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만원짜리 예식장... 생각보다 괜찮습니다

[가장 나다운 결혼식⑤] 장대상·이성아 부부

등록 2015.01.21 19:04수정 2015.02.05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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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편일률적 '스드메', 20분 예식, 뿌려 놓은 축의금 걷기, 눈도장 찍기식 참석 등 허례허식 결혼식에서 벗어나 소박하고 특별한 결혼식을 치른 열 쌍의 커플 이야기. 주인공뿐만 아니라, 참석한 모든 이들의 기억에 남았던 예식을 소개해 결혼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에겐 격려를, 돈 때문에 결혼을 포기한 이들에겐 기대를 안겨주고자 한다. - 기자말


많은 커플이 결혼을 약속한 후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날짜'를 정하고 '예식장'을 잡는 것이다. 결혼 성수기에 식장을 잡기란 '하늘의 별따기'여서, 부모님께 인사도 드리기 전에 예식장부터 잡아놓는 일도 허다하단다. 예식장 빈 공간에 따라 결혼식 날짜가 정해지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결혼을 약속한 커플에게 가장 많이 묻는 말도 바로 그거다.

"날 잡았어?"

날짜는 아직 안 잡았다고 하면 "에이, 그럼 아직 모르는 일이네" 하고 그들의 결혼을 불확실한 일로 간주한다.

"우리에게 결혼식보다는 결혼, 함께하는 것이 더 중요했어요. 그래서 처음엔 결혼식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었죠."

장대상(30), 이성아(36) 부부는 지난 2014년 5월에 결혼식을 올린 6살 차 연상연하 커플이다. 처음 만났을 땐 큰 나이차 때문에 연인이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알고 지낸 지 1년쯤 지냈을 때에야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만난 지 1000일이 되던 날, 그들은 혼인신고를 하고 함께 살게 되었다.


결혼식보다는 함께 살 집을 중요하게 생각했기에 두 사람이 힘을 합쳐 만든 것들이 많았다. 가전제품은 성아씨와 어머니가 그간 사용한 것들을 그대로 받아쓰고, 새로이 구입할 것들은 잘 정해서 열심히 발품을 팔았다. 30년 된 낡은 집이지만 함께 살 소중한 공간이라 페인트칠을 하고, 가구를 조립하는 수고로움도 그저 기쁘기만 했다.

대관료 6만 원, 업체 끼지 않은 도서관 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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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결혼식 하루에 한 커플만 받는 도서관 결혼식. 이른 새벽에 웨딩촬영도 했다. ⓒ 장대상·이성아


"홀로 계신 어머니가 '그래도 하나밖에 없는 내 딸 결혼식, 아주 작게 하더라도 보고 싶다'고 하셔서, 결혼하고 6개월 뒤에 작은 결혼식을 하게 되었어요.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고, 우리가 가진 선에서 할 것. 그리고 우리 두 사람에게만 초점이 맞춰진 결혼식이 아닌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결혼식을 만들 것. 그 가치관을 가지고 늦은 결혼식을 준비하게 되었죠."

두 사람이 열심히 발품을 팔았다. 우선 예식장은 '국립중앙도서관 국제회의장'으로 결정되었다. 국립도서관은 서울시민청처럼 '작은 혼인식' 캠페인 차원에서 매 주말마다 한 쌍의 커플에게 대관해 주는 곳이다. 대관료는 6만6400원.

하루에 단 한 쌍에게 제공되기 때문에 다음 결혼식을 위해 급하게 자리 비워주지 않아도 되고, 피로연장도 여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말 그대로 회의장소이기 때문에 허허벌판 강당이긴 했지만, 식장으로 걸어오는 길이 예쁜 데다 넓은 잔디밭도 있어서, 식전에 좀 일찍 도착해 여유롭게 웨딩 촬영도 할 수 있었다.

대관 외에 해주는 것은 따로 없기 때문에, 나머지 예식에 필요한 것은 업체에다 맡겨야 하지만, 그들은 업체에 맡기지 않고 알뜰살뜰하게 준비했다.

"결혼식에서 가장 많이 드는 비용 중에 하나가 꽃인데요. 비싼 돈 들여서 꽃길을 꾸미지만 식이 끝나도 가져가지 못해요. 우리 다음 예식에도 그 꽃을 돌려 써야 하니까요. 그래서 새벽에 꽃시장에 가서 저렴한 가격으로 꽃을 사 식이 끝나고 하객들이 하나씩 들고 갈 수 있도록 화분에 작게 담아 꾸몄어요. 하객들이 남김없이 꽃을 들고 가는 바람에 식 끝나고 청소할 게 없더라고요. 하하."

