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칼도 눈썹도 없이...거울 볼 때마다 절망했다

[나의 암 극복기 10] 나는 지금 터널을 빠져 나가는 중이다

등록 2015.01.30 12:22수정 2015.01.30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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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궁이의 불이 꺼지기 직전이다. 재와 불 사이에서 명맥만 겨우 보존한 회색의 타다만 장작이 적이 불안하다. 입안에 바람을 잔뜩 만들어 분다. 짧은 숨으로 자주 부니 재가 많이 날리며 불이 일어날 듯하다가 자지러지며 속만 태운다. 정작 일어나라는 불길은 안 일어나고 얼굴이 뜨거워 얼굴에 불이 붙을 지경이다.

아랫배 가득 숨을 몰아넣었다가 길게 내뿜었다. 숨이 바닥 날 때까지 내불었다. 얼굴에 피가 몰리는 느낌이 들 때쯤 회색의 장작이 붉어지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작은 불꽃이 일어났다. 아무도 없는 아궁이 앞에서 괜스레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는 흐뭇한 미소와 함께 새로운 진리 하나를 깨닫는다. 준비와 인내라는 진리를.

뱃속 가득 숨을 집어넣는 준비와 얼굴에 피가 몰릴 때까지 숨을 내뱉는 인내. 하다못해 불꽃 하나 일으키는 데도 준비와 인내가 필요하거늘 하물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준비와 인내는 기본이 아니겠는가.

시골집 아궁이에 장작불이 꺼지려고 할 때 불을 살리던 일이 생각났다. 그렇게 내 몸도 깊은 숨을 불어서 일으켜 세울 수 있었으면.

괜찮겠지, 하고 누웠는데 여지없이 구토가

제철이 아니라서 제법 비싼 값을 치르고 사 온 포도는 나를 실망 시키지 않았다. 포도 한 송이를 앉은 자리에서 뚝딱 해 치웠다. 입에 달거나 맛있어서가 아니라 그나마 먹을 만해서다. 오랜만에 배부르게 먹으니 기분이 좀 좋아진다. 배가 부르니 졸립다. 기분 좋게 먹었으니 괜찮겠지 하고 누웠다. 그런데 여지없이 구토가 난다. 잽싸게 의자 버튼을 눌러 등받이를 세워서 앉았다.

이 의자는, 글을 쓰다가 피곤하면 등받이를 비스듬히 뉘여 놓고 잠시 눈을 붙이는 용으로 장만한 것인데 이렇게 사용 될 줄은 몰랐다. 항암 시작하고 며칠은 침대에 누워서 잤는데 요즘은 거의 의자에 앉아서 잔다. 속이 비었을 때는 누울 수도 있는데 음식을 조금이라도 먹고 누우면 곧바로 구토가 나기 때문이다. 의자에 비스듬히 누웠다가 구토가 나면 얼른 버튼을 눌러서 의자 등받이를 세우고 일어나 앉기가 용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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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 때 쓰던 의자 이 의자에 앉았다 누웠다를 반복하며 온 하루를 보냈다. ⓒ 김경내


처음부터 의자에 눕는 것은 아니다. 앉아서 자다가 허리가 아프면 의자를 젖혀서 반쯤 눕는다. 더 이상 젖혀지지 않는 걸 알면서도 조금이라도 의자를 더 눕히려고 애를 써 보지만 헛수고다. 허리와 다리를 완전히 펴고 온전히 좀 자봤으면 좋겠다.

제일 먼저 출근하는 딸아이가 이른 아침에 의자에 앉아 있는 나를 보고 걱정스러워서 하는 말이겠지만 속 모르는 소리를 한다.

"일찍 일어 나셨네요. 좀 더 주무시지!"
"어, 요즘은 잠이 일찍 깨네."

이러다가 앉아서 자는 걸 아이들이 알면 걱정할 것 같아서 될 수 있으면 아이들이 일어날 시간이 되면 얼른 방에 들어갔다가 금방 잠에서 깨서 나오는 것처럼 나와서 의자에 앉는다. 굳이 거실에 의자를 놓고 앉는 이유는 방이 답답하기도 하지만 거실에 TV가 있기 때문이다. 낮 동안 혼자 있는 사람에게는 TV가 효자다. 덕분에 잠시나마 고통을 잊을 수도 있고 웃을 수도 있으니까.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다

두 번째 항암 치료를 받으러 가는 날이다. 택시를 탔는데 예민한 코가 또 작동을 시작했다. 속이 메스껍고 머리가 아프다. 겨우 참고 병원에 내리니 이젠 다리에 힘이 없어서 혼자서는 걸을 수가 없다. 집에서는 콜택시를 불러서 현관 앞에서 차를 타서 미처 몰랐던 부작용이다. 부축을 받고서야 암 병동에 겨우 도착했다. 약을 타서 먹어야 되는데 그냥 의자에 널브러졌다. 전담 간호사가 걱정스런 얼굴로 나를 들여다본다.

