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수, 갑질 정도껏 해라"... 화난 영화인들, 일어났다

[게릴라칼럼] 부산시의 이용관 위원장 흔들기가 문제인 이유

등록 2015.01.27 14:58수정 2015.01.27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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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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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병수 부산시장과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 부산국제영화제


결국, 올 것이 왔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당시 <다이빙벨> 상영 이후 만난 영화인들의 근심은 한데 모아졌었다. "상영 이후가 더 걱정"이라는 것이었다. 결국 정치권 등 외부 인사들이 쥐고 흔든 분란은 현실이 됐다. 부산시가 부산국제영화제의 수장 이용관 집행위원장의 사퇴를 두고 '압박'을 가한 것이다.     

"부산시는 부산국제영화제를 침몰시키고 싶은가?"


25일, 안정숙 전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이 본인의 트위터에 쓴 글이다. 영화인이라면, 아니 영화제를 한 번이라도 찾았던 관객이라면 누구나 부산국제영화제를 둘러싼 작금의 상황을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그 사정을 좀 더 아는 이라면 안 전 위원장과 같이 분노를 금치 못할 것이다.

영화인들은 지난 25일 저녁 긴급 모임을 진행해 26일 오전 한국영화제작가협회 등 12개 단체 명의의 성명을 발표했다. <시> <도희야> 등을 제작한 나우필름의 이준동 대표 역시  장문의 글로 강한 분노를 표출했다. 이번 사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영화제 보이콧을 하겠다는 뜻도 천명했다.

"부산국제영화제를 아시아의 대표적이자 최고 영화제로 키운 것은 부산시민과 한국영화계, 그리고 이용관 위원장을 비롯한 영화제 전문 스태프이지 서병수 시장이 아니다. 이용관 위원장은 부산시장이 임명하는 단순한 위원장이 아니라 부산국제영화제를 사실상 만든 당사자다.

이 위원장이 경성대 영화과 교수로 있을 때 김지석 등 몇 명과 국제영화제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고 기획하고 창설하고 초대 김동호 위원장을 모시고 와서 지금까지 키운 사람이란 말이다. 서병수가 도대체 오늘의 부산영화제가 있기까지 한 게 뭐가 있다고? '갑'질도 정도껏 해라."

사퇴 권고하고 이틀 만에 '조삼모사' 말 바꾸는 부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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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들, '세월호 가족들과 끝까지' 영화인들이 3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우동 영화의전당 앞에서 열린 <철저한 진상규명이 보장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영화인 1123인 선언>에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 이정민


이 모든 분란의 출발이 고작 <다이빙벨>이라는 다큐 한 편 때문이라면, 어이가 상실되고도 남을 일이다. 그리고 그 시발점이 영화제를 지원해도 모자를 부산시라는 점은 탄식을 금치 못하게 만든다. '문화융성'을 주창했던 박근혜 정부가 도리어 세계영화계가 주목하는 부산국제영화제 죽이기라니,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왜 그런지 하나하나 따져 보도록 하자.

지난 23일 정경진 부산시 행정 부시장과 김광회 문화관광 국장이 부산국제영화제 이용관 위원장을 직접 만났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이 위원장은 '서병수 부산시장의 뜻'이라며 사퇴를 권고 받았다고 한다.

당초 "직접적 사퇴 언급은 없었다"던 부산시는 이 같은 사실이 부산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바로 말을 바꿨다. 논란이 일파만파로 커지자 부산시는 '부산국제영화제의 운영 개선과 개혁 추진 필요성에 대한 부산시의 입장'이란 보도자료를 내놓기에 이른다. KNN(송준우 기자)에 보도된 <부산시, 이용관 위원장 사퇴 종용>에 대한 설명자료의 내용을 간추리면 이러하다.

"부산시는 부산국제영화제가 개최 20주년의 계기로 새롭게 도약하기 위해서는 영화제의 과감한 개혁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영화제 개최 초기와 달리 영화제 개최 예산이 매년 121억 원이 이르고 정규 직원 수도 38명에 달하는 등 그 규모가 커졌다. 국내외적으로 영화제의 역할과 책임도 지대해졌다. 부산이 영상산업 도시로 발전하고, 영화가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게 하여야 한다. 영화제가 새로운 비전과 패러다임을 정립해야하는 이유이다."

