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교육감 시대, 학교사회 낡은 관행과 질서부터 개선하자

등록 2015.01.25 18:20수정 2015.01.25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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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교육감 시대, 학교교육은 달라야 한다. 진보의 가치인 인권 존중과 평등교육, 교육복지 실현을 위해서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세월호 이후 학교사회는 변화의 급물살을 타야 한다. 그것이 2014년 6・4 지방선거 당시 16개 시도교육감 중 13개 시도에서 진보교육감이 당선된 이유이다. 그러나 지난 반년 동안 9시 등교와 학교장 수업 등 변화의 조짐은 일부 보였지만 수십 년 동안 학교사회에 똬리를 틀고 있는 낡은 관행과 질서에 대한 변화는 미동조차 없다. 

교사가 수업연구와 학습지도, 학생 상담과 생활지도에 전념할 수 있도록 일체의 형식주의와 공문서 등 잡무를 폐지해야 한다. 그러나 학교현장에서는 여전히 매학기 교과협의록, 부별협의록 작성 등 형식주의가 지배한다. 특히 신학년 초인 3월, 학생상담이 교육적으로 절실히 필요한 그 시기에 형식적 잡무는 집중된다.

실제 학교현장에선 교과협의회가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게 현실이다. 학습 진도와 수업 평가, 그리고 소소한 학습 자료 배부에 이르기까지 교과별 협의는 상시적으로 이루어진다. 부별협의도 마찬가지이다. 교육적 쟁점이 되는 사안에 대해 부서별로 의견을 나누고 협의하는 게 일상적 풍경이다. 문제는 교육활동의 당연한 일상적 풍경들을 요식행위처럼 문서로 남겨야 하고 학교장은 결재를 요구한다는 데 있다.

초중고 방학은 한반도 전체가 방학임을 모든 국민이 다 아는 사실인데 교사들로 하여금 교육공무원법 41조를 거론하며 결재를 올리라고 닦달하고 겁박한다. 대부분 교사들은 권력이 시키는 대로 잘 따라한다. 이행하지 않을 시에 따를 불이익을 두려워한 탓도 있고 혹시나 모를 신분 상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고픈 탓이다. 그러나 유일한 근거 규정인 교육공무원법 41조 규정을 단 한 번이라도 살펴 본 교사라면 기존 관행처럼 반복돼온 교육청과 학교관료들의 지시가 얼마나 형식주의에 빠진 요식행위인지 알 수 있다.

교육공무원법 41조(연수기관 및 근무 장소 외에서의 연수) :
「교원은 수업에 지장을 주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소속기관의 장의 승인을 받아 연수기관이나 근무 장소 외의 시설 또는 장소에서 연수를 받을 수 있다.」

방학(放學)은 수업이 없다. 학문(學文)에서 해방(解放)된 시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천적으로 수업에 지장을 주지 아니한다. 그런 이유로 41조 규정은 방학이 아닌 학기 중에 적용될 규정이다. 학기 중에 교사가 학생 수업에 지장을 주면서까지 연수를 받는 경우에 이를 규제하고 관리하기 위한 규정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교사, 학생 모두 학문에서 놓인 방학 기간 동안 교사는 자기 연찬과 여행, 그리고 휴식으로 재충전한다. 교육공무원법 38조 1항과 2항 역시 「직책 수행을 위해 교원은 끊임없이 연구와 수양에 힘써야 하고」(1항)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교육공무원의 연수와 그에 필요한 시설 및 연수를 장려할 계획을 수립하여 실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2항)며 연수를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교육공무원법 취지에 따라 서울시 교육청과 노동조합 간 맺은 2011년 단체협약 제8조(교원의 업무 부담 경감)의 규정은 다음과 같다. 「학교는 방학 기간 동안 교사의 자기 연찬의 시간을 보장하고 학사운영 또는 학생생활지도 상 필요한 경우에는 교사의 의견을 수렴하여 근무시간, 근무방법, 근무형태를 결정한다.」 방학 중 교사의 자기 연찬 시간을 보장해야 하는 게 학교장의 제1의 임무이다. 그럼에도 오늘날 상당수 학교 관료들은 의무적으로  학교에 출근하도록 지시한다. 그 이유는 학교에 청소하러 나온 학생봉사지도와 자율학습지도, 그리고 공문처리 명분상 교사가 방학 중 근무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방학 중에 학생들이 학교에 나와서 가볍게 쓰레기통 비우고 나서 봉사 아닌 봉사시간을 인정해주는 것이 과연 교육기관에서 해야 할 일인지 의문이 든다. 「가브리엘 천사의 집」 등 중증 장애인 시설기관이나 일본'군 위안부' 할머님들의 거처인 「우리집 쉼터」를 소개하여 제대로 된 봉사활동을 하도록 안내하는 게 교육기관인 학교가 마땅히 해야 할 역할 아닌가!

방학 중 급한 공문은 거의 없는 실정이지만 혹시라도 공문을 처리해야 할 일이 발생한다면 해당 부서 부장교사를 비상연락망으로 호출하여 시행하면 될 일이다. 이것 역시 학교장 등 학교관료들이 내세우는 구차한 억지논리이다.

