밟혀 죽은 길고양이 가족, 왜 이래야 하나요

[사지마세요, 입양하세요⑧] 길고양이를 향한 우리의 시선

등록 2015.01.16 08:34수정 2015.01.16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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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봄, 집 앞 주차장에서 작은 새끼고양이 한 마리를 만났다. 그때까지의 나는 고양이를 직접 보기는커녕 그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겁먹은 얼굴로 웅크리고 앉아 야옹거리던 작은 생명을 눈 앞에 두고 어쩔 줄 몰랐다. 잠시 당황하다 급하게 편의점에서 소시지를 사서 던져주고 물을 따라 줬던 게 길고양이 '나비'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 뒤로 나는 자연스럽게 나비에게 사료를 챙겨 주게 되었다. 그리고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두 차례 아파트 화단에서 나비를 만났다. 하지만 1년간 꼬박 밥을 먹으러 오던 나비가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자취를 감춰 버렸다. 길고양이 수명이 그리 길지 않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나는 한동안 매일 사료를 들고 나가 나비를 기다렸다. 어떤 날은 집 근처를 돌아다니며 찾아 보기도 했지만, 나비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내 인생 첫 길고양이와의 만남, 삶을 바꾸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인데도 내 인생 첫 길고양이 나비와의 만남은 내 삶을 크게 변화 시켰다. 그때까지 한 번도 길고양이를 발견하지 못했던 게 신기할 만큼 그 뒤로는 온갖 곳에서 길고양이가 눈에 띄었다. 음식물 쓰레기 근처를 기웃대다 곰팡이 핀 빵 조각이나 닭 뼈 따위를 물고 가는 녀석들부터 얼굴 곳곳에 상처를 입고 다리를 절뚝이며 돌아다니는 녀석까지….

길고양이와의 만남이 잦아질수록 비로소 도시 속 그들의 고달픈 삶이 보이기 시작했다. 집에 사는 고양이들이 평균 15년 이상을 사는 데 비해 길고양이들은 영양 부족과 추위, 질병과 사고 등으로 고작 2~3년 밖에 살지 못 한다는 걸 알게 된 건 그 즈음이다. 사람들의 이유 없는 화풀이와 괴롭힘의 대상이 되어 다치거나 죽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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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는 동물보호법으로 보호받는 동물임에도 불구하고 길고양이를 대상으로 한 학대 범죄는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 동물자유연대


지금까지 접했던 여러 동물 학대 제보 중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사건이 하나 있다. 2013년 4월, 인천에서 여러 마리의 길고양이가 한꺼번에 살해 당한 사건으로, 죽은 길고양이 5마리 중 4마리는 태어난 지 열흘 밖에 안 된 새끼고양이였다.

위협을 느끼면서도 새끼들을 지키려 했을 어미의 머리와 몸통에는 무언가로 얻어맞은 듯한 상처가 있었다. 그리고 영문도 모른 채 죽임을 당한 새끼고양이들의 작은 몸은 뒤틀리고 짓밟혀 있었다. 여러 요인으로 인해 길에서 태어나는 새끼고양이가 생후 6개월 이상 살아남을 확률이 50%에도 미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눈 앞에 맞닥뜨린 현실은 너무나 참혹했다.


이처럼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학대 외에도 약물을 이용해 길고양이를 죽이거나 길고양이가 지하실에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문을 잠가 그 안에서 굶어 죽게 만드는 사건 또한 여전하다. 사람들과 같은 생활공간에서 살아간다는 이유로 길고양이들이 치르는 대가는 혹독하기만 하다.

이처럼 많은 길고양이들이 힘겹게 생을 이어가고 있지만,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길고양이를 돕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길고양이가 어떻게 사는지 관심도 없던 사람이 대부분이었던 과거와는 사뭇 달라진 분위기다. 이제는 주변에서 길고양이에게 밥을 챙겨주며 그들을 돕고자 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각 지역 별로 길고양이를 돌보는 '캣맘', '캣대디'들이 주축이 되어 모임을 만들고, 길고양이를 위해 지속적인 활동을 진행하는 협의체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길고양이 문제를 대하는 지자체의 변화도 더욱 주목할 만하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길고양이 민원이 발생하면 포획해 살처분하는 것이 길고양이 문제를 다루는 정책의 전부였다. 하지만 길고양이를 무조건 살처분하는 것이 비인도적일 뿐 아니라 길고양이 개체수를 줄이는 데에도 효과가 없다는 사실이 알려짐에 따라 TNR 제도를 도입했다.

'TNR'이란 길고양이를 안전한 방식으로 포획(Trap)해 중성화 수술(Neuter)을 한 뒤 다시 원래 포획한 장소에 방사(Return)하는 개체수 조절 방법이다. 이 방법을 모든 지자체에서 의무적으로 시행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 서울·경기·광역시 등을 중심으로 시행 중이다.

길고양이 문제를 대하는 지자체의 변화, 주목할 만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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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NR을 위해 길고양이를 포획한 모습 효과적이고 인도적인 TNR을 위해서는 평소 길고양이를 돌보며 그 습성을 파악하고 사후 관리까지 가능한 캣맘의 참여가 필요하다 ⓒ 동물자유연대


또한 길고양이가 유기동물 보호소에 입소돼 안락사 처리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동물보호법은 길고양이를 유기동물 보호소 입소 대상에서 제외 시켰다. 길고양이는 일반적인 유기동물과 다르게 길에서 자생적으로 태어나 살아온 동물로,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끼고양이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경우 야생성과 사람에 대한 경계심을 갖는다.