뜬금없이 '일자리 창출'이라니, '창조경제'를 부산국제영화제에까지 심으려는 박근혜 정부의 의지가 가상하다. 구체적인 사퇴 권고 이유는 아래와 같다. 여기서, 세 번째 '작품 선정 시 객관성과 투명성 확보'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첫째, 직원 채용 시 공개채용 절차를 그치지 않고 신규인력을 확보함으로써 조직의 폐쇄성이 높아졌다. 둘째, 업무의 긴급성을 들어 사전결재 없이 예산을 집행하는 등 재정운영이 방만하다. 셋째, 프로그래머 활동의 독립성을 유지하고서도 작품성 제고를 위해 (영화제 작품 선정시)객관성과 투명성을 확보할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등이다.

특히나 '작품 선정 시 객관성과 투명성'은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영화는 상영하지 않을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해, 부산시는 지난해 12월 이례적인 지도 점검으로 영화제 측을 압박한 바 있다. 그러자 <다이빙벨> 논란과 관련한 보복성 감사가 아니냐는 해석이 영화계 안팎에 무성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새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이 임명된 직후 이용관 위원장에게 사퇴 압박이 정면으로 가해진 것이다.

논란과 영화인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부산시측은 "사퇴 권고는 없었다"고 말을 바꿨다. 들은 사람(이용관 집행위원장)은 있는데, 권고는 없었다니. 부산시의 조삼모사식 대응에도 불구하고, 본질이 변할 것 같진 않다. <다이빙벨> 논란 이후 부산시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은 '이용관 집행위원장과 부산영화제 길들이기'가 그것이다. 26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한 김지석 부산국제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도 이러한 분위기를 부인하지 않았다.

"부산시 쪽에서 다 내놓고 얘기를 안 한 측면이 있겠지만 결국은 그 영화(<다이빙벨>) 때문에 이렇게 됐다고 생각을 하십니까?" (손석희 앵커)

"오늘도 영화인들이 성명서를 발표했고요. 실제로 지난해 영화제 기간 중에 부산시에서 상영철회 요구가 있었기 때문에 영화계에서 이에 대한 보복 조치가 아니냐 라고 보시는 것은 저는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현재 부산시에서 저희에게 요청해온 시정 사항에 따르면 그 부분을 구체적으로 지적하진 않았기 때문에, 저희로서는 부산시가 제기한 문제에 대해서 시정하겠다라는 답변만 현재는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부산시, 이용관 집행위원장 사퇴 종용 즉각 철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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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9회 부산국제영화제 전야제 행사에 참석한 서병수 부산시장(왼쪽에서 세번째)과 이용관 집행위원장(우측 끝) ⓒ 성하훈


서병수 시장은 지난해 7월 취임했다. '문화 융성 도시 부산'을 부르짖었던 그는 취임 100일 만에 공식 출품된 <다이빙벨>의 상영을 취소 요청한 바 있다. "정치적 중립을 훼손하는 작품은 틀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이유에서였다. 영화인들과 관객들은 안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겠다'는 국민의 정부의 기조가 영화제에는 정답이라는 것을.

하지만 전체 120억 상당하는 영화제 예산에 60억을 지원하는 부산시의 입김이 20회를 맞는 이 명실상부한 국제영화제를 이렇게 뒤흔들었다. 예산의 독립이 없다면 아마도 영원히 '부산(시)'국제영화제에서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관이 검열하는 '문화융성'이 과연 가당키나 할까. 성명을 낸 12개 영화단체도 이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우리는 이번 이용관 위원장 사퇴 권고가 <다이빙벨>을 상영한 것에 대한 보복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부산시장이 부산국제영화제의 조직위원장이긴 하나 특정 영화를 틀거나 틀지 말라고 할 권리는 없다. 정상적인 영화제라면 정치인이 작품 선정에 관여할 수 없다. 프로그래머들의 작품 선정 권한을 보장하는 것은 영화제가 존립하는 가장 중요한 근거이기 때문이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지난 19년 동안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로 급성장한 것은 이런 원칙이 지켜졌기 때문이다. 임기가 1년 넘게 남은 이 위원장이 사퇴를 종용 당한 것은 부산시의 보복 조치인 것이 분명해보이며 이는 단순히 이용관 위원장 한 개인의 거취 문제가 아니다. 표현의 자유를 해치고 영화제를 검열하려는 숨은 의도는 결국 영화제의 독립성을 해치고 19년을 이어온 부산국제영화제의 정체성과 존립마저 흔들고 있다."

