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판 판결문에 언급조차 안 된 이름 '권은희'

[분석] '무죄'의 뿌리는 1심... "권은희를 믿기 어렵다" 판단 계속 유지

등록 2015.01.29 21:43수정 2015.01.29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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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 선고 받은 김용판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 축소·은폐혐의로 재판을 받아온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지난해 2월 6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법정을 나오고 있다. ⓒ 권우성


권은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인물이다.

김 전 청장은 2013년 4월 19일 "서울경찰청이 2012년 12월 국가정보원 대선개입사건 수사에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권 의원의 폭로로 검찰 수사대상이 됐다. 하지만 2심까지 법원이 잇달아 무죄판결을 내리자 권은희 '수사과장'은 경찰 제복을 벗었다. 그는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끝까지 이 사건의 진실을 밝히겠다고 했다.

29일 대법원 2부(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김 전 청장의 무죄 판결을 확정지었다. 그러며 재판부는 총 4쪽짜리 판결문 어디에서도 '권은희'란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다. '항소심 판결이 잘못됐다'는 검찰의 상고를 기각한다고만 했다. 왜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대법원은 법이 제대로 적용·해석됐는지를 따지며, 중대한 오류가 없는 이상 사실관계는 하급심 재판부의 판단을 그대로 유지하기 때문이다.

판결문에 언급조차 안 된 이름 '권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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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한 권은희-김용판 2013년 10월 15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경찰청 국정감사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 ⓒ 유성호


'권은희를 믿을 수 없다'는 항소심 재판부(서울고등법원 형사2부·부장판사 김용빈) 결론 역시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지난해 6월 5일 재판부는 '김용판 전 청장이 수사를 방해했다'는 권 의원의 증언과 관련해서 1심 판결문을 그대로 인용했다. 김 전 청장 무죄 판결의 뿌리는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1부·부장판사 이범균)의 판단인 셈이다. 당시 1심 재판부는 철저하게 권 의원을 믿지 않았다.

107쪽에 달하는 1심 판결문 곳곳에는 "권은희를 믿기 어렵다"는 말이 적혀 있다. 권 의원의 말이 객관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고, 다른 주요 관계자들의 진술과도 모두 엇갈렸다는 점이 재판부의 주요 판단 근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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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11일 오후 불법선거운동 의혹을 받고 있는 서울 서초동 한 오피스텔에서 권은희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이 수차례 벨을 누르며 문을 열어 줄 것을 요청하고 있으나, 국정원 여직원이 문을 잠근 채 버티고 있다. ⓒ 권우성


김 전 청장의 혐의는 크게 네 가지다. 검찰은 그가 ▲ 2012년 12월 13일 국정원 직원 김하영씨가 수사를 맡은 수서경찰서에 임의로 노트북과 컴퓨터를 제출하고 ▲ 서울경찰청이 그것을 분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 12월 16일 오후 11시 수서서가 '박근혜 후보 지지·문재인 후보 비방글은 없었다'는 중간수사를 발표했으며 ▲ 12월 19일 서울경찰청이 수서서에 마지막 분석자료를 넘기는 과정 전반에서 당시 수사과장이던 권 의원을 배제하고 수사 결과를 축소·은폐했다고 주장해왔다.


2013년 8월 30일 1심 2차 공판 때 증인으로 나온 권 의원은 이 상황을 매우 상세하게 설명했다. 권 의원은 2012년 12월 12일 오후 3시쯤 김 전 청장으로부터 '김하영씨 컴퓨터 등의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하지 말라'는 전화가 왔다고 말했다. 또 서울경찰청 디지털분석팀이 12월 14일 김씨의 인터넷커뮤니티 '오늘의 유머(오유)' ID 등이 담긴 텍스트파일을 찾고도 이를 19일에서야 수사팀에 알려줬고 증거물 반환도 미뤘다며 12월 14~19일을 "잃어버린 5일"이라고 표현했다.

1심 재판부는 권 의원의 진술을 전부 믿지 않았다. 통화내역 등 관련 자료들을 봐도 권 의원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객관적 사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첫 번째 이유였다. 재판부는 또 "이 사건 공판 과정에서 경찰관 17명이 증인으로 출석했는데 '피고인이 선거에 개입하거나 실체를 은폐할 의도로 허위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분석 결과 회신을 거부하거나 지연시켰음'을 뒷받침할 유력한 진술증거는 주로 권은희의 진술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권은희의 진술 중 이 사건 공소사실과 관련된 내용 대부분은 객관적 사실과 어긋나거나 다른 증인들의 진술과 배치된다. 반면 권은희를 제외한 다수의 다른 증인들은 대체적으로 서로의 진술에 부합하는 진술을 했다."

끝까지 권은희를 불신한 법원

국회 청문회에 이어 또 다시 경찰 동료들로부터 '왕따'를 당한 권 의원은 결국 재판부의 신뢰를 잃었다. 그리고 한 번 권 의원을 불신한 법원은 끝까지 그를 믿지 않았다.

반면 김 전 청장에게 "피고인은 무죄"라고 말했다. 지난해 2월 6일 1심 선고를 듣고 나온 김 전 청장은 "공정하게 진실을 밝혀줌으로써 저와 경찰 가족의 명예를 회복시켜준 재판부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활짝 웃었다. 항소심 판결이 나온 6월 5일에도 그의 얼굴은 밝았다. 무죄를 충분히 예상한 것일까. 김 전 청장은 29일 대법원에 아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권 의원은 이날 참담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보도자료를 내 "참담하고 정말 답답하다"며 "명백히 중간수사결과 발표내용과 수사결과가 다름에도 도대체 왜, 무엇을 위해 사법부가 이렇게 무책임하게 판단하는지 답답하다"고 했다. 또 "지난 6개월여의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자책감도 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권 의원은 "원세훈 전 원장과 군 사이버사령부의 조직적 댓글활동 재판 등 다행히 아직도 진행 중인 수사와 재판이 많다"고 했다.

"이 모든 것이 끝날 때에는 어느 누구도 감히 진실을 숨기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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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판 #권은희 #국정원 대선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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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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