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상에 공룡알이 워딧따요?"

[경상도 여자의 전라도 생활 이야기]

등록 2015.01.25 13:51수정 2015.01.25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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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오고 난 뒤 매서운 추위가 찾아왔다. 눈이 녹아 내리다 고드름이 돼 버렸다. ⓒ 김윤희


시골의 겨울은 여름과 매우 다르다. 뜨거운 여름, 온 대지를 뒤덮고 있던 온갖 식물들이 겨울이 되자 약속이나 한 듯 사라져버린다. 여름에는 식물의 모든 에너지가 찌는 태양에 데워져 공기 속을 부유하고 있었다. 공중에 떠 있던 에너지는 천천히 하강하다 겨울을 맞으면 땅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개구리가, 곰이, 뱀이 겨울잠을 자듯이 자연도 쉼이 필요한 것이다.


오밀조밀 모여있는 도시의 집들과 달리 산촌의 집들은 대머리 아저씨의 듬성듬성 난 머리카락처럼 집들 사이의 거리가 멀다. 그래서 강한 바람이 집안으로 쳐들고 찬 기운을 온 몸으로 맞다보니 처마마다 고드름이 매달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방안에 앉아 밖을 내다보고 있으면 휑한 밖이 더 매서운 추위를 견디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러하니 어찌 춥다며 손만 호호 하고 있겠는가.

나는 양말을 겹겹으로 신고, 내복 위에 기모로 된 옷을 껴입고, 그 위에 두툼한 외투와 기다란 목도리로 얼굴을 칭칭 감고 길을 나섰다. 누가 보면 매서운 한파라 생각하겠으나 추위가 많은 나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

누렇게 익은 벼들이 햇살 아래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던 때가 어제 같은데 벼는 햅쌀로 변신하여 밥상에 올라 온 지 두 달이 지났다.

"저건 공룡알이야, 그건 소들의 밥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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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 맨 앞줄에 있는 짚단을 기계에 넣으면 중간에 있는 투명 비닐을 쓴 원기둥이 된다. 그리고 색새 비닐을 입히면 맨 뒤에 보이는 옥색 공룡 알이 된다. ⓒ 김윤희


논을 사이에 두고 난 길을 따라 걷고 있으니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우거져 마치 정글을 연상케 하던 산들도 제 몸에 묻어 두었던 무덤들을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밭에는 겨울을 나는 시금치만 간간이 얼굴을 내밀고 있을 뿐 수분이 빠진 흙은 바람에 먼지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논두렁에는 바람 따라 몸을 기울던 벼는 없고 젖은 땅 위에 여러 가지 색깔의 물체만 가득했다. 

"아, 공룡알이다."

나는 다양한 색깔을 띠는 물체를 알고 있다. 처음부터 '공룡알'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것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누군가에게 물었다.

"저기 동글동글한 거 뭐예요? 멀리서 보면 대형 각설탕 같기도 하고 어디에 쓰는 거기에 논두렁 위에 놓아 둔 거예요?"
"공룡알이야. 그건 소들의 밥이지. 그리고  사람들이 가져가길 기다리는 거야."

'공룡알이 소들의 밥이라고? 소들이 왜 공룡알을 먹어?' 그때 나는 집에서 키우는 오리가 낳은 알이 생각났다. 공룡알을 왜 비닐에 싸 뒀지? 그건 그렇고 요즘 시대에 공룡이라니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공룡이 사라진 지 오래 되어도 너무 오래 돼서 언제라고 말할 수 없다. 설마, 진짜 공룡알은 아니겠지?

'공룡알'이 있는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가까이 다가가 공룡알의 정체를 확인해야 했다. 크기가 놀라울 정도다. 공룡알 가운데를 파내고 나를 집어넣는다면 일곱 명의 내가 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비닐 덩어리를 어떻게 소가 먹는다는 건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크기는 하니까 많은 소들이 먹을 수 있겠지만 소는 초식 동물이 아닌가?

