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도맡은 나, 앞집 부부가 부러웠다

[육아칼럼] 두 아이 엄마의 스스럼 없는 이야기 ②

등록 2015.01.29 12:01수정 2015.01.30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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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남편이 퇴근한 후 다 같이 저녁을 먹은 날.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호젓하게 마트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앞집 부부를 엘리베이터에서 오랜만에 마주쳤다. 앞집 부부는 맞벌이 부부며, 9개월 된 우리 집 둘째와 동갑내기인 아이가 하나 있는 집이다. 그런데 나란히 퇴근하는 부부 곁에 아이가 없었다.


"두 분 같이 퇴근하시나 봐요. 그런데 아이는 어디 갔어요?"
"네, 오늘은 시댁에서 재워 주신다고 해서요."
"아... 아이 친가가 근처에 있나 보네요."
"네, 여기 같은 아파트예요. 친정도 옆 동네라서 하루는 시댁에서 봐주시고, 하루는 친정에서 번갈아 봐주고 계세요."
"아이고... 저 같은 엄마가 진짜 부러워할 만한 상황이네요. 너무 부러워요."

"너무 부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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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육아, 전업맘의 고충. ⓒ flickr


대화를 이어가다가 간단한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사실, 앞집 부부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의 육아 철학과는 다른 그들의 육아였지만) 그들의 육아 여건만큼은 정말 부러웠다. 내게도 시댁이든 친정이든 언니든 오빠든 동생이든 누구든 가까이 있어 육아를 조력해줄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더 있다면... 시댁도, 친정도, 하나 뿐인 총각 남동생도 가까이 살지 않아 도움받기 힘든, 남편이 유일한 육아 조력자인 나로선 그들이 부러울 수밖에 없었다.

아이를 임신했을 때까지만 해도 그 많은 육아서를 읽었지만, 육아가 실제로 이토록 힘들 줄은 몰랐다. 23개월 큰아이와 9개월 작은아이를 집에서 돌보는 엄마의 하루. 아래는 1월 중 쓴 일기 전문이다.

아침에 일어나 부랴부랴 밥하고, 하루 치 이유식을 만들어 놓으면 배고픈 우리 집 먹보 큰아이의 배꼽시계가 기가 막히게 울리나 보다. 동생이 먹는 분유를 탐해 차마 야박하게 끊지 못하고 먹이던 분유를 약 한 달 전부터 자연스레 끊었다.


<응애응애 아기가 울어요>라는 최근 구입한 그림책을 몇 십 번에 걸쳐 보더니 우유는 아기들이 울 때 주는 거라는 생각을 아이 스스로 하게 됐다. 더 이상 분유를 달라고 하지 않는 아이를 보며 훌쩍 컸다는 생각에 너무 감사해 요즘은 삼시 세끼 밥 해 먹이는 것을 아주 열심히 비교적 잘 해내고 있다.

아침 먹이고, 치우고, 놀아주고 같이 청소하고, 간식 먹이고, 또 점심 먹이고, 치우고, 놀아주다 낮잠 재우면 1차 휴식기가 온다. 그것도 두 아이가 함께 낮잠에 들었을 때라야 가능한 휴식. 낮잠에서 깨면 또 간식 먹이고, 놀아주다 틈내서 저녁 식사 준비해 저녁 먹이고 치우고 씻기고 또 놀아주다가 밤잠을 재우는 일상. 아이들은 예쁘지만 그 예쁜 것과는 별개로, 일 자체만으로 봤을 땐 무척 고된 일상.

올해 가장 큰 소원은 큰아이 기저귀를 떼는 일이다. 어찌나 하루에 한 번씩 꼬박 꼬박 배변 활동이 왕성하신지, 그 양도 엄청나고 냄새도 점점 더 고약하다. 시각, 후각, 촉각 그 모든 것에 민감한 내가 견뎌내는 것으로 보아 "이런 게 모성애인가?" 자문한다. 고된 육아 100% 일상을 보내게 될 기한은 정해졌다.

온전히 엄마로만 사는 시간도 금방 지나가 버릴 것 같다. 그때가 되면 또 지금을 추억하며 그리워하겠지. 고된 일상이지만 늘 즐겁게 살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단련할 필요가 있겠다. 무엇을 하든 고되기는 마찬가지일터. 마음이 우선이다.

어린이집 보냈지만...

내 일기에 등장하는 일과는 하나의 거짓 없는 진실이다. 힘들어도 행복해지기 위해 발악하고 있는 현실이다. 보통의 직장인에게 주어지는, 점심 시간 동안 이뤄지는 잠깐의 휴식조차 누리기 힘든 일명 '전업맘'의 하루는 정말 치열하다.