그렇게 대관료 외에 꽃값 35만 원, 식전 간식비 20만 원이 들었다. 여기에 이젤 대여·사진 출력·기타 비품 비용까지 합쳐도 예식 비용은 총 80만 원이 채 들지 않았다. 물론 피로연 비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하객 식사는 도서관 식당을 이용했는데, 어른들의 식사는 중요해서 인당 3만 원대 비용을 할애했다.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덕담카드 청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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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만든 청첩장 예쁜 그림 엽서, 약도, 덕담카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 청첩장 ⓒ 장대상·이성아


그림을 그리는 성아씨는 청첩장을 엽서 모양으로 두 개를 만들었다. 앞면에는 본인의 그림만 넣고, 뒷장에 간단한 예식 알림글을 써서, 사람들이 앞면을 활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약도는 별도로 준비해 뒷면에 덕담을 쓸 수 있도록 만들었다. 덕담을 쓴 카드를 가지고 온 하객들은 예식장에서 반납했고, 두 부부에겐 반납한 약도가 평생 간직할 소중한 편지가 되었다.

또 덕담카드를 쓴 하객들을 추첨해 선물도 주고, 예식 중에 편지를 읽을 수 있는 기회도 주었다. 결혼 준비 과정이 그랬듯, 결혼식도 길고 지루하고 형식적인 차례를 과감하게 생각했고, 주례 없이 부부가 하객들을 마주 본 채로 진행되었다.

"내가 꿈꾸는 결혼식에 대해 이야기하면, 주위 사람들은 '우리도 다 그렇게 하고 싶었어. 하지만 결혼은 두 사람의 문제가 아니야.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치지. 결국 기존 결혼식과 똑같이 하게 돼'라고 말했어요. 물론 저희 부모님들도 이 결혼식이 낯설어서 걱정하고 불안해 하셨어요. 하지만 우리가 하는 일이 나쁜 게 아니니, 잘 설명해 드렸더니 충분히 이해해 주셨죠. 결혼식이 끝난 후엔 너무나 좋아하셨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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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장식 새벽 꽃시장에 가서 사온 꽃으로 직접 예식장 내부를 꾸몄다. 서로가 걸어온 길을 보여주는 사진도 걸었다. 돌아갈 땐 하객들이 꽃 양동이를 가져갔다. ⓒ 장대상·이성아


신부들은 식 전날 피부 관리 받기 바쁜데, 성아씨는 새벽 3시까지 양가 어른들의 '코사지'와 본인의 화관을 만들었다. 열심히 준비한 만큼 만족스러웠단다. 예식 치른 지 반 년이 넘었건만, 그때 선물로 받은 화분의 꽃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참석한 친구가 메시지를 보내오기도 한다. 두 사람의 생각과 계획대로 모두가 즐거운 결혼식이 된 것이다.

적게 벌고, 아주 잘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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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사람들과 마주보며 주례 없이 신랑 신부가 주도적으로 진행한 결혼식 ⓒ 장대상·이성아


결혼 직전에 미술 학원을 운영했던 성아씨는 자신의 꿈을 위해 하던 일을 접고 개인 작업을 하고 있다. 지금은 대상씨도 회사를 나와 대학원을 다니고 있다.

"대학 시절,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깨달은 것이 '힘들어도, 하고픈 일을 하는 사람이 행복하구나'는 것이었어요. 지금 우리의 상황이 꿈을 위해 최소한의 돈을 버는 상태가 되었는데, 서로가 인정하고 배려하고 아낌없이 응원해주지 않으면 정말 불가능하고 무모한 일이잖아요.

게다가 아내는 얼마 전 아이도 가졌고요. 아이를 낳으면 또 다른 삶을 살게 되겠지만, 지금 현재로선 적게 벌고 적게 쓰면서 살아가니 또 아주 불가능한 일도 아니더라구요.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던 우리의 결혼식처럼요. 불안하지만 '행복'의 끈을 놓지 않고 서로 손 잡고 열심히 살아보려고요."

아, 인터뷰를 마치면서 대상씨가 좋은 팁을 전해줬다. 예식장은 몇 달 전에 예약할 때가 가장 비싸단다. 한두 달 정도의 여유만 두고서도 충분히 예식장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오히려 그때가 저렴할 수도 있다고…. 스릴을 즐길 줄 아는 부부가 있다면 이 팁을 활용해보기를!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박진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askdream.com)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결혼식 #셀프웨딩 #니콜키드박 #박진희박 #국립중앙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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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담도 순식간에 뒤집어 즐겁게 살 줄 아는 인생의 위트는 혹시 있으면 괜찮은 장식이 아니라 패배하지 않는 힘의 본질이다.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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