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당당하게 방학나기

햇살이 말해주는 교사 방학 나기 비법

등록 2015.01.11 23:27수정 2015.01.11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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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하게 방학 맞이하기 ⓒ 김광선


"무슨 일 하세요?" 처음 만나는 그의 질문이다. 내 겉모습에서 '이 사람, 어떤 직업은 있겠구나' 하는 생각은 했다는 뜻일테다. 집에서 노는 사람으로는 안 보이겠거니 하는 마음에 웃음이 나는 한편, 나의 사적인 영역을 묻는 이 사람, 왠지 불쾌하다.


"초등학교에서 학생들 가르쳐요."
그럴 때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있다.
"오호홍. 교사들은 좋겠다. 방학 때 펑펑 놀 수 있잖아."

그 옆에 있던 사람이 한 술 더 뜬다. 사실 내가 가지는 불쾌함, 직업에 대해 대충 얼버무리는 이유가 바로 이거다.

"방학 때도 돈이 나와요?"
"미국은 방학이 무급이라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데..."

비아냥거림까지. 그 뉘앙스에는 분명 질투도 묻어날 것이다. 그 뒤부터 난 "교사입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하지 않는다. 어물쩍거리다가 "예, 회사에 다녀요." 하든지, "그냥 일합니다"라고  한다. 그러면 또 이렇게 묻는다.

"으흐흠. 무슨 일?"
그러다보면 교사라는 말을 안 할 수가 없는 데 참 싫다.
"이잉잉. 방학 없으면 우리는 죽어요!"


앞사람, 뒷사람, 옆사람 다 듣게 큰 소리로 소리치고 싶지만, "얘야, 요즘 tvN <미생>에 나오는 비정규직 장그래 봤니? 그게 현실이야. 상사맨들 봐라. 쯧쯧쯧. 볼수록 딱해. 너가 그 술 맛을 알아?"라고 말할 것 같아서 무어라 할 말이 없다. 그 노고와 살벌한 사회 현실을 충분히 알기에.

하지만, 누구를 가르친다는 것은 그 자체가 큰 부담이다. 냉철한 머리와 따뜻한 가슴이 없으면 힘들다. 또 그 속에 사랑, 애정, 지식, 지혜, 정의, 도덕, 행복, 원리, 원칙, 유연성이 적절하게 자리 잡고 있지 않으면 금방 바닥이 나고 지치게 된다. 그래서 교사들은 학기 중에 열심히 일하고 방학 때도 열심히 일한다. 그럼 이들은 무슨 일을 하면서 약 40일 정도의 온전한 24시간을 보낼까?

강원 평원초등학교, 이다감 선생님

"휴식과 책. 평소에는 좀 편안하게 쉬고 여행도 잘 가요. 친구들하고도 가고, 가족들하고도 가요. 또 책을 많이 읽어요. 주로 도서관에 가서 책을 골라 읽어요. 과학관련 책, 소설, 고전문학 등 다양하게 접하려고 노력하죠. 또 있다면, 학기 중에 받은 사이버 연수 중 좋았던 걸 다시 듣기도 해요. 시간이 없어서 대충 진도만 채우고 넘어 갔던 것들을 찾아서 자세히 공부하고 남기죠."
"연수학점만 채우면 되지 무슨 공부입니까?"(교사에겐 연수 점수가 있다. 일 년에 60시간 이상을 무조건 들어야한다.)
"호호홍, 너무 좋은 연수 있잖아요. 그런 거요."
참 학구적인 사람이다.

대구 불로초, 신슬기 선생님

"주로 여행과 독서, 여행을 해요. 이번 겨울엔 전국책쓰기 연수에 같이 활동하며 한 시간 강의도 맡았어요. 아하, 미루어 둔 은행업무 처리도 합니다. 흐응흥."
돈이 많은가 보다. 학기 중 점심시간에 잠깐 나갔다오면 되지, 뭘 방학까지 기다리는가.

충남 천안청당초, 이성의 선생님

"방학동안 하고 싶었던 일 100가지를 적어보고 하고 나면 지워나가요. 뭐, 꼭 100가지가 한정적이진 않고 많이 적어보라는 거지요. 음, 요리도 여러 가지 적어두고요. 남편 생일상 차리기, 하루 종일 잠자기 등 많죠."
"섬세해요. 왠지 당장 따라해 보고 싶은데요."

난 무엇으로 100가지를 채울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내 관심분야를 쭉 적어보기로 한다. 영어, 다이어트, 스트레칭, 육아, 교육, 패션, MC, 글쓰기, 박물관… 이것을 다시 작게 나누어 거미줄 치다 보면, 더 빨리 나의 '방학 중 Do it 리스트'가 채워질 수 있을 것이다.

충북 증평초, 구선미 선생님

"이번 겨울엔 책쓰기 연수 말고도 교육 연극 출석연수 30시간이 잡혀있어요. 이것은 15학년도에 아이들과 수업에서 교육연극을 활용해서 재밌게 살아보려고 하는 거예요. 히히히잉"

엉덩이에 뿔나겠다. 아침 9시부터 5시까지 딱딱한 의자에 앉아서 있다 보면 엉덩이랑 허리가 제일 먼저 말을 걸어온다. "좀 서서 공부해 주세요"라고. 하지만 교육연극이라 다행이다. 몸으로 표현하는 활동을 할 수 있으니까.

부산 금빛초, 제미영 선생님

"저는 교무실 지키기, 한국사 연수, 책쓰기 연수로 방학이 꽉 차버려서 시시해요. 우리학교 한 선생님께서는 방학 내내 민간사절단이라 생각하고 배낭여행을 하신다는 데 그렇게 다녀오신 데가 72개국이라고 해요. 이번 방학은 이란으로 착하고 인정 많은 사람들을 찾아 떠나셨어요. 우리는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고 다녀온 이야기를 들으며 많이 부러워하지요. 후휴."
땅이 꺼져라 한숨 쉬신다.
"교무실 지키지 말고 당장 싸돌아 다니세요."