가끔 놀러 와 함께 아이를 돌봐주는 미혼인 친구들이나 친정 가족 그리고 남편의 칼퇴근은 가뭄 속에 내리는 단비처럼 고마울 지경이다. 둘째가 태어나기 직전 즈음, 그러니까 큰 아이가 돌이 막 지났을 무렵 큰아이를 아파트 내 민간 어린이집에 보냈다.

둘째가 태어나면 어떻게 혼자 두 아이를 돌볼지 막막했다. 그래서 보내기 시작한 어린이집은 처음엔 1시간, 그 다음엔 3시간, 몇 주 지나서는 5시간, 그러다가 둘째가 태어난 이후엔 9시간까지 맡기기도 했다. 특히 그 시기엔 남편도 일이 바빠 늦는 날이 많았고, 산후 조리도 덜 된 몸으로 갓난 아기를 돌보며 큰아이까지 봐주기엔 역부족이었던 게 현실이었다. 그러나 잘 지내주리라 믿었던 아이는 내 바람과는 다르게 어린이집에 다닌 뒤로 크고 작은 병을 쉽게 앓았다.

콧물이 조금만 나도 중이염에 걸려서 두 달 내내 항생제를 달고 살기도 했고, 여름엔 수족구라는 전염병에 장염까지 겹쳐 일주일 넘게 제대로 먹지도 못하며 어린이집에 가질 못했다. 그 시기는 내가 집에서 산후 도우미 이모님과 산후 조리를 하고 있을 때였다. 큰아이 병수발 하느라 산후조리도 물 건너 간 눈물겨웠던 시기였다. 아이도 안쓰럽고, 나도 힘들어 밤잠 못 자고 눈물 흘리던 날들이 벌써 까마득한 걸 보니 아이가 많이 크긴 했나 보다.

내 주변 가족 친지 그 어느 누구도 도와줄 분들이 없어서 남편에게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육아 현실이 너무도 고통스러웠다. 수족구, 장염 이후엔 중이염과 후두염에 이어 폐렴으로 그 작디 작은 아이가 병원에 입원하게 되는 사태까지 벌어졌었다. 입원 경험은 엄마인 내가 좀 더 단단해지는 계기였다. 그날 이후로 어린이집을 관두게 되었으니 말이다. 어린이집을 그만두니 신기하게도 아프지 않아 병원 갈 일이 없어졌다.

동시에 나의 육아 조력자는 사라졌다. 사실 아이가 아팠던 것 이외에도 어린이집에 대한 신뢰 문제로 어린이집을 그만둔 이유도 있다. 어린이집에 대한 나의 신뢰가 깨지게 된 계기는 이러했다.

아이가 하원한 후, 식판이 다른 아이 것과 바뀌어서 왔길래 어린이집에 전화해서 담임 선생님을 바꿔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전화 받은 선생님이 당황해하며 아이 담임 선생님은 지금 전화를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사실은 아이의 담임 선생님께서 지금 임신 중인데 몸이 좋지 않아 일주일 병가를 내셨다는 거다.

내가 전화한 날은 목요일이었고, 그렇다면 담임선생님이 자리를 비운 게 그날까지 4일째 였다는 얘기였다. 몰랐던 사실을 예상치 않게 다른 선생님을 통해 들은 터라 어안이 벙벙했었다. 일주일 간 담임 선생님이 자리를 비운다는 사실을 왜 미리 이야기 해주지 않았던 걸까. 그러나 어린이집에 시시비비를 따지진 못했다. 어린 아이를 맡긴 부모 입장에서는 모든 것이 조심스러운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요즘 일련의 어린이집 사건들을 뉴스나 신문, SNS를 통해 접하며 신뢰가 깨진 상황에서 아이를 맡길 곳이 사라진 부모들의 마음이 가장 먼저 읽힌다. 특히 나처럼 아이 맡길 친정도, 시댁도 근처에 없이 힘겹게 육아를 해야만 하는 엄마들에겐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일 것이다. '워킹맘'이 아니라 '전업맘'이라도 육아는 누군가와 분담할 수 있어야 한다. 부디 믿을 만한 보육 기관들이 보육 문화의 중심이 됐으면 좋겠다.

육아에 지쳐 스트레스성 위염을 달고 사는 엄마가 제때 점심 식사를 여유롭게 하며, 단 몇 시간이라도 자유롭게 자기 시간을 가질 수 있을 때 가정이 더 평화롭다. 그런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 평화를 실현하며 살게 될 거라 믿는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해진다는 말을 실감하는 요즘, 마음 놓고 애 맡길 만한 곳이 있는 엄마들이 부럽다.
덧붙이는 글 블로그(http://blog.naver.com/rnjstnswl3)에도 중복 게재되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집 #육아 #전업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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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문화, 다양한 사회현상에 관해 공부하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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