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에게 '반말' 툭툭, 이 어린이집 끌리네

숲을 놀이터 삼아 커가는 아이들, 공동육아 어린이집 '야호'

등록 2015.01.31 17:40수정 2015.02.01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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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호' 아이들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프로그램에 따라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스스로 놀이를 만들어 간다. ⓒ 한혜미


"안 가!! 싫어!! 아악!!"


꼬마의 울음에 아파트 실내 복도가 쩌렁쩌렁 울렸다.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되풀어 설명을 해도 막무가내였다. 나름 말이 통하는 6살 아이를 존중해 "엄마가 다시 회사에 나가게 됐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알리다 벌어진 사달이었다.

출산한 지 100일이 조금 넘어 아기를 할머니 댁에 보내고 복직했다. 워낙 먼 거리다 보니 한 달에 두 번쯤 짬을 내어 만났고, 그렇게 꼬박 2년여를 살았다. 생의 절반동안 가장 먼저 '이별'을 익힌 아이. 한 동안 곁을 지킨 엄마가 '출근'한다는 소식이 이별과 같은 말, '불안'을 자극한 거 같았다. 이해한다. 암, 이해하고말고….

고민은 깊어졌다. 나와의 분리불안은 그렇다 쳐도, 왜 유치원을 좋아하지 않을까 궁금했다. 유심히 새겨듣지 않아 그렇지 일주일에 두 세 차례는 등원하기 싫어서 퉁퉁 부어있기 일쑤였다. 꼬박 2년을 다녔건만 담임선생님을 포함해 누구와도 살갑게 인사하는 법이 없으니, 낯가림이 심한 아이려니 해도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가만있어 보자. 아이가 가슴을 활짝 열고 웃은 게 언제더라. 엄마 품에 돌아와 1년을 꼬박 살고도 왠지 서먹한 우리의 관계가 돈독해 지길 바라며 떠난 제주도였다. 그렇지!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고 놀고 또 놀던 그 때, 바다를 휘젓고 다니는 아이의 '꺄르르' 웃음소리가 힘 센 제주 바람에도 지지 않고 울려 퍼진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오, 그날처럼 오직 뛰어 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강요된 학습이 아니라 놀이를 통해 커가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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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호' 어린이집의 송년잔치 현장. 3살 막내 동생들의 재롱 잔치가 한창이다. ⓒ 한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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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 강화도 갯벌로 떠난 야호 가족들과의 들살이 풍경. ⓒ 한혜미


본격적으로 수소문해 찾은 곳이 고양시 일산에 있는 공동육아어린이집 '야호'다. 자연을 벗 삼아 나들이 가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프로그램에 따라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스스로 놀이를 만들어 가는 곳, 어른들이 시키는 학습이 아니라 놀이를 통해 아이들이 성장하는 곳이었다.

또 아이들이 아침(간식) 점심 오후(간식)마다 건강한 먹거리를 양껏 먹고, 텃밭에서 직접 키운 갖은 채소로 간식을 손수 만들어 먹는다. 19년의 깊은 역사가 숨 쉬는 바로 여기라면 믿고 맡길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어린이집 운영도 달랐다. 아빠·엄마들과 교사들이 함께 어린이집 운영에 머리를 맞대고, 단순히 아이들을 맡겨 키우는 곳이 아니라 '작은' 공동체를 지향하는 삶이 있는 곳이 야호다.  돈벌이를 위해 운영하는 어린이집에는 열악한 처우에 시달리는 교사의 일탈을 감시하기 위해 CCTV가 필요할지 모르지만 야호는 그렇지 않다. 

물론, 애초부터 공동육아를 염두에 둔 건 아니었다. 다만, 아이가 마음껏 뛰어 노는 데에 뜻을 함께 하는 부모 여럿이 모여, 더불어 육아를 실천하자는 데 공감해 긍정적으로 고려했을 뿐이다. 공동육아가 출발한 1990년대 초반의 시대적 배경이나 공동육아가 지향해 왔던 나눔과 자유의 내용은 지금도 조금씩 천천히 알아 가고 있다. 

입학 후, 우리 아이는 어떻게 지냈을까. 아이의 밝아진 모습을 보면 작년 한 해 공동육아를 선택한 것에 일말의 후회가 없다. 엘리베이터에서조차 낯선 사람이 오를라치면 내 치마폭에 꽁꽁 숨던 아이였다.

그런데 야호에서만큼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살갑게 손 흔들어 인사하는 모습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엄마, 야호에서는 선생님이라고 안 하고 그냥 캥거루, 리본 이렇게 부르면 된대. 리본이 알려줬어."

사실 야호의 '반말' 문화를 처음 접한 순간에는 적응이 어려웠다. 혹시 '예절'을 익히지 못하는 건 아닐까 싶어 우려도 됐다.

하지만 지금은 대찬성이다. 말을 낮춤으로써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관계의 벽을 허물고 모두의 의견을 존중하자는 취지에 깊이 공감한다. 아무 거리낌 없이, 어떠한 적응 기간도 두지 않고 모두의 별명을 부르는 데에 자연스러워 하는 아이를 보면서 나의 확신은 더욱 견고해 진다. 

함께 사는 법을 배워가는 공동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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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놀이 삼매경에 빠진 아이들. ⓒ 한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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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마실 온 형아들과 함께 3살 생일을 맞은 둘째 녀석. ⓒ 한혜미


그럼, 우리 부부는 어떨까. 결혼 후 터를 잡은 후 6년 넘도록 퇴근 후 출근 전까지 '잠만 자는 곳'이었던 일산에 '좋은 이웃'이 생겼다. 외로운 투쟁 같던 육아를 함께하는 동료들이 생긴 덕분에 고달픈 육아의 짐을 조금은 나눠질 수 있게 됐다. 서로 바쁜 일이 있을 때 돌아가며 아이들을 돌보고 먹이고 씻기고 재우기까지 함께 하다 보니 오히려 즐겁다.

우리도 아이도 훌쩍 '더불어' 사는 삶에 빠졌다. 엄마 없이도 문제없이 '밤마실(친구집에서 하루 밤 함께 보내기)'을 해내는 아이의 가슴에 드디어  '안정감'의 새싹이 자라고 있다.

어린이집을 청소하고, 돌아가면서 일일교사나 어린이집 운영 실무를 맡아야하는 '작은 의무'도 참여의 기쁨 덕에 힘들지만은 않다.

최근 한 두뇌 관련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책 한 권 외우는 것보다 공 한 번 차는 게 두뇌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라고 한다. 행복과학연구소의 이성진 박사는 "세 살 때 운동 능력이 있는 아이가 세 살 때 어휘력이 있는 아이보다 열여덟 살 때 지능이 더 높다"라는 장기간 추적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사람 사는 세상인데 어찌 작은 문제들이 없을까. 하지만 오늘도 내일도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들로 산으로 뛰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변치 않을 거란 믿음이 커지고 있다.
덧붙이는 글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 발행 <공동육아, 2014년 봄>의 일부 내용을 참고 했습니다.
#공동육아어린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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