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연극반 학생들, 쌍용차 해고노동자에 20만원 성금

양산남부고 연극반 '아이비'의 훈훈한 기부... "학생들이 먼저 기부 제안"

등록 2015.01.13 16:07수정 2015.01.13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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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남부고등학교 연극반 '아이비' 학생들. ⓒ 김민희


평범한 고등학생들이 연극을 통해 직장에서 정리 해고된 아버지의 아픔을 느꼈다. 그리고 이들의 공연 수익금과 교내 동아리 우수상 상금으로 부당 해고로 일자리를 잃은 아버지들을 응원했다. 그 주인공은 양산남부고등학교 연극반 '아이비'(담당교사 박영실).


18명의 학생과 박영실 교사는 지난달 29일, 아이들 힘으로 모은 20만 원을 사측 해고에 맞서 복직을 요구하며 투쟁하고 있는 쌍용차 해고노동자 이창근·김정욱씨에게 보냈다.

교내 공연 수익금으로 모은 4만6천 원과 우수 활동 동아리 상금으로 받은 10만 원, 거기에 박 교사의 작은 정성이 더해져 만들어진 돈과 함께 이들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노란봉투에 담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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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실 교사가 쌍용차 해고 투장하는 이창근, 김정욱 씨에게 쓴 편지. ⓒ 김민희


"가치 있는 곳에 돈 쓰자"... 학생들이 먼저 기부 제안

연극반 활동으로 모은 돈 14만6천 원. 마음만 먹으면 연극반이 함께 회식하며 즐겁게 쓸 수 있는 돈이었다. 하지만 학생들은 연극반 활동을 통해 얻은 값진 돈인 만큼 더 의미 있게 쓰면 좋겠다며 박 교사에게 기부를 제안했다.

이수빈(19) 학생은 "친구들과 함께 연극을 한 것도 좋은 추억이지만, 함께 번 돈으로 더 멋진 일을 할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뜻을 모았는데 기부를 어디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박 교사는 학생들 제안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박 교사는 "아이들이 먼저 좋은 곳에 쓰자고 기부를 제안한 것이 놀라웠고 감동이었다"며 "아이들이 어디에 기부하자고는 이야기하지 않아서 제 나름대로 후원할 곳을 찾았고 그러다 문득 아이들이 공연했던 '아빠 어디가?' 속 아버지들과 닮아 있던 분들, 쌍용차 부당해고로 투쟁하는 두 분이 떠올라 그들을 위해 써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 교사의 말처럼 연극반 학생들이 공연했던 작품은 직장에서 정리해고를 당한 아버지의 이야기였다. 직장에서 해고됐음에도 가족에게 말하지 못하고 가짜 출근을 해야 했던 아버지, 그리고 그런 사정을 알게 되고 아버지의 재기를 위해 도움을 주는 가족들의 이야기.

상황은 약간 다르지만, 박 교사는 아이들의 연극에서 쌍용차 평택공장 굴뚝 위 외로운 투쟁을 벌이고 있는 두 아버지를 떠올렸고 이들을 위한 편지와 후원금을 전달했다. 박 교사는 "후원한 후 SNS를 통해 아이들의 돈이 어디에 쓰였는지를 알렸다"며 "그 글을 보고 아이들에게 좋은 곳에 써줘 감사하다는 연락도 받고 많은 분이 우리가 한 일을 응원해주셨다"고 말했다.

"연극으로 아버지의 힘든 삶 이해... 좋은 일에 기부해준 선생님께 감사"

이번 공연에서 아버지 역할을 한 최재민(19) 학생은 "쌍용차 사태는 뉴스에서 가끔 보긴 했지만 '해고'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어 그 일에 대해 무관심했는데 연극을 하면서 아버지가 짊어진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깨닫고 마음이 아팠다"며 "부당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분들에게 전달됐다는 말을 들으니 우리가 작지만 대단한 일을 했구나 하는 뿌듯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성만(19) 학생은 "선생님이 SNS에 올린 글을 보고 그동안 관심 가지지 않았던 쌍용차 사태에 대해 아는 계기가 됐다"며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이런 뿌듯함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기에 정말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박진홍 학생 역시 "기부라고는 크리스마스 실을 사는 것 외에는 해보지 않았고 내 푼돈을 보탠다고 해서 정말 도움이 되겠느냐는 생각에 선뜻 해보지 못했다"면서 "그런데 연극부에 들어오고 큰돈은 아니지만 다 같이 만든 이 돈으로 굴뚝 위에서 힘들게 버티고 있는 두 분에게 큰 힘이 됨을 알고 나니 기부의 즐거움을 배우고 또 학창시절 추억을 만든 것 같다 좋다"며 웃었다.

박 교사는 "아이들에게 나눔의 기쁨과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해 말로만 가르쳤지 실천할 기회를 주지 못했는데 이런 기회를 준 아이들에게 더 고마움을 느낀다"며 "나중에 이 친구들이 성장해서도 오늘의 이 따뜻함을 잊지 않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양산시민신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양산 #남부고등학교 #연극반 #쌍용차 #노란봉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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