나는 발길을 돌려 많은 농사를 짓는 아랫집 아저씨를 찾아갔다. 여름이면 논이며 밭으로 일을 하러 다니느라 바쁜 아저씨가 한가하게 창고 정리를 하고 있었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겨울이라 한가해 지셨겠어요?"
"겨울이라고 한가 하간디요. 고추대도 치워야 하고 다른 일도 많제. 금세 봄 오는디 준비할게 많제."

나는 창고에 앉아 일하는 아저씨 곁으로 조심스레 다가가며 물었다.

"뭐 좀 여쭤보려고 그러는데."
"내가 뭘 알간디요. 왔응께 물어나 보쇼."
"논두렁에 있는 공룡알 말이에요."

아저씨가 이상하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뭔 개풀 뜯어 먹는 소리여, 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공룡알이 뭐시오? 요즘 시상에 공룡알이 워딧따요?"
 "있는데. 논두렁에 하얀 거요. 옥색으로 된 것도 있고 검은 색을 된 것도 있는데. 비닐로 싸 둔 공룡알 말이에요. 지나다니면서 많이 봤어요. 아저씨 논에도 있던데요?"

"근디 워째서 공룡알이라고 부른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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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다가가 찍은 공룡 알이다. 실물은 정말 크다. ⓒ 김윤희


나는 아저씨에게 내가 알고 있는 공룡알에 대해서 설명했다. 아저씨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다 도리어 내게 묻고 있었다.

"그게. 그라제. 근디 워째서 공룡알이라고 부른다요? 난 여지껑 그런 말을 듣덜보덜 못 헛는디."

난감한 상황이다. 이유를 모르는 건 나도 마찬가지다. 누가 처음 그것을 공룡알이라고 불렀는지도 모른다.

"지푸라기 모아둔 걸 워째서 공룡이 낳은 알이라고 하는 겨? 공룡이 알을 낳는 감요?"
"네, 공룡이 알을 낳는 건 맞아요. 영화에서 보면 공룡이 알을 낳거든요."

고개를 갸웃거리던 아저씨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아저씨의 궁금증은 공룡이 알을 낳는 유무였으니까 해결된 것이다.

'공룡알'의 탄생에 대해서 농사꾼에게 들은 것이 아니고 농사와 상관없는 이에게 듣게 되었다. 벼를 타작하고 나면 짚단이 생긴다. 짚단은 풀어헤쳐져 있고 비를 맞으면 금방 썩고 오랫동안 보관하기 쉽지 않다. 그런데 공룡알로 만들어 놓으면 오랫동안 두고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먼저, 모아둔 짚단을 투명한 비닐로 동그랗게 감싼다. 짚단을 모으고 묶는 것까지는 사람 손으로 가능하나 투명 비닐을 감싸는 일은 기계의 도움이 필요했다. 짚단을 차곡차곡 기계에 넣으면 원기둥 모양으로 모아져 투명한 비닐이 씌워진 채 나온다고 했다. 그 다음은 탄력이 좋은 흰색 비닐로 칭칭 감는데 안으로 공기가 들어가지 않게 완전 밀봉을 해야 한다. 그러면 비를 맞아도, 오랫동안 야외에 방치해도 그 속에 있는 짚은 잘 말려진 상태를 계속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전국에 있는 목장 주인들이 찾아와 그것들을 사 가는 것이라고 했다. 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공룡알의 주인이 정해진다고 했다. 논마다 주인이 다르고 한 논에서 나오는 공룡알을 여러 사람이 사가는 경우가 있어 사가는 이가 알아볼 수 있게 비닐의 색깔로 구분하거나 매직으로 표시를 해 두기도 한단다.

공룡알을 보고 있자니 어린 시절 운동회 날 청군 백군으로 나뉘어 경기를 하던 때가 떠오른 것은 왜 일까.

쌀농사를 짓는 농부들은 잘 알지 못하는 공룡알을 농사와 상관없는 사람이 더 잘 알고 있는 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다. 공룡알이라는 말은 처음 사용한 사람은 누구일까?
#농부 #공룡 알 #논두렁 #시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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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경의로움에 고개를 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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