"음식을 잘 못 드셨지요? 검사를 해 봐야 알겠지만 이 상태로는 오늘 주사 맞을 수 없겠는데!"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겨우 일어나 검사를 했다. 불합격. 간호사의 말대로 백혈구 수치가 너무 떨어져서 항암주사를 맞을 수 없단다. 백혈구 수치를 올리는 주사만 맞고 일주일 후에 다시 병원에 와야 된단다. 간호사가 입맛 도는 약을 처방해 줄까 하고 물었다. 거절했다. 약을 먹지 않고 내 의지를 시험해 보기로 했다.

첫 항암하고 일주일쯤 지나자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다. 하루 이틀 지날수록 욕실 배수구가 막힐 정도다. 보기 싫었다. 머리를 감으면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물이 물과 함께 머리카락을 배수구에 수북이 밀어붙였다.

불현듯 머리카락을 깎아버리면 차라리 눈에 덜 뜨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미용실에 갈 엄두가 안 났다.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미용실에 들렀다. 머리카락을 밀었다. 아주 깨끗하게 밀었다. 손바닥으로 머리를 쓸어보니 까슬까슬하니 감촉이 좋다. 하지만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참 못생겼다. 얼굴은 우울해 보이고 근심 걱정에 절어서 우거지상이다. 쓰고 갔던 모자를 다시 쓰려고 보니 모자 속에 긴 머리카락이 어지럽게 붙어 있다. 그 머리카락이 반갑다.

머리를 밀면 눈에 안 보일 줄 알았는데 머리를 감자 여전히 짧은 머리카락이 욕조에 새까맣게 빠진 것이 보인다. 그 정황에도 나는 사람의 머리카락 많음에 감탄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아예 때수건으로 머리를 박박 문질러서 일부러 머리카락이 빠지기를 유도했다. 그렇게 두 번을 하자 머리가 맨살이 되었다. 눈썹도 빠졌다. 손톱과 발톱의 색깔이 시커멓게 변하기 시작했다. 몸도 좀 검어진 것 같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참으로 낯설다. 절망이다.

수술 후부터는 샤워를 할 때 눈을 질끈 감고 했다. 거울에 비칠 내 모습이 두려워서.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거울에 김이 서려서 나를 도와주고 있었다. 그래도 혹여 거울에 수술한 가슴이 비칠까봐 눈을 감고 얼른 욕실을 빠져 나오곤 했지만, 이젠 아예 얼굴조차 거울을 못 볼 것만 같다.

이런 몹쓸 병에 걸린 네가 슬프고 내가 슬프다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단백질 많고 원기 회복에 좋다는 추어탕을 먹기로 했다. 다음 날부터는 장어와 북어, 추어탕, 삶은 계란, 삶은 콩과 두부를 번갈아 먹었다. 사 먹는 음식으로는, 장어는 비싸서 주로 추어탕을 먹었다. 북어는 요리를 할 수가 없어서 맨 북어를 그냥 뜯어서 고추장이나 된장에 찍어 먹었다. 추어탕과 장어는 먹다가 남으면 미리 준비해 간 그릇에 담아서 가지고 왔다.

그렇게 하면 일인분을 한 사흘은 먹는다. 그리고 꿀에 수삼과 생마늘을 절여서 수시로 조금씩 먹기도 하고 초콜릿이나 포도를 간간이 먹기도 했다. 하루에 한 끼는 안 먹으면 죽는다는 마음가짐으로 억지로라도 먹었다. 토하고 먹고를 반복하더라도. 나머지 끼니는 먹거나 굶거나.

참고로, 항암에 좋은 음식책에서 배운 꿀에 절인 수삼과 생마늘은 마늘 때문에 숙성을 시키지 않으면 속이 쓰리다. 초콜릿은 당도가 낮은 것을 먹어야 겠지만 입맛이 쓰면 아무거나 입에 맞는 것을 골라서 먹으면 되고, 포도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항암에 아주 좋은 음식이라고 했다.

백혈구 수치를 올리는 주사를 맞고 일주일 만에 다시 병원에 갔다. 다행히 두 번째 항암 주사를 무사히 맞을 수 있었다. 주사를 맞고 밖에 나오니 남자화장실 쪽에서 심하게 구토를 하는 소리가 났다. 화장실 밖에서는 한 여인이 안절부절 못하며 서성이고 있다. 잠시 후 화장실에서 한 청년이 휘청거리며 나오고 있었다. 화장실 밖에서 서성이던 여인은 그 청년의 엄마였다.

그 와중에도 나는 내가 아파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내 주제에, 아픈 사람도 아픈 사람이지만 저 엄마 눈에서 눈물 마를 날이 없겠구나 생각하니 내 눈에 눈물이 난다. 슬프다. 이런 몹쓸 병에 걸린 네가 슬프고 내가 슬프다.

인내하지 못하면 항암치료가 끝나기 전에 정신병에 걸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는다. 어느 책에서 읽은 '굴과 터널의 차이'라는 글귀가 떠오른다.

'굴은 끝이 막혔지만, 터널은 빠져 나가는 출구가 있다.'

나는 지금 준비하고 인내하며 터널을 빠져 나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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