민간사절단, 부러울 따름이다. 2000년도 여름방학 때 유럽배낭여행을 한 적이 있었는데 비행기 안에서 교사들을 많이 봤다. 외국을 나가서 만나는 사람들도 막상 보면 "저는 수학선생님입니다" "저는 영어를 가르칩니다"라고 영어로 자기소개를 했던 기억이 난다.

여러 선생님들과 방학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지만 교사들의 생존과 연결된 방학은 더 적극적으로 지켜져야 한다. 그럼, 어떻게 보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까. 몇 년의 시행착오 끝에 탄생한 15년의 노하우를 여기서 말하고자 한다.

첫째, 계획을 짜는 게 필수다. 여행은 언제 갈지, 연수는 언제 받고, 어떤 친구들을 만나 무엇을 할까. 읽고 싶은 책과, 먹고 싶은 음식, 가고 싶은 곳까지 구체적으로 생각한다. 초등학생들에게 수학 용어를 설명하듯 자세하게 짜는 게 포인트다.

둘째, 다이어리에 표시하면서 날짜와 과정을 간단하게 글로 써라. 만약 박물관을 다녀왔다면 입장권을 붙이고, 간단한 내용을 글로 메모한다. 아니면 카카오스토리나 블로그에 자신이 갔던 곳의 사진이나 활동 내용을 아주 간단히 기록한다.

셋째, 되도록 땅을 발로 밟으면서 다녀라. 독서나 공부도 좋지만 출근할 필요가 없는 '24시간은 다 내 거다.' 평소에 못 해 본 현장 경험을 하는 것이 더 좋다. 나는 광화문, 용산, 여의도 주변을 자주 간다. 친정이 경기도 부천시라서 서울 지하철을 타고 아이들과 손 붙잡고 하루 종일 돌아다닌다. 

서울시청사, 서울 도서관(서울시청), LG 사이언스 홀(여의도), 인사동 전시회(종로1가), 국립중앙박물관, 어린이 박물관(용산구), 종묘(종로5가), 교보문고(광화문), 서울 상상나라(광진구)가 볼 것도 많고 간식 싸 들고 가서 펼쳐놓고 먹을 수 있는 공간도 많이 있다.

물론 여유가 된다면 장기 해외여행도 괜찮다. 자신을 객관화하고 자기만의 경계를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어떤 상담 강사님는 "교사는 바운더리(경계나 한계)가 아주 넓어야한다"고 강조하신다. 그래야 이런 아이, 저런 아이, 별의별 아이들을 다 품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넷째, 출석연수는 꼭 한 가지 받아라. 사람들을 만나고 좋은 강사에게 자극을 받으려면 교육청이나 교육부에서 추진하는 연수나 일반 교육 기관에서 하는 일주일 정도 30시간 연수를 받는 게 좋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여  같은 고민을 하고 나누어 서로 힘을 줄 수 있다. 운이 좋다면 뜻이 잘 맞는 동지나 교육에 있어서의 훌륭한 파트너를 만날 수 있다.

다섯째, 사이버 연수는 한 과목 이상 들어라. 평소에 관심이 있었던 분야를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연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한국사>, <시사영어>, <급수 한자>, <상담기법>,<학급경영>등 여러 가지를 들어보았지만, 6년 전에 들은 티처빌연수원의 <삶을 가꾸는 글쓰기>는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이곳에서 글을 즐겁게 쓰는 마음가짐을 배웠고, 아이들과 생활하는 모습과 주변에서 일어나는 나만의 일을 <오마이뉴스>에 올리기 시작했다.

여섯째, 고등학교 친구들을 적극적으로 만나라. 교직생활을 하다 보면 만나는 사람들이 한정되어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과 교사들을 만나고, 집에 가서도 우리 아이들과 친한 선생님들만 만나게 된다. 하는 이야기나 관심 분야가 비슷하고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보다는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칠까, 과학 실험은 어떻게 해야 잘 될까, 학급 경영은 어떻게 할까 등등 모두 아이들에게 온 정신이 팔려있다. 고등학교 친구들만 해도 각자 직업이 다르고 사는 환경이 달라서 관심사가 다양하고 나눌 거리가 많다.

일곱째, 박물관을 마트 가듯 다녀라. 역사를 책으로 접하고 영화로 만나는 것도 좋지만, 눈으로 직접 보는 게 더 좋다. 그 대신 한 번에 모두를 보고 공부할 생각을 하지 말고 "오늘은 삼국시대, 내일은 고려시대를 보자." 또는 "이번에는 1층만 보고 다음에 올 때 2층을 보자."  " 오늘은 어린이 박물관을 가고 내일은 특별 전시관을 가자"등으로 적당히 나누는 게 좋다. 그렇지 않으면 박물관은 넓고 볼 것이 많아서 한 번에 욕심내서 보다 보면 쉽게 지치고 "아흐응, 힘들다. 다시는 가지 말자"로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어, 벌써 내일이 개학이야?" 할 날도 앞으로 약 3주 남았다. 아이들처럼 교사들도 방학을 손꼽아 기다리지만, 개학이 다가오면 "휴, 한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아"라고 말하면서 한숨을 쉴지도 모른다. 그러니, 악착같이 놀고 열심히 쉬고 힘차게 공부하자. '시간은 흐르는 게 아니라 채워나가는 것'이라고 2013년 <남자의 자격> 이경규씨가 말한 것처럼.
#방학 #학교 #계획 #교사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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