부산시의 이러한 영화제 흔들기는 부산 분위기에 정통한 지역 언론으로부터 더 큰 질타를 받고 있다. 부산시의 지역언론들은 대체로 영화제 측을 옹호하고 서병수 시장과 부산시의 압박을 비판하는 분위기다. 27일까지의 기사와 사설 제목만 봐도 그러하다.

"위원장 사퇴 요구한 적 없다" BIFF 파문 한발 뺀 부산시
영화계 "BIFF·부산 촬영 전면 보이콧"
[이 위원장 사퇴 압박 파문 확산] "정치적 입맛 맞춘 BIFF 손보기"
[사설] 부산시, BIFF 위원장 사퇴 종용 웬 말인가(이상 <부산일보> 관련 기사)
이용관 "이렇게 물러나진 않겠다"
BIFF 집행위원장 입장밝혀
BIFF는 시비 받는 법인…부산시 지도점검서 위원장 바꿀 권한 있나
12개 영화단체 비상기구 곧 발족, 野는 특위 추진
영화제의 비전은 경험과 통찰이 쌓여 나온다(이하 <국제신문> 관련 기사)

이 모든 분란과 피로감, 누구를 위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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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5일차인 지난해 10월 6일 오전 부산 해운대 우동 CGV센텀시티점에서 초청작 <다이빙벨> 상영회 및 관객과의 대화에서 이상호-안해룡 공동감독이 관객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이정민


그렇다면 이렇게 부산국제영화제를 손보려는 진짜 이유는 뭘까. 최근 만난 한 영화계 관계자는 "당연한 것 아니냐"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영화계 환경 전반에 정통한 그는 익명을 요구하며 "요즘 청와대에서 직통으로 요구가 하명된다고 하더라"며 "<다이빙벨> 같은 영화를 더 이상 영화제에서 몰아내려는 것 아니겠는가"라고 전하기도 했다.

그렇다. <다이빙벨> 같이 대통령과 정부의 심기를 건드리는 영화를 아예 추방시키고, 국민들로부터 차단하는 것. 이 뿐만이 아니다. <다이빙벨>과 같인 사회적으로 민감한 문제를 건드리는 작품들에 대해서는 정부가 단 한 푼도 지원할 수 없고 상영조차 막겠다는 아주 치사하고 무시무시한 논리가 깔려 있다.

이를 위한 전 방위적인 움직임은 이미 시작됐다. 새롭게 출범하는 영화진흥위원회는 '한국예술영화 좌석점유율 보장 지원' 사업이나 '(상영)등급분류면제추천제도'와 같이 예술/독립영화 지원책이나 상영제도를 개선(이거나 개악)하려고 하고 있다. 입맛에 맞는 다양성 영화의 전용관 상영만을 지원하고 또 영화제에서도 사전에 등급분류가 된 영화만을 틀게 하겠다는 취지다. 이러한 제도와 기준 손보기는 '<다이빙벨>류 상영/지원 불가'란 의도에 정확히 부합하는 것으로 보인다.

영화제의 근본 취지는 말 그대로 '다양성'이다. 예술도 마찬가지다. 어느 예술이, 예술가가 (고작 5년짜리) 정부의 입맛에 맞는 작품만을 만들 것인가. 심지어 부산국제영화제는 20년을 지속해 왔다. 박근혜 정부는 이제 고작 만 3년도 되지 않았다.

그런 정부와 여권이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국제영화제를 압박하고 뒤흔드는 꼴이야말로 '국제적 망신'이다(다행인지 불행인지, 세계영화제에서도 이번 논란을 주시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영화팬으로서도 정말 창피하고 부끄럽다. 부산시가 이번 논란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영화제를 원상태로 돌려놓지 못한다면, 영화계는 전면전도 불사할 것으로 보인다. 도대체, 이게 다 누구를 위한 것이란 말인가. 대통령인가, 아니면 새누리당인가. 제발, '국민을 위한 것'이란 거짓말은 하지 않기를 바란다.   
#부산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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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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