지자체 유기동물 보호소에 입소된 동물 중 입양되는 동물의 비율이 30%에도 미치지 않는 상황에서 반려동물로 적합하지 않은 특성을 가진 길고양이는 대부분 보호소에서 안락사되거나 폐사하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이러한 폐단을 방지하기 위해 동물보호법에서는 TNR 등 특정 목적을 제외한 길고양이 포획을 금지하고 있다.

동물보호법 시행규칙 제13조(구조·보호조치 제외 동물) ① 법 제14조제1항 단서에서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동물'이란 도심지나 주택가에서 자연적으로 번식하여 자생적으로 살아가는 고양이로서 개체수 조절을 위해 중성화(中性化)하여 포획장소에 방사(放飼)하는 등의 조치 대상이거나 조치가 된 고양이를 말한다. - 개정 2013.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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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보호관리시스템에 게시된 서울시 길고양이 TNR 내역 사이트를 통해 포획/방사 장소, 각 단계별 사진 등 TNR 현황을 확인할 수 있다 ⓒ 동물자유연대


간혹 구조·보호 조치 제외 동물이라는 단어 때문에 길고양이는 보호를 받을 수 없는 동물이라는 오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법에 규정된 구조·보호 조치 제외 동물이라는 것은 앞서 이야기한 대로 길에서 자생적으로 살아가는 길고양이가 적절치 않게 유기동물 보호소에 입소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포획을 금지하는 것을 뜻한다. 사고나 질병, 학대 등으로 고통 받는 길고양이까지 구조·보호 조치에서 제외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서울시의 경우, 지난 2012년 동물보호과가 신설된 이후 길고양이 문제 해결을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체중이 몇백 그램에 불과한 새끼고양이나 임신 중인 고양이, 아픈 고양이들까지 포획돼 TNR 대상이 되어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수의사, 동물단체 등과 함께 서울시 TNR 표준 지침을 마련했다. 해당 지침에는 TNR 대상이 되는 길고양이 기준과 포획-수술-방사에 대한 단계별 세부 지침까지 규정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2014년에는 개별적으로 길고양이 보호 활동을 하며 어려움을 겪는 시민들이 공식적으로 서울시 TNR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TNR 자원활동가를 모집했다. TNR 자원활동가로 등록하고 교육을 수료한 참가자들은 자신이 활동하는 지역에서 구청의 협조를 받아 TNR에 직접 참여할 수 있다. 그 외에도 누구나 인터넷을 통해 서울시 TNR 과정을 열람할 수 있도록 2014년 9월부터 서울시에서 이루어지는 TNR 진행 결과를 동물보호관리시스템에 게시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는 지자체의 변화에도 현재의 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길고양이 관리 정책에 시민 참여가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TNR이 길고양이 개체수 조절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일정 지역을 중심으로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TNR을 시행하고 그 뒤 모니터링까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지자체 TNR은 민원이 발생하는 지역을 대상으로 산발적으로 진행되고 있을 뿐이다. 길고양이를 돌보는 사람이 없는 지역에서는 방사 후 모니터링이 어려워 TNR이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며 지속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민이 TNR 주체로 함께 참여해야 한다.

"잘 살고 있는 길고양이를 왜 잡아가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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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NR이 완료된 길고양이 TNR된 길고양이는 왼쪽 귀 끝을 약간 잘라 TNR이 완료됐음을 표시한다 ⓒ 정진아


인간의 편의만을 위해 이루어진 도시화는 다른 동물들이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먹이와 물 조차 구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이러한 환경에 사는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며 돌보는 시민들의 노력은 그 자체로도 소중하고 가치있는 활동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주의해야 할 게 있다. 내가 길고양이를 지키고 싶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길고양이를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 또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동시에 청소를 깨끗이 하고 소음 방지를 위해 TNR을 하는 등 이웃들이 길고양이로 인해 느낄 수 있는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길고양이를 향한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을 바꾸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우연히 길고양이에게 관심을 갖게 된 뒤로 지금까지 많은 길고양이를 만났다.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된 새끼고양이들이 손 쓸 틈도 없이 세상을 떠나 버렸고, 상처를 입고 나타난 고양이의 치료를 위해 수차례 포획을 시도했지만 끝내 실패한 일도 있었다. 길고양이 밥 주는 자리를 들키지 않기 위해 마음을 졸이기도 했고, 때로는 "길고양이 다 잡아가라"며 화를 내는 사람을 상대해야 할 때도 있었다. 이러한 일상이 반복될 때면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걸어가는 듯 막막하기만 했다.

하지만 TNR을 위해 고양이를 포획하는 내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와 "잘 살고 있는 고양이를 왜 잡아가려 하냐?"고 묻는 분들을 만날 때나,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조심스럽게 놓여 있는 사료 그릇을 발견할 때, 나는 조금씩 변화가 이뤄지고 있음을 느낀다. 이 느리지만 행복한 변화에 동참하는 이들이 더 많아지기를, 그래서 내일을 살아갈 길고양이의 삶이 오늘보다는 조금 더 나아질 수 있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정진아는 동물자유연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길고양이 #TNR #동물자유연대 #캣맘 #동물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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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자유연대는 동물학대 예방 및 구조, 올바른 반려동물문화 정착, 농장동물, 실험동물, 오락동물의 처우 개선을 위한 대중인식 확산과 연구 조사, 동물복지 정책 협력 등의 활동을 하는 동물보호단체이다. 홈페이지: www.animal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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