하던 두현이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그렇게 자유롭게 뛰놀고 공도 마음껏 찰 수 있는 곳으로 가버렸다.

언젠가 두현이는 자신의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그때가 6학년 때였다.

"나도 동생들이랑 친구들이랑 나가서 놀고 싶다. 공도 차고 싶다. 공도 차고 싶다…."

그러나 두현이의 소망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두현이는 자신의 소망을 그림으로 그리곤 했다. 두현이는 주로 소파에 앉아 게임을 하든가 그림을 그렸다. 노트 한 권에 빼곡하게 그린 건 세계지도와 이상한 만화였다. 세계지도 속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아주 작은 나라 이름까지 정확하게 적혀 있었다. 지도책을 보면서 그린 것도 아니다. 세계지도와 지구본을 몇 번 본 뒤론 그냥 그렸다.

중학교 1학년 때 동생들과 1대 4로 지구본의 나라 찾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도 네 사람이 한 사람(두현이)을 당해내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만화도 주로 세계 여행을 하거나 우주를 여행하는 것이었다. 그림을 통해서나마 몸의 부자유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았다. 그런 마음을 알기에 내 카톡 프로필에 두현이가 그린 그림과 함께 이렇게 써놓았다.

"하늘나라에선 맘껏 뛰어놀고, 공도 차구, 자유로운 새가 되렴."

마지막 가는 길 외롭지 않아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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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반 친구들이 국화꽃 한 송이 씩 헌화하며 마지막 말을 전하고 있습니다. ⓒ 김현

"죽음을 예감했나 봐요. 전날 밤엔 10분 간격으로 자다 깨다 했어요. 오전에 병원에 가기 전에 머리를 감겨달라고 하더라고요. 머리 감는 걸 무척 싫어했는데……."

화장을 하고 멀리 자유롭게 떠난 보낸 뒤 제수씨는 넋두리처럼 중얼거렸다.

"종일 품에 안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러는 거예요. 엄마~! 나~ 죽으려나 봐. 엄~마~! 나 그 말 듣고도 아무 말 못했어요. 안 죽는다. 걱정 말라. 괜찮을 거야. 이런 말 한 마디도 못했어요."
"좋은데 갔을 거예요. 외롭지 않게 갔고요."

두현이를 떠나 보내면서 알았다. 외롭지만 결코 외롭지만은 않았다는 걸. 그리고 친구도 많았다는 걸.

두현이의 이승 마지막 길은 학교(김제 자영고)였다. 교장(이효원) 선생님과 교직원, 학생들은 국화꽃 한송이를 들고 제자와 친구의 마지막 길을 함께 했다. 두현이가 공부했던 교실엔 두현이가 누워있던 침대와 휠체어와 책상이 그대로 있었다.

친구들은 국화꽃 한 송이, 한 송이를 영정 사진 옆에 놓고 한마디씩 이별을 고했다. 두현이와 함께 했던 특수반 선생님은 영정을 껴안고 작별인사를 하기도 했다.

"두현아, 잘 가. 하늘나라에선 너가 좋아하는 거 많이 하고. 잘 가."
"형아! 미안해. 잘해주지 못해서."
"잘 가. 그곳에선 아프지 말고."
"너랑 많이 놀아주지 못해 미안해. 하늘 나라에선 아프지 마. 건강하게 살아."
"두현아, 선생님이 미안해. 너무 미안해. 그곳에선 아프지 말고 말도 많이 하고 환하게 웃으며 살아. 잘 가. 사랑해."

친구들이 이별 인사를 하는 동안 교실엔 노래 '아름다운 세상(박학기)'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문득 외롭다 느낄 땐 하늘을 봐요
같은 태양 아래 있어요 우린 하나에요
마주치는 눈빛으로 만들어가요
나지막이 함께 불러요 사랑의 노래를

혼자선 이룰 수 없죠 세상 무엇도
마주잡은 두 손으로 사랑을 키워요
함께 있기에 아름다운 안개꽃처럼
서로를 곱게 감싸줘요 모두여기모여
 (……)
 라랄랄라 랄라라라 라랄 랄라랄라
라랄랄라라라라라랄라 라랄랄라랄라~

이때 난 처음 알았다. 두현이가 유일하게 이 노래를 좋아하고 자주 들었다는 것을. 노래를 들으며 두현이가 가는 마지막 길에 두현이가 좋아했다던 노래를 들려준 선생님들이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친구들이 너무 고마웠다. 외롭지 않게 따뜻하게 보내주는 모든 사람들이 정말 고마웠다. 밤 10시 넘어서 친구를 만나기 위해 먼 곳에서 장례식장까지 달려와 오랫동안 함께 해준 어린 친구들이 많이 고마웠다.

2014년12월 마지막 날, 지금쯤 하늘 어디에선가 자유로운 새가 되어 맘껏 날아다닐 두현이가 그립다. 그 작은 미소가 보고 싶다.
덧붙이는 글 이 자리를 빌려 3년 동안 성심성의껏 애써주시고 사랑주신 자영고 특수지도교사 서춘화 선생님, 진혜현 선생님, 안은선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마지막 길 진심으로 따뜻하게 보내주신 학교 측과 친구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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