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 홍수의 시대, 흑백 사진이 더 좋다

[포토에세이] 흑백 사진의 묘미

등록 2015.01.30 17:03수정 2015.01.31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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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서울에서는 현존하는 최고의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 알려진 세바스치앙 살가두의 'GENESIS'(오는 2월 28일까지 전시 연장)와 2004년 이 땅과 이별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영원한 풍경'(오는 3월 1일까지 전시)이라는 사진전이 세종문화회관과 동대문 DDP에서 나란히 열리고 있다.


사진애호가들에게는 아주 기쁜 소식이다. 대가들답게 사진 몇 점을 전시한 것이 아니라 200장 이상의 작품을 전시한다. 사진 한 장 한 장을 음미하며 빠르게 관람을 해도 두시간 가까이 걸린다. 그래서 관람객들이 적게 모이는 시간에 가야 천천히 사진을 음미하며 볼 수 있다.

사진전의 공통점은 모두 흑백사진이라는 점이다. 살가두나 브레송 모두 컬러의 시대에도 의도적으로 흑백으로 사진을 담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살가두는 흑백작업이 더 본래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되었기에 흑백으로 작업했다고 밝혔다. 아마 브레송의 경우에도 오랫동안 흑백작업을 했고 그 연장선상에 서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컬러의 홍수시대에도 여전히 흑백사진이 살아있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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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사진 지하철 5호선 거여역 사거리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대기 중에 담은 사진 ⓒ 김민수


컬러의 홍수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흑백사진을 보는 순간 '향수'가 되살아 나고, 그 향수는 흑백사진 속에 들어있는 컬러를 상상하게 한다. 굳이 컬러가 상상이 되지 않더라도 보는 이의 컬러가 투영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컬러사진은 순간적인 색깔에 매료되는 장점이 있다. 반면 흑백사진은 천천히 매료되고, 그 시간때문에 더 깊게 각인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 보여주면 곧 식상하게 된다. 오히려 온전히 보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보기를 갈망하는 인간의 관음이 작용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컬러의 홍수 시대에도 여전히 흑백사진이 살아있는 이유는 이것이 아닐까.

단순히 디지털로 얻는 흑백이미지가 아닌 흑백필름과 클래식카메라로 불편하게 얻는 사진에 대한 매력, 그것은 곧 빠름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이기도 하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 빨리 변화되는 시대를 살아왔다.

그 거대한 빠름의 문화 속에 적응하느라 너도 나도 달려왔지만, 그 빠름에 적응한 대가로 인간은 더 많이 행복해진 것이 아니라, 더 많이 소유한 것들의 노예가 되어버렸다. 이 시대에도 여전히 흑백사진이 사랑을 받고 있다. 흑백사진 작업을 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빠름의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하나의 삶의 방식일 것이다.

사진전을 보고 다시 흑백사진을 찍을 준비를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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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카메라 아직도사용가능한 나의 필름카메라들, 디지털 시대가 되자 그들은 조용히 장식장을 지키고 있었다. 그들로 사진을 담으면 그들에게 새 생명이 주어지는 것이리라. ⓒ 김민수


살가두와 브레송 사진전을 본 이후 다시 한 번 흑백사진을 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흑백필름 4통을 확보했고, 오래된 필름카메라들을 점검하고 있다. 같은 필름을 사용해도 카메라마다 각기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내가 사용하고자 하는 카메라는 니콘FM2와 디지털 카메라가 나오기 직전까지 사용하던 캐논eos100QD, 후지필름DL-300RH 얼마전 애써 수리한 야시카 ELECTRO 35 등이다. 최근에도 간혹 필름카메라를 사용하긴 했지만, 불편함은 뒤로 하고라도 경제적인 이유로 사용할 수 없었다.

디지털 시대의 조급함을 극복하는 것도 좋고 기다림의 미학도 좋은데, 필름인화와 사진인화를 한 후 디지털이미지로 변환하는 데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경제적인 여유가 있었다면 모를까 그리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생각보다 정성껏 찍어도 36장짜리 필름 한 롤에서 작품사진이라고 할 만한 단 한 장의 사진도 건지지 못할 때도 있었으니 난감했던 것이다.

아주 천천히, 느릿느릿, 평점심을 유지하기 위해서 마음수련을 할 때가 아니라면 필름사진을 할 수 없겠다 싶었다. 그만큼 디지털 시대와 빠름의 문화는 나의 조급함을 잔뜩 키워놓은 것이다. 그래도 막상, 거장들의 흑백사진을 보니 다시 한 번 필름카메라를 들고 거리를 배회하고 싶은 것이다.

나는 안다. 흑백필름 4통이 적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작년인가 필름 한 통을 인화하기까지 거반 3개월여의 시간이 걸렸다. 작품 사진을 담는다는 마음으로 담고 싶었던 순간들을 만나질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찰나의 순간은 이미 카메라를 집어들기 전에 사라져 버렸다. 필름카메라를 다시 만지면서 브레송 같은 이들이 왜 거장인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 열악한 상황 속에서 그 위대한 작품들을 남겼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물론, 현존하는 사진가인 살가두는 중형디지털카메라도 사용을 한다. 제네시스 작업을 할 때 펜탁스645를 사용했다고 그의 공저 '나의 땅에서 온 지구로'에서 밝혔다. 물론 카메라가 좋은 것이라서 좋은 작품을 찍었다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카메라와 좋은 사진은 큰 관계가 없고, 어떤 사진작가에 손에 어떤 카메라가 들려지느냐가 관건일 것이다. 살가두라면, 똑딱이 보급 카메라로도 충분히 제네시스 작업을 해나갔을 것이다.

무엇이든 과하지 않아야 부담이 없다

무엇이든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과잉의 시대를 살아가고, 과잉의 시대 속에서 절대적인 궁핍을 살아가야만 하는 이들을 양산해내고 있다. 정치, 사회, 문화적인 영역뿐 아니라 사진의 영역도 그러하다. 이런저런 사진동호회나 사진전문사이트에는 사진들이 넘쳐남다. 수많은 컬러사진들과 먹빵사진들과 셀카들이 인터넷 공간을 잠식하고 있다.

이것도 하나의 문화일 것이다. 이런 홍수 속에서 다시 나에게 묻는 것이다. 지금 시대가 지나치게 컬러풀하지 않은가? 이런 시대에 작은 것이 아름답다하고, 천천히 느릿느릿 걷는다는 것을 흑백사진이나 혹은 필름사진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사진찍은 행위, 그 자체도 하나의 삶이다. 물론 개인적으로 흑백사진만 고집하지 않을 것이며, 사실 흑백사진을 잘 찍지도 못한다. 어쩌면 그 다양한 색을 흑과 백이라는 두 가지 색으로 표현한다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다. 솔직하게 실력이 되질 않는다. 그러나 작품사진을 찍겠다는 게 아니라 삶의 자세를 추스려보고자 하는 시점이라 흑백사진에 애착이 더 가는 것이다.
#흑백사진 #컬러사진 #세바스치앙 살가두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니콘FM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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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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