마지막으로 자율학습 지도인데 보통 방학 때 학교장, 교감, 행정실 직원이 출근하고 방과후 수업으로 학교에 나오는 교사들이 통상적으로 10명이 넘는다. 무엇보다 아이들 자율학습을 지도하는 자율학습관리사가 따로 근무하고 있다. 그럼에도 학교관료들은 교사로 하여금 자기연찬의 시간을 갖도록 배려하기보다는 방학 중 근무를 명하려 고집을 피운다. 과거 비리가 많은 부패사학의 경우 월급을 공짜로 주기 싫다며 일주일씩 근무를 명하는 경우도 많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방학 중 자비로 국외여행을 떠나는 경우에도 교육공무원법 41조를 거론하며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을 통해 사전에 학교장의 허가를 받아 연수계획서를 제출해야 하고 귀국 후에는 연수보고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한다. 전국에 40만 교사 가운데 이렇게 시키는 대로 따라하는 교사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 교육 관료의 지시를 따라하든 거부하든 중요한 것은 그런 일 자체가 형식주의이자 국가가 교사를 일일이 통제하는 장치로 인식된다는 점이다.    

이 모든 낡은 관행과 학교 질서들이 과거 일제 식민지 시대나 군사독재 시절, 교육을 정치의 도구로 전락시키며 교사를 통제했던 국가주의 교육행정의 잔재가 아닐 수 없다. 국민교육헌장을 암송하게 했던 시절처럼 교육과정조차 일일이 통제하며 이것은 확대해서 크게 가르치고 저것은 절대로 가르치면 안 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국가가 학교사회에 이것저것을 주문하면서 어떤 지식은 반드시 암송하도록 했고 급기야 시험문제로 출제까지 했던 시절의 풍경이다. 국가행사에 교사와 학생을 손쉽게 동원했던 시절, 교사를 국가권력의 말단 행정직 부리듯이 하대했던 상명하복의 시절엔 그것이 통했다.

그러나 21세기 학생 인권과 교육권을 중시해야 할 민주주의 시대, 교육행정은 달라야 한다. 매일 아침 등교하는 모든 학생들을 잠재적인 복장 위반자, 규칙 위반자로 근엄한 얼굴을 하고 주시하는 아침 정문지도는 마땅히 폐지돼야 한다. 아이들 복장지도가 정말 필요하다면 일과중에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성찰이 없는 교육과 그런 교육의 하나로 매일 반복되는 교사들의 관성적인 교육활동이 수십 년 동안 학교를 학교답지 않게 만들고 교사와 학생 관계를 매순간 일그러뜨려 왔다. 배움은 즐거워야 학고 학교는 호기심 어린 신나는 공간이 되어야 하는데 학생들의 인권은 늘 교문 앞에서 발을 멈추고 만다.

지시와 순종에 익숙한 학교문화에 길들여진 아이들, 상명하복의 수직적인 학교문화 속에서는 입시 중심의 기능적 지식인, 기능적 교사, 기계적 인간군상만 양산할 뿐이다. 스스로 생각하고 주체적으로 판단하며 지성과 양식을 지닌 세대를 길러내기 위해선 낡은 관행 속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 오늘도 성찰 없이 반복되는 학교의 낡은 질서에 갇힌 학교문화를 생각하면 숨이 막힌다. 진정으로 교사의 교육활동을 돕는 교육지원청이라면 학교의 낡은 관행과 질서부터 혁파하자. 그게 진보교육감 시절, 교육청의 참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나아가 성찰 없이 반복을 강요하는 학교관료들에게 요청한다. 교육은 끊임없는 자기 성찰이자 자기 성숙의 시간이 되어야 한다. 교사들에게 지시하며 군림하려 애쓰지 말고 일선 학교 교사의 교육활동을 돕는 진정한 장학활동가로 거듭 나길 요청한다.

마지막으로 페스탈로치를 교육사에서 제대로 읽고 따라하자.  18세기 스위스 시민혁명의 내전 속에서 「교육을 통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봉건적 관행과 학교사회 낡은 질서와 평생을 싸웠던 스위스 교원노조의 아버지 페스탈로치를 기억하며 살아가자. 13개 시도에서 진보교육감이 당선된 것은 세월호 참사가 주는 교훈이 절대적이었다. 진보교육감들한 분 한 분마다 훌륭한 점도 많겠지만 보수색채가 짙은 부산, 경남, 충남, 충북, 대전에서조차 진보교육감이 줄줄이 탄생된 것은 방송 지시에 따라 '가만히 있으라'는 세월호 참사 이전 교육에 대한 통한의 성찰과 참사 이후 우리 교육이 나아가야 할 시대의 명령, 아픈 외침으로 해석해야 한다.
#세월호 #국가공무원법 #낡은 관행 질서 #페스탈로치 #교원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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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원으로 가입하게 된 동기는 일제강점기 시절 가족의 안위를 뒤로한 채 치열하게 독립운동을 펼쳤던 항일투사들이 이념의 굴레에 갇혀 망각되거나 왜곡돼 제대로 후손들에게 전해지지 않은 점이 적지 않아 근현대 인물연구를 통해 역사의 진실을 복원해 내고 이를 공유하고자 함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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